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15화
53장 소드마스터식 참치쇼(2)
손님들은 입을 떡 벌린 채, 하수영의 손끝에서 전혀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만큼 그가 방금 보여준 해체쇼는 충격적이었다.
가히 마술쇼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번개 같은 움직임이었다.
손님들뿐만 아니라 근처의 요리사들도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일식 총주방장 우지운이 받은 충격이 가장 컸다.
'남방 참다랑어를 셀 수 없이 많이 해체해 봤다고 하더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저런 신기나 마찬가지인 솜씨가, 겨우 많이 해체해 봤다고 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인가?
'믿을 수 없다.'
참치를 해체하는 솜씨가 전부가 아니었다.
큰 덩어리로 잘린 참치살을 먹기 좋게 잘게 썰어서 접시에 가지런하게 담는 손길.
어마어마한 재능과 뼈를 깎는 연습, 그리고 오랜 세월의 정진이 모두 겹쳐야 나올 수 있는 경지 아닌가.
하수영이 조용히 참치살을 올려놓자 손님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뷔페 접시를 하나씩 챙긴 손님들은 참치를 받아가기 위해 줄을 섰다.
"제가 한꺼번에 받아올 테니, 두분은 여기 앉아 계세요."
전성렬은 그렇게 두 여자를 위해 배려했다.
줄을 서서 참치살을 접시 가득 받아온 그는 원형 테이블의 중간에 놓았다.
"색깔이 굉장히 선명하네요."
장효주가 신기한 듯이 말하고는 젓가락을 뻗어 뱃살을 한 조각 집어서 입에 넣었다.
"어머."
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막 참치를 입에 넣은 정서희도 마찬가지로 눈이 휘둥그레진 채 전성렬을 돌아보았다.
"너무 맛있어요."
"그러게요. 이거 진짜 맛있네."
"부드럽고 달콤하고…… 아, 뭐라고 말을 못 하겠네요."
셋은 감탄을 거듭하며 정신없이 참치를 먹었다.
순식간에 큰 접시에 담긴 뱃살이 모두 사라졌다.
"내가 원래 참치는 한 다섯 점 정도 먹으면 질리는 사람인데, 이건 그런 게 전혀 없네요."
"저도요. 보통 세 점 정도 먹으면 질리는데 이건 전혀 안 질려요. 하루 종일도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전 원래 참치회 엄청 좋아하는데 이 참치는 제가 지금까지 먹었던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특별하네요."
여배우 장효주마저 진심 어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 반응은 다른 테이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와, 너무 맛있다."
"원래 참치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내가 알던 맛이랑은 너무 다른데?"
"생참치를 바로 해체해서 이렇게 맛이 좋은 게 아닐까?"
"그럴 리가. 즉석 해체 참치회는 나도 일본에서 여러 번 먹어봤는데, 절대로 이런 맛은 아니었어."
여기저기서 참치가 맛있다는 찬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뷔페 코너 어디를 둘러봐도, 하수영 앞처럼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선곳은 없었다.
우지운은 혹시 도울 일이 없을까 해서 기웃거렸지만, 하수영은 능숙한 칼놀림으로 참치살을 잘라서 올리고 있었다.
손님들이 잔뜩 줄을 서 있지만, 하수영은 막힘없이 회를 내놓고 있었다.
'장인 그 자체의 솜씨다.'
우지운은 속으로 거듭 감탄했다.
평범한 요리 명인이 아니었다. 대형 뷔페에서도 오랫동안 수행을 쌓아온 사람의 솜씨가 틀림없었다.
'저렇게 젊어 보이는데 대체 어디서 저런 경험을…… 얼마나 동안인 거지?'
언뜻 보기에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선주 사장과 겸상을 하는 점, 수영참치 오너, 그리고 요리 솜씨를 볼 때, 절대로 이십 대는 아닐 것이다.
'30대라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솜씨인데.'
2시간이 채 안 되는 1부 타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이제 50분 간의 브레이크 타임 동안, 곧 이어질 뷔페 2부 타임을 준비해야 했다.
손님들이 빠져나가자마자 요리사들이 참치 코너로 우르르 몰려왔다.
"이거 한 입만 먹어봐도 됩니까?"
"손님들 반응이 워낙 심상치 않아서요. 너무 궁금한데 딱 한 입만 먹어봐도 될까요?"
"그러세요."
하수영은 흔쾌히 요리사들이 먹을 수 있도록 참치를 잘라서 접시에 올려 주었다.
저마다 한 조각씩 참치살을 입에 넣은 요리사들은 눈을 크게 뜬 채 놀라워했다.
우지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맛이 나는 참치가 있다고?'
최고급 참치살은 분명히 맞다.
하지만 우지운이 알던 기존의 참치와는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었다.
아마 손님들이 정신없이 몰려든 이유도 바로 이 특이점 때문이 아닐까.
우지운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제가 알던 참치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른데요. 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는 겁니까?"
"무공해 요법으로 키워진 참치라서 그렇습니다. 보통 참치가 커피라면, 우리 양식장에서 키운 수영참치는 T.O.P라고 할 수 있죠."
"티오피 참치……."
"사실 오늘 가져온 참치들은 양식 장에서도 특별히 가장 좋은 놈으로 골라서 가져온 겁니다. 원래라면 경매에나 내놔야 할 최상품이죠."
칼에 엘릭서 약간을 묻혀서 손질을 한 참치다. 당연히 중독성 있는 맛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
다른 무공해 참치에서는 이런 맛이 안 나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열 배 이상의 가격은 받아야 하는 프리미엄 참치입니다. 우리 양식장에서도 천 마리 중에서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최상품이에요."
"그렇군요. 프리미엄 참치라……."
"오늘은 제가 오픈 기념 일일 요리사로 나선 날이니만큼, 프리미엄 참치를 공개한 겁니다."
다들 홀 내부를 정비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하수영은 자신의 칼만 정리한 채, 주방일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도 누구 하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가 뷔페 잡일에서 손을 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잠시 한쪽이 어수선해졌다.
"아! 사장님 오십니다!"
"사장님 오십니다!"
직원들은 급히 자기들끼리 낮게 전달했다.
호텔 오너 이선주가 임직원들 몇을 거느린 채 홀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는 하수영 앞까지 곧바로 다가왔다.
"오늘 정말 놀랐어요. 하 대표님께 그런 멋진 솜씨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전 여자 친구들이 참치를 워낙 좋아해서요. 그래서 참치 좀 썰어주다보니 실력이 늘더군요."
"어머, 멋진 로맨티스트셨네요."
이선주는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사람 시켜서 몰래 가져다가 살짝 먹어봤는데, 정말 놀라운 맛이 더군요. 프리미엄 참치라고 하셨나요? 총주방장한테 들었어요."
"네, 우리 양식장에서도 최고로 쳐주는 참치죠."
"원래는 열 배는 더 받아야 하는 참치라면서요."
"그렇습니다만, 오늘은 참치 납품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기본값을 받고 드렸습니다."
"감사해요. 그나저나 매번 이런 참치만 공급받을 수 있다면 손님들이 참 좋아할 텐데."
"매번 안 나오니까 프리미엄인 거죠."
하수영을 잘 모르는 임원들은 다소 신기하다는 눈으로 그를 힐끔거렸다.
겉보기에 평범한 청년처럼 보이는 그가 재벌 2세인 이선주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대단해 보였다.
'설마 우리 사장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오죽하면 몇몇 직원들과 요리사들은 그런 생각까지 품을 정도였다.
"수영레스토랑이 입점하는 대신 참치를 납품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셨지요."
"네, 그랬습니다."
"근데 그 반대인 거 같아요. 수영레스토랑 입점도, 참치 납품도 저희가 애초에 간청해서 받아야 하는 거였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게 마음에 걸리시면 나중에 따로 선물 하나 해주시면 됩니다."
"선물이라…… 마음 같아서는 뭐든 해드리고 싶은데 뭘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포장을 뜯고 나서야 알았다.
참치 납품은 서해호텔이 아니라, 하수영이 베푼 특혜로 봐야 한다는 것을.
서해호텔 입장에서는 수영라면과 수영참치라는 두 가지 선물을 한꺼번에 받은 것이다.
"그럼 제가 골라도 될까요?"
"저한테 받고 싶은 게 있으세요?"
이선주는 잘됐구나 싶어서 얼른 물었다.
하수영은 조금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아피나 갤러리입니다."
"아피나 갤러리요?"
이선주는 의아해서 반문했다.
아피나 갤러리는 서해그룹에서 운영하는 고급 갤러리였다.
값어치가 상당하긴 하지만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아피나 갤러리 빌딩이 워낙 탐이 나서 말입니다. 서해그룹이 그 갤러리는 매각할 일이 없다는 건 알지만……."
"갤러리 사업에도 관심이 많으셨나요?"
"갤러리 사업이 아니라 갤러리가 입주한 빌딩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게 서해그룹 소유 부동산이더군요."
이선주는 하수영이 청담에서 알아주는 부동산 큰손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는 지금 하수영이 무엇을 원하는지 퍼뜩 깨달았다.
"알았어요. 갤러리 사업이 아니라 그 빌딩에만 관심이 있다는 거죠?"
"네, 아주 멋진 빌딩이더군요."
"가격만 잘 쳐주신다면 빌딩을 매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대신 갤러리 사업은 그 자리에서 지금처럼 지속하고요. 어떤가요?"
"그럼요. 아피나 갤러리가 사업을 철수하면 그 빌딩이 가진 멋스러움이 대폭 줄어들잖습니까."
"이 자리에서 바로 확답을 드릴게요. 아피나 갤러리 빌딩 매각은 곧바로 추진할 거예요."
멀쩡한 빌딩을 팔고 세입자가 되어 임대료를 내게 생겼지만, 이선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룹 전체로 볼 때 그 임대료는 얼마 되지도 않는다.
빌딩을 타인에게 넘긴다 해도 사업에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송 상무, 들었죠? 아피나 빌딩은 저분에게 매각하고 갤러리는 임대차계약을 맺는 것으로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수행원들은 놀라운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청담 아피나 갤러리.
그 빌딩의 가치는 기준시세만 따져도 600억 원은 할 것이다.
그런데 무슨 중고 노트북을 거래하듯이 말 몇 마디로 뚝딱 거래가 이 뤄져 버리다니.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좀 유명한 요리사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자신들이 한참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
2부가 열렸다.
그사이 1부 손님들이 인스타그램등 SNS에서 잔뜩 홍보를 한 덕분에, 2부 손님들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킬레이션 요법으로 길러낸 중금속무공해 참치 중에서도 프리미엄 등급의 개체입니다. 남해 참치양식장에서 오늘 아침까지 살아 헤엄치던, 천 마리 중에 한 마리 나올까 말까한 최고급 품질을 자랑하는 참치입니다."
그렇게 소개를 한 하수영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RPG 게임에서 타락한 왕이나 쓸 법한 화려한 장식용 칼로 통참치를 해체했다.
2부 손님들은 화려한 해체쇼에 입을 틀어막으며 놀랐고, 차원을 넘어선 대단한 참치 맛에 젓가락을 경련하며 기뻐했다.
어떤 노인은 눈물을 쏟기도 했다.
"뱃살에서 푸른 바다의 풍경이 보이고 있어!"
아무튼 2부 타임도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뷔페 운영이 모두 끝나고 난 후, 하수영은 우지운을 비롯한 뷔페 요리사들에게 인사했다.
"청담에서 수영오세안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오늘은 참치 홍보를 위해 즉석 일일요리사로 나선 겁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가웠습니다."
"뭐? 일일 요리사라고?"
"아니, 저분 아부다비 힐튼 호텔에서 총주방장 하시다가 고향이 그리워서 아랍 왕자의 만류도 뿌리치고 서울로 귀향하신 분 아니었어?"
"저도 그렇게 들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