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99화
49장 부족한 것은 절실함(3)
태풍 4일차, 황호종 사단장은 부관을 불러 지시했다.
"대민지원 작전을 나가야겠어. 사단 전체에 지시 내려."
부관은 당황했다.
이런 날씨에 외부 활동을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비전투 병력손실이 발생할 수가 있다.
장병들이 다치거나 병이라도 나면 어쩌란 말인가.
"알겠습니다. 지시 전달하겠습니다."
하지만 부관은 자신의 생각을 삼켰다.
하늘 같은 투스타의 결정에 감히 토를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갑자기 무슨 대민지원이야?'
날씨를 보면 대민지원이 필요한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은 사단 병력에 비전투 손실이 나지 않게 통제하는 것만도 버겁다.
당장 상급부대에서도 최대한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내려오지 않았던가.
사단장은 다시 군수과장을 호출했다.
"지금 사단에 전투식량이 얼마나 비축돼 있지?"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럴 시간 없어. 500명이 최소 3일은 먹을 수 있는 양만큼 확보해서 가져와. 바로 대민지원 나간다."
"대민지원 말씀이십니까?"
"그래, 부대 인근 지역 주민 중에서 식료품이 떨어진 가정이 상당하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까 장을 보러 나가지도 못하고, 배달도 안 돼."
군수과장은 잠시 생각했다.
그만한 전투식량이 있으려나? 몇 년 이상씩 된 묵은 것까지 긁어모으면 어찌어찌 확보할 수도 있을 거 같지만…….
"과장아, 시간 없으니 빨리 움직이자."
"예, 사단장님."
***
박용호 소위는 군용차량을 타고 대민지원을 나가는 중이었다.
차량에는 창고에서 꺼내온 전투식량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는 상급자의 지시를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아마 주민들 식량이 떨어졌을 거다. 할당 지역을 빠짐없이 순찰해서 나눠주도록 해라.
"소대장님, 근데 비 며칠 내려서 밖에 못 나간다고 식량이 떨어지는 게 말이 됩니까?"
「사단 관할지역 중 확인된 가구만 482가구입니다. 먹을 게 완전히 떨어졌거나, 쌀은 있지만 가스가 작동하지 않아 음식을 조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병장아, 이렇다는데?"
"근데 사단장님께서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아신 겁니까?"
「비상상황이니만큼 전국의 모든 프리덤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각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며 유기적인지원 체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도 원래 프리덤 이용자 아니다. 1,800만 명 안에 못 들었거든."
"그런데 어떻게 이용하시는 겁니까?"
「실비아컴퍼니는 재난상황이니만큼 모든 실톡 이용자가 제한적인 리소스 내에서 프리덤을 이용할 수 있게끔 결정했습니다.」
"와, 그래도 좀 양심은 있는 기업이네요."
"한 번 써보니까 정말 좋긴 좋더라. 다음에 프리덤 가입자 받으면 무조건 쓰려고."
군용차량은 어느덧 1차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군인들은 우박을 피해 가며 조심조심 전투식량 박스를 꺼내서 운반했다.
"계세요? 계십니까?"
"누구요?"
"백조부대에서 대민지원 나왔습니다. 식료품을 나눠드리려고요."
"아이구. 우리 집에 쌀 떨어진 걸 어찌 알고…… 안 그래도 날씨가 이래서 장 보러 나가지도 못하고 막막했는데……."
"부대에도 식량이 이거뿐이라서요.좋은 걸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 이거 보니 옛날 생각나네. 겨울 훈련 뛸 때 많이 먹고 그랬었는 데……."
박용수 소위는 가구원 수에 맞춰 3일을 버틸 수 있는 몫을 나눠준 후, 곧바로 다음 집으로 향했다.
동선이나 분배량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다음 집은 27개를 나눠주면 됩니다.」
"27개라고, 알았어."
동선을 짜는 것, 분배량을 결정하는 것 모두 프리덤이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대민지원이라지만 군 작전을 이런 어플한테 의존해서 실행해도 되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리덤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방문하는 가구원 중 최소 한 명 이상은 실톡 이용자였고, 그를 통해 프리덤은 필요한 식량 개수를 포함한 총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부대 관할지역 내에서 지원이 필요한 가구원 숫자, 동선 낭비를 절약할 수 있는 이동 경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이나 생필품의 양을 정확히 체크할 수 있었다.
'이거, 뭔가 대단한데?'
프리덤의 지원을 받으면서 박용수소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인공지능비서를 만들었을까?
"프리덤, 하나만 묻자. 혹시 사단장님이 대민지원을 결심하신 것도 네 친구 덕분이냐?"
「네, 제 친구가 주민들의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스마트폰 유저가 사용한다는 실톡 메신저.
수천만 개가 넘는 단말기를 통해 낱낱이 연결된 프리덤은, 재난본부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주민들의 피해 빅데이터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에 미친 박용수 대위는 소름이 돋았다.
'프리덤을 만약 군사작전에 활용한다면 엄청나겠는데.'
당장 지금 자신이 지휘하는 소부대만 봐도 그렇다.
철저하게 짜인 동선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움직임에 낭비가 전혀 없다.
만약 프리덤이 없었더라면 식량이 필요한 가구와 그 위치, 수량을 파악하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었을 것이다.
대민지원 작전을 수행 중인 다른 장교들도 박용수와 비슷한 경외감을 품고 있었다.
단 한나절 만에 모든 대민지원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거의 비슷하게 돌아온 동료 장교 부대를 보고 놀라워했다.
비슷한 시간에 출발해서 비슷한 시간에 복귀.
작전 수행을 위한 이동 동선이 초단위로 치밀하게 고려되었다는 증거아닌가.
"식량 잘 나눠주고 왔어?"
"어, 근데 전부 식량이 떨어진 건 아니더라. 하루 이틀 치 정도는 남은 집도 좀 있었어."
"지금 당장 태풍이 멎어도 하루 이틀 안에 물류공급이 복구될 건 아니잖아. 사단장님께서 잘 판단하신 거야."
"그러게 말이다. 주민들이 나라가 지켜준다는 느낌 들어서 기분 좋다.
고 하시는데, 내가 다 쑥스럽더라."
"나도 그랬어. 대민지원이 이렇게 보람찬 일인 줄 몰랐네."
***
재난안전관리본부.
허진 차관은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을 받았다.
바로 국방부에 협조 요청을 하러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차관아, 이미 대민지원 나갔다던데?
"예?"
-식량 떨어진 변두리 지역 주민들한테 군부대 식량이라도 풀어야 한다면서? 그거 이미 전 부대에서 전투식량하고 생필품 들고 가서 풀었다더라.
허진 차관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굳이 협조요청이고 할 것도 없더라.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했더만.
"다행입니다."
-초 장관 그 친구가 나더러 전기 가스나 빨리 복구하라고 하던데. 지금 식량도 식량이지만, 전기 간당간 당해서 고생하는 주민들이 훨씬 많다고.
"전력 복구는 아직 무리입니다. 이런 날씨에는 복구 작업을 할 수가 없어요."
-나도 알아. 초 장관 말이 그렇더라고,
"……."
-아, 그 친구 말로는 이번에도 프리덤이 대활약을 했다던데?
"프리덤이요?"
-그래, 곤란에 처한 주민들 위치나 숫자, 상황 파악해서 인근 부대 지휘관들한테 전했더라고. 그래서 현장 지휘관들이 자체적인 판단으로 대민지원 나간 거고.
"……헐."
-프리덤이 동선이랑 물량 배분 같은 거 짜는 데 큰 도움을 줬다더라고, 그래서 큰 낭비 없이 주민들을 도울 수 있었다던데.
허진 차관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또 프리덤이 해냈단 말인가?
'그냥 인공지능 개인비서인 줄만 알았는데…….'
-아무튼 나도 곧 복귀한다.
"예, 장관님."
허진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은 채 전화를 끊었다.
그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했다.
이번에는 굵직한 정리 내용이 아닌, 실무 현장에서 날것으로 들어온 자잘한 보고 상황 위주로 훑었다.
[A센터에 있는 의약품 물자를 3군데에 분산 배치 완료.]
[경기도 광흘리에 필요 물자 전달완료, 부탄가스 20개입, 라면 3박스, 식수 20L. (요구조자들의 요청)]
[동해에서 표류 중인 어선 3척, 탑승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음. 출동 해경 조속히 복귀.]
[서울 종인동 크로키 오피스텔, 금일 새벽 2시 오피스텔 정문 입구에 요청 식량박스 갖다 놓음. 거주민들이 수거한 것을 확인.]
허진 차관은 전화를 들어, 해당 실무자한테 연락을 취했다.
한참 신호가 간 끝에야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네, 우철진 과장입니다.
"여기 재난안전관리본부인데, 종인동 크로키 오피스텔 말입니다."
-아, 그건 문제없이 처리했습니다. 그 이상의 도움은 당장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그 이상은 필요 없다니요?"
-거주민들 중에 병난 사람도 없고, 당장 필요한 건 그만큼의 식량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요. 지금 입주자들끼리 상호 소통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
-행정력 부족한 거 다 아니까 딱 필요한 만큼만 주면 된다고 신고 연락이 와서요. 거주민 대표자 신고입니다. 그래서 새벽에 식량박스 갖다주고 철수했습니다.
허진 차관은 말문을 잇기 힘들었다.
겨우 격려를 건넨 그는 전화를 끊고, 다시금 다른 보고 내용들을 살폈다.
현장 최전선에서 즉결 조치한 보고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라면 3박스.]
[식수 15L, 진통제 20알, 가스버너 2개.]
[해열제 12알, 인슐린 20정, 일회용 주사기.']
[분유 3통(남영제품 절대 금지), 일회용기저귀 2박스, 전기포트 1개.]
해당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만 정확히 파악해서 전달을 한 것이다.
심지어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 루트도 효율적으로 이뤄졌다.
물품을 비축 중인 기업들은 사전에 미리 연락을 받고 물품들을 정리해 뒀으며, 소방관들은 잘 정리된 물품을 동선에 맞춰 실은 뒤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
허진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재난본부에서는 태풍이 언제 그치지? 전력을 어떻게 복구하지? 등등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헌데 현장에서는 우왕좌왕하면서도 주민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딱딱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리덤…….'
재난에 대처해야 할 머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프리덤은 수천만 명의 주민들을 전수조사해서 필요한 도움만 정확하게 표적 전달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행정력의 낭비가 없도록 극한의 효율을 추구했다.
물론 모두가 만족한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물품이나 행정 인력 등을 쥐어짜낸 움직임이었기에, 모든 주민들은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도움만 받을 수 있었다.
"……전시행정의 완벽한 반대로군."
전시행정, 오로지 보여주기만을 위한 탁상공론.
하지만 프리덤은 달랐다.
재난본부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동안, 가용한 자원을 쥐어짜 내서 시민들을 도왔다.
"이거, 실비아컴퍼니에 감사패라도 전달을 해야겠는데."
어느 정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재난본부 직원들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프리덤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왜 사망자가 한 명도 안 나왔는지 알겠네요. 5,000만 명이 넘는 재난 전문가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으니, 그 단단한 가드 뚫고 사망자가 나오기도 힘들겠습니다."
"……부끄럽게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일개 기업이 대신 해주고 있었네요."
부끄러운 마음보다는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컸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다.
"이제 정말 태풍만 그치면 될 텐데요."
허진 차관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전기가 끊어진 서울 시내는, 아직도 굵은 우박이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다.
"기청제(祈晴祭)라도 지내야 하나…"
"그래서 태풍이 그칠 수만 있다면, 백번이라도 지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