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236화 (236/1,270)

프랜차이즈 갓 236화

58장 청출어람 주객전도(3)

나노소프트는 수영레스토랑으로 무시무시한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이미 수영레스토랑은 나노소프트에서 압도적인 매출을 올리는 부서 1위였다.

윈드밀은 물론이고 그 어느 사업부도 감히 수영레스토랑의 매출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노소프트는 IT 기업이 아니라 애초에 프랜차이즈 요식업을 했어야 했네. 그럼 이미 진작 국제자원투자 회사도 시가총액으로 눌렀을 건데."

"근데 국자투는 비상장 기업 아니야? 개인 기업이라고 하던데. 차라리 아람코(사우디 국영석유회사)를 갖다 비비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에이, 어쨌든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노소프트가 수영레스토랑으로 무시무시한 질주를 시작하자, 실리콘밸리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일어났다.

"우리 쿠글도 이제 그간 축적한 압도적인 자금력을 이용해서 요식업에 진출을 해야 한다! 나노소프트의 선례를 봐라! 고작 50억 불을 투자해서 하루에도 수천만 불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 않으냐!"

"자율운전 자동차 따위는 그만 만들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나 개발해라!"

"로켓 발사 같은 건 좀 작작하고 나노소프트를 본받으란 말이야! 그러니까 맨날 돈만 까먹고 유상증자만 하다가 결국 파산이나 신청하는 거잖아!"

다른 유명 기업들 주주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요식업과 전혀 무관한 기업들인데도,

"나노소프트를 본받으란 말이야! 자기 사업 영역이 아니어도 저렇게 단숨에 성공하는 저 노하우와 통찰력을 보라고!"

"역시 발머 스틴. 머리카락을 잃는 것을 대가로 뛰어난 통찰력을 얻었어."

"쓰러져 가는 회사를 구원하기 위해서 CEO까지 지냈던 인물이 사내벤처장으로 복귀하다니, 그 열정이 정말 놀랍다."

나노소프트의 성공적인 요식업 진출은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신화가 되고 있었다.

프라임웰빙 마케팅이 광고업계를 강타했다.

"적어도 한국에서만 마케팅 비용으로 1조 원 이상을 쓸 겁니다. 이미 마케팅 예산을 다 잡아놨습니다."

마케미야가 보인 자신만만함은 괜한 게 아니었다.

TV, 라디오, 대형포털, 대중교통버스, 택시, 옥외광고판 등 닥치는 대로 프라임웰빙의 광고가 쏟아졌다.

[일주일 두 번의 섭취로 건강한 몸의 균형을 되찾으세요. 엘릭서드링크.]

톱스타 배우 장효주가 화사한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엘릭서드링크를 홍보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마케팅에 대중도금방 강한 흥미를 가졌다.

"프라임웰빙? 이건 뭐 하는 회사야?"

"건강보조식품 만드는 회사라던데. 이름 보니까 프라임컴퍼니 자회사 같네."

"프라임컴퍼니는 또 뭐 하는 회사인데?"

"네가 지금 처먹는 그 황비버섯라면을 만드는 회사다. 우리나라 라면 제조회사 넘버원이지."

"아, 황비라면 만드는 회사 계열사였어? 그럼 프라임웰빙도 엄청 혜자겠네."

프라임컴퍼니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척 좋았다.

값비싼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인스턴트라면에 무려 두 개나 넣어서 저렴하게 팔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델이 또 장효주네."

"장효주가 아무래도 인지도가 있으니까. 근데 프라임컴퍼니가 의리가 있긴 한가 봐. 한 번 모델로 쓰니까 계속 쓰네."

"혜자스럽게 라면 만들어서 파는 회사니까 엘릭서드링크인가 뭔가 하는 것도 효과가 좋을 거야. 한번 사먹어봐야겠어."

"런칭 할인 이벤트 중이라서 가격도 별 부담 없네. 나도 한번 사서 먹어봐야겠다."

"근데 제품명이 엘릭서드링크? 너무 거창한 거 아니냐. 누가 보면 만병통치약인 줄 알겠다."

"그래도 의약품이 아니라 건강보조식품이라고 큼지막하게 광고하는 거보면 양심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거지. 이름 좀 거창하게 지은 거 정도는 애교로 봐주자고."

그렇게 엘릭서드링크가 한국 시장에 출시되며, 소비자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

[오늘 쫑파티 하는데 혹시 오시겠어요?]

장효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수영은 프라이팬을 젓고 있던 손을 잠시 내려놓고 답톡을 보냈다.

[투자자들 모임인가요?]

[아니요. 그냥 출연진과 스태프들 모두 고생했다고 다 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는 거예요. 몇몇 투자자분들이 오시긴 해요. 하지만 그분들은 감독님하고 오래 알고 지낸, 거의지인이나 다름없는 사이죠.]

[흠, 별로 안 내키는데요.]

[나름 영화계 큰손이라는 분들도 계세요. 한 번 보시면 수영 씨도 흥미 있으실 거 같은데.]

[글쎄요.]

[몇몇 분들은 청담에 상가 빌딩 가지신 걸로 알아요.]

[파티가 몇 시입니까? 장소는요?]

톡이 잠시 끊어졌다.

아마 쿡쿡 웃으면서 시간과 장소를 적고 있을 것이다.

몇 초 후 답장이 왔다.

[오늘 오후 6시, 청담동 그라디에 이원 백화점이에요.]

[어? 거기 원래 그런 파티할 만한 장소가 아니잖아요? 청담동 사는 부자들 상대로 영업하는 소규모 명품백화점인데. 혹시 설마?]

[네, 오늘 오시는 투자자분 중 한 분이 소유하신 백화점이에요. 오늘은 하루 문 닫고 파티하는 거예요.]

[김주원 씨도 오시는군요.]

[어머, 그분을 아세요?]

[아주 잘 알지요. 물론 그분은 절 전혀 모르실 겁니다.]

[뭐죠? 신기하네요. 앗, 저도 이만 준비해야 돼서요. 그럼 이따 봐요.]

[드레스코드는 뭐 따로 있습니까?]

[너무 격식만 차리지 않으면 돼요. 프리 스타일이에요.]

톡을 마치고, 하수영은 결연한 표정으로 프라이팬을 내려다봤다.

프라이팬에는 그가 막 시범 삼아 조리하던 음식이 담겨 있었다.

모처럼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서 다음에 선보일 요리를 연구하던 중이었다.

아예 무에서 창조하는 게 아니라, 무한한 삶의 경험에서 이것저것 어울릴 만한 것들을 뽑아내서 조합하던 중이다.

하수영은 과감하게 프라이팬에 담긴 요리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냉동 기능이 탑재된 특별 음식물쓰레기통은 음식물을 버리는 즉시 안에서 냉동시켜 버리기에, 무더운 여름에도 부패하거나 벌레가 꼬이지 않는다.

"가자, 19호기를 맞이하러."

이미 그라디에이원 백화점은 그의 마음속에서 19호기로 자리 잡은 뒤였다.

하수영은 캠핑카를 끌고 목적지로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빌딩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이 불현듯 아련해졌다.

"19호기야, 잘 있었니?"

물론 빌딩은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연인을 대하듯이 빌딩 외벽을 쓰다듬었다.

"내가 조만간 너를 내 호적에 입적 시켜 줄게. 조금만 기다려 줄래?"

여전히 빌딩은 대답이 없다. 그게 당연하지만.

빌딩 안에 들어서자 1층 로비는 파티 분위기로 분주했다.

세 자릿수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나르고,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었다.

서빙을 들 직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파티 멤버들끼리 자유롭게 음식과 자리를 세팅해서 음주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이러니까 꼭 대학교 MT를 온 듯 한 분위기였다.

"어머, 오셨어요."

장효주가 가장 먼저 알아보고 다가왔다.

그녀는 짙은 보랏빛 블라우스에 청색 스키니진을 입은 산뜻한 차림새였다.

"이분은 누구셔?"

옆에 있던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묘한 눈빛을 품은 채 물었다.

"아, 세원 씨는 수영 씨 처음 뵙지? 저번 추가 촬영 때 안 왔으니까."

"누군데?"

"둘이 인사해요. 수영 씨, 이쪽은 윤세원. 세원 씨, 이쪽은 하수영씨."

"뭐야, 누군 윤세원이고 누군 하수영 씨야? 장효주, 이렇게 사람 차별하기야?"

윤세원이 은근히 타박하듯이 말했고, 하수영은 사교적인 웃음을 머금은 채 인사했다.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무척 반갑네요. 윤세원 씨이번 영화 연기가 무척 좋았다고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윤세원, 그는 바로 이번 영화의 남자 주연 중 하나였다. 장효주의 파트너 역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두 분은 어떤 사이이신지…?"

윤세원의 눈빛에 희미한 의심의 눈초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저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수가 없다.

무수한 삶의 반복 속에서 수도 없이, 지겹도록 겪어왔던 것이니까.

잠재적인 경쟁자일지 모르는 상대를 배척하고, 경계하는 수컷의 눈빛.

하수영은 갑자기 은근한 장난기가 생겨서, 일부러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인 채 대답했다.

"집주인입니다."

"……네?"

"장효주 씨가 가끔 머무르는 청담동 아파트 집주인이에요. 즉 우리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사이인 거죠."

"…정말 임대인과 임차인일 뿐인가요?"

윤세원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경계심이 한층 짙어졌다.

임대인과 임차인.

그 자체만 두고 보면 전혀 오해할 여지가 없는 단어의 조합이다.

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오해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장효주에게 아파트를 제공한 사업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맞네. 확실하네. 더 볼 것도 없네.'

하수영은 피식거렸다.

확인사살 겸 던져본 미끼인데 이렇게 바로 덥석 물 줄이야.

이 남자는 장효주를 좋아한다. 심지어 짝사랑이고, 장효주도 그걸 알지만 내버려 두고 있다.

한 번 꼬았으니, 이제 풀어줘야지.

"세상 참 좁더라고요. 노는 아파트한 채 월세를 줬는데 세입자가 알고 보니까 장효주 씨였지 뭡니까?"

"아, 그랬어요?"

윤세원의 목소리에 서린 경계심이 조금이나마 옅어졌다.

"그렇게 해서 두 분이 인연이 생긴 거군요?"

"아뇨, 인연은 그 전부터 있었어요. 제가 장효주 씨한테 일을 좀 의뢰했었거든요."

"일을요?"

"네, 제가 촬영하는 영상제작물에 주연으로서 출연을 해주셨으면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알게 된 사이인데 나중에 우연히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장효주는 팔짱을 낀 채 묘한 미소를 머금기만 할 뿐, 끼어들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윤세원의 경계심이 더욱 덜어졌다.

"아, 혹시 독립영화 감독님이세요? 우리 효주가 독립영화도 종종 출연하곤 하죠. 워낙 연기 욕심이 많은 친구라서."

"사실 윤세원 씨한테도 다음에 출연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직접 보니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제가 생각한 이미지와 비주얼이 잘 매치 되네요."

"영광입니다. 나중에 연락 주십시오."

무명 독립영화 감독쯤으로 여겼는지, 윤세원은 어느덧 한결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물론 최소한의 예의는 잊지 않았다.

"세원 씨, 이리 와봐. 감독님이 소개시켜 줄 분들이 있다고 부르세요."

"예, 갑니다, 조감독님. 효주야, 나 잠시 다녀올게."

"그래요. 다녀오세요."

윤세원이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자 장효주는 지그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맞죠? 세원 씨 놀린 거."

"네, 장난 좀 쳤습니다."

"왜 그러셨어요?"

"그냥 하는 짓이 귀여워서요."

"어떤 점이요?"

"그걸 제 입으로 직접 말하기는 조금 민망하네요."

"그래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효주씨라면 아실 거 같은데. 한두 번 아닐 거잖아요? 이런 경험. 아마 지긋지긋하시지 않나?"

장효주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풀었다.

"유치원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겪었죠. 이제는 그냥 일상이려니 해요."

"뭐, 저분도 금방 알게 될 테지만 그동안은 좀 놀려주고 싶네요."

"알았어요. 그런데 세원 씨 비주얼이 정말 수영 씨 스타일이에요?"

"네, 제가 구상하는 다음 제품이 있는데, 거기 모델로 쓰면 딱일 거 같아서요."

"어머, 저는 이제 버리시는 거예요?"

"그건 아니고, 남자 모델이 어울리는 제품이라서 그렇습니다. 남성 전용 제품이거든요."

"아하, 그렇구나."

가볍게 담소를 나누던 도중, 별안간 하수영의 시선이 다른 쪽을 향하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장효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다가 작게 탄성을 냈다.

하수영이 결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분이 김주원 씨죠?"

"네, 맞아요. 여기 백화점 주인 되시는…"

"지금 저한테 저분 소개 좀 시켜줘요. 최대한 자연스럽고 정중하고 부담감 없고 친근감 펑펑 솟는 멘트로 부탁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