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48화
61장 점검, 그리고 점검(1)
서해그룹 함석조 기획실장은 직접 황대호 차장검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면서 다소 압박을 가했지만, 황대호는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수사를 하면 자연히 밝혀질 일입니다."
황대호는 점잖게 웃는 표정으로 그렇게 원론적인 이야기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미 구속된 경영진들을 죄다 풀어 줘 놓고는, 수사를 하면 밝혀질 일이라니?
이것은 보란 듯이 선을 긋는 행동아닌가?
'실비아에서 받아 처먹은 게 상당하군.'
얼마를 받아먹었기에 서해그룹의 심기를 거슬려가면서까지 이렇게 비호하려고 드는 것일까?
함석조는 표정을 바꿔서 직접 부딪치기로 했다.
"우리 그룹은 선대 회장님 때부터 물심양면으로 많은 인재들을 후원해 왔습니다."
그중에 너, 그리고 네가 몸담은 조직도 끼어 있지 않느냐.
함석조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 이 땅에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셨죠. 그런 생각도 간혹 듭니다. 제가 검사가 아니라 판사를 했더라면 좀 더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하고요."
"……."
함석조는 그 안에 감춰진 뼈를 알아차렸다.
법조인에 대한 장학생 관리는 판사를 크게 편애하는 쪽으로 치우쳐졌다.
검찰은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한, 최소한의 보험으로만 대우해 왔다.
지금 황대호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말을 해봐야 소용없겠군.'
황대호가 서해그룹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정했는지는 아직 확정 짓기 조심스럽다.
하지만 실비아컴퍼니와 길게 가기로 한 것은 틀림없는 듯했다.
그럼 더 이상 그와 이야기를 나눠봐야 무의미하다.
함석조는 그렇게 소득 없이 일어났다.
* * *
구속 조치가 풀린 실비아 경영진들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업무에 복귀했다.
검찰의 조사 자체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횡령배임에 대한 조사와 수사 자체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검찰 쪽을 잘 모르는 이사들이 보기에도, 수사는 매우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검찰은 일주일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소환해서 조사를 치렀다.
소환 시각은 통상 업무가 끝난 이른 저녁이었다.
회사 업무를 마치고 곧바로 검찰청으로 향하면 시간이 얼추 딱 맞았다.
검찰청 안에서 길어야 30분 정도 대충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용히 나서는 식이었다.
순번을 정하듯 일주일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검찰에 출근을 하다 보니, 회사 업무에도 거의 지장을 받지 않았다.
황대호는 정기적으로 박덕준에게 연락을 취해서, 검찰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이니 그에 맞춰 달라는 주문을 하곤 했다.
말이 주문이지, 꼬박꼬박 업무 보고를 올리고 결재를 요청받는 느낌이었다.
"오 대표."
"네, 회장님."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나 요즘 권력의 맛이라는 게 뭔지 느끼고 있어."
"회장님, 왜 그러세요."
"쓸데없이 큰돈을 지출해서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황 차장 하는거 보니까 이런 맛에 다른 재벌들도 이렇게 대관비용을 지출하는구나 싶더라고."
검찰의 실세가 노골적인 편을 들어주고, 그로 인해 느끼는 짜릿한 희열.
이래서 재벌들이 권력을 적당히 가까운 곳에 두려고 하는구나, 라고 이해가 될 정도였다.
"회장님, 그거 독이 든 성배입니다. 그 맛에 너무 취하면 안 돼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립니다."
"알아. 그래서 나도 조금 무섭다. 내가 진짜 그렇게 돼버릴까 봐."
"……."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수영 씨 말이 맞아. 우리는 이제 이런 진흙탕에서 뒹굴지 않으면 회사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 버렸다. 이게 싫으면 프리덤을 서해그룹에 넘기든가 했어야지."
이현덕 부회장 개인한테 은밀히 회사 지분을 나눠줘 봤자 아무 소용없다.
재벌의 끝없는 탐욕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항하는 힘을 갖추는 것뿐이다.
"오 대표. 우리가 서해전자에서 사내벤처 하다가 그만두고 독립했을 때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서해 출신 창업자들 스타트업 지원한다고 자본금 빵빵하게 받고 시작했었죠."
당시 실비아컴퍼니는 서해전자에서 30억 원이라는 거금을 지원받았다.
투자를 받은 게 아니라 그냥 받은 돈이다.
귀여운 내 새끼들 독립시킬 때 그래도 월세방 보증금은 마련해 줘야지, 하는 취지에서 시행한 회사 정책의 수혜였다.
"우리가 그때 지원받은 거 때문에 서해그룹에 너무 큰 부채 의식을 갖고 있는 거 같다."
"이제는 떨쳐 버릴 때도 됐죠."
"마음 같아서는 그때 이 부회장한테 몰래 준 지분도 다시 돌려받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회사가 국내 최고 대기업이 되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프리덤 서비스 하나로 벌어들이는 예상 한 해 이익은 서해전자 전체 사업부 한 해 이익을 능가한다.
실비아컴퍼니가 국내 최고 기업이 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아니, 회사의 영업이익은 이미 넘어섰다.
부족한 것은 회사의 규모,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영향력뿐이다.
"황대호 차장이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들었어. 그런 사람이 서해 전자와 거리를 둔다는 부담을 짊어가면서까지 우리 후원을 받기로 했다. 난 이것만큼 긍정적인 신호는 또 없다고 본다."
"앞으로 어떡하실 겁니까, 회장님?"
"글쎄. 우리 오 대표 생각은 어때? 프리덤으로 번 돈을 그냥저냥 쌓아만 두는 게 과연 바람직한 거 같아?"
"뭐라도 하긴 해야죠."
원래 한국은 실비아컴퍼니와 네이 탑이 웹포털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네이탑은 PC 중심, 실톡은 모바일위주.
하지만 프리덤이라는 희대의 아이 템은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PC나 모바일 검색을 하지 않고, 그냥 프리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으니까.
"프리덤 때문에 쿠글코리아 광고수익도 처참하게 곤두박질치고 있다던데요."
"돈을 쌓아두면 뭐해. 그 돈으로 영향력을 키워야지."
"우리도 스마트폰 사업 시작해 볼까요? 델지그룹에서 모바일 사업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던데, 그거 인수나 제휴를 해서……."
"그럼 서해그룹에서 우리가 작정하고 자기를 치려고 한다고 생각할 텐데, 그쪽이 진짜 우리 죽이려고 온 힘을 다해 달려들게 만들 일 있어?"
프리덤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으로 반항하는 것과, 서해그룹의 시장 자체를 넘보는 것.
그것은 당연히 큰 차이가 있다.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방어진지를 잔뜩 만들자는 거지, 적을 칠 항모부대를 도입하자는 게 아니야. 대표란 친구가 왜 이렇게 오너의 마음을 이해 못 해?"
"회장님, 원래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우리가 아직 그럴 체급이 아니잖아. 지금은 방어진지 만들 궁리나 해야 할 때라고."
"……."
"물론 언제고 때가 되면 우리도 받은 거에 이자 잔뜩 얹어서 돌려줘야겠지."
"네, 그때까지 잊지 않고 조용히 묻어두기만 하겠습니다."
* * *
서해그룹과 실비아컴퍼니의 1차 갈등은 실비아컴퍼니의 판정승 로 끝났다.
황대호가 이끄는 검찰 라인은 보여주기 수사만 질질 끌어오다가 횡령배임에 대한 무혐의 처분으로 수사종결 조치를 한 것이다.
최종 무혐의 처분을 통지받은 실비아컴퍼니 경영진들은 새삼 권력의 유용함을 실감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들도 공권력에 이런 개입을 할 수 있는 덩치가 되었음을 느꼈다.
"원래 우리 회사가 횡령배임 조사받은 게 서해그룹이 공작한 거였잖아? 근데 이게 무산이 됐으니,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이현덕 부회장님이 뒤끝 장난 아니라던데, 이거 더 센 보복 조치 들어오는 거 아닌지 몰라."
"잔뜩 사리고 있어야겠어."
경영진들은 숨을 죽인 채 날아가는 낙엽에도 다치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였다.
서해그룹이 실비아컴퍼니를 괴롭힐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검찰 카드가 보기 좋게 박살 났으니, 이제 다른 영역에서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언론, 행안부, 국세청, 정치권의 개입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서해그룹은 청와대 내각조차도 움직일 힘을 가진 집단이니.
하지만 예상외로 서해그룹은 조용했다.
1차 판정패를 당한 것에 대해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던 실비아 횡령배임에 관한 기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췄다.
수십만 건이 넘던 횡령배임 관련기사는 이제는 검색을 해도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언론사들이 아예 기사 자체를 삭제해 버린 것이다.
* * *
오철현은 오랜만에 수영레스토랑 본점을 찾았다.
그는 기쁜 마음을 억누른 채 하수영과 인사를 나눴다.
"어서 오세요. 표정이 밝으시네요? 좋은 일 있었어요?"
"서해그룹이 프리덤을 완전히 포기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방심하고 계시다가 나중에 또 기습 공격 받으시면 많이 아프실 텐데."
"하하,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그만큼 체급이 커져 있겠지요. 검찰 카드도 실패한 마당에 몸집이 더 커진 우리를 무슨 상대로 압박할 수 있겠습니까?"
"뭐, 순간의 승리감에 잠시 도취해 있는 것도 나쁘진 않지요. 그게 사기 증대에 도움이 되거든요."
하수영은 손수 수영라면 세 그릇을 내어 와서, 한 그릇을 오철현에게 주었다.
"오늘 저에게 보여주실 분이 있는 건가요?"
"네?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아, 라면이 세 그릇이라서 그러신 거예요? 이거 둘 다 제 건데."
"……."
한눈에 보기에도 곱빼기는 되어 보이는 양이 두 그릇인데, 그걸 혼자 다 먹는다고?
"황 차장한테 아직 30억밖에 전달못 했습니다. 꼬리표 없는 돈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아서요."
"이해해 주던가요?"
"네, 우리가 그런 경험이 없어서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까 그저 웃기만 하더군요. 그 친구 입장에서도 조금 어이가 없었나 봅니다."
"원래 살인강간강도를 밥 먹듯이 하는 갱스터들도 채무자 사정 봐줄건 봐주고, 다 그러고 삽니다. 확신만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조금 늦게 준다고 그 양반도 뭐라고 안 할 겁니다."
오철현은 그동안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모험담 늘어놓듯이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하수영도 맞장구를 쳐가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반응이 오철현으로 하여금 더욱더 신나게 썰을 풀어 놓는 동기가 되었다.
"근데 오늘은 늦게까지 마감을 하시는군요?"
"아, 내일 구청에서 위생점검 나와요. 물론 저희는 평소에도 철저히 위생에 신경 쓰지만, 점검일 전에는 특히 더 깨끗하게 해놔야지요."
하수영의 말대로 셰프와 직원들은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홀과 주방을 정갈히 한답시고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첫 위생점검인 만큼 먼지 한 톨의 티끌도 책잡히고 싶지 않아서요. 원래 첫인상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수영레스토랑이 위생점검에서 문제가 될 정도면 대한민국 모든 음식 점은 죄다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수영레스토랑은 젓가락 하나까지도 철저히 세척 및 살균 작업까지 거친다.
그릇이나 젓가락, 수저는 손님에게 나가는 직전까지 자외선 살균 장치에서 대기한다.
주방의 다른 부분들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위생점검 끝나면 건물안전점검도 있고, 이번 달은 검사만 받다가 보낼 거 같네요."
"건물주 하면서 요식업 하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겠습니다."
"그래도 제 빌딩들은 빈틈없이 관리했으니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빨리 점검이나 끝나면 좋겠네요. 숙제 기다리는 기분이라 조금 초조합니다."
프리덤 개발자가 저런 소소한 고민에 근심하고 있는 걸 세상이 알면 과연 뭐라고 할까.
문득 상상하니 오철현은 괜히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