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91화
47장 협력보다는 빼앗는 게 이득 (3)
"겔드폰에 프리덤을 탑재한다고요?"
"어, 퍼스트파티 앱으로 넣고 싶으신가 봐."
오철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그럼 우리 실톡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기껏 독점 공급 계약을 맺은 상황에서 겔드폰에 넣자 고요?"
"일단은 협력을 하자고 하시는데."
"협력은 무슨, 협력하는 척하면서 송두리째 가져가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안 만나 뵐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요."
실톡의 가장 큰 시장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해외에서도 나름 선방은 하고 있지만, 매출 측면에서는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다. 워낙 경쟁 상대가 되는 메신저 앱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폰과 국내 시장을 양분하는 겔드폰의 국내 점유율은 70%가 넘는다.
실톡 입장에서는 전체 점유율의 70%를 서해전자에 목줄이 잡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회장님이 서해전자 출신이라는 게 이럴 때 하필이면 발목을 잡네요."
"내가 부회장님한테 신세 진 것도 많으니까."
"정당한 투자였죠. 그리고 서해전자는 그만큼 충분한 이익을 봤고요."
"그렇다고 부회장님이 내게 은혜를 베푼 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하. 골치 아프네."
오철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박덕준은 서해그룹을 중심으로 형성된 황금 인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실비아컴퍼니는 자금 걱정, 정책 걱정 없이 순탄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인맥이 이렇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줄이야.
"회장님, 설마 프리덤을 겔드폰에 고스란히 넘겨주실 것은 아니시죠?"
"설마, 아무리 서해전자라고 해도 그런 요구는 못 해."
"……."
"그래도 적당한 파이 배분은 해야 할 거 같아. 사실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어."
"언제부터요?"
"버스터한테 내일 날씨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10년 전 영화나 검색해서 찾아주는 거 보고."
"……아."
"프리덤이 잘나가면서 한 번은 서해전자에서 연락이 오겠거니, 염두는 두고 있었어."
"염두에 뒀으면 대응 방법도 고려 하셨겠네요."
"최대한 자비에 기대봐야지, 별수있나?"
박덕준은 허허 웃었다.
그리고 사흘 후, 박덕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철현아. 지금 뭐 하냐? 퇴근했냐?
살짝 혀가 꼬인 듯한 음성에서, 오철현은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았다.
"지금 퇴근했습니다."
-술 한 잔 하자. 나 역삼동 단골바에 와 있어.
"네, 바로 가겠습니다."
오늘 박덕준의 일정에는 서해전자 방문이 포함돼 있었다.
때문에 오철현은 불길한 마음을 안은 채, 역삼동으로 향했다.
단골바에는 박덕준 외에 손님이 전혀 없었다.
살짝 머리를 숙인 듯한 박덕준의 등을 바라보며, 오철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또 가게 하루 전세 내셨군.'
이 가게는 박덕준의 오랜 단골가게였다.
그리고 박덕준은 가끔 엄청 기분이 좋거나, 혹은 엄청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가게를 전세 내곤 했다.
전세라고 해봐야 별건 아니고, 일찍 가게 문 닫고 자기 혼자만 술을 마시는 것이다.
박덕준이 워낙 큰손이고, 하루 매출액 이상을 보전해 주며, 결정적으로 여사장이 그의 애인이었기에 가능했다.
'이혼하고 나서 정말 맘 편히 자유롭게 사신단 말이지.'
오철현은 혀를 차며 옆에 앉았다.
"회장님, 저 왔습니다."
"오늘은 형님이라고 불러, 자식아."
"낮 미팅 때문에 마음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요. 지금은 엄연히 업무의 연장 아닙니까."
"그럼 네 마음대로 해라."
혀는 꼬여 있었지만, 눈빛은 살아있었다.
박덕준의 애인인 여사장이 말없이 오철현에게 잔을 내밀었다.
술이 따라지자 박덕준이 잔을 내밀었고, 가볍게 부딪친 뒤 둘은 단숨에 마셔 버렸다.
"어떻게 됐습니까?"
"협상 좀 빡세게 할 줄 알고 나간 건데……."
"그랬는데요?"
"통보받았다."
"……."
"다음 달에 출시하는 신형 겔드폰에 프리덤을 탑재해야 하니 일정 차질 없이 준비하라고 하시더라."
"……누가 들으면 우리 회사가 서해전자 모바일사업부 소속팀인 줄 알겠습니다."
"내 말이. 서해전자는 우리 회사 지분 단 한 주도 안 갖고 있는데 말이야."
"애초에 경영권 자체가 회장님한테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이."
박덕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금 잔에 술을 따랐다.
"진짜 난 순간 우리 회사가 서해그룹 계열사인가 생각했다니까."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그냥 통보였어. 이렇게 결정했으니, 차질 없이 진행해. 난 상사 결재받으러 간 줄 알았다니까."
"협상이고 뭐고 없었겠네요."
"있을 리가 있겠냐?"
"그럼 어떡합니까? 달란다고 그대로 고이 바칠 수는 없잖아요."
"……."
"설마 아무런 반박도 못 하고 알았다고 하고 나온 것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겠냐. 명색이 나도 한 회사의 오너인데."
박덕준은 다시금 술을 한 잔 쭉 마신 뒤 말했다.
"일단 프리덤 계약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지."
"협상 자리가 아니라 브리핑 자리였네요."
"일단 알았다고 하시더라."
"그 와중에도 꼬박꼬박 존댓말 쓰시는군요. 저 같으면 쌍욕 나왔습니다."
"원래 습관이란 게 무서워. 이 나라에서 IT 사업하면 결국 서해전자와 평생 함께 가는 거야."
"저도 한 잔 더 마셔야겠습니다. 속이 타네요."
오철현도 술을 따르고 단숨에 마셨다.
벌써 빈 병이 2병으로 늘어났다.
"일단 최대한 질질 끌어볼 생각이다. 신형 겔드폰 출시 넘기고 나면 시간적 여유는 날 거야."
"엄청 욕 드시는 거 아닙니까."
"원래 이 자리가 그런 자리다. 그러니까 행여나 넘볼 생각은 말아."
"CTO 한다고 극구 우겼는데 기어이 절 CEO 자리 올려놓은 게 회장님이십니다."
"아무튼 내가 어떻게든 프리덤 안뺏기고 지켜볼 거니까 오 대표도 너무 걱정은 하지 말어."
박덕준은 그 뒤로도 길게 한탄 반, 희망 반을 섞어서 앞으로의 대응을 이야기했다.
술이 잔뜩 들어가자 어느 정도 막 힌 속은 풀렸는지, 눈빛이 살짝 밝아졌다.
"프리덤한테 한 번 물어볼까?"
"뭘 물어요."
"어떡하면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 좋은 생각이 없나 하고, 이건 전문적인 질문도 아니니까 상관없잖아. 야, 프리덤."
-네, 주인님.
바에 올려놓은 두 개의 스마트폰 중에서, 박덕준의 스마트폰이 곧바로 대답했다.
"상황은 알고 있지? 오 대표와 내가 나누는 이야기는 들었을 거 아니야."
-물론입니다.
"내가 어떡하면 좋겠냐? 좋은 방법있으면 알려줘 봐."
-신형 겔드폰에 끊임없는 바이러스 공격을 가해서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은 어떨까요?
"오, 발상 한 번 신박하네. 네가 할 수 있어?"
-충분한 예산과 시간만 주어진다면…….
"안 돼. 지금도 서비스할 서버 자원도 모자라. 그런 것에 낭비할 수는 없지."
취한 오철현과 박덕준은 프리덤이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은 없겠냐?"
프리덤은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하지만 이미 상당히 취한 둘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다음 날.
박덕준은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안고 깨어났다.
"아이고, 좀 작작 마실걸. 너무 과음했네."
"두 분이서 양주를 여섯 병이나 마셨어요."
"어쩐지 머리가 깨질 거 같더니."
"꿀물 좀 타올게요."
바의 여사장이자 애인은 잠옷 차림으로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그녀가 갖다 준 꿀물을 들이켠 뒤, 박덕준은 베란다로 나와서 기지개를 켰다.
어제 서해전자 부회장과 나눈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다음 달에 출시되는 신형 겔드폰에 프리덤을 넣었으면 하는데 말이야. 일정이 딜레이되진 않겠지?
-부회장님…… 프리덤 서비스 공급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개발자가 모든 권한을 쥐고 있습니다.
-그럼 박 회장이 개발자와 잘 이야기를 해봐.
-그, 그건…….
-무슨 문제 있어?
-아닙니다. 그런 것은…….
-그 친구 잘 좀 타일러 봐.
시가총액 10조 원이 넘어가는 신흥 IT재벌 기업이라고 해봐야, 서해 그룹 앞에서는 귀여운 하룻강아지일 뿐이다.
서해그룹이 간단히 손을 쓰면 회사가 휘청거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수십 년에 걸쳐 국내 정재계와 법조계를 장악한 서해그룹은 공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국세청을 움직여서 실비아그룹을 탈탈 털어대기만 해도 회사 기능이마비될 것이다.
"결국 이 방법밖에 없나."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하고, 예전부터 다양한 대응책을 구상해 두었다.
하지만 자잘한 대응책은 아무 쓸모가 없다.
지금은 마지막까지 아껴두려 했던 비장의 카드만이 기대할 수 있었다.
바로 회사 지분을 넘기는 것.
결심을 굳힌 박덕준은 서해그룹 전략기획실장 함석조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룹 오너에게 대뜸 카드를 제시했다가는 '무엄하다'는 호통을 들을 수 있을 테니.
먼저 오른팔을 통해 이쪽의 의사를 넌지시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때 하수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박덕준은 깜짝 놀라서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박덕준입니다."
-하수영입니다. 통화 괜찮으실까요?
"네, 물론입니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서해 전자에서 프리덤을 겔드폰에 넣어달라고 압박이 왔다면서요.
"아, 네."
순간 오철현이 그새 말한 건가 싶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예상했던 변수 중 하나입니다."
-대응 방안이 있나요?
"회사 지분을 일부 넘길 겁니다."
-…….
"제 손해가 크겠지만, 대신 겔드폰 탑재 요구를 부드럽게 거절할 수 있습니다."
-겨우 회사 지분 조금 받는다고 없던 걸로 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서해전자가 아니라 그룹 오너 개인에게 넘기면 됩니다."
실비아컴퍼니의 지분 일부를 서해 전자가 아닌, 부회장 개인에게 넘긴다.
부회장의 개인적인 이익을 채워주면 더 이상 압박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오너 개인의 마음만 잘 달래놓으면, 서해그룹의 공격을 걱정할 염려가 없다.
-이런…… 혹시 도와드릴 건 없을까 해서 전화를 드렸는데, 제가 나설 일은 없겠네요.
"수영 씨는 프리덤을 만들어주신 것만으로도 하실 일은 전부 다 하신 겁니다."
-아깝지 않으세요?
"공짜로 넘기는 것도 아니고, 돈받고 넘기는 건데요, 뭘. 어차피 실비아가 계속 커지려면 서해그룹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이참에 그늘로 들어가는 거지요."
돈을 받기야 하겠지만, 제값을 다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박덕준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지였다.
-사실은 오 대표님 연락받고 겸사겸사 전화 드렸습니다. 제 수익분배율이 90%라고 들었어요.
"네, 매출 10조 원을 돌파하게 됐거든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려고요. 안 그래도 좋은 부동산매물이 또 나왔는데 현찰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거든요.
"저런, 결산일은 아직 멀었지만 최대한 빨리 입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하수영은 프리덤 아바타를 보고 말했다.
"네가 호들갑 떨 것도 없었잖아. 박덕준 회장이 자기 선에서 알아서 부드럽게 잘 처리했네."
-밤새 음주하면서 한탄을 하기에 방법이 전혀 없는 줄 알았습니다.
"포커 쳐서 회장 자리 딴 사람은 아니네. 에이, 애초에 내가 신경 쓸 것도 없었잖아."
복잡한 일에 신경을 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실비아그룹이 보인 정성도 있고 하니, 한 번 정도는 서비스 차원에서 도움을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박덕준 선에서 잘 정리가 될 모양이다.
"기껏 겔드폰 전용 바이러스 만들었는데…… 차라리 그 시간에 지뢰찾기나 한 판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