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239화 (239/1,270)

프랜차이즈 갓 239화

59장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1)

"시원하게 30억 투자하셨죠."

"30억이나?"

백호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30억,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

그리고 국내 영화투자라는 것은 정말 남아도는 돈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유명 감독, 유명 배우라해도 잘못하면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수도 있다.

한 번에 시원하게 다 날려도 상관없는 돈이 30억이나 된다는 것은, 보통 재력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훈이한테 그 상가 빌딩도 산 거겠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내연녀인 홍윤주가 운영하는 룸싸롱에서 경비원들을 아무렇지 않게 때려눕히고 자신을 압박하던 그 모습.

당시에 급히 가게를 빼면서 나중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 주리라고 결심했었다.

정계와 검찰에 걸친 인맥을 동원하면 그깟 건물주 한 명 털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빅토리아 그놈만 아니었어도!'

하필 그때 소속사 남가수 빅토리아가 마약강간파티 스캔들에 연루되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았다.

빅토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끌어당겼다.

자칫 손쓸 수 없이 스캔들이 커지게 되면, 종래에는 자신의 뒤를 봐주는 든든한 정치인들까지 얽히기 때문이었다.

그걸 겨우 수습하고 났더니 이번에는 유례없는 겨울 태풍이 터졌고, 그렇게 해를 넘기고 나서야 이렇게 청담에서 우연히 놈을 다시 마주친것이다.

"청담에서 겨우 빌딩 하나 굴리는 놈이 뭔 현금을 그렇게 많이 들고 있어?"

"네?"

"저놈이 그놈이잖아. 강훈 그놈한 테서 빌딩 산 놈."

정태오 감독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백호열은 하수영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근데 저 친구, 장효주하고 친해? 왜 저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거야?"

"당연히 큰 친분이 있죠. 요즘 장효주 먹여 살리는 분이시거든요."

"뭐? 아니, 장효주가 내 제안은 그렇게 거절하더니 저놈 제안은 덥석물었다고?"

"그런 거 아닙니다. 효주가 그런 배우 아니라는 건 대표님도 잘 아시잖아요."

거액 스폰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정태오 감독은 그런 지저분한 대화에 얽히는 게 싫었지만, 이 바닥에서 백호열 눈에 벗어나면 두고두고 골치 아프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영향력을 행사하면 정부의 예술인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를 수도 있으니까.

"광고주입니다, 저분."

"…광고주?"

"예, 효주가 저분 통해서 CF만 큰 걸로 두 번 찍었습니다. 혹시 이번에 프라임웰빙에서 나온 엘릭서드링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모르지. 내가 TV 따위 볼 시간이 어디 있나. 맨날 우리 회사 애들 사고 치는 거 수습하느라 바쁜데."

'어련하시겠습니까."

"저분이 운영하시는 회……."

"잠깐만, 있어 봐."

백호열은 정태오의 말을 자르고, 하수영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꼴을 보니 이 자리를 벗어나려는거 같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하수영 앞에 선 백호열은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하수영의 반응이 생각보다 쾌활했다.

"아, 홍윤주 임차인님 남편 되시는 분 맞죠? 정말 오랜만입니다. 가게 옮기시고 나서 장사는 잘되시나요? 비록 제가 임차인으로서 선호하지 않는 업종이라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종료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딜 가든 번창하시리라 항상 믿고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뭐야?"

"오늘 쫑파티에 오신 걸 보니 이 영화에 투자하셨나 봅니다? 그럼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거 같네요."

하수영은 백호열이 뭐라 대응할 틈을 주지 않고 그렇게 분위기를 휘어 잡았다.

백호열은 저도 모르게 하수영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의 몸은 거리를 벗어나 있었다.

그렇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쫓아가서 주먹을 휘두를 수도 없는지라, 백호열은 그를 멍하니 놓쳐야만 했다.

"백 대표님, 그게 저분이……."

"정 감독, 난 이만 가봐야겠어. 좋은 시간 보내라고, 오늘 우리 애들도 너무 소외감 느끼지 않게 잘 챙겨주고."

"네? 벌써 가시렵니까?"

"그럼 내가 이 엿 같은 기분으로 허허 웃으며 술이나 처마실까?"

"……."

"우리 애들 잘 챙겨."

오늘 파티에 참가한, 영화에 출현한 기획사 아티스트들을 언급하는 것이다.

백호열은 뼈가 실린 당부를 남긴 채, 정태오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그 자리를 떴다.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기분으로 바라보던 정태오는 애꿎은 머리만 북북 긁었다.

"에이, 이제 나도 모르겠다. 둘이 사이가 나쁜 거 같은데 알아서들 처리하겠지."

고래 싸움에 괜히 끼어 들었다가 등 터진 새우 꼴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근데 둘 다 고래가 맞긴 한가? 체급 차이가 좀 많이 나는 거 같은데…'

백호열은 차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서 명령했다.

"성진우 검사장님."

-통화 연결하겠습니다.

프리덤이 곧바로 통화를 연결했고, 신호음이 몇 번 울린 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백호열은 거들먹거리는 표정과 태도와 전혀 다른, 공손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검사장님. 저 백호열이니다."

-아, 백 대표. 오랜만이야.

"예, 저번 만남은 참 유익하고 돈독했던 거 같습니다. 그날 잘 들어 가셨는지 다시 한번 안부 묻고자 전화 드렸습니다."

-허허, 너무 그렇게 자주 안부 챙기지 않아도 되네. 당일도 챙기고 다음 날도 챙겼잖나.

"그래도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시는 분이신데 제가 소홀히 할 수가 없어서…… 다음에는 더 근사한 애들로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허허.

한참 동안 기분 좋게 어르고 달래자, 마침내 성진우 검사장이 원하는 말을 꺼냈다.

-혹시 부탁하고픈 게 있으면 편히 말하게.

"옙, 다름이 아니라 제가 한번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작년에 제가 운영했던 청담 가게 하나가 건물주갑질 때문에 어이없게 빼야 했다.

는…"

-아,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있겠나.

나도 그 가게 참 좋아했었는데. 윤주도 상심이 컸다고 들었네.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잊혀지질 않아서…… 존엄한 법치주의가 다스리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건물주갑질이 만연해 있다는 게 울분이 씻어지지가 않습니다, 검사장님."

-잘 알았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돼.

"감사합니다, 검사장님."

-진작 말하지, 가게 쫓겨난 게 언제인데 여태껏 바보처럼 속만 삭이고 있었나?

"아시잖습니까. 제가 그간 이것저것 일이 터져서 수습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랬지. 그리고 감탄했네. 그렇게 요란하게 일이 터지는데도 흡족하게 잘 처리하는 자네 일 처리 솜씨 보고 말이야.

성진우 검사장은 느긋하게 덧붙였다.

-자네 근심은 조만간 덜어줄 테니, 이제 그만 털어버리게.

"정말 감사합니다, 검사장님."

"근데 우리 결혼은 언제 해요?"

애인인 최승희의 느닷없는 질문에 오철현은 하마터면 입에 머금은 술을 뿜을 뻔했다.

초인적인 인내력을 동원해서 겨우 참아낸 그는 입을 닦으면서 물었다.

"가, 갑자기 결혼은 왜?"

"아니, 우리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거잖아요. 그럼 이제 슬슬 이야기해야 되지 않아요?"

"……."

"어머, 설마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했던 거예요? 철현 씨는 결혼 말고 연애만 하려고 했었어요?"

"아니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아니면 지금 그 반응은 대체 뭐예요?"

삑삑삑삑삑삑!

왼손목에서 희미한 경고음이 울린다.

시계 대용으로 찬 래플 워치에서 맥박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경보음이었다.

최승희도 그 소리를 듣고는 샐쭉해져서 래플 워치를 한 번 보고는 그를 째려보았다.

"뭐예요, 지금 심장 뛰어요?"

"그, 그게…."

"얼마나 무서웠으면 지금 그렇게 맥박이 폭주하고 있을까. 너무해요, 정말."

"스, 승희야. 내가 연애만 하려고 생각했다는 게 아니야. 그게 아니고……."

"그럼 내가 갑자기 훅 들어오니까 당황했다, 정말 그거뿐이다, 뭐 그런 거예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치. 평소에 생각을 전혀 안 했다는 거잖아요. 너무해."

최승희가 토라진 눈치이자 오철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를 달랬다.

"됐어요. 술이나 마셔요."

"알았어, 알았어."

"자, 이건 벌주."

오철현은 잘됐다 싶어서 술 마시는 속도를 높였다.

어느덧 둘은 거하게 취했고, 결혼이야기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감도 까맣게 잊었다.

그런데 헤어지기 전이었다.

"철현 씨."

"응?"

"나도 내 커리어 있구, 당장 결혼하자는 건 아닌데, 그래도 구체적인 계획 정도는 미리 그려놔요. 우리 가볍게 만나는 사이 아니잖아요."

"……알았어."

"왜 대답이 한 템포 늦죠? 나 또 삐지려고 그러네."

"아니야, 아니야. 진지하게 생각해서 대답하느라고 그래."

"조심해서 가요. 절대 직접 운전하지 말고, 오토파일럿한테 전부 다 맡겨요. 알았죠?"

최승희는 자신도 많이 취했으면서 오철현이 사고를 내지 않을까 걱정했다.

오철현은 벌게진 채로 피식 웃었다.

"이거 완전 자율주행 아냐. 아직 그런 거 안 나왔어. 운전자가 항상 모니터링하다가 개입해야 돼."

"아, 그럼 대리 불러요."

"이미 불렀어."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가도 되는데."

"안 돼.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처리해야 할 게 있어서. 가봐야 돼."

최승희가 주차장까지 배웅하려 했지만 오철현은 사양했다.

술에 취한 그녀가 주차장에서 다시 현관문까지 돌아가다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시동을 걸고 조수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꾸벅꾸벅 잠이 쏟아졌다.

뒤늦은 숙취가 밀려오며 머리가 지같은 감..

끈거리고 속이 뒤집어질 각이 밀려왔다.

"우웩… 너무 많이 마셨나. 야, 프리덤. 대리기사는 대체 언제 오는 거냐?"

-5분 이내에 도착할 예정…… 이런, 대리기사가 콜을 취소했습니다.

"뭐? 왜 취소해?"

-집에서 급한 연락을 받은 모양입니다. 바로 다음 대리기사 콜을 잡겠습니다.

"그렇게 해."

스마트폰은 운전석 옆에 다소곳하게 거치된 상태였다.

프리덤은 전면 렌즈를 통해 오철현을 주시하면서 보고했다.

-콜이 잡혔습니다. 10분 이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오늘따라 대리 기사 콜이 유난히 잦은 게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주인님?

-주무십니까?

프리덤은 다시 한 번 불러보다가 불현듯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오철현의 안색이 지나치게 창백했고, 또 숨소리가 불규칙적이었던 것이다.

-주인님?

프리덤은 오철현의 상태를 냉정하게 살폈다. 동시에 그가 손목에 자고 있는, 폰과 연동된 래플 워치에서 전송되는 맥박 리듬 정보를 판독했다.

전자회로에서 빠른 가설 및 추론이 오고 갔다.

-숨소리가 가늘어짐. 호흡 곤란 상태 추정.

-식은땀이 나고 있음. 맥박 불안정.

바로 그때 스마트폰의 전면 카메라, 프리덤의 눈 역할을 하는 렌즈에 오철현이 사지를 부르르 경련하는 모습이 비쳤다.

-전신 경련 발작 시작.

-마지막 맥박 이후 12초 경과, 13초 경과. 14초 경과. 15초 경과 -발작 중지. 맥박 중지.

프리덤은 자신이 동원 가능한 정보 자원을 활용해 현 상황을 추정했다.

-급성심정지로 추정.

-119에 즉시 현 사실을 통지. 통지 완료.

-가장 가까이 있는 제세동기 및 도움을 줄 인력 확보 시도. 확보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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