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245화 (245/1,270)

프랜차이즈 갓 245화

60장 현질은 거들 뿐(2)

국내 1위의 서해그룹은 다른 재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성으로 법조인 장학생들을 관리한다.

로스쿨 제도가 생기기 전, 일단 한국대 법학과에 입학한 순간부터 해당 학생은 서해그룹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런저런 장학 수혜를 받으며, 그들은 서해그룹에 대한 감사함을 몸과 마음에 새기게 된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순간 대우는 한 차례 상승하며, 연수원을 마치고 임관될 때부터 본격적인 집중관리가 시작된다.

변호사로 곧바로 개업한 이들은 서해그룹의 눈에서 당연히 벗어난다.

오직 판사와 검사, 그들만이 서해 그룹의 진짜 보살핌을 받을 자격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판검사 사이에서도 차별은 있다.

9대 1.

서해그룹이 법조인 장학생을 관리하는 데 들이는 정성의 비율이다.

9할은 판사에게, 그리고 나머지 1할은 검사에게 들인다.

예를 들어 법조인 장학생들한테 매년 1,000억을 쓴다 치면,900억은 법원에, 100억 원은 검찰에 쓰는 식이다.

황대호 차장검사는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결국 판결은 법원이 내리니까.'

예를 들어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가 날뛰면서 재벌의 비리를 들쑤신다 치자.

법원만 단단히 꽉 쥐고 있으면 유죄 판결, 징역 판결을 받을 리가 없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뿐만 아니라 체포영장, 구속영장, 압수수색영장, 보석에 대한 허가도 법원이 결정한다.

그렇기에 서해그룹이 법원 관리에 집중투자하는 것은 영리하고 효율적인 판단이다.

검찰에 던져주는 1할의 용돈은 혹시나 하는 보험적인 성격일 뿐이다.

"500억입니다. 서해그룹이 차장님께 그 반의반이라도 줄 일은 없을 겁니다."

황대호 차장검사는 하수영의 눈을 차분히 응시했다.

박호진 변호사를 통해 실비아컴퍼니의 은밀한 접촉 제안을 들었을 때, 그는 이제야 인사를 하러 왔구나 하는 마음뿐이었다.

큰 기대를 품고 나온 것도 아니었다.

서해그룹의 위상에 비하면, 실비아컴퍼니는 보름달 앞에 반딧불이니까.

다만 궁금하긴 했다.

이 햇병아리 기업이 과연 잘 보이기 위해 무슨 어설픈 선물을 준비했을까 하고, 이미 결정된 시나리오가 바뀔 일은 없지만, 어떤 애처로운 몸짓을 보게 될지 궁금했던 것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이 자리에 나온 것은.

그런데 시작부터 보기 좋게 한 방먹은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크고 아름다운 숫자는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니.

"난 박 선배님이 오랜만에 밥 한번 산다고 해서 나왔을 뿐인데, 참으로 당황스러운 소리를 듣게 되는군."

점잖게 말을 떼며 표정을 살폈다.

하수영은 침착한 표정으로 희미한 미소만을 띠고 있었다.

보통 여유가 아니다.

"실비아컴퍼니 경영진이 불법을 저질렀는지 아닌지는 수사와 재판을 거쳐서 밝혀질 일이오. 이렇게 나한테 청탁을 할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

"회장님의 진정성을 거듭 확인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회장님은 진심으로 이런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이 나라,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참으로 오만이고, 헌법질서에 대한 모독이오."

"사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차장님의 시간입니다. 차장검사라는 직위 그 자체가 아닙니다."

"……."

"차장님이 거절하신다면 저희는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다른 루트를 찾아다닐 예정입니다."

황대호는 술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500억,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다.

그저 어떤 식으로 애처롭게 반항할는지 궁금해서 한 번 나와 본 것이 거늘, 이런 기습을 받을 줄이야.

서해그룹은 한해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판검사들을 관리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돈을 지출한다.

서해그룹이 한해에 얼마를 쓰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많은 판검사들 중에서도 우수한 인재만 골라서 관리를 한다.

해도, 상당한 돈이 소요될 것이다.

막말로 인당 매년 10억씩 지출을 한다 쳐도, 100명이면 한 해에 1,000억 원이다.

물론 직급에 따라 관리에 들어가는 돈은 다르다.

120억이던가.

황대호는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자신은 대검 소속 실세에다가, 곧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최연소 검찰총장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자신이 지금까지 받은 장학금이 20억이 채 못 된다.

아마 대법관, 대법원장 출신이 받는 돈의 1/1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서해그룹이 바라보는 판사와 검사의 차이다.

그런데 500억이라니.

"원래 박 회장님이 생각한 금액은 200억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관계는 서로 믿음을 주지 못하죠. 그래서 제가 200억에 20년을 더 얹은 겁니다."

"200억에 20년을 더?"

"네, 차장님의 연세를 보면 적어도 20년은 실비아컴퍼니가 믿고 손을 잡아야 이득이죠. 그래서 20년입니다."

"그럼 20년 뒤에는 서로 깔끔하게 이혼하는 건가?"

"그럴 리가요. 그때 가서 당연히 몸값이 높아진 '황대호 의원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겠죠."

의원이라는 말에 황대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젊은 친구가 듣기 좋은 아부를 할 줄 아는군.'

"검사로서의 인생을 마치고 나면 당연히 여의도에 진출하실 거 아니겠습니까. 이른 말이지만 회장님은 어쩌면 최초로 검사 출신의 대통령과 미리 친분을 쌓는 계기가 아닐까 설레고 계십니다."

"망상이 너무 과하군. 난 아직 일개 차장검사일 뿐이야."

"하지만 검찰을 휘어잡고 계신 실세시죠. 모 그룹은 그런 분을 홀대하고 계시고요."

"내가 실비아컴퍼니를 위해서 서해 그룹을 치진 못해. 아무리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어도 불가능…… 아니, 감수할 필요가 없는 리스크야."

"반대로 서해그룹이 아무리 돈이 많고 정계와 언론에 영향력이 지대해도 검찰을 치진 못하죠."

"젊은 친구가 권력의 본질을 볼 줄 아는군."

"이 나라 모든 사법권의 행사는 검사가 개시하는 순간부터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검찰이 사건을 기소하지 않고 묻어버리면, 그 어떤 범죄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오직 검사만이 기소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일단 먼저 사건을 들고 재판장으로 가져가야 심판을 하든지 말든지 할것 아닌가.

황대호는 그런 중요한 검찰을 홀대하는 서해그룹에 진작부터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300억 20년 분할이면 매년 15억인가."

"그렇습니다."

"당연히 뒤탈은 없겠지?"

"현금, 무기명 예금증서나 채권 같은 것으로 드릴 겁니다. 세금을 내실 필요도 없죠."

"좀 더 투자하라고 해."

황대호의 말투는 이미 고압적으로 변한 상태였다.

"오해 말고, 내 주머니 더 챙기겠다는 게 아니라, 나도 내 새끼들은 챙겨야 할 거 아냐. 서해에서 받는 얼마 안 되는 용돈도 끊길지 모르는 데, 그건 채워줘야지."

"얼마면 될까요."

"현직 검사 다 챙겨달란 말은 아니니 겁먹을 거 없어. 요직에 있는 내 새끼들만 챙기면 돼. 매년 100억씩."

순식간에 매년 100억이라는 추가지출이 붙었지만, 하수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게 아니라, 실비아컴퍼니가 지불할 출혈이다.

검찰과 언론, 정치권까지 동원해서 회사를 집어삼키려는 서해그룹의 공세를 막는 대가라 치면, 박덕준 회장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저렴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나 더. 어디까지나 검찰 칼만 수납한다. 재계,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뻗대는 건 참견 안 한다."

"알겠습니다."

"나도 큰마음 먹고 서해그룹에 반항하는 거니까, 회장님도 그 점을 아셨으면 좋겠군."

"조만간 두 분 자리 한 번 만들겠습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지."

"몇 명이 오실 건지 숫자만 미리 알려 주시면 됩니다."

협상은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황대호는 마음이 한결 산뜻했다.

서해그룹보다 2, 3배 정도 되는 돈을 불렀다면 웃음으로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열 배가 훨씬 넘어가는 수치다.

서해그룹은 절대로 주지 못하는, 아니, 주지 않는 돈이다.

그렇다면 이쪽에 손을 뻗치는 게 현명하다. 어차피 서해그룹과 치고 받고 싸워달라는 것도 아닌데.

자연히 밥맛이 상승했고, 맛있는 요리가 잘도 넘어갔다.

"자네, 참 식욕이 왕성하군."

"아, 제가 좀 칼로리 소모량이 남들보다 높아서 그렇습니다. 하루에 여섯 끼 정도는 먹습니다."

"근데 자네는 뭐 하는 친구인가? 박 회장님의 숨겨진 오른팔, 그런 건가?"

"이번 소개팅 주선만 맡았을 뿐입니다."

"뭐, 소개팅?"

그 말에 황대호는 살짝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다가 호탕하게 웃었다.

"젊은 친구가 말을 참 재밌게 하는군. 소개팅이라니. 그럼 내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CF로만 일 년에 수백억 정도 버는 톱스타 여배우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효주 같은 급이다, 이거지?"

황대호는 자신을 그렇게 치켜세워주는 게 기분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 검사 양반. 이쁘다 이쁘다 해주시니까 진짜 선 넘네…… 웃겨, 참.'

"에이, 그 정도 가지고 되겠습니까? 장효주 배우가 CF로 일 년에 수백억씩은 못 버는 걸로 압니다."

황대호는 호탕하게 웃으며 거듭 술잔을 권했다.

취기가 조금씩 오르며 그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럼 실비아컴퍼니 소속은 아니다, 이건가?"

"네, 지분은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고 배당금이나 월급 같은 것도 일절 받지 않습니다. 이번 소개팅 주선도 박 회장님한테 예전에 신세 진것 때문에 맡은 겁니다. 아무 대가도 받지 않았고요."

거짓말은 안 했다.

실비아 주식은 당연히 없고, 직원이 아니니 월급도 안 받는다.

프리덤을 제공하는 제휴업체로서 그 수익을 쉐어할 뿐이다.

"아쉽군. 간만에 마음에 드는 친구인데. 자주 봤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아유, 저를 자주 보시면 차장님이나 실비아컴퍼니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밤은 깊어 갔고, 황대호는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하수영도 이런 간만에 즐기는 '돌발 이벤트'이기에 어드벤처 게임을 하듯 기꺼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역시 욕심 많은 인간들은…… 재밌다니까.'

실비아컴퍼니에는 대재앙이겠지만,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그에게는 무료함을 달래주는 소소한 이벤트일 뿐이다.

협상 결과를 통보받은 박덕준 회장은 멍한 반응을 보였다.

"일시불로 200억, 20년 동안 300억, 그리고 매년 100억이라고요?"

"네, 검찰의 칼끝이 이쪽으로 향하지 않는 대가라고 치면 엄청 싼 거죠."

"그래도 너무 과한 거 아닙니까?"

"과하다니요. 검찰도 서해그룹과 저울질을 해서 나름 큰 결심을 한 겁니다. 그 정성과 각오가 그리 저렴한 줄 아세요?"

"……누가 보면 수영 씨가 검찰 편인 줄 알겠습니다."

"저는 이기는 사람 편. 그게 재밌거든요."

"농담이고요, 서해그룹의 마수를 뿌리치는 비용이라 치면 저렴하지 않나요? 회사를 통째로 뺏기는 것보단 낫죠."

"설마 회사를 통째로 뺏기기야 하겠습니까."

"글쎄요. 검찰과 언론 동원해서 경영진 괴롭히고, 유죄 판결 때리고, 지분 몰래 인수한 다음에 주총 열어서 기습 해임 안건 때려 버리면, 경영권 넘어가는 건 기정사실일 걸요?"

"검찰 카드를 못 쓰면 서해그룹이 둘 수 있는 수도 많이 제한됩니다. 기껏해야 언론 좀 흔들고, 정치권에서 몇 마디 하고, 세무조사나 들어오겠죠."

세무조사를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에는 박덕준도 어이가 없었다.

"검찰만 잠재우면 그런 피상적인 공격이야 지금 실비아컴퍼니 힘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습니다. 요즘돈 많이 버시잖아요. 프리덤 덕분에."

"……그렇죠."

"검찰에 주는 용돈은 당연히 회사에서 알아서 마련하시고요. 아, 그리고 이번 소개팅 주선료는 안 받겠습니다. 간만에 저도 재밌었거든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