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212화 (212/1,270)

프랜차이즈 갓 212화

52장 주거니 받거니 (3)

"배달이라……."

하수영은 작게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죠. 요식업의 최종 테크트리는 바로 호텔 총주방장이 갓 만든 요리를 집에서 바로 받아볼 수 있는 환경이니."

"바로 그겁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배달에 한 발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그게 빨리 왔네요."

라면은 다른 음식들과 달리 배달이 힘들다.

조리하고 나서 바로 먹지 않으면 면발이 불어서 본연의 맛을 잃기 때문이다.

조리하고 배달원이 곧바로 음식을 들고 출발해도, 이미 면발은 불어 있고 맛은 변해 있다.

하수영은 이택진 셰프에게 전화를 넣어서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비조리 상태로 배달해서 직접 끓여 먹게 하더라도 맛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화력만 받쳐준다면 80% 정도까지 맛을 낼 순 있을 겁니다. 가정집화력으로는 힘들구요. 물론 일반 라면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35,000원이나 주고 먹을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하수영은 주희도를 향해 말했다.

"그럼 아예 가격을 다운시킬까요? 내용물 양을 좀 줄여서 만 원 정도로 다운시킬 순 있을 거 같은데."

"그럼 수영라면 본연의 퀄리티가 아니잖습니까. 취객들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버전을 내놓자는 거죠. 오리지널 버전, 다운그레이드 버전.

사실 서울의 모든 소비자들이 한 그릇에 35,000짜리 라면을 해장으로 탁탁 주문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강남구야 워낙 소비와 상권이 집중된 지역이니까 지금 품질과 가격을 유지해도 상관없지만, 서울 전 지역에 보급하려면 다운그레이드된 라면도 필요할 겁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주희도는 하수영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기뻐했다.

"그럼 내친김에 배달드라이브 측을 만나 보죠."

"알겠습니다. 바로 약속을 잡겠습니다."

배달드라이브.

자본금 89억 원의 배달업체로, 국내 배달주문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업계 1위 기업이다.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음식점의 99% 이상이 배달드라이브를 이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맹점이 아닌 음식점도 배달드라 이브의 배달대행서비스는 이용하기 때문이다.

미팅 장소는 배달드라이브 본사로잡았다.

"사내 분위기가 어떤지 한번 보고 싶어서요."

원래는 배달드라이브에서 이쪽으로 방문하려 했지만, 하수영이 그렇게 장소를 정했다.

당일, 하수영은 캠핑트레일러 퍼포먼스 차량을 타고 본사로 이동했다.

주희도는 그보다 먼저 출발해서 이미 도착한 상태라고 했다.

캠핑트레일러가 들어서자 주차관리 직원이 살짝 당황해서 뭐라 뭐라 외치는 게 보였다.

"오늘 방문 예약이 되어 있어요. 확인해 보세요."

하수영이 이름을 알려주자 주차 직원이 얼른 주차할 장소를 알려 주었다.

관광버스만 한 캠핑트레일러를 주차하기에 마땅한 주차칸은 당연히 없었다.

결국 주차칸 다수를 차지하며 차를 세운 뒤, 하수영은 차에서 내렸다.

근처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살짝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대형 캠핑트레일러는 좀처럼 보기 힘들기 때문이지, 차종을 알아본 것은 아닌 듯했다.

1층 안내데스크에 문의하자 여직원 한 명이 급히 일어나서 손수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상부에서 잘 모시라고 미리 단단히 주의를 준 모양이었다.

사장실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주희도가 두 명의 남자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하수영을 본 남자 둘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대표 차승진입니다."

"부대표 김성춘입니다."

"수영레스토랑 하수영입니다."

배달드라이브의 창립 멤버들은 소탈한 느낌의 40대로 보였다.

간단히 사담을 나눈 후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저희가 지금까지 배달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 모델을 추진해 왔습니다만, 이런 식의 수익 모델을 시도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뭐, 엄연한 음식점에 다른 음식점메뉴를 배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서 해장라면을 배달한다는 명분을 잡고 매장들을 설득해 보려고 합니다."

"일단은 먼저 강남3구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개시할까 합니다. 아무래도 수영라면이 가격이 있다 보니까요."

"그 점은 걱정할 거 없습니다. 10,000원으로 다운그레이드한 수영라면 메뉴를 따로 내놓을 거라서요. 35,000짜리와 10,000짜리를 병행해서 운영하려고요."

"오, 그렇지 않아도 그런 부탁을 드리려고 했는데 잘됐군요."

차승진은 기뻐했다.

합의는 어렵지 않았다.

수영레스토랑은 주문이 들어오면 라면을 비조리 상태로 포장하고, 배달드라이브 측에서 보낸 배달기사가 가져간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많은 수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보니 라면까지 배달하게 되는 세상이 왔네요."

수영레스토랑이야 라면을 만들어서 포장하고, 제값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하수영 입장으로서는 손해 볼 게 전혀 없었다.

매출이 더 늘어나는 일 아닌가.

협의를 마친 그들은 계약서가 나오는 대로 변호사의 검토를 받아 체결하기로 했다.

"좋은 빌딩이네요."

"얼마 전에 신축 매물 나온 걸 회사 명의로 샀습니다. 직원들이 특히 좋아하더군요."

"배달드라이브 기업 가치가 2조 5,000억 원이 넘는다더니, 요즘 배달 시장이 정말 커지긴 했나 봅니다."

"틈새를 잘 파고들었습니다."

"혹시 드론 배달은 구상하고 계신가요?"

하수영의 물음에 차승진과 김성춘은 살짝 당황했다.

"드론 배달이요?"

"네, 지금 드론 기술이 무섭게 발전하고 있잖아요. 일반 택배는 아직 무리일지 모르지만 배달음식 정도는 드론으로도 충분히 실어 나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드론 배달은 아직 기약이 없습니다. 갈 길이 멉니다."

"저도 나중에 드론으로 라면 배달하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귀사는 아직 그런 구상이 없나 보네요. 조금 아쉽습니다."

드론 배달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던 두 경영진은 하수영의 구상을 농담으로만 받아들였다.

"기술적으로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런 드론이라면 적어도 10억은 할 겁니다. 10억을 주고 배달라이더를 고용하는 셈인데, 그래서야 남는 게 전혀 없죠."

언제나 그렇듯 상용화는 기술 수준 보다는 이익이 관건이다.

"뭐, 음식 배달이 가능한 드론이 1,000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습니다만, 과연 그런 날이 언제나 올까요?"

"그리고 서울은 드론비행금지 구역입니다. 테러 위협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드론 배달이 가능해지려면 아마 먼 미래가 되어야 할 겁니다."

하수영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사실 저도 그게 가장 아쉽습니다. 도로에서 3, 4미터 고도제한으로 상업용 배달드론을 운영할 수 있게 해주면 테러 위협도 없고 좋은데 말이에요. 정치인 홈페이지에 몇 번 건의를 해봤는데 씨알도 안 먹히고 있어요."

***

수영레스토랑은 현재 다수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거느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강남 지역에 밀집돼 있다.

그리고 종로, 용산, 동대문, 여의도 등에도 1개씩 가맹점이 있었다.

이 정도면 최외각을 제외한 서울 중심권은 그럭저럭 배달을 커버할 수 있는 배치였다.

수영라면은 음주를 한 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음주 후 해장으로 수영라면을 먹고 나서 취침하면, 다음 날 술을 마시지 않은 것처럼 가뿐하기 때문이다.

"황비버섯이랑 이것저것 몸이 좋은 식재료를 많이 넣어서 그래."

"그래도 라면 한 그릇 먹었다고 술전혀 안 먹은 것처럼 몸이 가벼운게 말이 되나?"

"그건 네가 술 먹고 수영라면을 안먹어봐서 그래. 일단 한 번 먹어 봐. 이제 술집에 배달까지 된다잖아."

배달드라이브가 수영라면 배달을 전면적으로 시행하자, 먹자거리에는 한 가지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여기 수영라면 배달됩니까?"

"아니오, 그게 뭐죠?"

"야, 여기 수영라면 배달 안 된대. 다른 데 가서 먹자."

"손님?"

손님들이 기왕이면 수영라면이 배달되는 술집이나 고깃집을 찾아서 술을 먹게 된 것이다.

"여기 수영라면 배달됩니까?"

"네, 배달 돼요."

"야, 여기 앉자. 사장님, 여기 삼겹살 4인분하고 소주 한 병 주세요."

손님들이 해장으로 수영라면 배달을 찾기 시작하자, 술을 파는 음식 점이나 호프집들도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배달과는 상관없는 직종이라 배달드라이브에 가입하지 않은 가게는 서둘러 가입했다.

배달드라이브에 가입하면 옵션 활성화를 통해 간단하게 수영라면 배달이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처음 상당수 상인들은 자기 가게에서 다른 집 음식을 시켜먹는 것을 기분 나쁘게 여겼다.

"그래도 술 다 먹고 해장하려고 라면 먹는 거니까…… 어차피 우리 가게에서 라면 파는 것도 아니고."

"작긴 해도 돈을 나눠주고, 어차피 저 손님들 저거 먹고 이제 일어나는 거니까."

"수영라면 배달 안 된다고 하면 그냥 가는 손님들도 있어서 어쩔 수 없어. 테이블을 놀릴 순 없잖아."

상인들은 차츰차츰 그렇게 수영라면 배달을 받아들였다.

수영라면은 어디까지나 술을 주류로 파는 가게에 한해서 배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술을 전혀 팔지 않는 일반 음식점이나, 혹은 면류 음식 전문 가게에는 당연히 배달되지 않는다.

술을 먹은 손님들의 마지막 해장을 돕는다는 취지로 시작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뭐야? 만 원짜리도 있는데? 수영라면에 원래 만 원짜리 메뉴가 있었어?"

"아, 그거? 배달 전용 다운그레이 드 버전이야. 오리지널보다 버섯이나 다른 식재료가 많이 적어."

"맛은 어떤데?"

"맛은 비슷한데 아무래도 재료가 적어서 좀 허전한 면이 있지. 해장도 잘 안 돼. 저번에 싼 맛에 한 번 먹어봤는데 다음 날 숙취가 여전하더라고."

"그럼 오리지널 시켜야지."

"난 오리지널은 부담돼서 그냥 만원짜리로 시킬래."

손님들은 그렇게 자기 지갑 사정에 맞는 가격대를 골라서 주문하곤 했다.

하지만 주문 추세가 배달드라이브의 처음 예상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일반 가정집에서 시키는 주문량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허접한 배달음식 먹느니, 차라리 수영라면 만 원짜리 시켜 먹는 게 나아."

"만 원대 배달음식 중에서 감히 우위를 논하는 게 무의미하지."

그동안 35,000원이라는 가격에 억눌려 있던 소비가 폭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 원짜리 수영라면 메뉴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반 가정집배달주문이 쏟아져 나왔다.

만 원짜리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해도 수영라면은 맛과 포만감, 중독성이 강했기 때문이다.

해장이 아니라 집에서 시켜먹을 수 있는 배달음식으로 인기가 좋았다.

특히 혼자 사는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편이었다.

가정집 주문량이 폭발하는 바람에, 각 프랜차이즈 지점들은 홀에 내놓는 것보다 배달용 만 원짜리를 훨씬 더 많이 만드는, 우스운 현상도 벌어졌다.

결국 배달드라이브에서 주희도를 찾아왔다.

"대표님, 주문량이 이거 너무 엄청 난데요. 만 원짜리 메뉴 인기가 너무 폭발적입니다."

"네, 안 그래도 우리 오너께서 지금 주객이 전도됐다며 근심이 크십니다. 포장용 만드느라 바빠서 정작 홀 서비스가 소홀해지고 있다고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