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224화 (224/1,270)

프랜차이즈 갓 224화

55장 증식하는 테라리움(4)

"미스터 지하크?"

하수영은 눈을 크게 뜨며 낙찰자를 살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점잖은 인상의 아랍계 중년 남성의 얼굴을 확인하자 가벼운 신음이 나왔다.

"아니,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아시는 분입니까?"

"네, 아는 분을 모시는 직원입니다. 근데 저분이 여기에 올 이유가 없는…… 아, 혹시?"

보아하니 경매장에 모인 이들 중 대부분은 지하크가 누구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생선 한 마리에 10억 엔이라는 막대한 낙찰금을 낸 이가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지하크를 향해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미스터 지하크,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지하크는 하수영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설마 지하크를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사실 요즘 왕자님이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토양 연구에 몰두하고 계셔서요. 제가 걱정이 많습니다."

"……."

"측근으로서 안쓰러워서 왕자님이 기운을 내실 만한 음식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무공해 프리미엄 참다랑어 경매가 일본에서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저런…… 그랬군요. 왕자님이 기운을 내셔야 할 텐데."

"너무 연구에 몰입하시면 저렇게 식사하시는 것도 잊은 채 밤낮으로 몰두하십니다. 아직 젊으시긴 하지만 그래도 젊으실 때 건강을 챙겨놔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미스터 지하크가 이렇게 열성으로 챙겨주니 좋은 성과가 있으실 겁니다."

하수영은 참다랑어 옆에 걸린, 특별히 주문제작한 칼을 가리키며 물었다.

"해체를 해드릴까요?"

"아닙니다. 원형 그대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해체는 왕자님 앞에서 직접 할 겁니다."

지하크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회장님께 해체쇼를 한 번 부탁드리고 싶긴 합니다."

"그럼 제가 가서 해드릴게요."

"너무 시간을 뺏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왕자님께서 회장님을 상당히 각별하게 생각하십니다. 이런 식으로 번거롭게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겁니다."

"교수님이 제게 그동안 해주신 게 있는데요. 전혀 번거롭지 않아요. 해드리겠습니다."

낙찰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 도우야초밥 코지마 회장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니까 보양식으로 먹으려고 낙찰을 받은 거다?"

"……네, 그렇다고 합니다."

"보양식 한 끼 먹자고 10억 엔을 쓴단 말이야?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국제자원투자회사 오너라고 하던데요. LA다저스 구단주라고 하네요."

"국제자원투자회사? 그게 뭐하는 회사인데?"

"전 세계 석유 시장을 꽉 잡고 있는 UAE 회사라고 합니다. 기업가치가 4조 달러라고……."

"4, 4조 달러라고?"

"네, 심지어 상장도 되지 않은 회사라서 100% 오너가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4조 달러라는 말에 코지마는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하수영과 웃고 떠드는 지하크를 보고,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 정도면 보양식 한 끼에 10억엔을 쓸 만하네……."

원래 도우야초밥은 무조건 참치를 낙찰받아야 했다.

그래야 큰돈과 인맥을 들여 준비한 이번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낙찰에서는 실패했지만, 이 벤트에서는 오히려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도우야초밥, 중금속 중독 우려 없는 무공해 양식 참치를 선보이다!]

[일본 전 지점에서 무공해 참치를 별도의 메뉴로 내놓을 예정!]

[10억 엔짜리 참치, 도우야초밥에 상륙하다!]

지하크가 호쾌하게 10억 엔을 써준 덕분에, 오히려 일본 소비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긁어모을 수 있었다.

"10억 엔? 참치 한 마리에 10억엔이라고?"

"겨우 50kg짜리가?"

"천 마리에 한 마리 나올까 말까한 프리미엄 참치라고 들었어. 물론 다른 999마리도 중금속 중독 염려가 전혀 없대."

"도우야초밥에서 앞으로 그런 참치를 쓴다는 말이지?"

"수량이 부족해서 모든 참치를 무공해로 쓰는 건 아니고, 무공해 참치 메뉴를 따로 내놓을 건가 봐."

낙찰 실패로 낙심했던 코지마 회장은 도우야초밥에 쏟아지는 관심에 기뻐했다.

"참치는 못 샀지만 관심은 샀군 그래."

10억 엔이라는 돈은 도우야초밥의 브랜드 노출 효과를 폭발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코지마는 행사가 끝나기 전, 하수영과 따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젊으시군요."

"저희 무공해 참치를 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양식장 확장이 이뤄지면 귀사가 필요로 하는 충분한 양의 참치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 프리미엄 참치 경매가 열리면 저희에게도 연락 주십시오."

"네, 물론입니다."

"다음에도 10억 엔에 낙찰이 되지는 않겠지요?"

"오늘은 첫 경매라는 대이벤트였으니까요. 다음 경매부터는 합리적인 가격에 낙찰되지 않을까요?"

"부디 미스터 지하크가 그때에는 경매에 참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수영은 이선주하고도 인사를 나눴다.

일본 정·재계 인사들 중에서 몇몇이 관심을 가지고 만나보고 싶어 했지만, 하수영은 그 전에 자리를 피했다.

"필요 없는 인연에 굳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

* * *

지하크는 낙찰받은 참다랑어를 소중히 챙겨서 하수영의 본가 뒤뜰로 복귀했다.

하수영도 지하크와 함께 간만에 본가 뒤뜰을 찾았다.

안살린이 세운 주둔연구소는 이제 거의 요새화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자님이 연구를 모두 마치고 철수할 때에는 모두 원상복귀 해놓을 겁니다."

"그냥 이대로 두고 가셔도 되는데요. 뭔가 주요기지 같아서 멋있고 마음에 들어요."

"아, 그럴까요?"

안살린은 확실히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먹는 것도 잊은 채 연구에만 정신없이 몰입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이전보다 선명하고 또렷했다.

"성과가 있었습니다."

"네? 정말요?"

하수영은 뜨끔했다.

설마 이 세기의 천재 지질학자가 토양에서 엘릭서를 추출해 내기라도한 것은?

"아, 미지의 성분을 직접 검출한 것은 아니고, 하지만 현대기술로는 검출하지 못하는 미지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확인했죠."

안살린은 열의를 띤 채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 미지의 성분을 찾아내진 못했어요. 하지만 성분 역학조사를 하다가 새로운 종자를 만들었습니다. 기존 종자보다 병충해에 강하고 튼튼하며, 더 많은 생산량을 기대할 수 있는 종자입니다."

"오, 정말입니까?"

"아무래도 토양 성분을 조사하던 중에 우연히 종자가 개량된 거 같은데. 아무튼 조금이나마 성과가 있어서 기쁩니다."

"어떤 식물인가요?"

"아, 콩입니다."

그간 자신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안살린의 표정은 더없이 빛났다.

하수영도 그의 이야기를 성의를 갖고 들어주었다.

"이 땅에는 미지의 힘이 있어요. 그 기운이 자생하는 식물들을 강화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골든 트러플이 자생할 수 없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잘 자란 것도 그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예전에 그 비슷한 말씀을 하셨었죠."

"오, 아버지도 이 땅의 비밀을 알고 계셨나요?"

"대충은요. 하지만 아버지는 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세속적인 이익이나 호기심에는 시큰둥했죠."

하수영은 어느덧 참다랑어를 놓고 해체용 칼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안살린은 물론이고 지하크 등 측근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해체쇼를 지켜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제가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것에만 열중하신 분이셨거든요."

"가업이 무엇인가요?"

"임대업입니다."

"아, 임대업. 좋은 비즈니스죠."

하수영의 대답에 탄성을 내는 안살린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해 보였다.

"네, 아버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죠. 자기 소유의 빌딩에서 자기가 직접 기른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파는 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다고요."

"그 말씀에서 부친 되시는 분의 인품이 느껴집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뵙고 싶군요."

"먼 여행을 떠나신 터라 저도 언제 뵐지 장담을 못 하겠네요. 워낙 나그네 같은 분이셔서요."

하수영은 왼손으로 참치의 꼬리를 쥔 채 허공으로 가볍게 던져 올렸다.

동시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칼이 허공에 쉴 새 없이 빛의 궤적을 그었다.

도마 위에 풀썩 떨어진 참치는 깔끔하게 등분되었다.

"오! 대단합니다."

단칼에 참치를 해체한 것을 보고 안살린이 놀라워하며 박수를 쳤다.

"그것도 부친께 배운 기술입니까?"

"네, 맞습니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말이다.

하지만 하수영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태연히 아버지의 이름을 팔았다.

"왕자님, 어서 드시지요. 요즘 너무 식사를 안 하셔서 얼굴이 많이 수척해지셨습니다. 국왕 폐하께서 지금 이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지."

지하크는 아기 새를 챙기는 어미새처럼 안살린의 식사를 일일이 챙겼다.

붉은 살점을 한 조각 입에 넣은 안살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 맛은?"

"어떠십니까, 왕자님."

"아주 맛이 좋아.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생선보다도 맛이 있어."

"하수영 회장님의 양식장에서도 천마리에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한 프리미엄 등급이라고 합니다. 하마터면 일본 초밥 프랜차이즈에 뺏길 뻔했지만, 그래도 경매에서 가까스로 이긴 덕분에 챙겨올 수 있었습니다."

"고맙네, 지하크. 역시 자네뿐이야."

하수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한 방에 10배를 불러서 상대를 격침시켰으면서 무슨 가까스로 이겼다고…… 하여간 지하크 저 양반도 웃기다니까.'

원화로 100억 원에 달하는 비싼참치다.

청담동 빌딩 한 채를 썰어서 뱃속에 넣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안살린은 기꺼이 자기 측근들과 음식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그런 소탈한 모습에서 안살린의 인간다운 면모, 그리고 인격을 알 수 있었다.

"실은 이번 주에 잠깐 미국에 들어갈까 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이곳 가져올 수 없는 조사설비가 있습니다. 여기서 토양 샘플만 보내는 수도 있지만, 제가 직접 현장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오래 머무르실 건가요?"

"길면 두 달 정도? 설비 활용이 끝나면 다시 들어올 겁니다."

"교수님이라면 얼마를 들이든 간에 그 설비를 한국에 가져오실 것 같았는데."

"연구소를 통째로 파올 수는 없으니까요."

하수영과 안살린은 어느덧 술까지 꺼내서 대작을 시작했다.

안살린은 의외로 술을 아주 잘했다.

"아부다비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지 않나요?"

"오래되고 낡은 계율에 모든 걸 바칠 마음은 없습니다."

안살린은 희미한 냉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사업, 그리고 생활터전은 아부다비를 떠난 지 오래라고 들었다.

막말로 언제 어느 때 아부다비에서 추방을 당해도 그는 아쉬울 게 없다. 오히려 왕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매달리겠지.

그는 4조 달러가 넘는 기업을 단독으로 보유한, 세계 제일의 부자이니까.

"참, 그런데 한국 정유 시장을 차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수영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아뇨, 그런 거 절대로 없습니다."

"너무 그렇게 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 토양을 연구하게 해주시는 대가로 제가 한국 정유 시장을 드린다고 약속했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진짜 괜찮다니까요. 지금 프라임오일컴퍼니 아주 잘나갑니다."

"원유 무상 공급만으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존 한국 정유사들의 견제가 강한 모양입니다."

"충분합니다. 충분하다고요."

"지하크."

"네, 왕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이런 좋은 참치를 대접받았으니, 우리도 답례를 해야지."

"교수님? 이거 돈 받고 판 건데요?"

"사양하실 거 없습니다. 지하크가 한국 경쟁사들의 견제를 물리쳐 드릴 겁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