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201화
50장 기청제 (1)
공장 기숙사에는 500여 명의 직원들이 머무르고 있다.
물론 가정이 있거나 근처에 집을 구한 직원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는다.
기숙사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올라온 홀몸인 직원들이었다.
숙식을 무료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싱글인 직원들에게 기숙사는 인기가 높았다.
태풍 때문에 온 나라가 걱정이 가득했지만, 기숙사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전기를 제한적으로 쓸 수 있고 외출이 안 된다는 점이 불편했지만, 대신 휴가를 받았다 여기고 푹 쉬었다.
"그래도 태풍이 빨리 그쳐야 할 텐데. 이러다가 회사 망하기라도 하면 어떡해?"
"망하기야 하겠어? 우리 회사 라면이 얼마나 잘 팔리는데."
"어차피 지금 온 나라가 다 힘들어. 우리 회사만 손 놓고 있는 거 아니니까 괜찮아."
기숙사에서 태풍이 그칠 날만을 목놓고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상부에서 갑작스러운 지시가 떨어졌다.
"이걸 입고 공터로 나오라고?"
"네, 기숙사 소장님 지시입니다."
직원들은 처음 보는 흰옷을 받아들고 어리둥절했다.
비닐에 정갈히 포장된 옷을 꺼내 들자 의아함은 더욱 커졌다.
"이거 꼭 무슨 사제복처럼 생겼네."
"제사 행사 같은 거 할 때 입는 옷같은데?"
"이거 봐. 모자까지 있어."
일단 직원들은 시키는 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김 과장님, 그렇게 입으시니까 정말 제사 지내러 가는 사제 같습니다. 프리스트요."
"야, 프리스트가 제사를 왜 지내. 제사는 유교지."
시키는 대로 옷을 갈아입은 직원들은 바깥 날씨를 내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날씨에 밖에 나가야 해? 바람이 저렇게 거친데."
"그나마 우박은 지금 진정된 상태네요."
"그럼 뭐해. 저렇게 비가 내리고 있는데."
일시적으로 우박 세례는 진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강풍은 기세가 약해질 줄 모르고 있었다.
뿌리가 뽑힐 듯이 흔들리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몇몇 직원들은 이마를 찡그렸다.
지금 밖에 나갔다가는 비바람을 쫄딱 맞게 될 게 분명했다.
"정문 쪽에 우의랑 장화 쌓아뒀답니다. 그거 하나씩 입고 나오면 된대요."
"살았다. 그래도 비바람은 안 맞겠구나."
과연 정문 쪽에는 투명한 재질의 우의와 고무장화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유사 사제복에 우의, 고무장화까지 신은 직원들은 하나둘씩 공터로 나왔다.
거친 비바람이 사정없이 두들겼지만, 우의가 물기를 막아줘서 춥지는 않았다.
"근데 저건 누구야?"
공터의 중심에 웬 청년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직원들과 비슷한 흰 사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우의를 전혀 걸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온몸이 이미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으, 저러다가 감기 걸리는 거 아니야?"
"누구죠, 저 사람은? 우리 직원은 아닌 거 같은데……."
"아, 회장님이잖아요. 회장님."
"회장님?"
뜬금없이 튀어나온 회장님이라는 말에 직원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우리 회사 최대주주이자 오너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회장님이죠. 저번에 사장님하고 같이 계신 거 봤어요."
"뭐야, 그게 저분이었어?"
"그럼 지금 회장님이 우리 소집하신 거야?"
직원들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뜬금없이 옷 갈아입고 소집하라는 지시를 들었을 때만 해도, 날씨도 안 좋은데 갑자기 왜 이러나 했다.
하지만 오너의 지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회장님이 우리 회사 지분 85%인가 갖고 있대요. 저번에 주주명부에서 봤는데."
"나도 기억이 나. 버섯농장 큰 거 운영하신다고, 우리가 라면 제조에 쓰는 버섯도 회장님이 공급하시는 거라고……."
"작년에 회장님 농장 중에서 문화재 잔뜩 나온 기사도 있었는데."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빨리 가자."
직원들은 하수영을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이 날씨에 이게 무슨 짓이냐는 투덜거림은, 회사 오너라는 신분 안에서 온데간데없이 쪼그라들었다.
자신들은 비옷에 장화까지 걸치고 있는데, 회사 오너는 이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으니, 오히려 죄를 지은 듯한 불안감만 들었다.
'우와, 이 사람이 회장?'
'엄청 젊네.'
'집안이 엄청 부자인 건가? 전부 물려받은 거겠지?'
직원들은 엉거주춤 자리를 잡았고, 하수영은 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여러분. 지금부터 오와 열을 맞춰서 줄을 서주세요. 25명씩 20줄을 만들어서 자리를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하수영은 박수를 치며 크게 외쳤고, 직원들은 얼른 자기들끼리 진형을 잡았다.
고참 직원 몇몇이 나서서 줄을 잡아주자 순식간에 진형이 완성되었다.
"자,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마다 맨 마지막 한마디만 따라서 하면 됩니다. 아셨죠?"
"네!"
"특히 간절한 마음을 품는 걸 잊지 마세요. 절대 건성으로 하면 안 됩니다. 특근비는 당연히 지급되니까 돈 받고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직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회장의 지시라는 생각에 그냥 시키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직원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고 서자, 하수영은 가장 앞에 나서서 등을 돌렸다.
그는 두 손을 하늘 높이 번쩍 들어 올린 채, 비구름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바람과 천둥을 마음껏 부리는 위대한 대자연이시여!"
"……."
"……."
"다들 뭐합니까? 마지막 문구를 따라 하라니까요."
하수영이 싸늘하게 돌아보며 말하자 가장 앞줄에 있던 직원들은 허둥지둥 외쳤다.
"대, 대자연이시여!"
"대자연이시여!"
"다시 가겠습니다. 모두 실수 없이 따라 하도록 하세요."
목청을 가다듬은 하수영은 하늘을 향해 다시금 외쳤다.
"바람과 천둥을 마음껏 부리는 위대한 대자연이시여!"
"대자연이시여!"
"며칠째 끊이지 않는 강풍과 우박에 이 땅의 모든 가여운 생명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대자연께서 지닌 위엄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깨닫고 있습니다!"
"부디 이제 그만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어……."
그 뒤로도 하수영의 외침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직원들은 이게 뭐하는 짓인지 저마다 황당했지만, 그래도 표정만큼은 한껏 진지하게 잡은 채 열심히 따라 외쳤다.
'뭐야, 지금 기청제라도 지내는 거야?'
'기청제 지내는 거 맞는 거 같네.'
'저렇게 젊은 분이 이런 미신을 신봉할 줄이야…….'
'근데 나 같아도 기청제라도 지내고 싶겠다. 오죽 답답하면 이러시겠어. 공장 멈춘 게 벌써 며칠째야.'
하수영은 무려 20분을 넘게 하늘에 대고 떠들어댔다.
직원들은 거세어지는 비바람에 조금씩 추위를 느꼈지만, 흠뻑 젖은하수영의 복장 앞에서 감히 그런 감정을 드러낼 순 없었다.
'진짜 저러다가 감기 걸리시겠어.'
'누가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회장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우리 회사 어떡해.'
"……그러므로 이 미천한 몸으로 감히 위대하신 대자연에게 간절히 요청하오니, 이 거룩한 태풍을 물리시어 자비로운 햇살을 우리에게 내려주십시오! 간절히 애원하고, 또 애원합니다!"
"애원합니다!"
드디어 끝인가?
직원들은 직감적으로 기청제의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지금까지 외쳤던 것보다 더욱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외쳤다.
오죽 답답하면 21세기 문명시대에 기업 오너가 직원들을 데리고 이런 짓까지 할까.
그런 마음은 전염병처럼 퍼지며, 직원들의 소망을 하나로 뭉쳐 끌어올렸다.
제발! 태풍 좀 멈추게 해주세요! 이제 못 버팁니다!
"……어?"
바로 그때였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치던 직원은 갑자기 잦아는 바람 소리에 놀라서 살며시 눈을 떴다.
여기저기서 당황함에 가득 찬 탄성이 흘러나왔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바람이…… 멎었어?"
"해, 해가 들고 있어! 저기 해가 보인다!"
"구름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요!"
마법 같은 기적이 하늘에 그려지고 있었다.
온통 어두웠던 하늘이 순식간에 창공의 푸름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나무를 쓰러뜨릴 듯이 불어대던 강풍은 어느 순간 완전히 멎어버렸다.
겨울이라기에 믿어지지 않는 따스한 햇살이 직원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
"……."
5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부숴 버릴 듯한 태풍과 구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하늘에는 더 이상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콜록! 콜록!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아, 기청제가 효과가 있긴 한가 보네요. 미신인 셈 치고 한번 해봤는데."
"……."
"아, 물론 태풍이 그칠 때가 돼서 그친 거겠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네요. 콜록! 콜록! 다들 추우실 텐데 들어가셔서 푹 쉬시고, 지금 근무하신 건 특근수당으로 정산돼서 나갈 겁니다. 제가 사장님한테 말해둘게요."
20분 넘게 비바람을 쫄딱 맞은 하수영은 연신 기침을 하며 휘적휘적 그곳을 떠났다.
직원들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때 어느 직원이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지금 실시간 한반도 기상 영상 보고 있는데, 태풍이 완전히 소멸했어요!"
"정말이야? 여기만 바람이 그친 거 아니지?"
"아니에요. 태풍이 진짜 한순간에 사라졌어요. SNS에는 당황해하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구요."
의식에 참여했던 기숙사 소장은 혼란한 눈으로 하수영이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
-기숙사 공터를 지금 제가 좀 쓰려고요. 마땅한 장소가 현재로써는 거기뿐인 거 같더라고요.
-네, 기청제를 지낼 거라서요.
아까 전화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회장이 답답한 나머지 별짓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회장이 기청제를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태풍이 사라져 버리다니.
'우연이야. 그냥 우연일 뿐이야.'
소장은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소름 끼치도록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리고 태풍이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가?
"그냥 우연이야."
소장은 자신에게 세뇌를 걸듯이, 강하게 중얼거렸다.
***
"옛날 생각나고 좋네."
하수영은 흠뻑 젖은 사제복을 갈아입으면서 중얼거렸다.
한때 그는 대륙을 통일한 절대종교의 교주이기도 했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력의 독점을 통해, 절대적인 기적을 행사하며 대륙의 모든 주민들을 신도로 만들었다.
중요한 의식을 지낼 때에는 한 광장에 100만 명의 신도들을 모아놓고 식을 치르기도 했다.
물론 대륙에 흩어져 있는 주민들은 의식이 진행되는 한날한시에 정확히 기도를 올렸다.
"고작 500명 데리고 하려니까 너무 검소해서 어색하네."
자신 혼자로는 절실함이 부족하다.
그래서 500명을 추가로 더했다. 참 간단하지 않은가?
"역시 특근수당을 향한 절실함은 태풍도 못 이긴다니까."
한편 은하신목은 크게 충격을 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아. 내가 너에게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네가 이런 말도 안되는 편법으로 시련을 극복하기를 바란 게 아니었어.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소자의 자질과 절실함이 부족하니, 다른 사람들의 기원까지 끌어와서 힘을 더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름 효율적으로 해결을 한 겁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제가 신어를 갈고닦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태풍이 한반도를 갈고 닦아서 맨들맨들하게 만들어버리는 것보단 낫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