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32화
57장 낭비는 비극이다(4)
처음 나노소프트는 미국 전 지역에 매장을 일제히 오픈하는 융단폭격방식으로 시장에 진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색을 표했다.
"아직 식자재 조달이 그 정도까지는 안 됩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노소프트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200여 개의 매장을 일제히 오픈하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전통 소프트웨어 대기업이 요식업에 진출한다는 이야기는 월가에 요란한 소문을 불어넣었다.
"뭐? NS가 밥장사를 한다고?"
"그렇다니까. 이번에 매장 200개를 한꺼번에 오픈했다던데."
"아니, 대기업이 골목상권 장악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해도 해도 너무하네. 발머 스틴 그 친구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 욕심이 지나친 거 아니야?"
"거기 CEO 바뀐 지가 언젠데. 사티아 아델 결정이겠지."
"아, 그래? 언제 또 바뀌었어?"
지나가던 동료가 그 대화를 듣고 픽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요식업 진출은 사티아 CEO가 승인하긴 했지만, 그걸 실제로 맡아서 운영하는 사람은 발머 스틴이야."
"뭐? 전 CEO가 직접 챙긴단 말이야?"
"발머 스틴은 의약계 스타트업 회사들이나 챙기면서 말년을 보낸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언젠가 탈모 치료제를 만들어낼 스타트업 기업들이 나오는 걸 꿈꾸면서 그리 지낸다고 들었는데."
"우리 회사 근처에도 매장이 하나 있던데, 한 번 가보는 게 어때?"
"좋아, 이따 저녁에 가보자고."
셋은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수영레스토랑 월스트리트 지점을 찾았다.
그러나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입이 떡 벌어진 채 놀랐다.
"저 줄이 다 뭐야?"
"아니, 낮에만 해도 저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오늘 오픈한 거 아니었나?"
줄을 설 엄두도 내지 못한 그들은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일단 매장 가까이 가서 메뉴를 확인했다.
"라면 요리만 팔잖아?"
"그것도 가짓수는 두 개뿐이네. Soo Yeong noodles Home, Pro?"
"누가 나노소프트 아니랄까 봐 홈과 프로 버전이라고 분류를 해놨네."
"아니, 잠깐? 근데 홈 버전이 9.99달러인데 프로 버전 가격은 왜 이래? 50달러? 겨우 라면 한 그릇에 50달러나 받는다고?"
셋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미쳤다, 미쳤어. 아무리 여기가 미국의 모든 돈이 모인다는 월가라지만 누가 저 돈을 주고 라면 한 그릇을 사먹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기 줄을 보고 그들은 슬쩍 뺨을 문질렀다.
"아무튼 우리도 내일 다시 와보자고."
그러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그들은 끝내 수영라면을 맛보지 못했다.
줄은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가게 오픈하기 훨씬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좌석이 100개가 넘었지만, 그 정도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벅찼던 것이다.
"꼭 뉴욕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전부 다 소식을 듣고 몰려온 것만 같군."
며칠 동안 번번이 실패한 그들은 결국 줄을 서서 두 시간 넘게 기다린 후에야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대체 이딴 걸 왜 50불이나 주고 사먹는 건지 이해가 안 가네."
"일단 먹어보자고. 발머 스틴이 그 나이에 노망이 난 건지 아닌지는 봐야 할 거 아니야."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그들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심정이었다.
"이야, 이거 향은 무척 좋네."
"뭔가 중독성 있는 냄새인데? 냄새하나는 확실히 죽이는군."
"그럼 어디……."
반신반의한 채 포크를 집어든 그들은 면발을 입에 넣는 순간 다들 눈이 마주쳤다.
순간 마음이 통한 듯 그들은 번개같은 속도로 면발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국물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거의 순식간에 비워 버린 그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게 겨우 50달러밖에 안 한다고?"
"이 회사 주식을 사야 돼! 이건 무조건 오른다!"
"나노소프트 사내벤처라며? 그럼 아직 상장은 안 했을 테고, 조만간 본사에서 계열분리되겠네."
처음 나노소프트를 비웃었던 세 금융가들은 하루빨리 회사 주식이 상장되기만을 기다렸다.
쿠글 회장 에론 슈마허는 오랫동안 반 NS 진영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그는 굳건한 NS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전 세계 IT 시장에서 변화가 없으리라고 보았다.
그런 만큼 나노소프트에 애증이 교차하는 그는, 처음 소식을 듣고 비웃었다.
"나노소프트가 뭘 판다고?"
"라면을 판답니다. 미국에서 매장 2200개를 동시에 오픈했다고 들었습니다."
"모바일 시장에 자신 있게 진출했다가 박살 나니까 경영진이 전체로 멘붕이라도 온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쿠글 임원들은 처음에는 다 같이 비웃었다.
"나노소프트가 라면 요리를 팔기 시작했으니, 우리 쿠글도 햄버거라도 팔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라면을 몇 개 이상 사 먹을 때마다 윈드밀을 번들로 끼워서 주는 건 아니겠지?"
"그럴 수도 있습니다. 거기 메뉴가 두 개인데, 각각 홈 버전과 프로 버전이라고 부른답니다."
"빌 고든 회장이 말년에 심기가 불편하겠어. 믿고 회사를 맡긴 후임들이 이런 짓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야."
"안 그래도 이번에 아프리카 자선 사업 때문에 잡았던 출국 일정을 미뤘답니다."
"오, 그 정도인가?"
실리콘밸리에서 나노소프트의 이름이 웃음거리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현금을 3,000억 불 넘게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할 게 없어서 그런 라면 팔이나 한다고?"
"나노소프트도 이제 맛이 갔군. 더 이상 전통의 명가가 아니야."
"그럴 돈과 여력이 있으면 사피스시리즈 자잘한 오류나 제대로 잡던가 해야지."
하지만 웃음이 충격으로 바뀌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개의 매장에서 올린 평균 일매출 집계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1,200만 달러라고? 200개 매장에서 하루에 올리는 매출이?"
"아니, 그럼 일 년이면 거의 35억달러라는 거 아니야?"
"매장이 겨우 200개뿐인데?"
"미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겨우 매장 200개의 프랜차이즈 요식업이 절대로 낼 수 없는 매출 수준이었다.
매장 수 대비 매출로만 본다면, 요식업계에서 미국 내 최고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역시 IT강자! 하드웨어 명가로 거 듭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요식업에서도 최고를 찍으려고 하네."
"과연 나노소프트답다. 정말 대단해."
"빌 고든 회장은 여기까지 내다보고 있겠지?"
빌 고든 나노소프트 전 회장은 당황했다.
"연 예상 매출이 35억 불이라고?"
"예, 그것도 매장을 더 이상 늘리지 않고 지금대로 운영했을 때 가정한 수치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고 있습니다. 테이블은 언제나 꽉 차 있고, 자리가 없어서 손님들을 다 못 받는다고 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100개 이상의 매장은 식재료가 떨어져서 매번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연 매출 35억 불.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아니, 돈 좀 있다 하는 투자자들이 앞을 다퉈가며 달려드는 게 정상이다.
"발머 회장도 아주 신이 났습니다. 올해 안으로 매장 수를 2,000개 이상 늘릴 거라고 벼르는 중입니다."
200개에서 2,000개로 늘어나면, 매출도 350억 불이 되는가?
"이러다가 윈드밀 매출량을 뛰어넘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큰일 날 소리는 하지도 말게."
"정작 전미 요식업계보다는 실리콘밸리에서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NS가 웃음거리가 된 건 아니고?"
"예상 연 매출이 수십억 불입니다. 이 수치를 가지고 웃을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겁니다. 발머 회장의 선견지명이 대단합니다. 이렇게 성공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도 가봐야겠어."
결국 빌 고든 회장은 가까운 수영 레스토랑 매장을 찾아서 움직였다.
그도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겨우 수영라면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평생 겪어보지 못한 강렬한 맛을 경험했다.
순식간에 그릇을 비워 버린 그는 곧바로 나노소프트 본사로 찾아갔다.
발머 스틴, 전 CEO 겸 회장이자 현재는 사내벤처장인 그는 본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발머, 대체 수영라면은 어떻게 된 거지?"
"맛의 비밀을 물어보는 건가, 아니면 어떻게 수영라면을 알게 되었는 지를 물어보는 건가?"
"둘 다! 아니, 뒤의 것부터 설명해 줘!"
"사실 이건 사티아 아델이 그린 큰 그림일세."
"사티아? 큰 그림?"
전혀 생뚱맞은 대답에 빌 고든은 당황했고, 발머 스틴은 차분히 설명했다.
"그렇다네. 모든 것은 프리덤을 우리 차세대 윈드밀에 탑재하기 위한 밑작업이지."
"프리덤?"
그제야 빌 고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도 먼 한국땅에서 출시한, 기상천외한 개인비서 인공지능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빌 고든은 강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데이터와 엄청난 프로그래밍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으로 여기고 있었다.
"프리덤 개발자가 알고 보니 본업이 따로 있더군. 인공지능 개발은 취미로 틈틈이 하는 모양이야."
"음, 역사적으로 위대한 발명을 남긴 기술자들이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일은 다반사지. 그래서?"
"수영라면이 바로 그의 본업 중 하나일세."
순간 빌 고든은 살짝 충격에 빠져서 휘청거렸다.
"잠깐만, 본업 중 하나라고 했나?"
"농사도 짓더군. 라면에 들어가는 식재료 대부분은 그가 직접 키운다고 하네. 물론 '프로' 버전에 한정해서 하는 말이야."
9.99불짜리 '홈 버전' 수영라면에 사용하는 밀가루는 엘릭서 밀가루가 아니라, 일반 시중에서 구입한 밀가루다.
밀 물량을 모두 맞추기도 버겁고, 또 그만큼 맛에서 차별성을 두기 위함이었다.
"설마 그럼 요식업에 진출한 게?"
"프리덤 개발자한테 잘 보여서 프리덤을 윈드밀에 탑재하기 위함이지. 뭐, 그건 사티아 그 친구 바람이고, 나는 말년에 보람차고 재미있는 사업거리를 맡아서 좋은 거지."
"……."
"빌, 자네도 같이 해보지 않겠나? 소일거리로 좋을 거야. 난 밥장사하는 게 이렇게 보람찬 일인 줄은 미처 몰랐네. 그나저나 자네도 먹어봤지?"
"먹어봤네."
"정말 환상적인 맛이지 않나? 취미로 인공지능 개발을 한다는 게 정말 과언이 아니었어. 그 사람은 컴퓨터학자이기 이전에 진정한 요리 연구자였어."
"어쨌든 내가 경영 복귀를 고려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군. 사실 심각하게 고민했었다네."
"사티아의 수완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게. 그 친구의 발상에는 나도 정말 감탄했다니까."
"뭐가 또 있나?"
"그게 말이지, 아직은 비밀인데. 아마 조만간…"
주희도는 NS에서 정식으로 온 요청에 당황했다.
"레스토랑 매장 예약결제에 프리덤을 지원해 달라고요?"
"예, 원래 프리덤은 수영레스토랑 예약결제 편의를 위해 개발한 인공지능이라고 들었습니다. 안 됩니까?"
"이, 일단 말은 한 번 전해보겠습니다.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주희도는 하수영에게 문의했고, 하수영은 시원스럽게 승낙했다.
"그럼요. 당연히 지원해 드려야죠. 원래부터 그러려고 만든 앱이었는데요."
그렇게 수영레스토랑 예약 및 결제지원을 위해 프리덤이 미국 앱상점에서 공식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초기 버전처럼, 예약과 결제 기능만 지원하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