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83화
45장 자동 딥러닝(4)
'프리덤을 실톡에 개인비서 기능으로 넣자고?'
그 말에 하수영은 불현듯 회상에 잠겼다.
수없이 이어진 삶 중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주여행 중에 시공을 거슬러 과거의 지구로 불시착했을 때였지. 지금 문명 수준하고 거의 비슷했었나?'
"그러다가 개인비서들이 자기들끼리 뭉쳐서 담합이라도 하면 저는 책임 못 집니다."
"프리덤의 수준이 그 정도라면 오히려 그런 일이 꼭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기계에 의한 빅브라더 반란인데, 괜찮겠어요? 회사 이미지에도 안 좋을 겁니다."
"기계에 의한 반란이 언제고 한 번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라면, 거기에 우리 회사의 이름이 걸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두고두고 과학의 역사에 남을 위대한 명예가 아닙니까?"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하수영은 살짝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흘렸다.
담합이니 빅브라더 반란이니 하는 것은 농담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이 양반도 살짝 괴짜구나. 보통 사람하고는 거리감이 아주 조금 있네.'
프리덤이 진짜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회사가 유명해진다며 아주 좋아할 사람이다.
물론 그가 상상하는 반란은 기껏해야 주인의 말을 안 듣고 앙탈하는 '귀여운 실톡의 프리덤 아바타'정도일 것이다.
"핵보유국들의 핵기지 통제 권한이 탈취당하고 핵미사일들이 지구 전역을 향해 일제히 발사되어봐야, 아 기계의 반란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하고 한탄을 하실 것 같은데요."
"핵기지 탈취라니요, 허허,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박덕준은 즐겁게 웃었다.
물론 그는 인류 멸망을 간절히 바라는 매드사이언티스는 아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저렇게 마음 편하게 웃는 것이겠지.
"아무튼 실톡에 개인비서 기능을 지원하는 것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
하수영이 거절의 뜻을 나타내자 박덕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어째서인가요? 조건을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얼마든지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만 하세요."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권한의 순위와 크기의 비례 문제예요."
하수영은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프리덤은 인공지능입니다. 물론 저는 수영레스토랑의 고객들이 예약과 결제를 원활히 하도록 프리덤을 일단 배포하긴 했습니다만, 원래는 범용 목적을 위해 만든 인공지능입니다."
박덕준과 오철현은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들었다.
"수영레스토랑 예약과 결제 외에도 제 빌딩에 세 들어올 임차인을 구하기 위한 하위 기능도 있죠. 차후에도 다양한 하위 기능을 넣어서 사용 가능한 확장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두 사람은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아들었고, 하수영은 만족해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실비아는 본질적으로 메신저톡입니다. 그 목적이 분명하죠. 프리덤이 실비아의 일부 기능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배꼽에다가 배를 갖다 붙이는 격입니다. 서버가 차지하는 용량도 아마 비교가 안 될 겁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가 되어야겠군요. 프리덤에 메신저톡 기능이 하위옵션으로 들어가는 형태로……."
"알고리즘 구조상으로는 그게 맞습니다만,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는 두 분이 원하시는 형태가 아닐 겁니다."
"……."
"……."
듣고 보니 하수영의 말이 백번 옳았다.
프리덤을 실톡의 하위 기능으로 넣는 것은, 고양이집 안에 코끼리집을 갖추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실비아그룹의 존재 의의가 훼손된다.
"권리나 이익 배분 문제도 꼬일 테고요."
"음, 확실히……."
"실톡이 프리덤의 부가옵션으로 들어가는 게 맞겠지만…… 근데 그러면 대체 권리나 수익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수영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윽고 박덕준이 고개를 돌렸다.
"저,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말씀하세요."
"실톡에 프리덤과 연동하는 기능만 넣는 겁니다. 즉 사용자들이 실톡을 통해서 프리덤을 개인비서처럼 활용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프리덤을 하위 기능으로 넣자는 게 아니라, 실톡이 소통 창구 역할을 하게끔 한다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흐음……."
"예를 들어 월 1,900원 정도의 구독료로 프리덤의 개인비서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실톡의 점유율은 90%이상에 달합니다. 5,000만 명 이상이 실톡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중 10%만 끌어와도 월 95억 원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오철현도 옆에서 적극적으로 거들었다.
"처음에는 무료로 3개월 정도 이용 하게끔 한 뒤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면 됩니다. 장담하건대 프리덤을 한번도 써보지 않은 이용자는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이용자는 없을 겁니다."
"문제가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지금 제가 구현한 중앙시스템으로는 그 시스템 자원을 감당 못 합니다."
"아, 그거야 전혀 문제없습니다. 저희 회사 데이터센터를 이용하면 그만이죠."
하수영은 속으로 픽 웃고 말았다.
'이 사람들, 인공지능 개인비서를 그런 규모로 활용하려면 컴퓨팅 자원이 얼마나 필요한 건지 계산은 하고 말하는 거야?'
그 둘은 분명 한국에서 알아주는 IT 전문가들이지만, 프리덤의 진정한 스펙은 알지 못한다. 게다가 자신들이 보유한 서버실에 대한 자부 심도 남다른 편이다.
때문에 저렇게 자신 있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리라.
"요금은 정말 1,900원으로 하실 건가요?"
"잠정적으로 말한 금액입니다. 정확한 요금은 사업성을 면밀히 따져서 결정해야지요."
(주)실비아는 홍보와 마케팅을, 하수영은 프리덤의 비서기능 지원을.
수익은 50%로 나누되 모든 필요 경비는 실비아가 일체 부담하는 것으로 했다. 계약 기간은 1차로 3년으로 잡고 종료 시에 우선협상청구권을 갖기로 했다.
실비아는 원래 계약 기간을 더 길게 가려고 했지만, 하수영의 요구에 두 손을 들었다.
"그럼 수익 배분을 9 대 1로 하실래요? 그럼 계약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해드리겠습니다."
"……."
"제가 가진 부동산만 1조 원이 넘습니다. 전 사실 개발자 노릇 안 해도 됩니다. 아니, 그거 말고도 할게 무척 많아요."
박덕준은 고심 끝에 3년 계약에 수익 배분 50%로 결정을 했다.
물론 3년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상황을 봐서 계약 조건을 조율하여 다시 갱신할 생각이었다.
여기에 하수영이 옵션을 하나 추가 했다.
"이 사업 아이템만으로 1년 기준 매출 10조 원을 달성하면 그때부터 수익 배분을 9 대 1로 재조정하는 걸로 하죠."
박덕준은 잠시 생각했다가 쾌히 승낙했다.
하수영의 말대로 된다면 사업이 어마어마한 초대박을 터뜨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일 거라고 보았다.
사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뒤라면 모를까, 당장 몇 년 안으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도 않은 상황이니, 이 정도 립서비스쯤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희가 매일 찾아와서 절을 해도 모자라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또 달리 원하는 조건은 없으십니까?"
"이 정도면 된 것 같습니다."
"오늘 외주 계약을 2개나 체결하고 돌아가는군요. 마음이 든든합니다."
하수영은 실비아에 소속돼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건당 외주 계약을 체결해서 일을 하는 방식이다.
실톡 서버 최적화 지원 작업에 이어, 프리덤의 비서 기능 제공까지 얻어낸 박덕준은 마음이 무척 가벼웠다.
"평소 서버 예비자원이 얼마나 됩니까?"
"40%의 컴퓨팅 자원을 예비 전력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데이터센터에 방문해서 예비 자원을 가지고 한 번 테스트를 해볼 생각입니다."
"프리덤을 정식으로 서비스했을 때 부하가 얼마나 걸리려는지 측정하려는 겁니까?"
"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구동해 보려고요."
하수영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덤덤히 덧붙였다.
"어차피 안 될 테지만요."
"하하, 저희 회사가 비록 신생업체이지만 데이터센터는 국내 최고 수준입니다."
수조 원의 돈을 들여 만든 최첨단 데이터센터가 작년부터 막 가동을 시작했기에, 박덕준과 오철현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수영은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글쎄요……."
***
며칠 후, 하수영은 시간을 내서 실비아의 신형 데이터센터를 찾았다.
수많은 첨단 서버와 중앙 냉각 시스템, 자동 화재진화 시스템 등 첨단기술을 두루두루 갖춘 데이터센터였다.
"총 50개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어, 한 구획에 불이 나게 되면 즉시 소화 작업을 시작하며 구획이 차단됩니다. 최악의 경우에도 50개 중 1개만 버리고 나머지는 살아남아 서비스를 운용하는 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이것과 완전히 똑같은 데이터센터가 1개 더 있다고요?"
"예, 실시간 데이터 송수신을 통해 각 센터 간에 항상 자료가 백업되게 되어 있습니다."
센터장은 하수영이 프리덤의 개발자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저 경영진과 친밀한 최고 실력을 가진 젊은 프로그래머라고 생각했다.
그룹 내에서도 하수영이 프리덤의 개발자임을 아는 것은 다섯 손가락에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업무에 정말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하수영의 진짜 정체를 알리지 않은 것이다.
"그럼 시뮬레이션을 돌리겠습니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센터장은 하수영을 중앙 제어 컴퓨터로 안내했다.
그는 오늘 회사가 추진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서버 자원에 얼마나 큰 부하를 주는지를 실험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박덕준은 주변의 시선을 고려해 나타나지 않았고, 오철현이 몇몇 전문가들과 함께 데이터센터를 찾아 테스트를 참관했다.
긴장과 설렘이 가득한 그의 표정을 보고 하수영이 피식거리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예상 시뮬레이션입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기준에 맞춰서 측정했습니다. 할당 자원은 전체 서버의 20%,500만 명의 유저가 하루 12시간 이상 프리덤을 활용한다는 상황입니다."
"네, 그렇군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실제로 서버 전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당장 제공 중인 서비스에 악영향이 끼치니까.
어디까지나 예비자원을 활용해서 가상으로 측정하는 테스트일 뿐이다.
"테스트 오차 범위는 0.1% 이내입니다. 즉 이 테스트에서 나온 결과가 그대로 재현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0.1% 이내라…… 알겠습니다."
정신없이 올라가는 각종 그래프 수치에 오철현은 물론이고 센터장도 긴장해서 지켜봤다.
테스트를 시작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화면이 붉게 반짝거리더니 프로그램이 정지했다.
그리고 푸른색의 글자가 떠올랐다.
[서버 다운]
"아, 역시 다운됐네요. 500만 명이 프리덤을 동시에 활용하고 2분 31초 만에 먹통이 됐습니다."
오철현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디도스 공격이라도 받았답니까?"
"디도스는 차라리 귀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