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214화 (214/1,270)

프랜차이즈 갓 214화

53장 소드마스터식 참치쇼(1)

호텔 오너와 겸상을 하는 사람.

일식매장 총주방장 우지운한테는 그 정도만 해도 고개를 숙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공해 청정 참치를 키우는 양식업자 아닌가.

'참치 해체 실력을 의심할 게 뭐가 있어.'

너무 젊은 나이가 다소 염려스러울 수 있겠으나, 우지운한테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공해 참치 양식업자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참치 해체쯤은 손가락 하나로도 해낼 수 있을 듯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우지운은 손수 하수영을 호텔 안으로 안내했다.

"서해호텔은 뷔페 횟감 코너를 일식 레스토랑에서 같이 운영하는 건가요?"

"직원들은 별도입니다. 하지만 퀄리티 관리를 위해 제가 뷔페 횟감코너를 겸직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 겸직이시구나."

"이 호텔에서만 일식 총주방장으로 10년 이상 일했습니다."

우지운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디너 타임인 오후 5시까지 남겨놓은 시간은 약 2시간, 뷔페 주방은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통참치 해체 이벤트는 참 오랜만에 하는 겁니다."

"우리 가게에서는 오픈일부터 매일하고 있어요."

"들었습니다. 저도 한 번 가봐야 하는데, 매장 오픈 시간에는 도저히 맞출 수가 없더군요."

우지운은 하수영에 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남부 지방 해역에 참치 양식장을 소유하고 있고, 청담에 참치 프랜차이즈 매장을 하나 갖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호텔 오너와 겸상을 하는 걸 보면 상당한 재력가일 것이다. 막연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젊은 나이를 고려하면 아마 재벌가방계일지도 모른다.

"빨리! 빨리! 곧 홀 오픈이야!"

"서둘러! 얼른 정리해!"

드디어 오픈 준비가 끝나고, 예약한 손님들이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차례차례 테이블에 앉기 시작했다.

통참치 해체쇼 이벤트가 있다는 걸 들어 알고 있는 손님들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런데 직원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어? 저기 저분, 여배우 장효주 아니에요?"

"그러네. 진짜 장효주야."

"와, 장효주가 우리 뷔페에 왔어."

회 코너에서 가장 가까운 원형 테이블에 장효주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50대로 보이는 신사 한 명과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장효주 못지않은 미모의 여자도 함께였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장효주를 알아본 손님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근데 같이 온 분들은 누구지?"

"서로 별로 친하지는 않은가 봐. 살짝 어색한 분위기인데?"

"일행이 아닌가?"

직원들은 물론이고 우지운마저 장효주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초대한 분들입니다."

"네?"

"지인 네 분한테 초대장 돌리고 자리 잡았거든요. 그런데 한 분은 안오실 모양이네요. 땅 파느라고 아직도 정신이 없으신가 봅니다."

다른 둘은 전성렬, 그리고 정서희였다.

오지 않은 한 명은 올해도 부지런하게 경기도 본가 뒷산을 파헤치느라 여념이 없는 안살린 구단주였다.

"잠시 인사 좀 하고 올게요."

하수영은 웃는 낯으로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직원들은 입만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저분, 장효주하고 아는 사이였어?"

"와, 대단하다. 대체 뭐 하는 사람 일까?"

"이거 참치 공급하는 회사 오너라고 하던데. 청담 수영참치 말이야."

"잠깐만, 그럼 수영라면 오너 아니야? 수영참치가 원래 수영라면에서 하는 사업이잖아."

"뭐? 두 회사가 같은 사람 거였어?"

직원들의 대화를 들은 우지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수영라면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요 근래 대한민국 배달음식 중 가장 핫한 이슈 아닌가.

그는 수영레스토랑을 방문한 적도, 수영라면을 먹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라면들이 얼마나 대단한 맛을 지니고 있는지는, 지인들에게서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잠깐, 대형 참치 해체를 셀 수도 없이 많이 해봤다며? 근데 라면 프랜차이즈를 먼저 시작했다고?'

테이블에서는 살짝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전성렬은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 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 셋은 어색할 이유가 없는 사이다.

장효주는 일 년에 20억 원을 받고 황비버섯라면 CF를 홍보하는 모델이었으며, 전성렬과 정서희는 황비버섯라면 제조회사 경영진이었으니까.

연예부 기자가 집요하게 달려들어서 물어보더라도 세 사람 사이에서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다.

'어색해, 어색해…….'

이 미묘한 불협화음은 다름이 아니라, 두 여자 사이에서 흐르는 것이었다.

'서로 대면하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군.'

그래도 연배가 있는데, 두 여자 사이에 흐르는 희미한 긴장감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프라임컴퍼니 부사장님이 이렇게 젊고 예쁘신 분인 줄은 미처 몰랐어요. 전 사장님하고 비슷한 이미지 일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장효주가 웃는 얼굴로 꺼낸 말에 정서희도 미소를 머금은 채 받았다.

"CF로만 보다가 실물을 보니까 훨씬 더 아름다우시네요. 혹시 나중에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막냇동생이 장효주 씨 지극한 팬이라서요. 이제 고등학생이지만요."

웃는 얼굴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지만, 전성렬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여자,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뭔지, 굳이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 분, 오셨습니까."

그때 흰색 조리사 복장을 완벽히 갖춰 입은 하수영이 테이블로 다가와서 인사했다.

누가 봐도 젊은 셰프가 VIP를 잠시 접대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였다.

장효주가 쿡 웃으며 말했다.

"어머, 수영 씨. 갑자기 그 복장은 또 뭐예요? 혹시 서해호텔도 인수하신 건가요?"

"그럴 리가요. 일일 요리사로 잠시 나온 겁니다."

"일일 요리사요?"

"네, 세 분을 초대한 것도 그래서 고요. 오늘 제가 썰어드리는 참치회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여긴 뷔페인데, 참치회만 먹을까요?"

"물론 다른 것도 자유로이 드시면 되죠."

제3자가 보기에도 둘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던 정서희가 살짝 끼어들었다.

"구단주님은 안 오신대요?"

"교수님은 토양 연구 때문에 바쁘신가 봐요. 뭔가 실마리를 찾았다나 뭐라나. 지하크 씨가 정중히 거절의사를 보내오셨습니다."

"사실 구단주님이 식사하시기에는 좀 그렇지. 경호 문제도 있고 말이야. 아무리 고급 뷔페여도 구단주님한테는 누추할 거 아닌가."

"구단주님?"

맥락을 모르는 장효주가 갸웃거리자 정서희가 살짝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저희 그룹에 여러모로 크게 투자하시는 중동 석유 재벌 되시는 분이에요. 다저스 구단주이셔서 구단주님이라고도 부르는 거예요."

"아아, 그래요?"

"작년에 우리 회사가 서해호텔에서 주최했던 골든 트러플 만찬에도 참석하셨거든요."

"……아, 그거요."

기세가 조금 밀린 듯 장효주의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았다.

연예계 종사자치고 그 엄청난 이벤트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국제적 유명인사들이 줄줄이 한데 모인 파티였으니까.

"그럼 아무쪼록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하수영은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돌아갔다.

아까부터 긴장한 채 바라보던 몇몇 손님 중 일부가 용기를 내어 다가왔다.

"장효주 씨 맞으시죠? 오랜 팬입니다. 괜찮으시면 사인 좀……."

"저도 사인 좀 부탁드려요."

사양 않고 몇 번 사인을 해주던 장효주는 잠시 후 하수영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해요, 오늘 사인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뷔페는 특별히 눈에 잘 띄는 곳에 임시 조리시설을 설치했다.

조리복을 입은 하수영이 두 손에 참치를 들고 들어서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조리용 마스크를 쓴 하수영은 조리 대 위에 참치를 내려놓은 후,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뷔페 한쪽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호텔 총지배인의 모습이 보인다.

하수영이 직접 참치 해체를 한다고 나섰다는 말에 불안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호텔 오너와 다이렉트로 거래를 하는 사람이 하겠다는 것을 감히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을 테니.

그저 실수 없이 잘 진행되기만을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이 참치는 천연 킬레이션 요법으로 기른 양식 참치라서 중금속 중독우려가 전혀 없습니다. 저희가 주식으로 먹는 쌀보다 더 안전합니다."

딱 그 한마디만 소개를 한 하수영은 조리대 아래에 있는 커다란 칼을 꺼냈다.

"엄마, 서리한이야!"

"조용히 못 해? 근데 서리한이 뭐니?"

"있어, 내가 하는 게임에 나오는 유명한 칼. 와, 진짜 똑같이 잘 만들었네."

하수영이 꺼낸 것은 길이 1미터에 달하는, 멋들어진 모습을 자랑하는 양손검이었다.

아무리 봐도 대형 어류를 해체하는 용도의 칼로는 보이 않는다.

벽의 한쪽을 멋들어지게 장식하기에 좋은 칼이다.

"설마 진짜 저걸로 참치를 해체하려는 건 아니겠지?"

"서해호텔이 처음으로 양식 참치 쓰는 거라고 재미난 이벤트를 준비했나 봐."

"근데 요리사 내 스타일인데? 여자 친구 있으려나?"

주변의 수군거림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수영은 뚫어져라 칼날을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하다가, 엘릭서가 든 병을 열어서 칼날에 한 방울 떨어뜨렸다.

반투명한 황금빛 액체가 매끄럽게 퍼지며, 순간적으로 칼날에서 희미한 빛이 발했다.

'서해호텔 뷔페 손님들의 입맛을 잡는다는 건, 대중 참치 프랜차이즈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미션이지.'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실력을 좀 꺼내기로 했다.

'주머니칼 하나로 참다랑어 블루드래곤을 단번에 해체했던 소드 마스터의 실력을 보여주지.'

하수영은 왼손으로 참치의 꼬리 부분을 잡고 높이 들어 올렸다.

오른손으로는 주문제작한 티타늄재질의 칼을 쥐었다.

"와, 저 큰 걸 어떻게 한 손으로 드는 거야?"

"팔뚝은 여리여리해 보이는데 힘이 완전 장사네. 생긴 거랑 완전히 달라."

"쉿, 이제 해체하려나 봐."

테이블에 앉아 참치 해체쇼를 기다리던 사람들.

참치 해체쇼에는 관심 없이 부지런히 접시에 음식을 덜던 사람들.

식기나 주류 등을 서빙하던 직원들.

가릴 것 없이 홀 내의 시선이 전부 이쪽을 향했다.

하수영은 참치를 허공으로 살짝 던지며, 회전력을 실었다.

참치는 등뼈를 축으로 삼아 수평으로 살며시 회전하며 허공으로 살짝 떠올랐다.

마치 시간이 천천히 가듯이, 한없이 느리게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번개처럼 하수영이 칼을 쥐고 허공을 재빠르게 그어댔다.

2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은빛 궤적이 눈에 비치지 않는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한 바퀴 가볍게 회전한 참치는 커다란 도마 위에, 본래 모습 그대로 살포시 떨어졌다.

"……뭐한 거야?"

"칼질을 한 거 같긴 했는데."

"너무 빨라서 제대로 못 봤어."

"칼날이 들어가지도 않은 거 같은데. 아니, 애초에 저런다고 참치살이 잘리기는 해?"

"무슨 장난 같은 건가?"

손님들의 반응을 확인한 하수영은 조용히 피식 웃으며 칼을 놓고 두 손을 뻗었다.

놀랍게도 손을 대자 참치살이 여러 덩이로 나뉘었다.

하수영은 도마 위에 참치 덩이를 차례차례 내려놓았고, 마침내 참치는 머리와 뼈, 꼬리만 남은 모습이 되었다.

"우, 우와아!"

"저게 뭐야? 아니, 참치가 그 잠깐 사이에 전부 해체된 거라고?"

"원래 해체되어 있었던 거 아니야?"

"그랬으면 아까 들고 왔을 때 이미 흩어져서 바닥에 다 떨어졌겠지."

"이거 무슨 마술이야? 해체쇼가 아니라 마술쇼인 거야?"

입을 떡 벌린 채 감탄하던 손님들 중 누군가가 정신없이 박수를 쳤다.

하수영은 손님들의 반응을 꿋꿋이 외면한 채, 일반 회칼로 바꿔주고 참치살을 얇게 썰어서 접시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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