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03화
50장 기청제(3)
모바일사업부 성종식 사장은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이현덕 부회장이 프리덤을 탐내다가, 실비아그룹 지분을 개인 명의로 받고 멈춘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재난 극복에 프리덤이 큰 도움이 된 것을 보고 생각이 다시 바뀐 모양이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버스터는 아무리 봐도 멍청해서 마음에 안 들어. 그따위 인공지능을 탑재해서 출시할 바에는 그냥 삭제하는 게 낫지."
모바일사업부 내부에서도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야기였다.
이미 프리덤이 비교 불가능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겔드폰에 버스터를 내장해서 내놔봤자, 시장에서는 웃음거리만 된다는 의견이었다.
"돈은 얼마를 줘도 좋으니 프리덤을 우리 겔드폰 기본 앱으로 내장할 수 있도록 다시 추진해 봐."
"네, 부회장님."
'봐주는 대가'로 실비아컴퍼니 지분을 싸게 받은 게 얼마나 됐다고, 이제 와서 또 욕심을 낸다.
저런 욕심이 충만하니 한국 최대의 재벌로 군림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 정도로 프리덤이 굉장하긴 했지.'
성종식은 프리덤이 보인 퍼포먼스에 느꼈던 전율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MIT 컴퓨터공학과 박사 출신으로서 인공지능 개발에도 정진했었기에, 그는 누구보다 더 그 대단함을 알아보았다.
'꼭 하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기술인 것만 같아.'
MIT 동문 단톡방은 이미 오래전부터 난리가 나 있었다.
성질 급한 지도교수는 당장 한국에 들어와야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구글, 래플, MS, 테슬라 등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이 프리덤을 탐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실비아컴퍼니에 대해서 회의 적이었다.
'그 작은 회사가 과연 프리덤을 지킬 수 있을까.'
***
은하신목은 내심 불만이었다.
-성역 선포를 해야 했는데.
아들에게 엘릭서를 이용해 신성한 대지, 성역을 선포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성역 내에서는 신으로서의 권능이 강화된다.
때문에 신어의 권능을 갈고닦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성역은 신이 머무르는 신전을 형성하는 근본이기에, 아직 수행하는 아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들은 태풍을 물리치는 데 성역을 사용하지 않았다.
500여 명에 가까운 직원들에게 사제복을 입히고, 그들이 자신의 기도를 복창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아들이 외치는 주문에담긴 진정성이 크게 증폭되었고, 바위 하나도 힘겹게 쪼개던 아들은 한반도를 두려움에 떨게 한 태풍마저 박살내 버렸다.
-신어를 이런 식으로 응용할 줄이야.
탄식이 터지면서, 동시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10조 분의 1의 가능성을 지닌 후보자다운 자질이야.
성역으로 신어를 강화한다는 발상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바로 시간이 걸린다는 것.
며칠이 될 수도 있고, 한 달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은하신목도 알 수 없다.
-성역을 활용해서 신의 권능의 위엄을 한껏 느끼기를 바랬거늘…….
그 점이 조금 안타깝지만, 이번에 아들이 보여준 새로운 발상에 또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너는 내가 선택한 후보자답다. 훌륭한 프랜차이즈 갓이 될 수 있겠어.
언제나처럼 아들에 대한 평가는 마지막은 볼멘소리로 장식한다.
-세속적인 욕심만 조금 어떻게 덜었으면 좋겠는데…… 왜 저렇게 건물 따위에 집착을 하는 건지, 쯧쯧…
* * *
한편 양부가 그렇게 자녀의 입신교육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하수영도 마찬가지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성역 선포라. 이걸 어떻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지금까지 부친이 준 권능은 총 세개.
엘릭서, 신어, 성역.
신어는 임대업과 농사에 별 쓸모가 없고, 성역은 엘릭서와 신어를 혼합해서 발동하는, 이른바 '응용형'이다.
"엘릭서를 뿌리고, 진심을 담아서 기원하면 성스러운 영토가 된다니까 음…… 좋아, 일단 내가 가진 모든 빌딩들에 먼저 성역 선포를 해야겠어."
성역으로 완전히 거듭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으니,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다음 생에서 잘 쉬었다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은하신목이 알면 뒷목을 잡을 고민을 하느라 바빴다.
***
실비아컴퍼니는 어느 때보다 사내분위기가 밝았다.
프리덤 덕분에 국내 회사 이미지가 좋아진 데다가, 유료 구독자 증가로 인해 폭발적인 매출까지 기록했으니.
정부에서 감사패를 받고 청와대 오찬에서 대통령 칭찬을 들은 것은 이 야깃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프리덤 하나로 월 매출 3.1조 원이라니."
"와, 그럼 프리덤 개발자는 대체 얼마나 가져가는 거야?"
사내에서 하수영의 존재는 비밀이다. 꼭 필요한 몇몇 인물들만 알고 있다.
하지만 소문이란 건 은연중에 돌기 마련이다.
"부가세 빼면 약 2조 8, 100억 원. 운용비용 넉넉히 300억 잡으면 2조 7,800억 원. 근데 회사와 프리덤 개발자 수익 배분 비율이 어떻게 돼?"
"지금은 9 대 1일걸."
"뭐? 우리 회사가 그렇게 많이 가져간단 말이야?"
"아니, 우리 회사가 1인데."
"그러니까. 난 95 대 5 정도로 생각했는데, 10%나 가져간단 말이야?"
"……."
"2조 7,800억 원에서 90%면 2조 5,020억 원이네. 프리덤 개발자가 한 달에 2.5조 원 정도 가져가네."
"개, 개쩐다. 이 정도면 서해그룹회장 일가도 현찰로 싸대기 올릴 수 있겠는데."
5,000만 명이 넘는 온 국민들이 한 달에 기꺼이 몇만 원 이상의 요금을 지불하기에, 이런 천문학적인 매출이 가능했다.
"참고로 광고 수익 같은 것은 전혀 반영 안 된 거야. 순수하게 이용자들이 내는 월 요금으로만 계산한 거지."
"진짜 엄청나다……."
"해외 시장까지 진출하면 끝장나겠어. 지금보다 몇십 배 이상으로 벌어들일걸?"
"프리덤 개발자가 20대라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 제대로 돈방석에 앉았네."
***
프리덤이 창출한 이익은 IT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예상 연 매출은 약 37조 원.
본래 실비아컴퍼니의 매출이 3조원이었으니, 하루아침에 40조 원으로 껑충 뛰어오른 셈이다.
국내 1위인 서해전자 일 년 매출이 300조 원인 걸 생각하면, 말도안 나올 정도의 수치는 아니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폭증한 실비아컴퍼니의 매출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대박이 났구나.'정도로만 여기고 넘어갔다.
"연 매출 40조 원이면 일 년 이익은 한 3조 5,000억 원 정도 나겠네."
"매출이 커질수록 이것저것 나가는 돈도 많아지니까. 원래 덩치가 커지면 다 그래."
"프리덤 같은 인공지능은 개발하는데도 돈이 엄청나게 들었을 테니까, 이제부터 부지런히 그거 회수해야지."
"그런 인공지능 서비스는 한 달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고정비용도 엄청 날걸? 운영비만 매달 1, 2조 원씩 나올 거 같은데."
"그래도 실톡이 프리덤 한 방으로 엄청나게 컸다."
사람들은 몰랐다.
프리덤을 개발하는 데는 그리 많은 돈이 들지 않았으며, 운영하는 데에도 데이터센터 운영비 정도만 들어간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프리덤 개발자는 1명이고, 이익의 대부분을 독식한다는 것도.
실비아 측에서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숨겼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성렬도 하수영이 프리덤으로 얼마를 벌어들이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 사장, 정말 축하해. 프리덤이 대박 났다면서?"
"네, 레스토랑 주문 간편결제 좀 편하게 해보자고 만든 앱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네요."
"듣기로는 하 사장이 매달 버는 돈이 수천억이라던데, 이제는 정말 큰 사람이 됐어. 라면 팔아서 버는 돈은 감히 비교하기가 초라할 정도야."
"의식주는 가장 기본입니다. 사람들은 프리덤 없이는 살 수 있어도라면 없이는 못 살아요."
전성렬은 단위를 잘못 알고 있었지만, 하수영은 굳이 정정해 주지 않았다.
"아무튼 프리덤이 대박 나서 정말 축하하네. 그 돈 가지고 이제 뭐할 건가?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돈이 매달 통장에 꽂힐 텐데 말이야."
"뭐하긴요, 건물 사야지요."
"……건물."
"더 많은 건물을 사서 1층마다 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들일 겁니다. 농장도 더 늘리고, 더 많은 작물을 키울 거예요."
"자네는 돈을 벌기 위해서 임대업을 하는 게 아니라, 임대업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거 같아."
"임대업만 하는 게 아니죠. 농사도 짓잖아요."
"참, 그렇지. 농사와 임대업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거 같다고 정정하지."
"옳게 보신 겁니다. 그 두 가지가 이번 생에서 제가 추구하는 목표거든요."
하수영의 안색이 살짝 심각해졌다.
"문제는 돈만 있다고 청담동을 모두 사들일 수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주택을 모두 사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상가 빌딩을 모두 사들이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은 두배, 세 배 프리미엄을 제시해도 눈하나 깜짝 안 합니다."
"그럼 열 배 이상을 제시하면 어떨까?"
전성렬은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하수영은 진지하게 받아쳤다.
"그건 현질이잖아요. 그것도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는."
"……."
"현질 남용 잘못하다가는 시장 자체가 박살 납니다. 모 유명 온라인 게임도 한 번 보세요. 현질을 무제한으로 허용했다가 결국 게임이 아니라 도박장이 돼버렸잖아요."
"돈 아깝게 왜 열 배나 주느냐, 뭐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어. 역시 하 사장 자네의 생각은 기발하단 말이지."
"저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허용 수준 안에서 제 힐링 라이프를 즐기고 싶은 거거든요."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알아서 잘 굴러가는 사회적 질서에 굳이 손댈 마음은 없어요. 그런건 이제 질렸어요. 재미없습니다."
'그리고 명색이 차기 주신인데 그런 짓 잘못 했다가는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요.'
전성렬은 잠깐 헛기침을 하고는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이번 태풍 말인데."
"네, 우리 회사도 피해가 많이 컸죠. 저도 눈물을 머금고 1개월 치월세를 면제하면서 모든 임차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나쁘지 않았어. 정부에서 시중에 풀린 라면을 수매해서 비상식량으로 하느라 물량이 말랐거든, 태풍 끝나자마자 지금 발주요청이 폭주해서 공장이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어."
"잘됐군요. 오너로서 뿌듯합니다. 기청제를 지낸 보람이 있어요."
"자네가 기청제 지내자마자 태풍이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고 지금 이야기가 자자해. 어떻게 된 건가?"
"어떻게 되긴요, 저와 우리 회사 직원들의 간절한 바람이 바람의 신의 마음까지 닿은 거지요."
"내가 미신 같은 거 원래 안 믿는 사람인데, 그건 너무 신기해서 한번 물어보고 싶었어. 동영상 보고 너무 놀랐거든. 우리 집사람도 지금 장난 아니야. 자네한테 신이 내린 거라고 아주 야단법석이라고."
"동영상이요?"
"응, 몰랐나? 그때 자네가 직원들 데리고 기청제 지내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유튜브에 올라왔어."
"아니, 누가 허락도 없이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어느 직원이 그랬어요?"
"직원은 아니고 외부 사람 같던데,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 나는 처음에 자네가 장치 설치해서 올린 줄 알았는데…… 역시 그건 아니었군."
"안 되겠어요. 바로 찾아봐야겠어요."
"그래도 자네 얼굴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 비도 많이 오고, 거리도 멀고 하니까."
하수영은 얼른 동영상을 찾아냈다.
영상은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내용으로, 의식을 마치자마자 거짓말처럼 맑아진 하늘, 그리고 당황해하는 수많은 직원들의 반응을 담아내고 있었다.
하수영은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왜 조회 수는 10만밖에 안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