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76화 (176/1,270)

프랜차이즈 갓 176화

43장 재가동(1)

몇 안 되는 경영진 사이에서 마라톤 논의가 이어졌다.

바로 황비버섯라면의 새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였다.

원래는 1,300원 내지 1,500원 사이에서 소비자의 반응을 고려해서 책정될 예정이었지만, 공장장이 1,950원이라는 가격을 던져 버리면서 분위기가 한껏 과열되었다.

"그래도 서민 음식인데 1,950원은 너무한 가격이 아닐까요?"

"버섯의 시중 가격을 생각해 보세요. 그 가격에 팔아도 말도 안 되는 낮은 가격입니다."

"그래도 라면 한 봉지가 근 2,000원인 것은 좀…… 돈 없는 자취생이나 취준생들이 우리 라면을 얼마나 즐겨 먹고 있는데…"

"회사가 자선 사업단체는 아니잖아요. 우리도 최대한 이윤을 추구해야 죠. 그리고 가격 올리는 게 불법도 아니잖습니까."

다양한 토론이 오고 갔다.

이참에 최대한 가격을 올려서 받자는 의견과, 적정선에서 타협하자는 의견이 날카롭게 대립했다.

전성렬과 정서희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이들이 토론에 끼어들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나버린다.

"우리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다들 그동안 충분히 논의하고 계십시오."

전성렬이 정서희를 데리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밖으로 나온 전성렬은 자판기 캔커피 2개를 뽑아서 하나를 정서희에게 건넸다.

"부사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양쪽 다 일리가 있다고 봐요. 가격을 최대한 높이는 것과 적정한 선에서 높이는 것 모두요. 물론 서로 얻거나 잃게 될 장단점도 대칭적이겠죠."

"흠……."

"가격을 너무 높이면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더 이상 서민 상품이 아니게 돼요. 돈 없는 백수나 취준생들이 한 봉지에 2,000원 가까이 주고 매번 라면을 사 먹을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JM식품 것까지 라면 가격을 일괄적으로 올려 버릴 수도 있어요. 그럼 우리 라면 점유율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대신, 라면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겠어요."

"네, 그 틈을 타서 황비버섯을 넣지 않은 다른 라면이 다시 시장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죠."

"부사장은 이미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듯이 보입니다?"

정서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2,000원 가까이 받는 것도 그 자체만 보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의미심장하군요. 나야 부사장 결정을 따를게요. 그런 쪽 감각이나 판단은 나보다 훨씬 나으니까."

약 1시간 정도가 흐른 후, 둘은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합의점을 도출한 듯이, 임원들 사이의 분위기는 제법 평화로웠다.

"황비버섯 첨가량을 이원화해서 가격을 달리 책정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기존에는 80그램을 넣고 1,000원에 팔았습니다. JM식품 라면들은 40그램씩 들어가고 있고요. 우리는 50그램, 80그램으로 각각 라면을 이 원화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50그램은 1,400원, 80그램은 1,800원을 받는 거지요."

"그럼 JM식품 라면은 대체로 1,400원 밑에서 가격이 결정이 되겠네요."

"네, 그렇게 하면 전체 라면 시장이 위축되는 것도 방지할 수 있고, 우리 회사의 점유율을 지키면서 수익도 최대한 올릴 수 있을 듯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정서희는 흔쾌히 동의의 뜻을 나타냈고, 임원들은 가볍게 호흡을 내뱉으며 안도했다.

"JM식품에는 제가 직접 이야기하죠."

"그래요, 그쪽은 부사장이 수고 좀 해줘요. 내가 해야 할 거 없나요?"

"있죠. 하 사장님 재촉해서 빨리 버섯 농장 다시 세팅하는 작업이요.

버섯 공급이 재개되어야 라면을 만들든 뭘 하든 할 수 있잖아요."

"알았습니다. 내일부터 저, 청담동으로 출근합니다."

***

드디어 포도밭 농장 이전이 완료되었다.

미리 공사발주를 내고 기다리던 하수영은 약속한 날짜가 되자마자 곧바로 농장으로 내려갔다.

농장에는 이미 공사 업체가 외곽에 콘크리트 담벼락을 쌓고, 수많은 H빔기둥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전성렬도 만사를 내팽개치고 공사 현장을 보러와 있었다.

공장장을 비롯한 임원들도 함께 대동한 채였다.

"여기가 앞으로 황금비단우산버섯이 재배될 새 농장입니까? 무척 크네요."

"에이, 이 정도는 어디 가서 농장이라고 명함도 제대로 못 내밀어요. 가로 250, 세로 500미터밖에 안 되는데요."

"그래도 단일 규모 비닐하우스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최대급인 거 같은데요."

하수영은 농장을 통째로 하나의 비닐하우스로 만들기로 했다.

물론 정말 비닐로 위를 덮는 것은 아니었다.

촘촘하게 세운 기둥으로 천장을 받치고, 강화 유리를 뼈대에 맞춰서 이어붙여 천장을 만드는 것이다.

개폐식 기능이 달린 천장은 필요할 때마다 열 수 있으며, 30% 정도에 달하는 환풍구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

"이거 공사비가 너무 많이 나오겠는데. 그냥 비닐하우스 단지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럼 장기적인 관리가 오히려 힘듭니다. 사람도 많이 써야 할 테고요. 공사할 때 한 번에 이렇게 해두는 게 두고두고 관리하기 편해요."

"근데 자네는 대체 사람은 쓰긴 쓰는 건가? 운반팀 말고 사람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자동화 설비를 들여와서 하니까요. 요새 다 기계로 농사짓지 누가 사람을 쓰나요."

"하긴, 저번에는 드론까지도 운용하는 것 같더니……."

"기초 골격 공사만 업체에 맡기고 나머지 부가기능은 제가 시간이 날 때마다 차차 도입할 거라서요. 아마 2주 정도 후면 버섯을 출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말에 임원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2주 후부터 가능하다고?'

'공사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언제 공사 다 하고 버섯은 또 어느 세월에 키운다는 거야?'

"이제 외부 기온에 상관없이 버섯을 재배할 수 있으니, 겨울에도 버섯 출하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생산량도 이전보다 훨씬 늘어날 테고요."

"정말 다행이야. 2주 후부터는 이제 떨어지는 회사 판매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겠어."

"그나저나 제가 온라인 기사들을 좀 둘러 봤는데, 라면 가격이 올라 간다면서요?"

"아, 그거 우리가 조용히 작업 친거야. 그래도 낚싯바늘을 던지기 전에 밑밥은 깔아야지."

"오호, 수가 늘어나셨네요."

"내 생각이 아니고 정 부사장 생각. 그러고 보니 오늘 같이 오려고 했는데 일이 바빠서 못 왔어."

"가격은 얼마나 올릴 예정입니까?"

"버섯 50그램 넣은 라면을 1,400원, 80그램 넣은 라면을 1,800원에 팔기로 했어. JM식품에서 나오는 라면들은 일괄적으로 40그램으로 하기로 했고."

"JM식품은 뭐 거의 우리 회사 라면 사업부나 다름없네요."

"거의 그렇지, 뭐. 요즘에는 정 부사장한테 먼저 최종 보고를 하고 정재민 사장한테는 정 부사장이 사후 결과만 통보해 주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네."

"조만간 합병 떡밥이 뿌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 사비 털어서 미리 주식을 사두려고. 그런데 이런 것도 내부 거래로 걸릴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거였으면 우리나라 기업가들 이미 죄다 감옥에서 못 나왔을 겁니다."

"자네도 합병 떡밥 나오기 전에 JM 식품에 좀 투자해 두면 돈 좀 만질 수 있을 텐데."

"돈 가지고 돈놀이하는 건 이제 질리고 재미도 없어서요. 무한 자원치트키 쓰고 전략 게임하는 기분이거든요."

"참 그 자신감, 언제 봐도 내가 기분이 다 좋아진다니까."

전성렬은 허허 웃다가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하 사장, 청담동에 엄청 크고 좋은 저택을 하나 샀다고 들었는데."

"네, 샀습니다. 자그마치 1만 제곱미터짜리 집을 떡하니 사버렸죠."

"1만 제곱미터라니… 그럼 가로 세로가 각각 100미터가량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 청담에 그런 저택이 있었어?"

"네, 있더라고요. 강남이 지금처럼 땅값 폭등하기 전부터 있었던 집이 랍니다."

"근데 목소리에 왠지 억울한 느낌이 묻어나는데? 그런 좋은 집을 샀는데 왜?"

"제대로 보신 겁니다."

하수영은 볼멘소리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원래 싹 밀고 고급빌라 단지 지어서 세놓으려고 했거든요. 그 정도 면적이면 적어도 100가구 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텐데. 한 가구 당 천만 받아도 월세가 10억은 됐을 겁니다."

"그럼 밀어서 빌라 올리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

"당분간 밀지 못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뭐, 제가 손해 보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는 마시구요."

"그럼 앞으로 그 집에서 사는 건가?"

"서울에 있을 때만요. 마음 같아서는 누구 세주고 싶긴 한데 그런 집에 세입자로 들어올 만한 사람도 없을 거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네요."

***

공사는 열흘 만에 끝났다.

기둥과 벽을 세우고, 개폐식 강화유리 천장을 설치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라 금방 끝난 것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하수영은 가급적 많은 인원과 장비를 한 번에 투입하기를 원했고, 덕분에 돈은 좀 많이 썼지만 귀한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공사가 끝나자마자 하수영은 곧바로 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놀고 있는 동안 농사 로봇들의 수량은 50대로 늘렸다.

대학 연구소에서 부품을 주문해서 조립하고 개조하는 등 돈이 제법 깨졌지만, 늘어난 농지 면적을 생각하면 필요한 조치였다.

버섯 농장이 이전에 비해 서울과 가까워지고, 또 평지로 변함에 따라 프라임유통 직원들도 한결 편해졌다.

버섯 출하가 재개되는 날에는, 전 성렬이 직접 직원들을 데리고 농장까지 찾아왔다.

"뭐하러 이 먼 길을 오셨어요. 설마 버섯 품질이 이전보다 나빠졌을까 봐서요?"

"두 달 동안 제대로 장사를 못 해서 매출이 팍 줄었다가 이제 살아나게 생겼는데, 당연히 사장인 내가 와봐야 하지 않는가?"

"요즘에도 공장 앞에서 시위하고 그럽니까?"

"장난 아닐세. 공장을 방문하기 무서울 지경이야."

"오늘 트레일러 입고되는 거 보면 시위대도 이제 그만하고 철수하겠네요."

과연 그 말대로 되었다.

황비버섯을 가득 실은 트레일러가 줄을 지어 공장에 들어서자,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진을 치고 있던 수십 명의 시위대는 무슨 일인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그동안 시위대 등쌀에 시달린 전성렬은 이제라도 보상을 받기 위해 헛기침을 하고 다가갔다.

"고객 여러분, 저는 프라임컴퍼니 사장입니다. 지금 고객 여러분들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이 들어오는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뭐라고요? 설마 저게 다 황비버섯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바로 오늘부터 공장은 다시 가동됩니다. 그리고 이제 가동 중단이 벌어질 이유도 없을 겁니다."

"이얏호!"

"황비버섯라면 만세!"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러니 날씨도 안 좋은데 고생 그만하시고 이제 모두 귀가하셔서 편히 쉬세요. 황비버섯라면은 조만간 다시 출하됩니다. 아 참, JM식품 라면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라임컴퍼니는 물론이고 JM식품도 버섯이 수급되자마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장을 돌렸다.

길고도 짧았던 라면 품귀 현상은 그렇게 해결되었다.

라면 가격이 눈에 띄게 상승한 결과를 낳았지만, 소비자들은 다시 라면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취해, 가격 상승에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