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50화
61장 점검, 그리고 점검(3)
"어르신, 구의원이셨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하수영은 눈을 크게 떴다.
청담동 지역유지 최우석이 기초단체 정치인이었다니.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인상인데 말이다.
그런 마음을 알아차린 듯 최우석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런 눈으로 볼 거 없네.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정치를 하겠다고 그런 사람도 아냐. 그랬으면 진작 서울시의원에 나가든, 국회의원에 나가는 했겠지."
"어쩐지, 어딜 봐도 정치인 인상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냥 노인네들 모이는 복덕방 같은 거야. 오다가다 들리면서 차 한 잔씩 하고 바둑도 두고 그러는 거지."
"구의회에서요?"
"의회 휴게실에서 할 때도 있고, 내 개인 사무실에서 할 때도 있고. 내가 구의원 생활만 벌써 20년이 넘었다네."
"……."
"나 정도쯤 되는 노인네가 구의원 하면서 말 붙일 데 없는 노인네들 놀이장소 정도는 제공해 줘야지. 안 그런가?"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구의원 같은 기초단체도 정치판은 맞다.
물론 구청장, 시의원, 시청장, 국회의원으로 나아가기 위해 출발점 삼아 구의원에 나서는 이도 많다.
하지만 최우석처럼 그냥 멋있어 보이는 명함 하나 파기 위해서 기초정치인을 하는 인물도 더러 있다.
시간과 돈은 많고, 뭔가 멋진 직함은 하나 갖고 싶고,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고 싶지는 않은 이들.
최우석 같은 이에게는 의원이라는 타이틀이 공직 명함이자, 구청에서 으스대기 위한 도구 중의 하나였다.
"그럼 어르신, 돈 많이 들겠습니다."
"사무실 찾는 노인네들 밥 한 끼씩 먹이고, 구청 직원들한테도 자주 밥사주고, 사무실 유지하고, 그러다 보면 매번 마이너스지. 나라에서 주는 녹봉 가지고는 턱도 없어."
최우석은 혀를 찼다.
"기초의원도 이런데, 시의원이나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지. 돈 없으면 정치판에 얼씬해서도 안 되는 망할 세상이야."
"그래도 논다고 작정하고 마음먹으면 그만큼 놀기 좋은 직위가 또 없죠."
"그건 맞네. 아무튼 내가 오늘 바로 구청장 만나서 어떻게 된 건지 따질 거니, 하 사장 자네는 너무 걱정 말아. 수영레스토랑이 영업 정지라니, 강남구에서 돈 좀 있다는 노인네들이 전부 들고 일어날 일이야."
강남에 땅 좀 있는 노인 주민들은 수영레스토랑의 충성도 높은 고객이기도 하다.
건강에도 좋고 품질과 맛도 뛰어나며 가격도 헉 소리 나게 비싼 면류음식.
돈 많은 노인들이 주요 고객층이 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무튼 내 가봄세."
"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최우석은 부리나케 그 자리를 떴다.
하수영은 영업 일정을 정리하던 중 초인종 소리를 듣고 인터폰을 확인했다.
"누구세요?"
-등기입니다. 하수영 씨 댁 맞으시죠?
"네, 지금 나갑니다."
하수영은 곧바로 정원을 가로질러 정문까지 나갔다.
집이 하도 크다 보니 우편물이나 택배를 받을 때는 이런 번거로움이 있다.
"본인 맞으시죠? 여기 사인해 주세요."
"네."
하수영은 사인을 하고 우편물을 확인했다.
검찰에서 온 등기 우편물이었다.
그는 태연히 봉투를 뜯으며 여유롭게 중얼거렸다.
"야, 이거 그거 같은데."
우편물은 바로 검찰발 출석요구서였다.
이른바 검찰에서 날아온 소환장.
* * *
"구청장님, 무슨 행정업무를 이따위로 처리하십니까! 언제 한 번 구의회 청문회에서 털려봐야 정신을 차리겠어요! 이건 엄연한 권력남용입니다!"
구청장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성에 도태식 강남구청장은 정신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일개 구의원이 구청장을 상대로 이렇게 막 나가는 항의를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신과 최우석 사이에는 까마득한 거리가 존재한다.
일단 나이가 30살 가까이 차이 난다.
더군다나 최우석은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던 시절부터 살아온 터줏대감에다가, 천억대 자산가.
당연히 구의회를 꽉 잡고 있다.
막말로 그가 어깃장을 놓기 시작하면 구청장으로서 손발이 묶이게 된다.
'아니, 구의회에서 거수기 노릇도 제대로 안 하고 맨날 놀러만 다니는 양반이 갑자기 왜…….'
도태식 구청장으로서는 최우석이 왜 이러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다.
"최 의원님,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 이번 위생점검은 예전부터 일정이 잡혀 있던 정기점검이었습니다. 불량위생을 근절하자는 취지에서 이번에는 다소 빡빡하게 진행했지만, 법률에 어긋나는 행정점검을 펼치진 않았어요."
"오호, 정말 법률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지금 안들리세요? 강남구에서 밥장사 술장사한다는 자영업자들이 땅을 치고 통곡하는 소리가 구청사를 쩌렁쩌렁울리는 게?"
"최 의원님. 혹시 억울한 피해를 본 업주들이 있다면 당연히 시정조치를 취할 겁니다."
"애초에 시정조치를 취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죠! 강남에서 장사 하루 못 하면 그 매출 손해가 얼마인 지나 알아요? 평생 정치만 하던 양반이라 그런 건 모르시겠지."
최우석이 날 선 음성으로 몰아붙이자, 지나가던 구청직원들이 하나둘씩 훔쳐보기 시작했다.
이제 모시기 시작한 지 몇 년 안된 구청장.
그리고 수십 년 넘게 구의회를 장악해온 고인물 최우석.
구청 직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최우석의 태도가 더 신경 쓰인다.
심지어 돈 많은 최우석은 구청 직원들에게 매번 밥도 잘 사준다.
"구의회에서 이번 위생점검, 하나부터 열까지 샅샅이 훑어볼 겁니다."
"아이고, 최 의원님."
도태식은 흙빛이 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서울시의원의 작은 부탁을 하나 들어주었을 뿐인데, 이렇게 단단히 깨질 줄이야.
'아무래도 위생점검 때문에 피해본 자영업자 중에서 최 의원 지인이 있는 거 같은데.'
그것도 보통 지인이 아닐 것이다.
"일단 가겠소!"
최우석은 마지막까지 호통을 남기고 구청장 사무실을 떴다.
망연자실하게 뒷모습을 바라보는 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박호진 고등법원장님]
발신자를 확인한 도태식은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법원장님. 저 도태식입니다."
-이젠 법원장 아니고 변호사. 내가 옷 벗은 지가 언젠데.
"아이고, 그래도 한 번 법원장님은 영원한 법원장이시죠. 어쩐 일로 이렇게 전화를 주셨습니까."
-다름이 아니고 이번 위생점검에 관해서 내가 물어볼 게 몇 가지 있어서 말이야.
"위생점검이요?"
-그래, 강남구 음식점 위생점검.
도태식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최우석 의원에 이어서 박호진 전 고등법원장까지.
이거 아무래도 제대로 마가 낀 거 같다.
'설마 나…… 지금 고래 싸움에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 간 것은 아니겠지?'
-위생점검을 빡빡하게 한 것은 좋은데, 내가 검토를 해보니 상당한 부분에서 행정권 남용이 있던 거 같던데. 이거 행정재판감이고 업주들이 나서면 구청이 거의 다 질 거 같은데.
"그, 그렇습니까? 전 그냥 철저한 위생점검을 당부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밑의 사람들이 알아서 했고 확인만 해줬을 뿐입니다."
-그럼 안 되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권력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는 자리 아닌가? 그렇게 하라고 강남구 주민들이 자네를 선출해 준 걸 텐데.
"저는 그저……."
-나도 알 거 다 아는 사람이네. 그냥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름을 대게.
"……."
-자네도 누구 부탁을 받아서 진행한 거 아닌가?
도태식은 자신에게 부탁을 건넨 서울시의원, 장승후의 얼굴을 떠올렸다.
전 강남구의원이자 현직 서울시의원.
그는 자신을 이끌어주는 정치적 선배이기도 했다.
빡빡한 위생점검을 부탁받았을 때도 누구 미운 사람 하나를 골탕 먹이려는 게 아닌가 생각은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전 고등법원장 출신 변호사까지 전화를 넣을 줄이야.
"장승후 서울시의원입니다. 저도 더 이상은……."
-그 정도면 됐어.
"……감사합니다."
-자네, 아직도 구청 업무 장악이 안 됐나 봐. 자기 발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그저 위생점검 결재에 날인만 찍어주고 있으니, 쯧쯧…….
"송구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자네가 모르는 거 같아서 충고해 주는 거야. 이번 위생점검이 어떻게 됐는지 나중에 한 번 확인해 봐.
전화를 끊고 도태식 구청장은 곧바로 구청 직원들을 호출했다.
위생점검 최종처분결과를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한 그는 황당한 표정이 돼서 물었다.
"영업정지, 벌금 처분 받은 업소가 왜 이렇게 많은 거지? 강남 상권을 다 망쳐놓을 일 있나?"
"구, 구청장님이 최종결재해 주셨는데요."
"내가 이걸 결재했다고?"
서명을 확인한 도태식의 안색이 흐려졌다.
분명 자신의 서명이 맞았다.
아무래도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냥 서명만 남발한 거 같다.
"이 결재, 누가 올렸어?"
"장원식 주무관님이요."
도태식은 대번에 어떻게 된 그림인지를 깨달았다.
왜냐하면 장원식은 자신에게 이번 일을 부탁한 장승후 서울시의원의 친척인 구청직원이었기 때문이다.
***
수영레스토랑 매장은 예외 없이 휴업에 들어갔다.
오프라인 장사를 하는 가맹점 모두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배달 전용 가맹점은 영업정지 처분과는 거리가 멀었다.
"날 노린 놈이 거기까지는 파악을 못 했나 보네."
본사가 감당해야 하는 지출이 꽤 컸다.
수십 개가 넘는 가맹점의 임대료와 인건비를 전액 본사가 부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가맹점주와 직원들의, 본사에 대한 충성도와 신뢰도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받아내면 그만이고."
박호진은 얼마의 손실을 입든 자신이 행정심판에서 승소해서 전부 받아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무튼 덕분에 하수영은 아무런 근심 없이 마음 편하게 검찰에 출두할 수 있었다.
검찰 소환이라는 예상치 못한 돌발이벤트에, 그는 희미한 기대감까지 품고 있었다.
오늘 출석을 위해서 일부러 백화점에 들러서 옷도 샀다.
과연 검사가 오늘 이 패션을 마음에 들어 할까?
"신참내기 검사가 나와서 윽박을 지를까, 베테랑 검사가 나와서 살살구슬리려고 들까. 아니면 지들끼리 굿캅 배드캅 놀이를 할까. 검찰 출두는 너무 오랜만이라 심장 떨리는 게 주체가 안 되네."
* * *
이제 3년 차인 조성만 검사는 범죄혐의 내용을 훑어보고 있었다.
"건물안전관리법 위반에 부가가치 세 탈세 혐의라…… 뭐야. 겨우 이정도 가지고 초반부터 검찰이 나선다고?"
하지만 매출 규모를 확인하자 그런 생각은 대번에 깨졌다.
"가맹점 전체 일 매출이 백억대가 넘잖아?"
수영레스토랑.
그도 가끔 먹는 음식이다. 물론 오프라인 매장에서 파는 35,000원짜리는 엄두도 못 내고, 배달되는 저렴한 다운그레이드 메뉴만 먹는다.
"이야, 여기가 이렇게 장사가 잘됐어? 완전 노다지네, 노다지야."
탈세 여부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뭔가 구린 게 있으니 서울지방검찰청까지 사건이 올라왔을 것이다.
"검사님, 하수영 참고인이 조사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알았어요. 지금 갑니다."
원래라면 1, 2시간 이상씩 일부러 기다리게 함으로써 초조함을 높여줘야 한다.
하지만 조성만의 마음이 더 급했다.
대체 이런 큰 음식점을 하는 사업자 얼굴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던 것이다.
"검사님, 저 그런데 참고인이 조금……."
"뭐가 이상합니까?"
"지, 직접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설명하기에는 난감해서요."
조성만은 50대 수사관의 난감한 표정에 어리둥절함을 느끼면서 조사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수사관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뭐야?'
참고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황금색으로 자기 자신을 휘감고 있었다.
금색 구두, 금색 바지, 금색 상의, 심지어 안에 받쳐 입은 셔츠도 금색이었다.
굵은 금색 구슬이 주렁주렁 달린 금목걸이에, 어른 손바닥만 한 큼지 막한 금시계를 '양손에 각각' 차고 있었으며, 테가 매우 굵은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누가 봐도 평소 돈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난 천박한 졸부 패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