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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00화 (200/1,270)

프랜차이즈 갓 200화

49장 부족한 것은 절실함(4)

전성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살린 왕자님은 어떠신지 모르겠어. 우리가 한 번 가서 살펴봐야 하는 건 아닌지.

현재 안살린은 몇 달째 하수영의 본가 뒷동산에서 토양 연구를 하는 중이었다.

골든 트러플과 송이버섯이 철을 가리지 않고 자라나는 신비한 토양의 성질을 파악하느라 밤낮을 잊은 상태다.

물론 그 뒷동산은 하수영이 명분을 위해 골든 트러플을 급히, 잠깐 재배했던 곳이지만.

그래도 뭔가 성과가 있는지 안살린은 철수할 기미가 없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주둔지에 하나둘씩 짐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아, 걱정 마세요. 제가 한 번 살펴보고 왔습니다. 아주 강철 요새를 지어놨던데요?"

-강철요새?

"네, 태풍이고 우박이고 전혀 끄떡없게 생겼습니다. 전기수도도 외부에서 끌어오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생산 시설까지 갖춰 놨더라고요."

-강철요새라고 하니, 뭐가 감이 잘 안 오는데. 그 허허벌판에 지을 게 뭐가 있어?

"한번 보실래요?"

하수영은 곧바로 사진을 보내주었고, 잠시 후 전성렬은 말문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게 다 뭔가?

"돔형 임시기지죠. 보니까 안살린 구단주님이 이런 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더라고요."

-요새라고 해서 그냥 웃었는데, 이정도면 정말 강철요새라고 할 만하군.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토양연구를 하다 보니 눈보라, 모래폭풍, 허리케인, 홍수에 몇 달이고 노출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군.

"지진이나 화산 폭발만 아니면 엔간한 자연재해는 별문제 없다고 하더라고요."

하수영은 회사 사정으로 주제를 돌렸다.

"지금 공장은 계속 쉬고 있는 중이죠?"

-그렇지. 출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어차피 전기도 끊어졌어.

중부지방 주요 발전지대가 맛이 가버리는 바람에, 서울 주민들은 고통스러운 정전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출고한 라면 재고도 전부 다 팔렸나 봐. 온 나라가 지금 난리니까.

"소방관들이 우리 회사 라면 박스싣고 돌아다니는 건 종종 보이더군요."

-빨리 태풍이 그쳐야 할 텐데.

전성렬은 새로 이사한 단독주택에 비상용 자가발전장치를 달았다. 덕분에 서울에 전기가 끊어진 상황에서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확실히 자네 말대로 발전기 하나 갖춰 놓으니까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는군. 집사람이 잘했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야.

"거보세요. 제가 그런 거 하나 갖춰 놓으면 나중에 유용하다고 했잖습니까."

-그나저나 어서 이 태풍이 그쳐야 할 텐데…… 내 평생 이런 말도 안되는 겨울 태풍은 처음 보는 거 같아.

"저는 고대 주신의 농간이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회사 상황을 파악한 하수영은 차례 차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정서희, 수영레스토랑 프랜차이즈가맹점주들, 최우석 노인, 단골 부동산 중개사까지.

그는 마지막으로 실비아컴퍼니 대표이사 오철현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오철현은 기쁘고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아, 수영 씨. 연락 주셨군요.

"네, 실톡은 요즘 어떻죠?"

-아주 인기 급부상입니다! 이 모든 게 프리덤 덕분이에요! 프리덤이 개인비서 노릇을 너무 잘해준 덕분에 태풍 우박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요금을 좀 더 올려도 되겠어요."

-안 그래도 회장님이 데이터센터확장을 빌미로 요금을 좀 더 올려도 되겠다, 하시더라고요.

다양한 요금제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요금제는 월 5만 원에 1년 정기결제 요금제다.

즉 연 60만 원의 비용으로 프리덤을 이용할 수 있다.

-이번에 보여준 퍼포먼스가 정말 놀라웠죠. 이용자들이 프리덤의 대처 능력을 칭찬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물 들어왔으니 노 신나게 저으세요."

-네, 지금이야말로 요금을 올려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프리덤이 그저 사치가 아니라 필수적인 기능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오철현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재난본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프리덤을 재난관리 통제시스템과 연동해서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프리덤이 이미 현장에서 충분히 잘해주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래도 재난본부에서만 접할 수 있는 정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걸 프리덤한테 제공한다면 프리덤이 현장 실무자들한테 좀 더 효율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 않느냐,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그건 대표님이 알아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프리덤과 직접 이야기 해보세요."

오철현은 뭔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프리덤과 직접 이야기를 해보라니, 그렇게 말하니 프리덤이 정말 사람 같지 않은가.

"그나저나 서해그룹에 양도한 회사 지분이 아쉬우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 지분을 내놓은 것도 아닙니다. 회장님 가슴만 찢어지죠. 그나저나 태풍이 일단 걷혀야 할 텐데 말입니다.

오철현 역시 태풍 걱정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쥔 채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하늘에서는 아직도 새하얀 우박 덩어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 징글징글하다. 그만큼 쏟아부었으면 이제 물탱크가 빌 때도 됐을 텐데."

-그러니 아들아. 어서 신어의 권능을 갈고 닦아서 이 재난을 소멸시켜 보거라.

"잘 안 되잖아요. 이미 몇 번을 했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구요."

-너의 신어에는 절실함이 빠져 있어서 그런 것이다. 좀 더 절실하고 경건하게 너의 바람을 구체화시켜 보란 말이다.

"여기서 얼마나 더 절실해져야 하는 거죠? 이미 바닥까지 비굴비굴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저 썩을 놈의 바람은 콧방귀도 안 뀌잖아요."

-절실함이 부족하다!

가볍게 나무란 뒤 잠시 침묵하던 은하신목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아들아, 그럼 이참에 다음 코스로 넘어가는 게 어떨까?

"다음 코스요?"

-너는 아직 너만의 성역을 갖추지 못했다.

"성역이요? 신전 같은 거요?"

-그래, 신이라면 응당 자신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성역을 갖추고 있어야지.

"흠……."

하수영은 팔짱을 낀 채 신음을 흘리며 은하신목의 말에 집중했다.

-신어를 다루는 너의 마음가짐에 절실함이 빠져 있으니, 다른 것으로 보충을 하면 되겠구나.

"그게 바로 성역이라는 거죠?"

-그래, 너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성역에서는 너의 모든 힘이 증폭된단다. 절실함 역시 증폭될 수 있지.

"그 성역은 어떻게 만들 수 있죠?"

-엘릭서는 만능의 힘을 지닌 물이란다.

"엘릭서요?"

-그래, 엘릭서를 네가 원하는 터전에 골고루 뿌리면서 진심을 담아 기원하거라. 그냥 뿌리기만 해서는 안돼. 그 땅을 내 성역으로 선포한다는 마음을 강하게 품어야 한다.

"흐음……."

-그럼 엘릭서의 권능으로 그 토양의 모든 부정한 기운은 정화되고, 오롯이 너만의 성역으로 변할 것이다.

은하신목의 목소리가 더욱 근엄해졌다.

-명심하거라. 그냥 뿌리기만 해서는 안 돼. 부정한 땅을 성역으로 바꾸는 것은 너의 자질에 달려 있다.

"그 성역에서 신어를 쓰면 좀 더 증폭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씀이시죠?"

-그렇지!

하수영은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태풍 정보를 확인했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3일 이상 태풍이 한반도에 잔류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3일 뒤면 태풍이 그친다는 게 아니다.

그 이후의 날씨까지 예측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현재 태풍은 온 나라에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태풍으로 인해 이익을 본 것은 실톡 하나뿐이다.

오죽하면 프리덤을 최대한 많이 팔아치우기 위해 실비아컴퍼니가 태풍을 불러왔다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까지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임차인분들도 매출이 떨어져서 다들 죽으려고 하고 있고 말이야."

하수영은 상가빌딩마다 개별 단톡방을 운영하고 있다.

1호기 단톡방, 2호기 단톡방, 3호기 단톡방, 이런 식이다.

단톡방에는 모든 임차인들을 초청해서 필수 공지 내용들을 일괄적으로 전달한다.

대부분 하수영이 혼자 떠들고, 문의할 점이 있는 임차인은 개인톡으로 조용히 물어본다.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건물주입니다.

온 나라가 태풍과 우박 때문에 고통 받고 있고, 임차인 여러분도 며칠째 영업을 하지 못해 피해가 막심한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저도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자, 이번 달 임대료는 50%만큼 감면해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임대료를 내신 임차인분은 다음 달 임대료에서 50%만큼 감면해서 입금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상가빌딩 단톡방마다 공지사항을 올린 하수영은, 여전히 바람이 그칠 줄 모르는 바깥 날씨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졸지에 성역 선포라니…… 이렇게까지 해야 돼? 임대료 받아먹고 살기도 참 힘들다."

***

재난안전관리본부는 실비아컴퍼니와 임시 공조를 맺었다.

본부의 권한 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가용 자원의 규모, 위치, 특징 등)를 프리덤 서비스에 실시간으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상위 등급 정보를 제공받게 된 프리덤은 현장 책임자들에게 더욱 유용한 조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행안부 장관은 이런 지휘체계 개편에 불만족을 품었다.

"허 차관, 재난 지휘를 일개 인공지능한테 전부 맡기자는 것은 너무 무리한 결정 아닌가?"

"지휘권을 준 게 아닙니다. 더 좋은 조언을 할 수 있도록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거죠."

"그게 그거 아닌가?"

"전혀 아닙니다. 결정권은 어디까지나 현장 책임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은 프리덤한테 도움을 받을 뿐 이에요."

긍정적인 효과가 대번에 드러났다.

물자나 구조지원의 분배 작업이 더욱 정교하게 세밀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재난본부에서 세세한 지령을 내리지 않아도, 현장에서 조치 완료했다는 보고가 빠른 속도로 쌓였다.

그동안 재난본부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전력을 복구하기 위해 여러 모로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한국전력에서는 지금 같은 날씨 상황에서는 현장 복구를 하러 나갈 수가 없다고만 했다.

"이런 날씨에 송전라인을 복구한다는 건, 현장 기술자들한테 그냥 무의미하게 죽으라는 소리입니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한국전력을 더 이상 닦달하는 것은 무리였다.

"어서 빨리 태풍이 그쳐야 할 텐데……."

이미 일본에서는 사망자가 1,500명을 넘어섰다.

겨울이라는 추운 날씨, 무수한 우박이 겹침으로써 피해가 더욱 증폭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상청으로부터 절망적인 보고가 들어왔다.

"본부장님. 지금 태풍이 더욱 커지고,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고 합니다."

"뭐야?"

"내일 아침이면 태풍의 파워가 절 정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안전한 곳에서한 발짝도 나오지 말라고 경고해야 합니다."

"이미 국민들은 거리에 전혀 나오지 않고 있잖나."

"그리고 구조 활동도 임시 중지해야 합니다."

허진 차관은 소리 없는 탄식을 터트리며, 야속한 하늘을 노려보듯 주시했다.

"이제, 그만 좀……."

***

프라임컴퍼니 라면 생산공장 기숙사 소장은 저녁에 느닷없는 연락을 받았다. 바로 하수영이었다.

"지금 기숙사로 오신다고요?"

-기숙사 공터를 지금 제가 좀 쓰려고요. 마땅한 장소가 현재로써는 거기뿐인 거 같더라고요.

"공터를 쓰신다고요? 이 날씨에요?"

-네, 기청제를 지낼 거라서요.

기숙사 소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

"기청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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