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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13화 (213/1,270)

프랜차이즈 갓 213화

52장 주거니 받거니(4)

라면은 한국에서 무척 인기가 높은 음식이다.

그리고 수영라면은 그중에서도 정상급 브랜드의 위치를 누리고 있었다.

운동화 브랜드의 나이키 계열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너무 값이 비싼 나머지, 이름만 알고 선뜻 사 먹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평범한 가정집에 있어 한 그릇에 35,000짜리 고급 라면은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이니까.

아예 시도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1만 원짜리 다운그레이드버전이 배달음식으로 출시되자, 그동안 억눌려 있던 수요가 터져 나온 것이다.

"지금 술집에서 해장용으로 주문하는 것보다 일반 가정에서 주문하는 양이 9배 이상 많습니다."

주문량의 90% 이상이 일반 가정집에서 식사 용도로 주문한다는 뜻이다.

"솔직히 이건 저희로서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희가 수영라면 배달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술집에서도 배달시켜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문의사항들이 쌓인 것 때문이었으니까요."

배달드라이브 입장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셈.

하지만 어쨌거나 매출이 늘었으니 기뻐해야 할 일이다.

"아예 만 원짜리 수영라면만 본격적으로 따로 파는 것은 어떻습니까?

만 원짜리 배달 메뉴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매장들도 추가로 늘리고요."

김성춘 부대표가 주희도를 찾아온 목적이었다.

주희도는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것은 우리 프랜차이즈 본연의 정체성과 어긋납니다. 애초에 하수영 대표님이 추구하신 것은 값비싼 재료를 아끼지 않고 쓴 고급 라면을 파는 매장이었습니다."

"고급 라면 시장은 이제 점령했으니, 보급형 라면 시장도 점거하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김성춘은 정성을 다해 주희도를 설득했고, 결국 주희도는 한 발짝 물러났다.

"한 번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지금 잘만 푸시하면 수영라면이 배달업계에 한 획을 그을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될 수 있습니다. BBC 치킨처럼 말입니다. 아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죠."

"네, 저도 그건 압니다."

주희도는 미팅이 끝나고 곧바로 하수영을 찾았다.

-아, 그럼 집으로 오실래요? 마침 지금 집에 와 있는데.

"댁에 계시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주희도는 당연히 경기도에 있는 하수영의 본가를 생각했다.

일전에 가본 적 있는, 부친이 물려 주었다는 그 전망 좋고 커다란 전원주택.

-아, 지금 청담입니다. 매번 왔다 갔다 불편해서 청담에도 집 마련했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주소만 알려주시면 바로 가겠습니다."

-주소 보내드리죠.

하수영이 톡으로 보낸 주소를 확인한 주희도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곧바로 출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저 멀리 넓게 쳐진 담벼락을 본 순간 설마 하는 놀라움이 커졌다.

"이게 하 대표님 집이라고?"

그는 뺨을 찰싹 매만지고는 다시 담벼락을 살폈다.

거의 블록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담장이다.

청담에서 이 정도 집이라면 땅값만 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지금 지하주차장 문 열어드렸습니다. 들어오세요.

하수영한테 전화를 하자 기다렸다.

는 듯이 지하주차장 입구가 열렸다.

주희도는 살짝 넋이 빠진 채 주차장에 들어섰다.

넓은 주차장 안에는 그도 잘 알고 있는, 하수영의 흰색 캠핑트레일러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곧바로 1층응접실이 나왔고, 하수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 길 오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언제 이런 집을 마련하신 겁니까? 집이 너무 좋네요."

"어쩌다 보니 떠안게 됐어요."

주희도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커다란 발코니 창문을 통해서 넓은 정원이 시야 가득히 들어왔다.

청담에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큰 대저택이 있을 줄이야.

심지어 정원 한가운데에는 멋들어진 풍미를 자랑하는 한옥 별채까지 지어져 있었다.

"이 정도 저택이면 땅값만 해도 엄청나겠습니다."

"천이백 정도 했었나, 그랬을 겁니다."

아무렇지 않게 흘리는 듯한 말에 주희도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 뭐라고 했어? 천이백?

"천이백억이요?"

"네, 그 정도 했던 거 같아요."

"……세상에."

주희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순간적으로 만 원짜리 라면 배달업프랜차이즈 이야기를 하러 온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겨우 정신을 차린 그가 용건을 꺼냈다.

끝까지 자세히 듣고 난 하수영이 쾌활하게 말했다.

"그거 괜찮은 발상이네요. 안 그래도 요새 라면포장 하는데 바빠서 주방이 전쟁터였는데."

"예?"

"솔직히 우리 본점에서는 배달로는 남는 거 별로 없습니다. 비조리 상태로 한 번 더 포장하느라고 오히려 손만 더 가요. 포장 용기도 따로 관리해야 하고."

"아무래도 본점은 그럴 겁니다."

청담 본점을 찾는 이들은 한 그릇에 35,000이란 가격에 그다지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다.

동네 장사였으니까.

"만 원짜리 메뉴만 파는 가맹점이라…… 못 만들 것은 없는데 다른 가맹점하고 아무래도 형평성 논란이 생기지 않을까요?"

"지금의 상권은 그대로 유지시켜 주면서 추가로 가맹점을 모집하면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2km 밖에서 배달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영라면 배달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다.

모든 매장을 다 합쳐도 불과 20개도 되지 않으니까.

심지어 절반 이상의 매장이 강남지역에 몰려 있다.

"잠시만요. 식재료 공급 상황을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아요. 기껏 가맹점을 늘렸는데 식재료 조달이 안 되면 무의미하니까요."

"네."

"프리덤, 배달전문 가맹점을 몇 개나 더 늘리면 될까? 농장 생산성확인해서 계산해."

「수영라면 다운그레이드 메뉴를 배달만 한다고 가정할 때, 연간 5,000만 건의 주문량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 수요는 제외한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배달서비스를 연간 5,000만 건 정도는 늘려도 끄떡없다는 뜻이다.

주희도가 열의를 띠고 말했다.

"5,000만 건이면 매출로 5,000억입니다. 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겠죠."

"다만 이렇게 확실한 아이템을 굳이 가맹점들과 나눌 필요가 있나 싶네요. 전 직영점으로 운영했으면 합니다."

"관리가 되시겠어요?"

"매장 장사 없이 오로지 100% 배달만 하면 됩니다. 배달기사야 어차피 대행을 쓰면 되고요."

하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프랜차이즈 사업관리는 이미 전권을 드렸으니."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주희도는 자신만만했다.

***

주희도는 직영점 설립을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어차피 배달만 할 가게이기 때문에 넓은 홀 같은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또한 라면 메뉴 하나만 팔기 때문에 기본적인 조리 실력만 보장되면 충분했다.

주희도가 가장 크게 신경을 쓴 것은 위생이었다.

"홀 손님을 받지 않는 매장이기 때문에 위생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직영점을 맡아줄 요리사 및 직원을 모아놓고, 주희도는 몇 번이고 그 점을 신신당부했다.

주희도는 50개에 달하는 매장을 계약하고, 단숨에 배달전문 매장을 출범시켰다.

덕분에 기존 가맹점들은 수 ㎞밖에 서까지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에 더 이상 허덕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간 배달라면 포장 때문에 정작 홀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난감한 상황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배달주문을 한 손님들도 이제는 더 이상 1시간 이상씩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50개의 배달전문 직영점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시했고, 배달드라이브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사실을 널리 알리며 또 한 번 이벤트를 했다.

[미니수영라면, 배달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드립니다!]

[1시간 대기는 이제 NoNo.]

만 원짜리 메뉴에는 미니수영라면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정식 이름은 아니고 배달드라이브에서 주희도와 상의해서 붙인 호칭인데, 의외로 입에 착 감긴다며 인기를 끌었다.

배달드라이브는 이에 호응하듯 아예 메뉴 이름을 미니수영라면으로 바꿔 버리기까지 했다.

한 시간 이상씩 기다려야 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길어야 30분 이내로 배달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매출이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했다.

"차장님, 수영라면 주문 증가량 좀 보세요. 지금 장난 아니에요."

"긴 배달 시간에 지친 손님들이 본격적으로 몰려들고 있나 봐요. 갑자기 주문 터지고 있어요."

"이거 단일 브랜드 주문액으로는 이미 넘사벽인데요?"

"오늘 일일 주문액에서 수영라면이 10% 넘게 차지하고 있어요. 미니하고 오리지널 포함해서요."

"말도 안 돼. 라면 하나가 이렇게 팔린다고?"

놀랍게도 배달 주문 일일 매출의 10% 이상이 수영라면이었다.

배달음식 역사상 영원히 유일할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날이 지나도 매출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띄게 거듭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한 번은 일일 결제액의 19.5%까지 도달한 적도 있었다.

20%라는 미지의 벽을 깨지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경영진은 만사를 제쳐 두고 판매 그래프만 살피기도 했다.

"이거 술집에 해장용으로 배달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네."

"술집 배달은 이제 보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 매출도 무시 못 할 수준이긴 하지만, 가정집에서 주문하는 양이 엄청납니다."

"라면 하나에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할 줄이야……."

"이러다가 황비버섯라면을 수영라면이 능가하는 거 아닙니까?"

배달드라이브 직원들은 하수영이 황비버섯라면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때문에 그들은 인스턴트 라면과 배달 라면의 신흥 강자를 가리는 대결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고 괜히 들떠있었다.

***

수영라면 배달서비스가 요식업계에 소리 없는 충격을 주고 있는 동안, 수영오세안 참치횟집도 순조로운 바람을 타고 있었다.

일단 테이블이 비어 있는 때가 없었다.

자리는 항상 만석이었으며, 가게 앞에는 적어도 최소 5팀 이상이 항상 줄을 서 있었다.

국내 유일의 무공해 청정 참치라는 타이틀이 손님들의 발걸음을 끌어모은 것이다.

-여기저기서 가맹점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전화가 왔다 하면 전부 다 그 이야기입니다. 정작 손님들이 문의하는 일은 전혀 없어요.

가게를 양도하고 지금은 총지배인 역할을 하는 유태준은 요즘 부쩍 신이 나 있었다.

-하도 불필요한 전화가 많이 와서 요즘은 그냥 선을 뽑아놓고 있습니다.

"가게가 안정을 찾아서 다행입니다. 이제 제가 신경을 덜 써도 잘 굴러갈 것 같네요."

-참, 오늘 서해호텔에 가신다고 하셨던가요.

"안 그래도 이제 호텔 사람들 나오고 있어요. 이제 전화를 끊어야 할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정차 중인 차 안에서 기다리자, 이윽고 호텔 관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수영이 캠핑트레일러에서 내리자 수산트럭을 몰고 온 양식장 직원들도 따라서 내렸다.

서해호텔 일식매장 총주방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성큼 다가와서 참치부터 확인했다.

"이 녀석입니까? 오, 아주 실하군요."

"여기 식약처 인증서가 있습니다. 중금속 함유량이 무해한 수준이란 내용입니다."

하수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보여주었고, 일식 총주방장은 내용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때 하수영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주방장님, 오늘 뷔페에서 손님들 앞에서 한다는 참치 해체쇼 말인데요."

"네, 맞습니다. 혹시 구경하시겠어요?"

"아뇨, 그보다는 제가 해체를 해봐도 될까요?"

"허허, 그게 무슨…… 생참치 해체는 절대 쉬운 게 아닙니다. 광어 회뜨는 것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저에게도 뷔페 첫 손님들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특별한 구경거리를 안겨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자신 있어요. 이래 봬도 200kg이 넘는 남방 참다랑어를 셀 수도 없이 해체해본 경력이 있습니다."

"어,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허어……."

총주방장은 고민에 빠졌다가 문득 의아한 눈으로 하수영을 살폈다.

"그런데 어디서 한 번 뵌 듯한 얼굴인데…"

"아, 저번에 이선주 사장님이랑 같이 식사했을 때 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참치 납품 계약을 했었거든요."

"히익! 그, 그럼 하수영 사장님?"

그제야 기억을 해낸 총주방장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참치 해체는 뭐든 원하시는 대로 뭐든 하십시오! 삶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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