프랜차이즈 갓 260화
63장 백호열 게이트(3)
박호진이 자세히 설명했다.
"관리비 같은 건 전혀 신경 쓸 것 없어. 계약서를 쓸 것도 없네. 전입신고는 조 검사 자네 마음대로 하게. 내부감사가 염려된다면 지금 사는 집 주소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어려운 설명도 아닌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마음이 너무 심하게 들뜬모양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조성만은 당장 원룸을 정리하고 친척 집으로 주소지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모든 가구는 어제 막 들여온 새것이네. 청담동 가구매장에서 주문한 것들이라 이 집의 격에 맞을 걸세."
문득 조성만은 생각했다.
가구가 집의 격에 맞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자신이 격에 맞는지 아닌지를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동은 층당 2개 가구가 있어. 하지만 이 펜트하우스는 층을 혼자서 다 쓰지. 더군다나 복층. 즉 다른 가구보다 전용 면적이 4배나 된다는 뜻이야."
"네? 복층이었습니까?"
그제야 놀란 반문이 터져 나왔다.
박호진은 혀를 끌끌 차며 턱짓으로한 쪽 방향을 가리켰고, 조성만은 그제야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여기 한 층 넓이가 대충 462제곱미터는 될 거야. 평수로 치면 140평정도 되지. 복층이니까 280평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될 걸세."
"……정말 무지무지하게 크군요."
"자세한 가격은 모르지만 100억은 훌쩍 넘을 거야."
"이, 이런 집에 제가 그냥 살아도 되는 겁니까? 관리비만이라도 제가 부담하는 게 도리에 맞을 거 같습니다만."
그 말에 박호진이 피식 웃었다.
"여기 한 달 관리비가 자네 월급보다 더 셀 텐데?"
"그, 그 정도나 됩니까?"
"사장님 취미가 부동산 수집이라서 그냥 무상으로 거주하게 해주시는 거니 감사히 받아. 정말 자네가 죽을 때까지 여기서 지내도 되니까 부담은 가지지 말고."
"……."
"실내 월패드에서 출입 비밀번호와 자네 지문 정보를 등록할 수도 있는 데, 그럼 카드가 없어도 자유롭게……."
조성만은 이미 박호진의 말이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런 초호화 복층 펜트하우스에서 살게 됐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검찰총장조차도 부럽지 않았다.
총장이라 해도 이런 집에서 사는 경험은 평생 얻기 힘들 테니까.
"더 자세한 건 여기에 전화하면 알아서 처리해 줄 거야."
박호진은 설명을 대강 정리하고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무슨 주택관리업체, 어쩌고 하는 상호가 적힌 명함이었다.
"이게 뭔가요?"
"주택관리전문업체인데, 청소, 세탁, 요리 등 주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관리해 줄 거야. 아,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이용하면 되네."
박호진은 빙긋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자네는 정말 행운아야. 알지?"
"네, 아주 몸서리치게 느끼고 있습니다."
"자네가 이번에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어준 덕분이야. 사장님이 상당히 고마워하시더라고. 그러니 이런 큰 선물을 주신 거지. 그 은혜 잊지 말게."
"예, 알겠습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조성만은 박호진의 회유에 넘어간 이후에도 검찰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하수영에게 도움을 제공했다.
기껏해야 세단 한 대 정도 생각했던 조성만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 * *
박호진이 돌아갔다.
펜트하우스에 혼자 남은 조성만은 불현듯 프리덤을 향해 물었다.
"프리덤…… 이게 꿈은 아니겠지?"
-홈 관리 시스템 동기화가 가능합니다. 접근 권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동기화를 실행하시겠습니까?
"그게 뭐야?"
-이 집은 홈 유비쿼터스 컴퓨팅시스템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집 안의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저를 통해 동기화하시면 더 편리하게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 동기화해."
-동기화 완료되었습니다.
허락하자마자 허무하리만치 모든게 빨리 끝난다.
다소 멍해 있던 조성만은 홈 관리 시스템이 어떤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뭔가 멋지거나 재밌는 그런 거 없어? 오늘이 첫 입주일인데 조용하기만 하니까 너무 허전하네."
그 순간 펜트하우스 전체의 조명이 변했다.
주조명이 모두 꺼지고 간접 조명이 다양한 색을 뿜어내면서 서울 야경에 녹아드는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홈시어터 스크린에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의 자연 풍경이 8k 고화질로 재생되며, 아늑한 분위기를 다져주었다.
집안 전체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복합적인 화음을 울리고, 창밖의 발코니 정원에 푸른색 물안개가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이야…… 이거 여자 데려와서 고백하기 딱 좋은 분위기인데?"
-이성을 유혹하기 유리한 집안 환경을 연출해 봤습니다. 홈 클럽 환경 모드도 있습니다.
"한번 해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신 사나운 조명이 집 안을 뒤덮었다.
시끄러우면서도 흥을 돋우는 음악이 온 집 안을 쿵쾅쿵쾅 울렸다.
-바닷가 캠핑 환경 모드도 있습니다.
"좋아, 그것도 해봐."
-산계곡 캠핑 환경 모드도 있습니다.
"오케이, 그것도."
지시를 내릴 때마다 집안 분위기가 휙휙 바뀐다.
수백 개가 넘어가는 직접, 간접 조명과 수십 개가 넘어가는 서라운드스피커 채널, 다양한 스트리밍 음악과 홈 극장 화면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됐어, 이제 일반 가정집 모드로 해줘."
눈을 어지럽히던 현란한 보조 조명이 일제히 꺼지며, 백색 광채가 펜트하우스 전체를 뒤덮었다.
조성만은 통유리창 앞에 놓인 리클라이너에 앉았다.
좌측에 놓인 간이 냉장고를 열자, 안에 담긴 다양한 종류의 주류가 보인다.
맥주 한 캔을 꺼내 목을 적신 그는, 다리를 꼰 채 한강 야경을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진짜 좋다."
* * *
마케미야는 뒤늦게 하수영 소식을 듣고 분노를 표했다.
"수영레스토랑이 영업정지 당했다고? 이것들이 감히 우리 하수영 사장을 건드려?"
하수영이 누군가. 자신의 고질병, 요도통을 낫게 해준 사람 아닌가.
개인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업 파트너일뿐더러, 장차 며느리가 될 정서희의 상사이기도 하다.(본인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게다가 이제는 엘릭서드링크를 파는 프라임웰빙을 통해, 굳건한 사업적 결속 관계가 형성되었다.
"내가 엘릭서드링크 미국 유통 때문에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고약한 것들! 그래, 대체 누가 우리 하수영 사장을 공격하는 거냐?"
"주곽렬 회장이라고, 한국 프랜차이즈 식품 회사 오너인데 그 사람이 서울지검장에게 청탁을 넣어서 흔드는 모양입니다."
"경쟁자를 그런 비열한 방법으로 흔들어서 사업체를 뺏으려는 방식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다를게 없군. 좋아, 내가 지금 당장 가겠다."
마케미야는 미국 출장을 중단하고, 아랫사람에게 모든 일을 맡긴 채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래 봬도 그는 5,000억 달러의자산을 운용하는 마케미야트러스트의 오너다.
즉 포브스 세계 부자 순위에서 언제나 이름이 빠지지 않는 거물이라는 뜻이다.
공개된 자산만 추리면 아마 한국최고의 부자도 그에게 견주지 못한다.
"서해그룹과 미팅 잡아. 한국 검찰은 아무래도 그 친구들이 가장 쉽게 다룰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러나 마케미야가 한국에 돌아와서 막상 행동을 개시하려고 했을 땐…….
"뭐야? 성진우 검사장 뇌물 상납스캔들이 터져?"
"300억 원정도박? 이건 또 뭐야?"
"여당 선거자금? 저번 대선도 얽혀 있었다고?"
"비리금액 전체 몸통이 수천억 원이 넘어간다고?"
"대통령까지 탄핵되게 생겼다고?"
뭘 해보기도 전에 상황은 예측 불가능한 소용돌이로 치닫고 있었다.
순식간에 판이 커졌고, 대한민국정·재계는 짙은 혼란으로 풍덩 빠져 버렸다.
"……서울시장한테 전화 넣어."
"네, 회장님."
이런 상황에서 자칫 크게 움직이다.
가는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른다.
적어도 하수영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게 해야 하지 않은가.
마케미야는 오랜 친분을 다져온 서울시장을 조용히 만났다.
이 미쳐 돌아가는 한국 정계를 최대한 외면한 채, 자신이 줄 수 있는 조그마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수영레스토랑 영업정지 처분 내역을 조사해 달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시장님, 수영레스토랑은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가게보다 청결하게 운영합니다.
미슐랭 3스타 가게보다 나아요."
"음……."
"그런 가게가 위생 문제로 영업정지라니요, 뭔가 비리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엄중한 조사를 원합니다."
"사실은 이미 영업정지 처분은 취소가 됐습니다."
"네?"
마케미야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반문했고, 시장은 웃으며 설명했다.
"강남구청에서 뭔가 큰 문제가 있었더군요. 영업정지는 일괄적으로 취소 처리됐고, 업무정지로 입은 손해에 관해서는 강남구에서 따로 배상을 해줄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게 됐습니까."
마케미야는 혼란스러웠다.
뭐지, 나는 뭐 때문에 엘릭서드링크 미국 유통 초석을 다지다 말고 한국에 들어온 거지?
"성진우 지검장한테 뇌물을 준 기획사가 강남구청장과 어찌어찌 연결이 되어 있었나 봅니다. 지금 서울 시에서 자체적으로 내부 감사가 진행 중입니다. 부당한 영업정지 처분도 그 와중에 발견됐고요."
"……다행이군요."
"사실 저도 수영레스토랑 음식을 좋아합니다. 그런 가게가 위생 불량이라면, 서울에서 어떤 음식점도 영업 못 합니다."
마케미야는 맥이 잔뜩 빠졌다.
진짜 이럴 거면 한국에는 왜 왔을까.
* * *
전성렬은 '백호열 게이트'의 진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온 나라가 뒤집힌 게, 텐프로 술집을 더 이상 운영 못 하게 된 백호열의 원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이가 극도로 적다.
"3년 차 검사라. 뭐, 검사 몇 명 키워줘서 나쁠 건 없다고 보네. 돈으로 적당히 권력을 사두면 나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정경유착 같은 건 시시해요. 그냥 절 도와줬으니 그에 대한 보답을 했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뭘 줬나?"
"그냥 투룸 하나 빌려줬습니다. 보니까 주거 문제로 마음고생을 좀 하는 거 같더라고요."
"저런…… 검사씩이나 되는 친구가 주거 문제로 마음고생을 할 정도면 꽤 청렴한 모양이군."
"손을 더럽히고 자시고 할 시간도 없었죠. 이제 임관한 지 얼마나 됐다고요."
"그래서 투룸을 빌려줬다고?"
"네, 옥탑방 투룸으로 하나 내줬어요. 그래도 야경은 괜찮으니까 답답한 건 없을 겁니다."
"옥탑방 투룸이면 오히려 자기를 무시한다고 자존심 상해하지 않던가?"
"전혀요. 자기가 원래 살던 집보다 훨씬 좋다고 아주 좋아한답니다. 변호사님 말 들어보니까 그 집에서 결혼도 하고 애들 시집살이도 시키고 나중에 임종도 맞고 싶다고 하던데요?"
"너무 나간 이야기이긴 한데,나중에 아내만 남겨두고 먼저 죽으면 그 아내는 어떻게 되지?"
"아내까지는 그냥 계속 살라고 할 의향 있습니다. 어차피 옥탑방 투룸월세 정도는 그냥 안 받아도 상관없어요."
"옥탑방 투룸인데 원래 살던 데보다 좋다고 기뻐할 정도면,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구만. 그 친구."
"그래도 뚝섬유원지가 보이는 청담동 한강뷰니까요."
"휘유, 역시 청담동이 비싸긴 비싸."
"그래도 복층이니까 살 만할 겁니다."
"오, 복층식 투룸이라니. 하 사장 자네가 큰 선심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