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95화
48장 AI와 태풍(3)
재난안전관리본부장 허진 차관은 전국 각지에서 밀려들어 오는 보고 내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1월에 생뚱맞게 이런 강력한 태풍이라니.
건조한 기간이라 산불 중심으로 재난 대응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다.
"크고 작은 우박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한반도 전역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우박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우박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 수가 100명을 넘었습니다."
"현재 비닐하우스 농가가 입은 재산 피해가 극심합니다만…… 지금 이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바람과 우박이 거세어서 구조헬기를 전혀 띄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중남부 지역은 바람이 너무 거세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충청도의 한 시골에서는 잠깐 외출했던 70대 노인이 돌풍에 날아온 우박을 맞고 머리에 부상을 입어 쓰러져 있던 걸 구조대원이 가까스로 구조했습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보고 속에서 허진 차관이 물었다.
"시골이면 사고 접수도 힘들었을 텐데, 그 노인은 어떻게 구출된 겁니까?"
"그게… 노인의 폰에 설치된 프리덤이 대신 구조대에 신고하고 위치를 알려줬습니다."
"아, 그래요?"
"네, 외딴 곳에서 구조된 이들 중 대부분은 프리덤이 알아서 신고한 덕분입니다."
허진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AI가 참 사람보다 더 낫네요."
"아차,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서둘러 대책계획을 정리합시다. 전국에 통행자제 권고는 일단 내 전권으로 발령하도록 해요.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전국 각지에 우박과 태풍이 빗발치는 상황이다.
멋모르고 거리에 나섰다가는 떨어지는 우박을 맞고 부상을 입는다.
중앙 상황판에 실시간으로 증가하는 전국적인 피해자 숫자를 보며, 허진 차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태풍이 빨리 멎어야 할 텐데."
**
-CBS 취재기자 정상용입니다. 저는 지금 강남의 한 대로에 나와 있는데요. 언제나 교통 정체 상태였던 대로에는 명절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값비싼 슈퍼카들일수록 더욱 몸을 사려야겠죠. 애꿎은 우박에 맞아 흠집이 생기면 안 되잖습니까.
-거리에는 행인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거리의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영업을 중지한 상태입니다.
-재난안전관리본부에서 이미 전국시민들께 통행자제 권고를 내린 상황입니다. 이런 날에 잘못 돌아다녔다가 우박이라도 맞게 되면……. 어? 정상용 기자?
-으아악!
용감히 거리로 취재를 나간 정상용기자는 생방송 보도 도중, 주먹만한 우박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CBS 뉴스는 얼른 화면을 방송국 보도데스크로 바꿨다.
데스크 아나운서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얼른 표정을 관리하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현장 취재 기자가 우박을 맞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소식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현재 거리는 이만큼이나 위험합니다. 부디 집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박정식은 유튜브로 생방송 뉴스를 시청하면서 소리 없이 신음을 흘렸다.
쉬지 않고 덜컹거리는 창문 소리가 불안한 마음을 더욱 증폭시켰다.
어제 창문이 깨지고 제대로 수리를 하지 않은 터라, 찬바람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패딩까지 입고 있는 상태였다.
보일러를 틀면 좋겠지만, 찬바람이 들어오는데 무작정 보일러를 틀어댔다가는 가스요금이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
"……야, 이거 집에서 재택 근무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네."
그는 슬그머니 창문 밖을 살폈다.
요란하게 흔들리는 가로수 나뭇가지를 통해, 거리를 점령한 태풍이 얼마나 거센지 볼 수 있었다.
"으아……."
그때 떨어져 나온 간판이 바람에 날아가다가 1층 상가 유리 진열장에 박히는 광경이 보였다.
박정식은 자기가 대신 맞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떨었다.
거리에는 사람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간혹 한 명씩 사람의 모습이 보일때가 있지만, 민간인이 아니라 공무수행 중인 공무원으로 보였다.
태풍에 차가 뒤집히고 간판이 떨어져 나가고 나무가 쓰러지는 광경은 처음 보았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우박 알갱이들이었다.
"배달도 죄다 휴업이네."
배달 어플을 실행해 보니, 등록된 가게 대부분이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간신히 영업을 하는 가게를 찾아서 주문을 했지만, 대기시간이 무려 2시간으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주문을 했지만, 1시간쯤 지나서 가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손님, 정말 죄송하지만 주문을 취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 왜요? 제가 지금 1시간 넘게 기다렸다고요. 이제 와서 주문취소해 달라고 하면 어떡해요?"
-정말 죄송한데 배달하던 친구가 사고가 났대요. 그래서 배달 라이더들 죄다 오늘은 쉬기로 했답니다. 배달을 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죠."
사고가 났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박정식이 보기에도 이런 날씨에 배달을 나가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련한 짓이었다.
"진짜 이번 겨울 왜 이러는 거야. 가뜩이나 지금 가스도 끊겨서 죽겠는데."
박정식은 아까 황당한 문자를 받았다.
도시가스시설이 정전으로 마비돼서 가스 공급이 끊긴다는 안내 문자였다.
강풍 때문에 전신주가 쓰러져서 가스공급시설이 멈췄다고 했었던가.
전력 복구 전에는 안전을 위해서 가스 공급이 당분간 중지될 거라고 했다.
"배고파 죽겠는데, 뭐 좀 먹으려고 해도 가스도 안 되니 미치겠네."
「주인님, 제가 전에 구매한 부탄 가스를 잊으셨습니까?」
"뭐? 부탄가스를 주문했었어?"
「네, 그때 주인님이 그걸 보시고 캠핑이라도 가냐고 말씀하셨는데, 잊어버리신 모양이군요.」
"잠시만. 확인해 봐야겠어."
박정식은 원룸 한쪽에 잔뜩 쌓인 박스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안에 담긴 부탄가스를 발견한 그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만세! 됐다, 됐어! 이걸로 라면은 끓여 먹을 수 있겠어!"
「제가 김치 1kg과 계란 60개도 시켜뒀지 말입니다.」
"이야, 너 혹시 내가 태풍 때문에 집에 갇혀서 쫄쫄 굶을 거라고 예지라도 했던 거야?"
「그럴 리가요. 어차피 필요한 물건들이고 할인 행세하는 김에 한꺼번에 주문했을 뿐입니다. 물론 주인님이 실수로 승인을 해주셨지만요.」
"아무튼 부탄가스 있어서 살았다."
배달도 안 돼, 그렇다고 나가서 사먹을 수도 없다.
심지어 근처 편의점들도 죄다 문을 닫은 상황이다.
하지만 프리덤이 미리 주문한 라면과 계란, 햇반, 김치, 그리고 부탄가스 덕분에 끼니는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
갈천리 박 씨 노인 집에는 15여 명의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한동네에 사는 노인들이 전원 모인 것이다.
태풍 때문에 전신주가 무너져서 마을의 전력 공급이 완전히 차단되었기 때문에, 동네 노인들이 전원 박씨 노인 집으로 모여들었다.
"근데 박씨 집은 왜 전기가 들어오는 거여? 지금 온 마을이 다 캄캄한다."
"재작년에 전기 끊겨서 우리 마누라가 죽을 뻔했잖어. 심장 머시기 관리하는 기계 멈춰서. 그래서 우리 큰애가 비상발전기인가 달아줬네. 기름으로 돌리는 거."
"근디 기름은 충분한가? 지금 온 나라가 태풍, 우박 땜에 난리라서 전기 다시 들어오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는다."
"우리 달래가 아주 효자여, 효자. 혹시나 해서 지가 미리 기름 넉넉하게 주문을 해뒀구먼."
박 씨 노인은 자신의 폰 프리덤을 '달래'라고 부른다.
"전기 복구 안 되니까 낮 동안에 얼른 자네들 짐 싸서 집에 모으라고 시킨 것도 우리 달래라네."
"달래한테 아주 감사해야겠네."
"나도 달래 하나 들여서 키워야겠어. 박씨 보니까 세상 편하고 좋은 거 같어."
"잠시만, 면에서 전화가 왔네."
박 씨 노인은 면사무소에서 온 전화를 받고 호탕하게 대답했다.
"아, 정규냐? 우리 동네 사람들 한 명도 빠짐없이 울 집에 모여 있다. 전기? 울 집에 기름발전기 있어서 일주일은 끄떡없다."
"먹을 게 없다고 전해줘. 쌀이라도 갖다 달라고."
"그래, 정규야. 니 애비가 쌀이나 좀 갖다 주면 좋겠다고 하신다. 늙은이들이 먹성이 좋아서 울 집에 있는 쌀을 벌써 다 동내게 생겼어."
-네, 어르신.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한테 폰 좀 켜달라고 전해주세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네가 수고가 많다."
***
면천면 지역행사에 참가했던 국회의원 박우성은 하루 정도 머물며 상황을 보려고 했다.
폭설 때문에 안전이 우려돼서 일단 군민들을 체육관에 붙잡아뒀으니, 자기 혼자 훌쩍 떠나기에는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막말로 여기 체육관에서 형성된 민심이 다음 선거에서 자신의 당선을 결정할 수도 있으니.
다행히 비상대피시설로 지정되었던 체육관에는 충분한 물자가 비축되어 있어, 군민들은 큰 불편함 없이 그날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의원님, 상황이 너무 안 좋습니다. 지금 전국에 통행자제 권고가 떨어졌어요."
창문 밖에서 쏟아지는 우박 알갱이를 바라보며, 박우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입니다. 바람이 세도 너무세요. 바람만 세면 그나마 좀 나은데 우박까지 저렇게 설치고 있으니."
"이렇게 무서운 겨울 태풍은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참, 군민들은 별 이상 없지요? 잠자리가 불편했을 텐데 혹시 아픈 데라도 생기면 어떡합니까."
"천운이지요. 마침 무상진료봉사를 나온 의사들이 있어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기름과 식량도 충분하니, 이대로 태풍이 지나가기만 기다린다면……."
팍!
그때 희미한 스파크 튀기는 소리와 함께, 체육관의 모든 등이 일제히 꺼졌다.
아직 저녁이 오기 전이라 크게 어둡지는 않았다.
하지만 체육관에 대피해 있던 군민들은 당황해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전기가 갑자기 나간 거 같은데… 한번 직원들을 보내서 시설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군수는 체육관 전력시설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을 짚었다.
그때 침착한 기계음이 끼어들었다.
「주인님, 체육관 문제가 아니라 외부 공급 시설 문제입니다. 이곳에서 3km 떨어진 곳의 전신주에 문제가 생긴 거 같습니다.」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박우성 의원은 황당해서 물었다.
「저는 지금 3km 떨어진 곳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이용자가 전신주에 불꽃이 튄 것을 보고 놀라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뭐라고?"
「해당 전신주는 이곳까지 이어지는 전력망입니다. 그게 전기가 끊어진 원인 같습니다.」
박우성은 프리덤의 말에 감탄했다.
만약 녀석이 아니었더라면, 왜 전기가 끊겼는지도 모른 체 이 많은 군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을 거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지금 바로 재난본부에 현재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차량이나 헬기 진입이 어려워, 당장 구조팀이 도착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덧 군수를 비롯한 군청 직원들까지 프리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체육관에는 비상발전시설이 있습니다만, 지금 가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장이 난 듯합니다.
비상발전기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 우리는 그런 거 할 줄 모르는 데……."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주인님, 지금부터 내장 카메라 사용을 허락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