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22화
55장 증식하는 테라리움(2)
정재민은 하수영과 정식으로 3자 미팅을 갖기로 했다.
그의 입장에서 하수영을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매일 말만 듣기만 했지.
"당신, 좀 긴장한 거 같아요."
와이프의 말에 정재민은 옷매무시를 살피며 대답했다.
"그래도 딸년을 맡겨놓은 입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나 봐."
"맡겨놓긴 뭘 맡겨 놔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시집이라도 보낸 줄."
"어쨌든 간에 프라임 그룹이 요새 잘 나가잖아. 매출 규모로만 보면 아마 우리 회사보다 우위일걸?"
"에이, 그래 봐야 거기는 라면 하나만 팔잖아요."
"듣자니 이번에 레스토랑, 참치 프랜차이즈도 하고 있던데. 그거 다 합치면 상당할걸."
"그래도 엄한 생각 말아요. 진석이 아니면 난 우리 서희 줄 마음 없으니까."
"알았어, 알았어."
정작 정서희가 정진석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게 흠이지만.
3자 미팅은 정재민의 집에서 갖기로 했다.
셋 모두 중간에 이동하지 않고 편히 시간을 보내는 걸 선호했기 때문이다.
약속 시각이 되자 마케미야가 하수영과 함께 저택에 도착했다.
"반갑습니다. 하수영입니다."
"JM식품 대표이사 정재민입니다. 어서 와요."
악수를 나누면서, 정재민은 하수영을 몰래 이리저리 살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한 인상이다.
특별히 웃음을 짓고 있지는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차분하게 유지되는 것 같다.
선해 보이지만 은연중에 단단한 기운이 풍기고 있다.
'천상 사업을 할 인상일세.'
JM식품은 현재 프라임컴퍼니에 기생하다시피 해서, 라면 사업부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아니, 라면사업에서는 프라임컴퍼니의 자회사나 다름없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건강보조식품 사업까지 같이하게 생겼다.
'서희랑 확 맺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자자, 먼저 계약부터 하고 한잔하든 말든 합시다."
변호사들이 미리 준비한 서류를 꺼냈다.
이미 사전에 내용 조율을 마친 터라, 굳이 더 논의를 할 필요는 없었다.
"JM식품은 식품생산설비를 제공하고, 마케미야트러스트는 자본금을, 그리고 우리 하수영 대표는 원재료를 공급한다는 내용입니다. 지분은하수영 대표와 마케미야트러스트가 각각 7:3의 비율로 갖습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JM식품은 지분 참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돈을 받고 식품을 만들어 준다.
일종의 외주 공장 같은 역할이다.
셋이 서명날인을 마치고 나자 마케미야는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각별한 인연으로 우리 셋이 뭉치게 됐습니다. 앞으로 서로 다 같이 잘해 봅시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마케미야 대표님."
"뭘요,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그런데 하 대표님, 송이버섯은 연간 얼마나 채집이 가능합니까? 저번에는 몇 달 만에 100톤이나 채집해서 우리 마케미야 대표한테 팔았다면서요."
"음…… 이제는 비밀을 밝혀도 되겠지요."
두 중년 남자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제가 파는 송이는 자연산이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서, 설마?"
"양식 송이입니다. 처음부터 제가 직접 키워서 팔았죠. 그래서 철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거고요."
"세상에……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양의 송이가 나는 산이라면 어마어마한 넓어야 할 텐데, 서락산은 사실 너무 작았어요."
마케미야는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는 얼굴로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대체 어떻게 송이버섯 양식에 성공한 겁니까? 내로라하는 식물학자들도 전혀 성공하지 못한 일인데."
"그러고 보니 하 대표님은 황비버섯 재배단가도 획기적으로 낮추는 재배법을 개발하셨죠. 농업 쪽으로 상당한 전문 지식이 있으신가 봅니다."
하수영은 덤덤하게 말했다.
"사실은 아버지가 주신 자산 덕분입니다."
"……아, 그랬군요."
"어쩐지, 아무리 하수영 대표가 대단해도 그 젊은 나이에 그 많은 것들을 이루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기여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주신 자산이 없었더라면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양식 송이버섯의 비밀을 알게 된 마케미야의 얼굴에 묘한 감정이 스쳤다.
'어쩌면 하 대표의 아버지라는 분이 개발한 양식법이 효능의 비밀일지도…….'
"물론 재배 비법은 세상에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유출될 우려가 없기 때문에 굳이 특허를 낼 필요도 없어요."
"동감합니다. 비법을 잘 지킬 수만 있다면 굳이 세상에 공개할 필요는 없죠."
"그럼 연간 어느 정도의 양을 생산할 수 있습니까?"
"제한은 없습니다. 생산량이 부족하다 싶으면 농지를 더 늘리고 설비를 투자하면 그만이죠. 안 그래도 지금 테라리움 2호기를 지으려고 준비 중입니다."
"테라리움 2호기?"
"아, 제가 실내농장을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시멘트벽과 유리 천장으로 만든 농장이거든요."
"아하, 그렇군요."
"테라리움 2호기는 송이버섯만 전용으로 재배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정재민의 와이프, 채설희가 준비한 요리를 하나둘씩 날아와서 차렸다.
"먼저 한국에서 런칭을 개시할 겁니다. 한국에는 프라임컴퍼니, JM식품이라는 기존 브랜드 영향력이 있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쉽게 붙잡을 수 있어요."
마케미야는 식사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자신의 구상을 늘어놓았다.
"한국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후, 곧바로 일본과 중국에서도 동시에 런칭을 시작할 겁니다. 마케팅비가 상당히 들겠죠. 지금으로써는 전체 마케팅 비용만 1억 달러 이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회사 자본금이 상당하겠네요."
"최소 1억 5,000만 달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듣고 있던 정재민이 혀를 내둘렀다.
"아니, 무슨 마케팅 비용이 1억 달러 넘게 들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도 포함한 거야."
"그래도 너무 과한 거 아니야? 1억 달러면 1,000억 원이라고, 아무리 마케팅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너무한데."
"비공식적인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한 거다. 특히 중국에서는 그런 게 필요해. 대대적으로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유통을 할 수가 없어."
하수영은 동감한다는 듯이 끄덕여 보였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중국 관시를 활용하려면 그 정도는 쏟아부어야죠."
"그리고 또……."
마케미야와 장재민은 송이 건강보조식품 사업을 어떻게 전개할지 다양한 비전을 늘어놓았다.
하수영은 주로 듣기만 했다.
특히 요리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는 둘과 달리, 하수영은 손을 쉬지 않고 음식을 집어 먹었다.
"혹시 안 드실 거면 제가 먹어도 될까요? 이런 건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는데."
"아니에요. 제가 금방 가져다 드릴 게요."
살짝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듯이 기다리던 채설희가 얼른 일어나서 새요리를 가져왔다.
그제야 마케미야와 정재민은 하수영 앞에 놓인,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들을 주목했다.
"식성이 대단하시군요."
"농사일 생각하다 보면 에너지 소모량이 많아서요. 많이 먹어둬야 버팁니다."
하수영은 이미 어림잡아 5인분 이상은 먹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아직 배부른 기색이보이지 않았다.
"많이 드세요."
채설희가 큼지막한 접시를 두 개 가져와서 바꿔주자, 하수영은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젓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네, 오늘 즐거웠습니다."
미팅을 마친 하수영은 캠핑카를 타고 돌아갔다. 술을 먹은 터라 운전은 정재민의 비서가 대신했다.
마케미야까지 배웅한 뒤 정재민은 채설희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갔다.
"여보, 난 그렇게 식성 좋은 청년은 처음 봐요."
"굉장히 점잖게 식사하길래 얼마 먹지도 않는 줄 알았어. 정신 차려 보니 접시 몇 개를 다 비웠던데."
"그게 더 좋죠. 복스럽게 먹는다는 게 말이 좋지, 사실 허겁지겁 먹는 거랑 뭐가 달라요? 먹는 듯 안 먹는 듯 점잖게, 그런데 저렇게 많이 먹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마음에 드나 봐."
"진석이만 아니었으면 우리 딸 주고 싶을 정도?"
정재민은 그 말에 피식 웃기만 했다.
***
마케미야가 본격적으로 건강식품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동안, 하수영은 테라리움 2호기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일전에 테라리움 1호기 공사를 맡았던 업체에 다시 한번 공사를 맡기기로 했다.
연락을 받은 공사업체 대표는 한달음에 찾아와 하수영 앞에서 머리를 깊이 숙였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튼튼하고 정확하게 짓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넵, 안 그래도 요즘 일감이 줄어서 여러모로 힘들었는데 이런 공사를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에 일하시는 거 보니까 잘하시더라고요."
"혹시 나중에 추가 확장 계획이 있으신지……."
"당장은 없지만 농사일이 잘 풀리면 3호기, 4호기로 늘릴 수 있겠죠. 상황은 긍정적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또 일감이 생길 수 있다는말?
업체는 잔뜩 기합이 들어가서 공사에 착수했다.
오후에는 주희도가 참치 일본 수출건을 들고 찾아왔다.
일본 프랜차이즈 초밥집과의 미팅이야기를 들은 하수영은 흔쾌히 말했다.
"수출하죠. 대신 당분간은 그쪽이 원하는 물량을 충분히 못 맞춰 줍니다."
"물론입니다. 수영오세안 브랜드를 띄우는 게 우선이니까요. 수출은 어디까지나 여유분에 한해서만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할까요?"
"네, 진행하세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프리미엄등급 참치를 확보하고 싶어 합니다."
"경매에 참가하라고 하면 되겠네요."
"첫 경매만큼은 일본에서 진행해 줬으면 한다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
하수영은 잠시 볼을 긁었고, 주희도는 얼른 설명을 이어 나갔다.
"나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도우야 초밥은 중금속 무공해 참치라는 이미지를 널리 홍보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참치 첫 경매만큼은 일본에서 진행하는 게 큰 무형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음……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향후 일본 수출을 생각하면, 지금 일본에 수영참치의 무공해 이미지를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도우야 초밥은 양쪽이 만족할 수 있는 제안을 던졌다.
"선물도 있습니다. 도우야 초밥은 매너입찰을 할 거라고 했습니다."
"매너입찰이요?"
"네, 저도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 매너입찰이라는 것이……."
"아아, 설명 안 해주셔도 됩니다. 그게 뭔지 저도 알아요."
하수영은 피식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첫 경매만큼은 일본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하죠. 장소 섭외는 당연히 도우야 초밥이 맡아주겠죠?"
"네, 특급호텔에서 귀빈들을 모시고 대대적인 홍보를 한다고 합니다. 지금 일본 정·재계 인사들도 무공해 참치에 상당히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우야 초밥이 과연 매너입찰을 할 수 있을까요? 주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도우야 참치는 단순히 프리미엄을 낙찰받는 것을 떠나서, 첫 경매 이 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입장입니다. 참치를 식자재가 아닌 중요한 홍보로 보겠죠. 큰돈을 부를 겁니다."
"다른 참가자분들도 돈이고 자존심이고 만만치 않은 분들이라…… 경매가 생각보다 재미있어지겠는데요?"
그리고 2주일 후, 첫 경매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