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52화
62장 쏘아 올린 작은 공(1)
저녁에 선약이 있긴 했다.
하지만 알 게 뭔가. 전 서울고등법원장의 연락을 받은 마당에.
그저 정년퇴임한 흔한 판사가 아니라, 법조계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거기에 변호를 맡은 의뢰인은 최소수천억 대 자산가.
조성만은 선약을 취소하고, 박호진이 알려준 장소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장소는 청담동에 있는 참치집이었다.
개별룸이 있긴 했지만 홀장사 위주로 하는 곳이라 그런지, 조금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앉으시게."
먼저 와 있던 박호진 변호사가 앉기를 권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퇴근하고 바로 달려왔는데 차가 좀 막혔습니다."
"공사가 다망한 분이니 당연한 것을. 개의치는 말고."
박호진은 인자한 학자풍의 인상을 품고 있었다.
"조 검사, 여기는 처음 와 보지?"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중 금속 염려가 전혀 없는 무공해 청정참치를 취급한다고요."
"그게 소감의 전부인가?"
"나중에 한 번 와야지 하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시간이 되지 않아서……. 그런데 소감의 전부냐는 것은 무슨 의미이십니까?"
"반응 보니 모르는 게 맞나 보군. 여기 참치집 상호를 보지 못했는가?"
"수영오세안…… 아, 설마 그럼?"
그제야 깨달은 조성만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여기가 바로 하수영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참치 프랜차이즈 본점일세. 그리고 1층과 지하 1층에는 수영레스토랑 본점이 입주해 있지."
"그럼 여기가 바로……."
조성만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건물안전관리 위반 혐의로 수사가 시작된 바로 그 빌딩 아닌가. 부가 가치세 탈세 혐의까지 얽혀 있는 수영레스토랑 본점이 있기도 하고.
"기소 서류에만 파묻혀 지내다 보니 미처 세상 돌아가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수영레스토랑, 수영오세안… 이름만 봐도 딱 알아차려야 했는데 설마 참치 프랜차이즈까지 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조 검사, 혹시 라면 좋아하나?"
"예?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혼자 살다 보니 집에서 인스턴트라면 자주 먹게 되더군요."
"그럼 황비버섯라면을 자주 먹겠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봉지라면이죠.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하수영 대표님이 프라임컴퍼니 오너일세. 회사 지분의 85%를 갖고 있지."
"……?"
"조 검사 정말 속세 일에 관심이 없구먼. 황비버섯라면 제조회사가 바로 프라임컴퍼니야."
"그게 정말입니까?"
그제야 조성만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또 한 번 놀랐다.
다른 건 몰라도 인스턴트 라면은 황비버섯라면이 이미 제패한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제조회사의 오너라고?
'나오길 참 잘했다…….'
시가 550억짜리 청담동 빌딩은 이제 보니 별 거 아니었던 셈이다.
'1,450억짜리 저택에 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좀 어두웠을 뿐, 그렇게 생각 없는 모지리는 아닙니다. 앞으로도 부디 잘 이끌어 주십시오."
"성진우 그 친구 이름을 대뜸 꺼낸 걸로 봐선 믿을 만한 판단력을 지녔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조 검사를 부른 거야."
"예,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가 아는 대로 자세히 이야기 해 주게."
"네. 그럼 먼저……."
조성만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사건을 배당받았고, 박병석 부장검사의 행동이나 의도가 어떠했으며, 검찰내의 성진우 파벌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는 면밀히 말했다.
뿐만 아니라 성진우 검사의 스폰서, 식품 사업자 곽성렬 회장의 존재까지도 다 밝혔다.
주의 깊게 듣고 난 박호진이 조용히 봉투 한 장을 내밀었다.
봉투를 바라보는 조성만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건……?"
"부담 가지지 말고, 그냥 술값이나 하라고 주시는 거니까."
주는 게 아니라 '주시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즉 돈을 주는 주제가 박호진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해는 말게. 그분은 아무것도 모르시네. 장판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굳이 자신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지."
"그렇습니까."
"서운해할 건 없어. 앞으로 자주 연락하지. 자네의 협조도 기대하고 있겠네."
"염려 놓으십시오."
조성만은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렸다.
말로만 듣던 스폰서를 드디어 자신도 얻은 것인가?
비록 오늘 이 자리에서 본인에게 직접 확답을 듣지 못한 게 아쉽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검사장 라인에서 내려온 전형적인 기획수사입니다."
"그렇군요."
기획수사라는 말을 듣고도 하수영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 말이 가진 의미를 모르는 걸까, 아니면 그리 대단치 않다고 여기는 것일까.
박호진은 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요?"
"성진우 검사장도 누군가의 청탁을 받은 거 같습니다. 성 검사장 본인은 대표님께 별 유감이 없어 보입니다. 부탁을 받았으니 그대로 들어주는 것뿐이죠."
"누가 부탁을 했을까요?"
"글쎄요. 동기만 따진다면 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서요. 그래도 주곽렬회장이라는 인물이 가장 큰 동기를 갖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업무추진비가 더 많이 들겠네요."
하수영의 조용한 말에 박호진은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이것은 이권을 놓은 개싸움이다.
부가가치세 탈세 혐의니, 건물안전 관리 위반이니, 하는 것들은 진흙탕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을 뿐이다.
"성진우 검사장은 스폰서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할 겁니다."
"자기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얼마나 귀중한 스폰서이느냐 여부도 걸려 있죠. 딱 그 선까지만 칼을 들이대면 됩니다."
"스폰서가 꽤 된다죠?"
"알려진 것만 해도 6명 이상입니다. 그밖에 자잘하게 친분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사이, 즉 스폰서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관계까지 따지면 두 자리가 넘을 겁니다."
이를 테면 상납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성진우가 고개 숙여 돈을 받는 게 아니라, 거드름을 피우며 당연한 듯 돈을 챙기는 물주.
"주곽렬 회장 라인을 파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 사람은 가장 큰 스폰서 아니었나요?"
"네, 누구 청탁인지 알 수 없으니 일단 가장 큰 덩굴을 찔러 보는 겁니다."
"오, 그건 제 스타일과 맞네요. 몇 대 맞았는지 잘 모르겠을 때에는 그냥 속이 풀릴 때까지 패주는 게 맞죠."
"그리고 성진우 검사장은 황대호 차장검사와 은근히 반목하는 사이입니다. 황대호 차장을 키워주기에도 좋죠."
"한 발로 두 마리 토끼라. 아주 마음에 드네요."
"황대호 차장을 만나서 넌지시 말을 넣을 겁니다. 칼질은 더 능숙한 쪽에 맡기는 게 나으니까요. 실비아컴퍼니를 위해 10대 재벌과 싸워달라는 것도 아니니, 황대호 차장도 흔쾌히 움직일 겁니다."
"그럼 업무추진비를 좀 더 챙겨드려야겠네요."
"하하, 걱정 마십시오. 그건 실비아컴퍼니 쪽에서 지출하도록 제가 조율하겠습니다."
"역시 박 변호사님. 일처리가 너무 매끄러우신데요. 가끔 보면 법관이 아니라 월가 출신인 거 같아요."
"칭찬…… 맞으시죠?"
"당연히 엄청 칭찬입니다."
"그럼 기분 좋게 듣겠습니다."
박호진은 중요한 사항을 몇 가지 더 보고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대호 차장은 요즘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다.
서해그룹과는 거리감이 생겼지만, 대신 실비아컴퍼니에서 넉넉한 지원금을 챙길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돈만 해도, 평생 서해그룹이 챙겨줬을 몫보다 훨씬 많은 돈이었다.
프리덤을 뺏기 위한 서해전자의 1차 공작은 판정패로 끝났고, 이제 서해전자는 2차전을 위해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2차전은 아예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2차전을 개시할 힘을 축적할 동안, 실비아컴퍼니는 눈이 부시게 커져 있을 테니까.
오후에는 박호진 변호사가 연락을 하고 찾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법원장님."
"그냥 선배라고만 불러도 되네. 너무 격식 세울 것 없어."
"보는 눈이 많아서요. 법원장님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워도 여기서만큼은 받아들이시죠, 하하."
박호진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대검찰청 공용휴게실에서 둘은 사람들이 보란 듯이 정답게 대화를 나눴다.
"부탁을 할 게 있어서 찾아왔네. 물론 업무일세."
업무라는 말에 황대호 차장은 바로 알아차렸다.
박호진 변호사 개인이 아닌, 실비아컴퍼니의 일일 것이다.
"황 차장한테도 그리 부담스러운건 아니야. 그런 거였으면 애초에 들고 오지도 않았어."
"회장님과 대표님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현명한 분인지는 저도 이미 겪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성진우 검사장 말이야."
"성 검사장님이요?"
눈치 빠른 황대호의 안색이 곧바로 변했다.
박호진은 그런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바로 말했다.
"혹시라도 부담스러우면 지금 바로 말하게. 여기서 컷할 테니. 회사에도 내가 잘 말씀드릴 거니까 아무 문제없어."
"아닙니다.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힘닿는 데까지는 돕겠습니다."
"황 차장도 알다시피 하수영 대표는 박덕준 회장님, 오철현 대표님과 사적으로 매우 각별한 사이지."
"네, 그렇죠."
하수영은 실비아컴퍼니와는 전혀 무관하다. 회사 지분은 1도 없고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적으로 매우 친하다. 실비아컴퍼니에서 하수영의 개인빌딩에 사무실을 냈을 정도로.
그래서 이번에 황대호와 맺어주는 일에 하수영이 적극 나섰다.
황대호와 박호진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수영이 프리덤 개발자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성진우 검사장이 하수영 대표를 쳤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울지검에서 하수영 대표 갑자기 소환해서 이것저것 들쑤시더군. 부가세 탈세와 건물안전관리 위반, 뭐 그런 걸로 넘어지더라고."
"겨우 그런 거 가지고 소환장부터 날렸다고요? 확실하게 혐의가 입증된 것도 아닌데?"
"입증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나.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니야. 구청장까지 움직여서 업무정지 처분까지 내렸어."
"구청장까지 움직였을 정도면 보통 마음먹은 건 아니군요."
"서울시의원 장승후까지 개입했더군. 얼마 전 강남구에서 세 자릿수넘는 음식점들이 위생불량으로 행정처분 받은 거 알고 있나?"
"얼핏 들었습니다. 그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짐작 가는 게 없나?"
황대호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검사장님이 하수영 대표가 누군지 모르고 쳤을 리가 없습니다. 제가 서해그룹에 거리를 두고 실비아컴퍼니에 가까워진 건 검찰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연히 성진우 검사장도 그 사실을 안다.
"성진우 검사장도 서해그룹 장학생입니다. 물론 저보다 많은 지원을 받은 건 아니지만, 이번 일로 서해 그룹에서도 검찰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모양이더군요."
"그럼 성진우 검사장 입장에선 자기 충성심을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겠군."
실비아컴퍼니를 건드림으로써 자신은 황대호와 다른 충견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 시작으로 먼저 가볍게 하수영을 들쑤시는 것.
기획수사의 달인인 황대호의 눈에는 그 모든 게 보였다.
"저와 기수 차이도 제법 나셔서 원로 자격으로 모셔드리려고 했지만…… 안 되겠습니다. 그래도 총장까지 다는 건 기다려드리려고 했는데."
운영하던 술집이 연장계약이 안 됐다는 분풀이를 위해 백호열이 던진 작은 돌이,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파문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