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208화 (208/1,270)

프랜차이즈 갓 208화

51장 손이 큰 어부(4)

"10만참치대군을 양성한단 말씀입니까?"

-그래요, 마음 같아서는 100만, 1,000만 이상도 양성하고 싶습니다.

"헐……."

-그래서, 얼마나 더 필요할 것 같습니까?

박영식은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80억이 투입된 양식장에서 키우는 참다랑어가 약 4,000마리 남짓이다.

처음에는 6,000마리 정도 양식했는데 폐사하는 비율도 있다 보니, 건강한 개체는 4,000마리 정도 남았다.

초기 투자 비용에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인프라 구축, 시행착오 경비등도 포함돼 있다.

4,000마리당 80억이 필요하다, 딱 이렇게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란 소리다.

규모가 커질수록 마리당 들어가는 투자 비용은 줄어든다.

그 줄어든 금액도 박영식의 입장에서는 까무러칠 만한 수준이라서 그렇지.

"800억 정도…… 최소 그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10만 마리 기준입니까?

"네, 물론 단번에 800억이 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치어를 키우는 데 적어도 2년 이상은 걸립니다. 10만 마리나 되는 개체를 키울 만한 설비를 한 번에 짓지도 못합니다."

-기간은 얼마나 잡으면 될까요?

"최소 4년은 잡아야 안정적으로 10만 개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폐사율까지 넉넉하게 고려한 겁니다."

4년간 800억이 들어갈 예정이라는 뜻이다.

-100만 개체를 키우려면 8,000억은 있어야 한다는 소리네요.

"네, 그렇습니다."

새 주인은 청담에서 빌딩만 수천억어치 이상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물론 과소평가된 것이다)

-800억을 투자해서 2,500억을 회수하는 거군요. 기간은 4년 정도 걸리겠고요.

"킬로당 5만 원으로 잡으면 그럴 겁니다."

-그럼 킬로당 10만 원 이상 잡으면 되겠네요.

"예?"

하수영이 대뜸 2배로 올려 버리자 박영식은 당황했다.

중금속 무공해 판정을 받은 것을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확실히 남는 장사이기는 하네요.

"모든 게 완벽하게 잘 맞아떨어져서 무사히 참치를 출하한다는 조건 하에서입니다. 지금처럼 참치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가요?

"네, 규모가 그 정도로 커지면 처음부터 끝까지 양식 시스템을 재조정해야 합니다. 아직 저는 그 정도의 경험은 없습니다."

-경험이야 차차 쌓아나가면 되는 거고, 정 안 되면 노르웨이는 일본이든 참치 양식 전문가들을 초빙해 오면 되는 거고요. 그나저나…….

하수영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여윳돈에서 8,000억이나 빼놓으면 나중에 급매물 나왔을 때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는데.

"예?"

-아니, 아닙니다. 혼잣말이에요.

박영식은 다시 한번 정신이 멍해졌다.

방금 한 말을 곰곰이 따져보면, 8,000억 정도는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 같은데?

-아무튼 최소 10만참치대군 이상을 양성할 생각이니까, 그리 알고 준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박영식은 다소 멍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숨을 죽여가면서 듣고 있던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었다.

"청담 사장님이에요? 뭐라고 하세요?"

"10만 어쩌고저쩌고 하던데, 설마 참치를 10만 마리 이상으로 늘리려는 건가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참치 장사 죽쑤고 있는데, 무슨 생각이시지?"

"혹시 일본에 내다 팔려는 거 아니야? 일본은 참치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우리나라처럼 중금속 난리가 난 것도 아니고."

"못 들었어? 그러려면 800억 이상이 필요하다잖아. 아무리 청담 사장님이 부동산 거부여도 그런 현금이 있겠어?"

"아, 어디서 끌어오던가 하겠지. 부동산만 수천억인데 그럴 돈줄 하나 없을까."

박영식은 직원들의 잡담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멍하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사장님, 손이 참 크시네."

이 정도면 손이 크기로는 국내 최고 어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거 같다.

***

하수영은 정태오 감독을 만났다.

미팅 자리에는 장효주도 함께였다.

정태오 감독은 천만 관객 동원 영화를 세 번이나 제작한, 국내에서는 한 손에 꼽히는 톱클래스 감독이었다.

30억을 투자한다는 계약서를 쓰고, 그 자리에서 바로 투자계좌로 30억을 쐈다.

"시나리오는 보지도 않으시는 겁니까?"

"장효주 씨 영화 잘되라고 기 불어 넣는 거라서요. 시나리오는 나중에 천천히 한 번 보겠습니다."

정태오 감독의 눈빛이 묘해졌다.

'무슨 재벌가 자제인가?'

장효주가 살짝 연상이기는 하지만, 둘의 연령대는 연애나 결혼을 하기에 매우 적절한 수준이다.

하수영의 외모도 흠잡을 곳은 없다.

장효주가 여배우이다 보나 넘사벽 비주얼이긴 하지만, 둘을 같이 놓고 보면 은근히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어쨌든 30억이나 되는 큰돈을 시나리오 한 번 안 보고 인맥만으로 시원하게 내놓는 투자자다.

아무리 자신이 거장 감독 취급을 받는다지만,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는 투자자들의 인맥이 중요하다.

정태오 감독은 최대한 하수영을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끌어나가려고 했다.

"수영레스토랑 오너시라고요?"

정태오 감독은 그 말에 크게 놀라움을 표시했다.

"저런, 저도 수영라면 매우 좋아합니다. 강남점에 출근도장 찍다시피해요. 청담 본점은 한 번도 못 가봤지만요."

"본점에 오시면 가끔 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홀 관리도 보고 있거든요."

"부지런하시네요. 그 정도 규모로 키웠으면 이제 일선에서는 물러나셔도 될 텐데요. 역시 자수성가한 분들은 달라도 뭐가 다른가 봅니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제가 그 모습 보려고 장사하고 있는 건데, 뒷전에만 물러나 있으면 의미가 없죠."

정태오 감독은 진심으로 수영라면을 좋아했기에, 분위기는 갑자기 확 밝아졌다.

기회다 싶었는지 그는 수영라면에 관해서 시시콜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재료는 전부 사장님이 직접 재배하신다는 건가요?"

"해산물을 빼고, 중요한 재료들은 그래요. 밀가루는 제가 직접 재배한 밀로 만들어 쓰고, 송이버섯과 황비버섯도 제가 직접 키워서 재배합니다."

"오, 황비버섯까지. 잠깐, 근데 그거 재배단가가 원래 엄청 세지 않았나요? 프라임컴퍼니에서 재배단가 인하에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들은 거 같은데요."

"프라임컴퍼니에도 전량 납품하고 있어요."

"아,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농업도 본격적으로 하시는 거군요."

"네, 농사가 원래 기본 베이스입니다. 물론 요식업과 임대업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임대업도 하시는 건가요?"

장효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끼어들었다.

"제가 뭐랬어요. 우리 수영 사장님, 돈 많으신 분이라고 했잖아요. 청담에 가진 빌딩 다 합치면 천억은 넘을 걸요."

하수영은 잠시 숨을 골랐다.

언제 해도 지겹지 않은, 빌딩 자랑을 할 타임이 온 것인가.

왜 지난 생들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가졌으면서 제대로 자랑을 하지 않고 살았는지.

이번 생에는 그런 후회를 남기지 않으리라.

"에이, 0 하나는 더 붙여야 할 걸요."

"……네?"

"예??"

정태오는 물론이고 장효주의 눈까지 휘둥그레졌다.

하수영은 침착하게 표정 관리에 힘썼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점심 메뉴를 말하듯 가벼운 농담처럼 흘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랑질의 핵심이다.

"아, 얼마 전에 휴민트타워라고 상가 빌딩 나온 거 하나 더 샀어요."

"……!"

"겸사겸사 빌딩들 관리하려면 아무 래도 청담에 집 한 채는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단독주택도 하나 샀고요.

그거 두 채가 합쳐서 아마 9,300인가 그랬던가."

"9, 9,300이라면……."

"……9,300억이요?"

장효주의 목소리에서도 힘이 살짝 빠졌다.

그녀도 하수영이 청담동에서 알아보는 부동산 큰손인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는데, 오늘 제대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정태오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생각을 정리하다가 내뱉었다.

"잠시만요, 제가 알기로 휴민트타워가 8,000억에 팔렸다고 듣긴 했는 데, 그럼 이번에 사신 단독주택이 대충 1,300억쯤라는 게 되지 않나요?"

"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정태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는 데, 알고 보니 자수성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영레스토랑 하나로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줄만 알았는데, 청담동에 부동산만 1조 원이 넘는다.

고 한다.

"실례지만 사업을 시작하신 게……."

"작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경기도의 작은 집 한 채와 1톤 트럭 하나 가지고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네요."

"……겨우 1년 만에 그렇게 되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제가 원래 재물운이 좀 있어서요. 손대는 것마다 다 잘되, 아니, 망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분명 지금 다 잘된다고 말하려다가 급히 내용을 바꾼 거 맞지?

정태오는 불현듯 장효주와 전화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재물운이 좀 있으신 분이라서 10억 투자할 때마다 관객 수가 100만 명씩 더 달라붙을 거라고 자신하시는데요?

-한 100억 정도 받아볼까? 그럼 천만은 일단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는 거 아냐?

그는 급히 계약서의 내용을 상기했다.

30억의 투자금.

이미 투자금이 충분히 모인 상태다.

하지만 장효주의 얼굴, 그리고 새인맥을 터놓는다는 생각에서 기꺼이 투자금을 받았다.

-장효주 씨 영화 잘되라고 기 불어넣는 거라서요.

진짜 이 정도면 기를 더 받아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니지, 기를 쫙쫙 뽑아내야지!'

하지만 당장 투자금을 더 대달라고 말을 꺼내기에는 체면이 살지 않는다. 대화의 흐름에도 너무 어긋난다.

그래서 정태오는 안색을 관리하며 이야기를 신중하게 이어 나갔다.

그 결과 하수영이 황비버섯라면 제조사, 프라임컴퍼니의 오너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 말에는 라면 CF를 찍었던 장효주도 놀랐다.

"오너였어요?"

"85%를 갖고 있으니까 오너겠죠?"

"저는 그냥 창업 멤버 중 한 명이신 줄 알았는데. 경영은 일절 안 하신다고 들어서요."

"제가 회사를 직접 경영하기에는 아무래도 이것저것 바빠서요. 요즘에는 수산업에도 눈을 돌리고 있어서 더 정신이 없습니다."

정태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를 뽑아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진 건, 바로 서락산 농장 이야기였다.

"아, 기껏 황비버섯 잘 키우고 있었는데 하필 거기서 조선시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지 뭡니까. 그래서 하루아침에 농사 접고 부랴부랴 새농장을 알아봐야 했어요."

"아! 그거 아주 유명합니다! 저도 문화재청에 친구가 있어서 잘 알고 있어요!"

정태오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보상 절차는 어찌 되셨는지……?"

"아직이요. 일단 발굴 다 끝나고 감정까지 마쳐야 보상을 해주는 말든 하겠죠."

정태오는 개정된 문화재보상법을 떠올렸다.

발굴지의 소유주는 문화재의 감정가치의 50%에 달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했던가?

'지금까지 발굴된 문화재가 금으로만 따져도 무게가 2톤이라던데.'

금값만 따져도 1,000억 원이다.

그중 50%라고 하면 500억 원.

정태오는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투자금 증액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좀처럼 타이밍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수영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

"오,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네, 저녁에는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때 봅시다."

하수영이 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정태오는 놀란 마음에 물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기셨습니까?"

"14호기 중앙전력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나 봐요. 일단 얼른 가서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주인인데 직접 눈으로 봐야죠."

"14호기요?"

"휴민트타워한테 제가 붙여줄 별명입니다. 급해서 먼저 일어납니다. 양해 부탁해요."

하수영은 투자계약서를 챙겨 들고 떠나버렸고, 배웅을 마친 정태오는 잠시 동안 굳어 있었다.

"효주야. 그냥 100억 투자받을 걸 그랬나 봐……."

"버스 떠났어요. 다음 버스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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