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57화
62장 쏘아 올린 작은 공(6)
"프리덤은 모든 걸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경찰청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나라가 개판이네, 개판.'
실비아컴퍼니 대표 오철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회사까지 찾아온 경찰청장앞에서 못마땅한 기색을 보일 순 없었다.
"프리덤이 모든 걸 알고 있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범인은 살인을 시도하기 전 스마트폰을 껐습니다. 하지만 범행 장소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는 줄곧 켜져 있었죠. 그리고 최원후 의원의 스마트폰은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계속 켜져 있었습니다."
"……."
"실제로 위험을 감지한 최원후 의원의 프리덤이 112와 119에 신고 메시지를 넣었습니다. 당연히 그 모든 상황을 낱낱이 확인했을 겁니다. 영상은 몰라도, 적어도 소리는 듣지 않았겠습니까?"
"청장님은 프리덤이 블랙박스처럼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디지털화해서 기록, 저장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닌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개인비서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빈틈없는 비서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주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프리덤이 자신이 접하는 영상, 소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두 저장할 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생활 침해의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사생활 보호를 우려하는 유저들은 필요할 때가 아니면 스마트폰 카메라를 덮어두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사생활 시간에는 아예 스마트폰을 꺼두기도 한다.
물론 약관에는 수집한 개인정보는 어떤 경우에도 유출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되어 있다.
프리덤을 실행하기 전, 대화를 통해 그 부분을 분명하게 짚어주기도 한다.
-제가 보고 듣고 취득하는 모든 정보는 오로지 주인님을 보필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며, 주인님의 허락없이 타인에게 제공되지 않습니다. 최고관리자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천재지변 시 인명구조 등을 위해서 위치 정보 같은, 사생활과 무관한 최소한의 정보협조는 예외적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만, 이 경우도 대한민국의 법률에 합치되는 선에서만 시행됩니다. 예를 들면 긴급피난 같은 위법성 조각사유죠.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소 찜찜하더라도 믿고 프리덤을 사용한다.
정 불편한 상황에는 스마트폰을 끄면 되지 않느냐, 하는 수단도 있으니까.
"이건 수사를 위한 조사입니다.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이미 영장 청구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영장을 가져오셔도 큰 소용은 없을 겁니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경찰청장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변했고, 오철현은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7,000억 주식을 가진 개발자 출신 부자라고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으며 경찰의 최고봉까지 올라간 이의 살벌한 눈빛을 받아내기는 힘들었다.
"협조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않는 게 아니라, 못 한다고요?"
그제야 민성현 경찰청장의 눈빛이 다소 누그러들었다.
오철현은 하수영한테 들었던 설명을 토대로,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했다.
"로우 데이터(raw data)라고 아십니까?"
"알지요. 가공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날것 정보를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청장님은 프리덤이 주변의 정보를 수집할 때, 원형 데이터 그대로 저장, 기록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민성현 청장의 눈빛에 약간의 호기심이 떠올랐다.
"이거 약관에도 있는 내용인데요, 잘 모르시는 유저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프리덤이 카메라로 취득한 영상 데이터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흠."
"유저 한 명이 샤워를 하면서 프리덤의 카메라를 켜놓고 수다를 떨고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프리덤은 당연히 카메라를 통해 유저의 알몸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영상 자료로 저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요?"
"실시간 정보 가공이 들어가고, 그 '가공된 정보가 저장' 되는 거지요. 예를 들어서 '사용자는 지금 옷을 전혀 입지 않은 채 샤워 중이고 왼손에는 샤워기를 어깨높이만큼 들고 있으며, 가슴에는 비누 거품이 421세제곱센티터만큼 왼쪽 쇄골에 걸쳐 명치까지 묻어 있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경찰청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에 여성 유저가 출근길에 깜빡 잊었던 게 생각나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프리덤, 내 샤넬 립스틱이 왜 핸드백에 안 들어 있지? 내가 안 챙겼니? 라고 말입니다."
어느새 민성현 청장은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그럼 프리덤은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오늘 주인님이 출근하기 직전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는데, 화장대 위에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이때 프리덤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활용하는 자료는, 화장대를 촬영한 가장 최신 사진이 아니다.
12분 32초 전, 화장대 좌표상 373, 312에는 XX로션이, 672, 871에는 A썬크림이…… 1,092, 997에는 샤넬 립스틱이 위치한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라는 가공된 정보를 근거로 대답하는 겁니다."
"왜 원형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습니까? 가공하는 과정에서 잘려 나가는 정보도 있을 텐데요."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개인비서 수행을 위해서 불필요한 정보지요. 그래서 정보를 취득하는 그때, 실시간으로 이게 나중에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별해서 잘라내고 다듬으면서 가공을 하는 겁니다."
"……."
"하나 더, 강력한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 로우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애초에 저장하고 있지 않으니 유출될 것도 없고요."
프리덤이 여자 아이돌 사용자의 샤워하는 모습을 봤어도, 'XX일 XX 시에 23분 동안 샤워를 했다.' 라는 식으로 기억하면, 해커가 노리는 샤워 영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민성현 청장은 그제야 오철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그럼 프리덤 서버에는 살인 행위당시의 녹화나 녹음 데이터 자체가 없단 말입니까?"
"없습니다."
"……이런."
"프리덤한테 자료를 달라고 해봤자 아마 아주 세밀하고 리얼하게 묘사된 문장들만 잔뜩 나올 겁니다. 물론 실화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내용이지만요."
대충 이런 식이 될 것이다.
<20XX년 XX월 XX일,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XX번지 2501호, 제1거실, 흰색 탁자에서 남서쪽으로 3.5미터 떨어진 지점>
(23:22:19) (최원후) 지, 진성아. 제발 이러지…… 쿨럭! 쿨럭!
(23:22:29) (하진성) 왜 그랬습니까! 왜 나한테만 그랬냐고요! 내가 그렇게 만만했습니까!!
(23:22:30) (하진성이 최원후의 목을 칼로 찌른다) <이하 중략>
"이해하셨습니까?"
"……."
민성현 청장은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건 법정에서 아무런 증거도 안 된다.
세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추정하는 데는 물론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법 집행권을 발동하기 위한 증거자료로서는 조금도 가치가 없다.
최소한 육성을 실시간으로 녹음한 데이터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래서야 그냥 살인사건 영화 연출각본이잖습니까."
"아, 그거 좋은 설명이십니다.다음부터는 저도 그렇게 설명을 해야겠습니다."
"……이래서는 증거물로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영장을 가져오시면 저희가 프리덤서버에 저장된 기록물을 드릴 순 있습니다만, 증거로서는 도움이 안 될 겁니다."
"할 수 없지요. 그래도 사실관계 파악에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어쨌든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아닙니까?"
"음…… 그것도 사실 남아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만."
"무슨 말씀이신지?"
"만약 최원후 의원님이 생전에 프리덤한테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저는 프리덤한테 이미 지시를 했습니다. 만약 제가 갑작스럽게 죽게 된다면, 제가 지정한 정보 외의 모든 정보는 즉각 파기하라고 말입니다."
"……헐."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민성현 청장은 다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오철현은 멋쩍은 표정으로 설명했다.
"약관에도 이미 있습니다. 사용자 사망 시, 그때까지 프리덤이 가진 기억은 1년간 보존 후 파기됩니다. 말했다시피 사망이나 유언 같은 법적 사후문제를 대비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
"다만 사용자는 개별 지시를 통해 파기 시점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보존 기억 열람을 위해서는 영장이나 유족의 정당한 요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유족의 요구도 '정당'해야 한다.
그저 죽은 자녀의 사생활을 추억하고 싶어서, 라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못 된다.
"잊혀질 권리라는 게 매우 중요하거든요. 프리덤은 사용자와 누구보다 가까운 개인비서이니만큼, 그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최원후 의원도 프리덤한테 그런 지시를 내렸습니까?"
"그건 지금 바로 확인해 드릴 수 있습니다. 사생활 보호에 위반되지 않으니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야,프리덤."
-네, 주인님.
"프리덤 서비스회사 실비아컴퍼니 대표이사 자격으로 묻는다. 죽은 여당대표 최원후 의원이 본인 유고 시 프리덤 서비스 저장 기록을 파기하라고 지시한 적 있어, 없어?"
-파기 지시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 외에는 영장이나 유족의 정당한 요구가 있어야 공개할 수 있습니다.
"보셨죠? 이렇게 깐깐한 녀석이라니까요. 이것도 불필요한 영장청구절차가 안 생기도록 협조해 주려고 말해주는 겁니다."
"또, 똑똑하군요. 정말…… 왜 사람들이 그렇게 프리덤을 쓰는지 알겠습니다. 저도 써봐야겠군요."
"어, 청장님은 프리덤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에 민성현 청장은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동안은 사생활이나 보안 염려도 있고 해서 안 썼는데…… 이 정도면 써도 될 거 같네요."
* * *
민성현 경찰청장이 빈손으로 돌아간 후, 오철현은 긴장감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회전의자에 깊이 몸을 묻듯이 주저앉은 그는 눈을 반쯤 감고 한숨을 쉬었다.
"진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프리덤, 대체 보좌관은 왜 15년 넘게 모시던 의원 나으리를 죽이고 자기도 죽은 걸까?"
-권한을 벗어난 질문입니다.
"그냥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기초해서 잡담이나 떨자는 거다."
-이래도 저래도 인생이 망가지는 거라면, 차라리 같이 죽이고 같이 죽겠다는 자포자기 심리가 강했습니다. 술도 많이 취한 상태였고요. 경찰이 공개한 내용과 인터넷 여론을 반영해서 제공하는 견해입니다.
"아무튼 영장 가지고 온다고 했으니까 미리 준비는 하고 있어야겠지? 뭐 준비하면 되냐?"
-수사관이 가져온 공무용 저장 장치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영장이 나올 거 같진 않습니다.
"영장이 왜 안 나와?"
-검찰은 이 사건을 만취한 보좌관이 그동안 쌓인 서러움 때문에 울컥해서 범행을 저지르고, 뒤늦게 술이 깨서 후회와 죄책감에 자살했다는 식으로 포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300억 선거자금 의혹은 조용히 묻으려고 하겠지요.
"뭐야?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