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18화
54장 건물주는 개발자(1)
아피나 갤러리.
서해그룹 오너 일가에서 운영하는 청담동 미술관이다.
수익 사업보다는 미술품 수집과 사교성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갤러리였다.
갤러리를 넘기라는 것도 아니고 갤러리가 쓰고 있는 빌딩을 넘겨달라는 것이기에, 이선주는 흔쾌히 받아 들였다.
"어차피 지금 갤러리 빌딩 크기로는 부족해서 5년 정도 후에는 새로 지을 계획이었어요."
"하긴, 서해그룹 갤러리가 운영하기에 아피나 건물은 너무 작은 편이죠."
이선주는 시세대로 정확히 500억원에 넘겼다.
중개사는 중간에 끼지 않고 다이렉트로 매매 거래를 했다.
빌딩 소유권을 넘기면서 동시에 아피나 갤러리와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부동산에 정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청담 부동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 외 지역 부동산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현금성 높고, 부자 동네라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청담만큼 투자하기 좋은 지역이 없죠."
"강남에 청담 말고 다른 곳도 투자할 만한 곳은 많을 텐데요."
"건물이 너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정신 사나워서요. 이번에는 그냥 한 지역에만 몰아넣으려구요."
"……이번에는?"
"아, 그렇잖습니까. 싱가폴, 대만, 홍콩, 워싱턴, 런던, 모스크바, 막 이렇게 여러 군데 흩어져 있으면 내가 어디에 뭘 사놨지 하고 까먹기 쉽습니다."
"그, 그건 그렇죠."
"하지만 1개 동에만 전부 몰빵하면 적어도 그럴 가능성은 없잖아요?"
이선주도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수영이 청담에 가진 부동산 가치만 대략 1조 원이 넘어간다는 것을.
심지어 JS칼텍스와 제휴를 맺은 프라임오일컴퍼니를 통해 국내 정유사업에도 진출했다.
그녀가 흔쾌히 아피나 갤러리 빌딩을 넘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작은 양보 몇 번으로 인연을 맺어두면 두고두고 도움이 될 사람이니까.
"그리고 프리미엄 무공해 참다랑어 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다음에 그 참치가 나오면 먼저 예약을 할 수 있을까요?"
"그건 곤란합니다. 프리미엄 참치를 찾는 분들이 여기저기 많아서요."
"돈은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경매에 참여하시는 게 어떨까요?"
"경매요?"
"네, 프리미엄 무공해 참다랑어가 나올 때마다 제가 직접 경매를 열어서 해체까지 해드리고 판매를 하려고 합니다. 그때 오셔서 낙찰받으시죠."
이선주도 저번에 프리미엄 참다랑어를 먹어봤었다.
그녀 역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미지의 맛을 접하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프리미엄 참치를 앞으로 어떻게든 확보하려고 생각 중이었는 데, 경매로 팔겠다니.
"여기저기서 원하시는 큰손들이 많아서요. 천 마리에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한 녀석이기도 하고, 그래서 앞으로는 경매로 팔려고 합니다."
"알았어요. 대신 꼭 연락 주세요."
"물론이죠."
이선주가 프리미엄 참치를 벼르는 것은 다름 아닌 뷔페 때문이었다.
뷔페에서 프리미엄 참치를 맛본 손님들은 SNS 등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서해호텔은 그런 분위기에 열심히 펌프질을 했고, 인터넷에서는 무공해 프리미엄 참치를 맛보기 위해서는 서해호텔 뷔페로 가야 하는 거라는 인식까지 퍼진 상황이었다.
'무공해 참치 알지? 수영오세안에서 파는 거.'
'알지, 왜 몰라. 근데 무공해 참치 중에서도 프리미엄 등급이 있다는 거 앎? 천 마리 중에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하는데 맛이 아주 기가 막히데.'
'그래?'
'근데 그 프리미엄은 수영오세안가맹점에서는 안 팔고 서해호텔 뷔페나 가야 먹을 수 있나 봐.'
'아니, 어째서? 수영오세안이 직접 양식장 운영하는 거 아니었어?'
'프리미엄은 일반 참치보다 열 배이상 비싸대. 그래서 가맹점에서는 팔기가 그런가 봐. 기껏 해체해서 내놨는데 하루 만에 다 못 팔면 손해잖아.'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SNS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때문에 이선주는 프리미엄 참치를 어떻게든 확보해서 뷔페의 위상을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이참에 라테호텔 뷔페에 살짝 밀린 위상을 다시 되찾을 생각이었다.
* * *
서해호텔 납품, 프리미엄 참치 해체쇼.
두 가지 이벤트 모두 수영참치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대로라면 수영참치가 국내에서 독보적인 참치로 자리 잡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간만에 얼굴을 보는 우형진 중개사는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맞이했다.
"축하드립니다, 하 사장님. 참치 장사가 아주 대박이라면서요?"
"아직까지는 잘 되고 있네요."
"정말이지 하 사장님은 손대는 것 마다 다 잘 풀리시는군요. 천부적으로 재물운을 타고 난 거 같습니다. 이번에 아피나 갤러리 빌딩도 구매하셨다고요?"
"네, 서해그룹에서 매입했습니다. 아, 갤러리는 그대로 세를 주기로 했어요."
"그러시겠죠. 사장님은 어디까지나 건물 수집이 목적이시니까요."
"뭐 좋은 매물 나온 거 있습니까?"
"요새는 매매 물건은 도통 나오질 않네요. 그래도 청담에 물건이 나온 다 치면 중개업자들이 일단 저한테 가져옵니다. 사장님이 청담에서 제일가는 큰손인 건 이미 업자들 사이에서 쫙 퍼져 있으니까요."
매물 나온 게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하수영은 통장 잔고를 떠올리며 입맛만 다셨다.
"돈이 있으면 뭐하니, 쓰지를 못하는데……."
"여유 자금이 있으신가요? 저번에 휴민트타워 매입하실 때 거의 다 털어 넣으신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현찰로 2조 조금 안 되게 갖고 있습니다. 1조 8,000억 정도 되네요."
"네? 뭐라고요?"
우형신은 눈이 튀어져 나올 듯이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 고작 팔천억짜리 하나 사실 때에도 여기저기서 돈 끌어모은다고 그리 고생하셨잖아요."
"네, 그랬죠."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하루아침에 1조 8,000억 원이 생길수가 있는 거죠?"
설마 가진 모든 빌딩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그런데 그런 금액을 애초에 빌려주기나 하나?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고, 아무튼 이제 실탄이 모자라서 빌딩 못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매물 나오는 대로 몽땅 가져오세요."
프리덤 유료서비스 덕분에 이제 매달 1조 원이 넘는 돈이 통장에 꽂힌다.
부가가치세, 데이터센터 유지비용, 실비아컴퍼니의 몫 등을 일체 제외한 하수영의 몫이다.
물론 여기서 다시 27%가 넘는 금액이 법인소득세로(프라임유통컴퍼니 명의로 받았다) 나중에 빠져나가겠지만…….
"라면과 참치 장사가 정말 잘되시는가 봅니다."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라면이랑 참치만 팔아서 이런 돈 만지기는 힘들어요. 그냥 현실과 좀 타협을 했어요."
"타협이요?"
"네,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느 정도 타협은 피할 수 없더라고요. 하이 테크놀로지 쪽은 가급적 손을 안 데려고 했는데……."
타협.
프리덤을 개인비서 AI로 제공하기로 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빌딩 수집 자금이 모자랐다는 게 주된 이유는 아니었지만…….
'딱 프리덤까지만 하는 거야.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안 돼.'
잘못하다가는 또다시 어어 하는 사이에 지구의 패권을 놓고 세상과 다투는 혼전에 뛰어들어야 할 테니까.
'잊지 말자, 하수영. 너의 이번 생의 목적은 힐링 라이프라고.'
"아, 그리고 최동주 그 자식 말인데요. 지금 동남아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용케 잘 튀었네요."
"네, 초기에 돈 꺼내자마자 바로 해외로 튀었으니까요. 아직까지도안 잡힌 거 보며 용하긴 용합니다."
최동주.
청담동 큰손들이 모여서 1조 원이 넘는 아트락 부지를 공동매입하려고 할 때, 투자금 전액을 들고 튄 인물이다.
당시 하수영도 5억 원을 날렸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닐 만큼 피해 규모가 엄청났다.
"피해 보신 큰손들이 지금 정부와 외교부에 압박을 넣어서 강제송환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돈이 과연 남아 있을지……."
우형신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이미 세탁 다 마쳤겠죠. 국내로 송환된다 해도 한 3년 정도 살고 나오면 평생 용돈 걱정은 안 하고 살 것 같아서 제가 다 분합니다."
"그게 분하세요?"
"네, 제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 때문에 하 사장님도 5억 날리셨잖아요. 다행히 하 사장님 촉이 워낙 좋으셔서 그때 5억밖에 안 넣으신 게 정말 천운이었습니다."
"5억밖에라……."
하수영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다가 목소리를 깔며 물었다.
"그 사람이 들고 튄 돈, 왜 세탁은닉 작업을 잘 마쳤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네?"
"거기에 제 돈이 들어갔습니다. 제 돈 5억을 그런 식으로 떼먹었으면 그 사람, 남은 재물운이 완전히 부정 탔을 겁니다. 지금쯤 슬슬 쪽박을 차고 한강 수온이나 체크하고 있을 거 같은데요."
"……?"
우형신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수영이 사기꾼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재물운이 워낙 강하신 분인 건 이제 나도 알겠지만…….'
그렇다고 하수영의 돈에 부정하게 손을 댔다고 해서 패가망신을 한다고?
'그러고 보니 처음 사기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도 저런 식으로 말씀하셨지.'
너무 저렇게 자신감을 보이니, 왠지 그의 말대로 될 거 같은 예감마저 든다.
"아, 그리고 휴민트타워 공실 말인데요."
"네, 제가 지금 부지런히 세입자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실톡 아시죠? 그거 만든 회사에서 휴민트타워에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아, 프리덤 서비스하는 그 회사요? 헐, 이제는 그런 회사하고도 인연을 트고 지내시는 겁니까?"
우형신은 실톡보다는 프리덤이라는 이름에 더 놀라며 감탄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작 프리덤의 원주인이 눈앞의 고객이라는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는지.
"네, 그러니 임대차 계약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도장만 찍으면 끝나게 잘 처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빈틈없이 처리하겠습니다."
휴민트타워.
바로 프리덤이 개인비서 AI로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빌딩의 공실을 모두 채워주겠다는 실비아컴퍼니의 유혹이 하수영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였으니.
어쩔 수 없다.
이번 생은 빌딩에 살고, 빌딩에 웃기로 결심을 세워뒀으니.
***
실비아컴퍼니는 청담동으로 아예 이사했다.
휴민트타워가 워낙 큰 데다가 공실 률도 50%에 육박하는 터라, 사원전체가 써도 사무실이 남아돌았기 때문이다.
물론 본사 주소지를 옮기지는 않았다.
서류상으로나마 판교 회사로 남아 있는 게 IT기업으로서 세제나 이런 저런 지원 정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장님, 근데 이것도 엄연히 위장전입 아닌가요? 경기도지사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뭐 어때. 어차피 세금은 경기도에 내잖아. 업무만 청담동 '집'에서 처리하는 거지. 이것도 '재택근무'의 일종 아니겠어?"
판교에 집을 얻은 직원들은 멀어진 거리 때문에 불만이었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직원들은 만족스러워했다.
입주 첫날, 직원들은 짐을 풀고 자리를 세팅하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입사한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이게 무슨 고생이냐. 그래도 판교에 집 구하기 전에 회사가 강남으로 이사 와서 다행이네."
30대 중반의 박서훈 대리는 데스크톱을 들고 나르다가 웬 청년이 사무실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청년은 보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카트를 끌고 있었다.
명패가 없는 걸 봐선 회사 직원이 아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임대인인데요. 오늘 입주하신다고 해서 떡이라도 돌릴까 해서 이렇게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임대인…… 네? 그, 그럼 여기 빌딩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