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92화
47장 협력보다는 빼앗는 게 이득 (4)
박덕준 회장은 서해그룹 함석조 전략기획실장과 일정을 잡고 만났다.
그 자리에서 지분 양도를 거론했다.
서해그룹 오너, 이현덕 부회장에게 실비아컴퍼니 지분을 좋은 조건으로 넘긴다는 것이었다.
물론 함석조는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회장, 우리 부회장님께서 원하시는 건 겔드폰과 프리덤이 제휴를 맺는 겁니다만."
"그럼 함 실장님이 개발자를 설득하는 게 빠를 겁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 실비아는 프리덤에 대한 소유권이 없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프리덤을 독점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권리만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겔드폰에 프리덤을 탑재하면 계약 위반이고, 그럼 개발자가 공급 취소를 해버리면 우리 회사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됩니다."
"……."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서해전자도 포함된다.
함석조는 그런 의중이 담겼음을 이해했다.
"그걸 설득하는 게 박 회장의 몫일텐데요."
"원래 프리덤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어렵사리 설득해서 계약을 맺었어요. 우리 실비아는 갑이 아닙니다. 계약서에만 갑으로 되어 있을 뿐, 진짜 갑은 프리덤 개발자입니다."
"믿어지지 않는데요."
"프리덤 개발자가 나보다 더 큰 부자예요."
"……?"
"프로그램 개발은 어디까지나 취미로 하는 사람입니다. 본업이 따로 있어요."
박덕준이 말한 본업이란 부동산 임대업, 수영라면 프랜차이즈 사업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럼 개발자가 누군지 알려 주십시오. 제가 한 번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그것도 의무사항입니다. 제가 발설하면 프리덤 개발자는 얼마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어요."
함석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차피 그룹에서 조금만 힘을 쓰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다.
시간을 절약하고 편히 돌아가기 위해 형식상 물어본 것인데, 이렇게 거부할 줄이야.
'정말 프리덤에 아무런 소유권이 없나 보군. 저렇게 조심하는 걸 보면…….'
함석조는 '이 정도'는 자신이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한 번 따로 알아보죠."
"그렇게 하십시오."
박덕준의 의사를 확인한 함석조는 일단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전략기획실 직원들을 호출해서, 프리덤 개발자가 누군지 알아내도록 지시했다.
서해그룹의 정보력은 국정원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목적 대상이 CIA 침투요원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신상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함석조는 지시를 내리고 다음 날, 1차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는 그의 눈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부하 직원을 바라봤다.
"이게 진짜야?"
"네, 국정원 라인과 JS그룹을 통해서 확인한 정보입니다."
"프리덤 개발자가 프라임오일컴퍼니 오너라고?"
"그리고 프라임컴퍼니 오너이기도 하죠."
라면계의 신흥 황제로 유명한 프라임 컴퍼니.
그리고 국내 정유업계의 다크호스로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프라임오일컴퍼니.
"확실해? 하수영, 이 친구가 정말 프리덤 개발자가 맞긴 한 거야?"
"실비아컴퍼니에서 하수영 본인 명의로 계약금을 입금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프리덤 출시 시기를 보면 적어도 하수영, 이 친구가 프리덤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실비아컴퍼니와 계약을 한 것은 맞습니다."
타인의 계좌 거래 내역을 뒤지는 것은 불법이지만, 검찰에도 선이 닿아 있는 서해그룹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하수영, 이 친구가 얼마 전 개인 저택에 해외에서 슈퍼컴퓨터를 주문해서 설치한 정황도 확인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전문로봇이나 부품도 주문하는 등, IT공학 쪽에 깊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함석조는 보고서를 다시 한번 읽으며 감탄을 터뜨렸다.
"면발머니가 대단하긴 한가 보네. 라면 팔아 번 돈으로 정유사업과 IT까지 뛰어들다니."
"하수영 그 친구가 정말 개발자인지는 모르지만, 프로그램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래 보여. 나도 이제 납득이 가네."
"청담동에도 다수의 고가 빌딩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부동산 자산 가치만 따져도 적어도 1조 원 이상은 될 거라고 합니다."
"1조 원이라고? 부동산만?"
함석조는 혀를 내둘렀다.
"이 친구, 대체 어느 집안 아들이야?"
"하원석이라고 꽤 오래전 한남동에서 유명했던 부호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의 양자라고 합니다."
"하원석?"
함석조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원이 얼른 부연설명을 했다.
"상류층 사이에서 용한 점쟁이로 유명했던 사람입니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그 사람한테 점 한 번 받아보겠다고 돈을 싸들고 와서 기다렸답니다."
"아, 기억나. 회장님도 그 사람 말듣고 그룹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에서 성공을 거두셨지."
"꽤 오래전 은퇴해서 종적을 감췄고, 지금은 소식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하수영이 하원석 양자라……."
그 많은 재산의 출처가 어디인지, 함석조는 비로소 납득이 되었다.
자신이 알기로, 지금은 은퇴한 해그룹 회장이 복채로 준 돈만 모두 따져도 천억원은 족히 될 것이다.
함석조는 박덕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본업이 따로 있고, 프로그램 개발은 취미로 한다더니…… 박 회장이 왜 그렇게 저자세였는지 알겠어.'
물론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박덕준은 하수영이 수영라면 프랜차이즈 오너이자 청담동 부동산 큰 손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니.
'이러면 우리 그룹 이름으로 함부로 압박하기도 뭐한데.'
상대의 선대가 은퇴한 그룹 회장과 인연이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지.'
함석조는 내용을 정리해서 이현덕 부회장을 찾았다.
일선에서 물러난 부친을 대신해서 그룹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그는, 함석조의 보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스마트폰 사업부 말로는 프리덤을 단말기 퍼스트 파티 앱으로 반드시 넣어야 성공한다고 했는데."
"그게 상황이 쉽지 않습니다. 박덕준 회장이 저를 따로 찾아와서 난색을 표할 정도면, 정말 설득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럼 함 실장이 한번 설득해 봐. 뭐가 됐든 실비아보다는 우리가 더 잘 챙겨준다고 해."
"……."
"한남동 박수무당 양자라고 했나?"
"네, 부회장님."
"서로 부친끼리 인연이 있으니 이야기는 더 쉽겠네. 함 실장이 잘 다독여 봐."
오너의 지시는 절대적이다.
함석조는 새로이 갱신된 자신의 임무를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
함석조는 하수영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조심스럽게 연락했다.
그런데 하수영이 대뜸 보인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나요? 5초 안에 설명하세요. 5, 4, 3…….
당황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고, 곧바로 상대가 딱딱하게 말했다.
-바로 설명을 못 하신 걸 보니, 그리 떳떳한 경로는 아닌가 보군요.이제 용건을 말하세요.
겨우 전화로 접했을 뿐인데, 함석조는 상대방한테 완전히 기가 눌리고 말았다.
어렵게 용건을 꺼내자 하수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당신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신가요?"
-프리덤은 실비아에 서비스 제공권을 줬어요. 그러니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할 시간도 없고요.
첫 대화는 허무하리만치 맥없이 끝났다.
그 뒤로도 함석조는 포기하지 않고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수확물을 거두지 못한 채 끝났다.
결국 함석조는 이현덕 부회장에게 모든 것을 보고했고, 이현덕은 종전보다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함 실장, 이런 거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해서야 내가 큰일을 믿고 맡길 수 있겠어?"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상대가 워낙 완강합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이현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아쉬운 대로 실비아 지분이나 받지. 설득은 멈추지 말고 계속해 봐."
"알겠습니다."
그렇게 실비아그룹 지배지분 3%가 이현덕 부회장 개인에게 조용히 양도되었다.
유상거래이지만 이현덕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
서해전자는 프리덤을 겔드폰 기본기능으로 장착하지 못해 아쉬워했지만, 아직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실비아컴퍼니는 비록 한숨을 돌렸지만, 앞으로도 프리덤을 원하는 경쟁사들 때문에 꾸준한 스트레스가 예고된 상황이었다.
***
-아들아, 신어 연습은 꾸준히 잘하고 있느냐.
"그럼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네가 너무 시원스럽게 말하니까 오히려 걱정이 되는구나.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시면이 불초자식, 밀려오는 슬픔을 참을 수 없습니다."
-흠, 그럼 오랜만에 우리 아들 수련의 성과를 한 번 볼까?
"네? 성과요?"
-본격적인 성과를 한 번 테스트해 봐야겠다. 가만있자. 뭐가 좋을까…….
하수영은 괜히 불길한 마음이 엄습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시고 그러지?'
-좋아, 네가 그동안 정말 꾸준히 수련을 했다면 바람을 다스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거라고 본다.
"에이, 그 정도야 쉽죠."
하수영은 안색을 싹 바꾸고 웃음으로 반응했다.
"당장 해볼까요? 아, 근데 지금 바람이 안 불고 있는데요. 아니면 제가 바람을 불러일으킬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에 대고, 얼마나 입에 꿀을 바른 공손한 발언을 진상해야 할 것인가.
하수영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공기에 대고 아첨을 할 마음의 준비를 갖췄다.
-바위 정도야 이미 쪼개지 않느냐. 산들바람을 없애 버리는 정도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
'바위 하나 쪼개려고 해도 30초 동안 정성을 다해서 아부하고 구걸을 해야 하는데…….'
가만히 보면 신어의 권능, 참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아들아, 너의 신어는 아직 '파괴' 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초급이다.
"네, 그래서 부지런히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생업에 바쁜 와중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어요."
-파괴는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이며, 쉽고, 저급한 힘이다. 때려 부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이지.
"아, 그건 저도 동의해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바람을 한번 부숴 보거라.
바람을 다스려 보라는 게 그런 의미였나.
하수영은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둘러보고 다시 물었다.
"바람을 부수라고요?"
-그래, 마침 지금 작은 바람 하나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구나. 그간 네가 행한 수련의 성과를 시험해 보기에 적당해 보인다.
작은 바람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수영은 퍼뜩 든 깨달음에 얼른 프리덤한테 물어보았다.
"프리덤, 지금 일기예보 한 번 살펴봐. 겨울바람 위주로, 피해를 끼칠만한 걸로."
-국내 예보 중 강풍주의보가 발효된 지역이나, 발효될 것으로 예정되는 지역은 없습니다.
"혹시 해외는?"
-필리핀해에서 생성된 태풍의 씨앗이 북상할 가능성이 약 20% 정도이지만, 현재로써는 남서쪽으로 진격할 가능성이 80% 가까이 되며…….
하수영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아버지, 혹시 저 시험 하시자고 겨울태풍 소환하신 거예요?"
-응? 아닌데? 저거 지가 저절로 만들어진 거다. 아마 이틀 정도 후면 도착할 거다.
"……."
-아들, 저런 작은 바람 정도는 쉽게 파괴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