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35화
58장 청출어람 주객전도(2)
석유수출국기구는 감산 조치에 들어갔고, 국제 유가는 하락세를 멈췄다.
가입후보국은 물론이고 비가입국인 러시아마저도 감산 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유가는 안정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JS그룹은 그런 수혜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부회장실에는 오랜만에 웃음이 가득했다.
"이거 OPEC이 우리를 돕는군."
"저 미친 출혈 경쟁을 누가 멈출수 있을까 우려했는데, 어떻게 물밑에서 극적인 합의가 된 모양입니다."
JS칼텍스 박창진 사장은 허재우 부회장 앞에서 모처럼 자신 있는 미소를 보일 수 있었다.
"지금 시장 점유율이 어떻게 되지?"
"SC이노베이션의 과반 점유율은 깨진 지 오래입니다. 우리 JS칼텍스와 프라임오일컴퍼니의 점유율을 합치면 10% 이상 차이로 SC이노베이 션을 이기고 있습니다."
오랜 아성이던 SC이노베이션의 과반 점유율을 깨뜨린 것만 해도, JS 칼텍스 입장에서는 충분한 경사였다.
"근래 주주들 사이에서 우리 JS칼텍스와 프라임오일컴퍼니가 나중에 합병하는 거냐는 문의가 종종 나오고 있습니다."
"합병이라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허재우 부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합병을 추진한다 쳐도 그 엄청난 잔소리를 뚫고 나가는 건 불가능해."
온갖 군상들이 감 놔라 배 놔라하며 달려들어서 협상 테이블을 진흙탕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합병하면 사실 우리야 좋지.계속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으니."
고품질의 원유를 국제시세보다 더 싸게 제공받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국 시장은 찜쩌먹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된다.
"근데 프라임오일에서 합병을 하려고 하겠어? 차라리 우리 회사를 완전히 흡수해서 자회사로 들인다면 모를까."
"프라임오일 주도 흡수합병은 너무 과한 게 아닐까요."
"내가 프라임오일 주주라면 그거 말고 다른 형식의 합병은 원하지 않을 거야. 뭐가 아쉬워서."
국제 석유 시장의 절대강자, 국제자원투자회사.
그 아랍계 회사의 서자나 다름없는 회사가 뭐가 아쉬워서 JS칼텍스와 합병을 하려고 할까.
"우린 딱 지금처럼 프라임오일컴퍼니와 손잡고 국내 정유시장에만 치중하면 돼. 어차피 프라임오일컴퍼니도 아시아권 진출을 위해서 우리 나라 시장은 경영 연습 무대로 여기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참, 수영오세안 프리미엄 참치 경매가 언제 또 열린다고 했지? 자네, 뭐 들은 거 없나? 이번에 우리 형님, 아니, 회장님 생일 선물로 하나 샀으면 하는데."
"달에 1회씩은 주기적으로 하는 편이니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소식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꼭 우리가 낙찰을 받아야 해. 얼마를 쓰든지 간에 말이야."
수영오세안의 프리미엄 참치는 서해호텔에서 해체쇼를 보인 이후, 재계 사이에서 유명한 선호 식품이 되었다.
중금속이 전혀 없을뿐더러 일반적인 고급 참치와 달리 환상적이고 중독적인 맛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어찌나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는지, 오죽하면 그룹 총수가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밑의 임원들에게 하명까지 내렸다.
서해전자는 프리덤을 자사의 겔드폰에 탑재하려다가 무산된 적이 있었다.
실비아그룹 박덕준 회장이 눈물을 머금고 회사 지분을 이현덕 부회장 개인 주머니에 꽂아준 덕분이다.
하지만 겨울 태풍 이후 프리덤의 매출이 무섭도록 성장하자, 이현덕부회장은 다시금 프리덤을 손에 넣기 위한 욕심을 품었다.
서해그룹 전략기획실장 함석조는 주군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세무조사는 엮어봐야 부담이 너무 큽니다. 박덕준 회장은 공식적으로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뗐고요. 개발자 출신의 오철현 대표가 실무경영을 맡긴 하지만, 그 사람의 재산은 대부분 창업 당시 받은 주식이라 비리 문제로 엮긴 어렵습니다."
대표이사의 재산 내역이 너무 투명하다 보니 그 부분은 건드리기가 어려웠다.
"오철현 대표가 현재 최승희라는 여배우와 열애 중이던데, 그 여자 건으로 뭐 물고 늘어질 만한 건?"
함석조 실장은 최승희의 사진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기획실 직원들은 머뭇거리다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최승희도 어려울 거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여배우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으려면 어차피 몸 적당히 굴렸을 거 아닌가? 그 친구 스폰해 준 사업가들 찾아내서 살짝 털어주면 될 거 같은데."
"저희도 알아봤는데 그런 면에서 깨끗했습니다. 몇몇 연예인과 스캔들이 난 적은 있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음…"
차라리 회사 하나를 무너뜨리는 거라면 낫다.
하지만 이건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프리덤이라는 희대의 초대박 아이템을 온전히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있어서도 안 되고, 세상의 의심도 사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사람 하나 어디 묻어버리는 게 천 배는 쉽지, 이건 뭐…….'
실비아컴퍼니도 바보가 아닌데, 순순히 프리덤을 빼앗길 리가 없다.
그렇다고 프리덤을 뺏을 만큼의 힘을 행사하면, 당연히 그 반작용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보통 어려운 주문이 아니었다.
"역시 개발자 대리인을 직접 노리는 게 좋겠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주목을 받았다.
젊고 선한 눈매가 인상적인 이십대 초반의 청년, 바로 하수영이었다.
현재 기획실 누구도 하수영이 진정한 프리덤 개발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개발팀의 막내이거나, 혹은 개발자를 대리해서 실비아컴퍼니와 계약을 맺은 얼굴마담으로 여긴 것이다.
함석조도 처음에는 하수영을 개발자로 의심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역시 이 친구가 개발자일 가능성은 전혀 없겠지?"
"전혀 없습니다. 전자팀 연구진의 자문을 받았지만, 프리덤 같은 고도의 인공지능을 개인이 단독으로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만 했습니다."
"적어도 폰 노이만이나 니콜라 테슬라급의 천재 여럿이 모여서 무제한적인 자금과 설비, 시간 지원을 받아야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하수영, 이 친구는 본업이 빌딩 임대업과 농업, 요식업입니다. 본업에 매달리던 와중 짬짬이 틈을 내어 프리덤 같은 걸 개발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설명이었기에, 함석조도 더 이상 부정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장님은 오리지널 수영라면을 맛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내가 느긋하게 그런 데 찾아갈 틈이 어디 있나. 회사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는데. 구내식당 아니면 샌드위치 배달 같은 걸로 때우고 말이야."
함석조는 예전에 하수영과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수영은 모든 것은 실비아컴퍼니와 이야기하라며,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하원석의 아들이라……."
함석조의 중얼거림에 기획실 직원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역시 그 박수무당, 재벌가 오너일가 상대로 점쳐주고 엄청난 돈을 긁어모았다더니, 그게 사실이었나 봅니다."
"들어보니까 백발백중이었다고 하던데요. 다른 점술가들처럼 두루뭉술하고 말하지 않고 미래를 분명하게 딱딱 짚어서 말해주고, 또 어떻게 행동할지도 알려주고."
"지금은 어디서 뭐 하나 모르겠습니다. 벌써 소식 두절 된 지 십 년도 넘지 않았나요?"
하수영의 세밀 조사 내역을 훑어본 함석조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역시 스물한 살에 자기 힘으로 이런 엄청난 재산을 쌓았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심지어 일 년도 걸리지 않아서 형성한 재산이죠."
"부동산 자산만 1조 3,000억 원이라…… 그것도 전부 청담동에서만."
괜히 청담동 큰손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황비버섯라면으로 유명한 프라임그룹의 최대주주이자 오너이기도 합니다. 회사 지분의 85% 이상을 갖고 있으니까요."
"JS칼텍스와 제휴를 맺고 정유사업도 하고 있는데, 심지어 국자투가 그 뒤를 봐주고 있답니다. 골든트러플 매각 덕분에 맺은 인연인 듯싶은데, 이 부분은 좀 더 조사가 필요합니다."
심지어는 이현덕 부회장의 친여동생인 이선주 서해호텔 사장과도 사업을 하고 있었으니.
직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장님, 아무래도 이 건은 포기하시는 게…"
"……."
"너무 위험이 큽니다. 어쩌면 하수영 사장은 프리덤 개발자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일 수도 있습니다."
프리덤을 개발하는 데에는 당연히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수영은 드러난 자산 내역만 봐도 대단한 부자다.
그렇다면?
"지하에 은닉한 재산은 이보다 더 크다는 거겠지?"
"네, 아무래도. 골든 트러플 매각등 재산 형성 원인이 여럿 있지만, 단시간에 이런 큰 재산을 쌓기에는 무리입니다."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해외의 검은 돈을 들여와서 양지로 끌어올린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그 부분도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획실은 하수영의 재산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부친 하원석이 재벌가를 상대로 점을 쳐주고 축적한 재산이 세탁 과정을 거치고 양지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 보는 게 타당했다.
"그나저나 미국 진출? 이건 뭐지?"
"아, 수영레스토랑이 이번에 나노소프트와 손을 잡고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고 합니다."
"나노소프트? 혹시 윈드밀을 만든 그 회사 말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함석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노소프트가 뭐가 아쉬워서 레스토랑업에 진출을 해? 그 거인이 라면 몇 그릇 팔아서 어디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나?"
"첫날에만 1,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순간 함석조는 뿜을 뻔했다.
"뭐, 뭐라고? 하루에 천만 달러?"
"네, 나노소프트에서도 무려 5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습니다.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이대로 가면 연 매출 30억 달러를 넘는 건 일도 아니라고. 물론 지금 매장 200개 기준으로 봤을 때 이야기입니다. 나노소프트는 매장 개수를 백 배 이상으로 늘릴 예정이랍니다."
함석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수영, 이놈 도대체 뭐 하는 친구야?"
"혹시 하수영 이 친구도 부친처럼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요? 미래를 내다본다거나 그런 거 말입니다."
"자네는 21세기에 그런 걸 믿어? 하원석 그 친구는 그럴듯한 말로 재벌 오너 일가한테 사기를 친 점쟁이일 뿐이야."
"쓸데없는 상상하지 말고, 어떻게든 프리덤을 겔드폰에 넣을 방도나 궁리해 봐. 사도가 안 된다면 정도로라도 밀고 나가야지 별수 있나?"
"부회장님께서 직접 선대의 정을 강조하면서 협상의 물꼬를 터보는 것은 어떨까요?"
"부회장님이?"
함석조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반문했다.
주군을 직접 움직이게 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을 두드러지게 할 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저희가 직접 건드리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큽니다. 부회장님도 이 친구가 지금 어떤 위치인지는 제대로 아셔야죠."
"……일단 그 부분은 다시 보고를 해야지."
기껏해야 수백억 정도의 자산가인 줄 알았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여배우 장효주에게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장효주?"
"네, 하수영 이 친구가 아무래도장효주 여배우한테 호감이 있는 거 같습니다. CF도 여러 번 찍었고, 이번에 들어가는 영화에도 30억이나 묻지나 투자했답니다."
함석조는 귀가 솔깃해졌다.
"그거, 더 자세히 설명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