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25화
55장 증식하는 테라리움(5)
지하크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프라임오일컴퍼니가 한국 경쟁사들의 압박에 시달리지 않도록 제가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왕자님."
"그래, 지하크. 부탁하지."
"저기요, 교수님?"
이번 생은 에너지 산업 따위는 안한다니까요?
패권놀음에서 신경 끄고 벼와 밀이나 키우면서 느긋하게 살고 싶다니까요?
하수영의 그런 애처로운 마음은 불행히도 안살린 왕자의 마음까지 닿지 못했다.
"하수영 사장 덕분에 나는 몰랐던 자연의 비밀을 새로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정유 시장은 그 대가로서 소소한 것이니, 너무 사양하지 말아 주십시오."
"교수님, 물론 국내 정유 시장은 소소한 게 맞습니다만."
"아, 역시 그렇지요? 그럼 아예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아니, 아시아 시장 전체의 권리를 드리는 것은 어떨까요?"
"아니아니, 제가 지금 뭘 더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프라임오일컴퍼니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받은 게 너무 많습니다."
"허어…… 부족하니 더 해달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너무 많이 봤습니다. 기름 문제가 얽히면 결국 사람은 본색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하수영 사장처럼 욕심 없는 사람은 처음이군요."
"저도 욕심 많다니까요? 그 방향이 다를 뿐입니다."
"지하크, 부디 잘 챙겨드리게. 알겠나?"
"예, 왕자님."
이미 버스는 지나가 버렸다.
'프라임오일이 국내 시장 90%를 처먹어치우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하수영은 애써 좋게 생각하며 청담동으로 귀가했다.
'석유 카르텔이 어떤 애들인데. 아무리 국자투가 날고뛰는 공룡 석유회사라 해도, SC이노베이션이나 JS 칼텍스나 당장 자기가 죽게 생겼으니 죽자 살자 저항하겠지.'
믿고 있겠다, 국내 석유 카르텔.
하수영은 그런 마음을 품은 채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다.
테라리움 공사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공사는 모두 끝났고, 이제 잔여물만 치우면 됩니다. 그것도 오늘 안으로 모두 끝날 테니, 내일부터 바로 농장 가동에 들어가시면 될 거 같습니다.
"오,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내려가죠."
-네? 지금 바로요?
"오늘 안으로 다 끝난다면서요? 그럼 저녁부터 바로 자동화 세팅 작업들어가야 내일부터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있죠."
-알겠습니다.
하수영은 캠핑카에 길이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트레일러칸을 연결했다.
트레일러칸에는 테라리움 2호기에서 사용할 농업 로봇들을 비롯한 기자재가 실려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트레일러칸 연결작업을 하는데, 한옥에서 쉬고 있던 최우석 노인이 내려왔다.
"하 사장, 이른 아침부터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
"테라리움 2호기가 완공됐다고 해서 내려갑니다."
"테라리움?"
"좀 큰 비닐하우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하, 그렇군. 요즘은 비닐하우스농법이 대세지, 암. 날씨나 계절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농작물을 키울 수 있으니까."
물론 최우석이 머릿속에 떠올린 농작물은 테라리움 2호기의 모습과 실제로 많이 달랐다.
"저 짐칸은 또 뭔가?"
"테라리움 2호기에서 쓸 농기계들 이에요."
"어이구, 누가 보면 무슨 트랙터라도 잔뜩 실은 줄 알겠어. 근데 자네 캠핑카가 저걸 끌 수 있나?"
"그럼요. 얼마나 힘이 좋은 녀석인데요. 괜히 25억이나 받고 산 게 아닙니다."
"자네가 차 하나는 정말 잘 골랐단 말이지. 쓰잘데기없는 스포츠카에 비할 수가 없어."
"그럼요. 힘 좋지, 편의성 좋지, 사고 나도 죽을 위험 적지, 이거보다 더 좋은 차량이 없어요."
"자네 나이에 그 정도 돈 있으면 죄다 2인승 차부터 뽑던데 말이야."
최우석은 뒷짐을 진 채 하수영이 열심히 연결 작업을 하는 것을 구경했다.
요즘 그는 한옥에 아예 눌러앉았다.
언제부터인가 슬금슬금 가전이며, 옷이며, 이런저런 살림살이가 늘고 있었다.
"나도 한 번 구경 가도 되나?"
"어딜요, 테라리움이요?"
"자네가 어떤 농장에서 농사짓는지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러네. 곤란할까?"
"그러시죠. 대신 저는 거기에 며칠 이상 있을 수도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아, 걱정 말게. 이따 저녁에 아들 더러 데리러 오라고 하면 되니까."
"아들분도 직장 때문에 바쁘실 텐데."
"아비 재산 조금이라도 더 물려받으려면 부지런히 뛰어다녀야지, 별수 있어?"
"역시 자산만큼 효심을 자극하는 동기 부여는 없는 거죠."
연결 작업을 마친 하수영은 곧바로 경기도 테라리움을 향해 출발했다.
1호기와 동일한 설계로 지은 덕분에 공사 기간을 대폭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나란히 자리한 두 개의 거대한 건물을 보니, 가슴에 뿌듯함이 차오른다.
최우석 노인은 놀라서 물었다.
"저게 하 사장, 자네 소유 비닐하우스라고?"
"네, 그렇습니다. 좀 크죠?"
"아니, 비닐하우스인데 왜 비닐이 안 보이는 건가?"
"요즘에 누가 비닐을 쓰나요. 지지력이 형편없어서 폭설이라도 내리면 무너지고, 태풍이라도 불면 날아가는 구조물에 맞아서 찢어지게 마련입니다."
"그건 그렇지."
"이제 대세는 강화유리죠. 무조건 안정성이 최고입니다."
"허어…… 대체 어느 정도로 단단한 건가?"
"성인이 해머로 내리쳐도 쉽게 안깨질 정도입니다."
"오, 정말 대단해. 놀랍네."
캠핑카에서 내린 최우석은 테라리움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를 살피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런 큰 농장 건물을 두 채나 갖고 있다니. 자네, 생각보다 정말 농사를 크게 짓고 있었군."
"2호기는 오늘 막 완공된 거예요. 앞으로 더 늘어날 겁니다."
"그래, 주로 뭘 키우나?"
"버섯과 밀, 고추를 키웁니다."
"기본 작물 위주로 키우는구먼. 난 블루베리 뭐 그런 거라도 키우는 줄 알았는데."
"기본 작물 산업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요. 나중에 이상 기후 현상이라도 와서 식량 헬게이트라도 열리면 난리 납니다."
"암, 맞는 말이야. 나라는 언제나 자기 힘으로 식량을 키워야 해. 무조건 해외에서 사오기만 하면 나중에는 굶어 죽는다니까. 젊은 애들이 그걸 몰라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공사업체 사장이 멀리서 하수영을 보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내 부탁해도 될까요?"
"따라오시지요."
공사업체 사장은 직접 하수영을 안내해서 외부와 내부의 공사 현황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뒤를 따른 최우석은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감탄하기 바빴다.
특히 그는 자동으로 천장 전체가 열리는 개폐식 강화유리 천장에 감탄했다.
"신세계야, 신세계. 요즘 젊은 농부들은 다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짓나?"
그 말에 공사업체 사장이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어이구, 어르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첨단설비까지 지어가면서 농사짓는 사람은 아마 미국에도 없을 겁니다."
"아, 그래요?"
"네, 이거 하나 짓는 데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데요. 특히 우리 하 대표님께서는 안전하게 공사 기간 단축한답시고 더 많은 돈을 쓰셨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 가장 비싸고 귀한 게 바로 시간이니까요.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하수영은 공사서류 확인란에 서명을 하고, 그 자리에서 남은 공사대 금을 바로 입금시켜 주었다.
"혹시 소소하고 간단한 자택 인테리어 같은 거라도 있으면 언제든 편히 주저 없이 불러 주십시오. 새벽에라도 연락 남겨주시면 확인하는 대로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마 앞으로 종종 연락드릴 일이 있을 거 같아요. 아, 혹시 빌딩은 지어 보신 적 있나요?"
그 말에 공사업체 사장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최고 20층짜리 빌딩까지 지어 본 경험이 있습니다. 비록 재도급을 받아 짓긴 했지만, 실 건축 자체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총괄했습니다."
"이런, 20층짜리를 제가 지을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아이고, 하 대표님 같은 재력가께서 겨우 20층짜리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나중에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빌딩도 뚝딱뚝딱 올리실 겁니다."
하수영은 20층짜리 같은 작은 빌딩을 지을 일이 있을까 하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업체 사장은 반대의 의미, 즉 겸손의 뜻으로 해석한 모양이다.
사실 테라리움은 면적이 넓지만 1층밖에 안 되기에, 그렇게 공사 난 이도가 높은 건물은 아니었다.
공사업체는 잔여 자재 회수를 완료한 끝에 모두 철수했다.
"나도 몇 번 사옥 건축을 해봤지만 이렇게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업체는 처음 봤어. 하 사장, 자네가 어지간히 좋은 대우를 해주나 보군."
"인간적으로 제가 남들보다는 잘대해주는 편입니다."
"인간적? 건설업자들이 겨우 그런 걸로 이렇게 꼼꼼하게……."
"돈 문제를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거든요."
"아하."
"물론 그만큼 제대로 일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페널티도 확실하게 인지를 시켜주고요."
하수영은 트레일러칸을 열어서 부지런히 농사 로봇들을 하역했고, 최우석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구경했다.
"저게 다 농기계라고? 꼭 무슨 로봇처럼 생겼는데?"
"로봇 맞습니다."
"허어, 요즘에는 농사도 사람 손으로 안 하고 다 로봇이 직접 하는 건가?"
"네, 자동화 공정에서 로봇이 빠질 수 있나요. 이거 다 비싼 돈 주고 부품 사와서 만든 것들입니다."
"얼마인데?"
"이거 하나가 10억이 넘습니다."
그 말에 최우석은 기겁을 했다.
"아니, 이 작은 게 10억이 넘는다고? 그럼 이걸 다 합치면 대체 돈이 얼마인가?"
"100억은 넘죠."
"아니, 이렇게 해서 농사지으면 남는 게 있기는 한 건가?"
"그래도 다 남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부품 구매값만 따졌을 때 이야기다.
하수영이 직접 조립 및 제작을 하고, 소프트웨어 설치까지 마친 것을 고려하면, 실제 시장에서는 그 몇 배의 가격으로 팔아야 할 것이다.
하수영은 부지런히 테라리움 2호기 세팅 작업에 매달렸다.
최우석은 졸음까지 참아가면서 구경하다가 저녁 9시가 되자 안 되겠는지 서울에 전화했다.
"아들이 거의 다 왔다는군. 난 졸려서 먼저 가니 하 대표, 너무 무리하지 말게나."
"네, 한옥에서 주무실 거죠?"
"그래야지."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약 1시간 후, 아들이 차량을 타고 내려와서 최우석을 모시고 서울로 귀가했다.
다음 날 점심 즈음이 돼서야 하수영은 테라리움 2호기 세팅을 완전히 마칠 수 있었다.
"2호기는 송이버섯 재배 전용으로 운영하면 되겠지."
1호기에서는 80% 이상 황비버섯을 재배한다.
나머지 20%는 수영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엘릭서 고춧가루 및 밀가 루, 가끔 재배하는 송이와 골든 트러플이 차지한다.
2호기는 마케미야, JM식품과 함께 하는 건강보조식품에 들어갈 송이버섯 원재료를 전담으로 생산하게 될 것이다.
하수영은 농장 자동화 가동을 시작한 뒤 서울로 향했다.
"네, 마케미야 대표님. 하수영입니다. 테라리움 2호기 가동했으니 곧 송이버섯을 생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건강식품 사업도 곧바로 런칭하도록 하겠습니다.송이만 잘 공급해주면 됩니다.
하수영은 통화를 하면서, 오늘 서울에 올라가서 체크해야 할 일들을 점검했다.
-참, 하 대표. 그거 들었습니까?
석유수출국 기구에서 그간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던 감산 조치에 드디어 합의했습니다.
"네? 석유 생산을 감산한다고요?"
-축하합니다. 덕분에 프라임오일컴퍼니도 꽤 득을 보게 생겼군요.
'아니, 교수님. 나한테 왜 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