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75화
42장 위기는 곧 기회다(6)
-오늘 우리 인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세계단일정부 출범을 통해 바야흐로 진정한 대통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세계단일정부는 전 세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해 각 나라 정부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중재하게 될 초법률적인 권력기관으로서…….
흰 머리카락과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한 노인이 가만히 TV에서 나오는 보도를 들여다보다가, 돌연 이쪽을 돌아본다.
"축하하네, 총재. 드디어 자네의 오랜 염원이 이뤄지게 되었군."
흐릿한 의식이 갇혀 있던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기억의 편린 속에서 저 노인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온다.
"무크,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의 패권 질서는 오롯이 제 손에 쥐어져 있었습니다. 축하받아야 할 건 단일정부 출범을 주장해 온 무크, 당신이겠죠."
세계정부가 출범함으로써, 이제 지구권 문명은 단일 체제로 묶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국가의 구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 국가는 여전히 개별국으로서 존재하며, 자치권을 행사한다.
다만 타국과의 갈등에 있어 거스를 수 없는 중재 권한을 세계정부에 위임한 것이다.
즉 타국과 얽힌 문제나 갈등은 종류를 막연하고, 세계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절대적인 국제사법심판권을 행사하는 국제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자, 세계시민 여러분. 이제 곧 세계 정부 초대 통령으로 취임하게 될 신성웅 통령을 만나보시겠습니다!
진행자가 들뜬 목소리로 말하자, 단상 아래 모인 수십만 명이 넘는 군중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무크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영웅께서 나설 시간이군. 자, 어서 나가보게."
"다녀오지요."
***
"그땐 그게 멋있는 줄 알았지……."
꿈에서 깬 하수영은 새벽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세상을 꽉 움켜쥐어서 강제 평화를 주입한다, 나쁘지는 않은 발상인데 조금 유치했어. 평생 피곤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
"아, 그냥 옛날에 봤던 영화가 떠올라서요."
-영화? 어떤 내용인데?
"괴수와 인간이 서로 대립하는 세상에서, 한 남자가 괴수와 인간의 지배자가 되어 세상에 군림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런 힘을 이용해 자기사욕보다는 보편적인 평화를 강제한다는 그런 감동적이고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영화라서 다행인 줄 알아야 해. 현실처럼 신이 존재한다면 자기에게 감히 맞선다면서 신벌을 받았을 놈이다.
"네, 신벌을 제대로 받아서 집에만 오면 와이프 네 명 사이 갈등 중재하느라고 그렇게나 애를 먹었대요.
탈모가 오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 죠."
-뭐야, 여자가 넷밖에 안 됐었어?
"대신 끝내주는 절세미녀들이었답니다. 그리고 네 명 모두 공식적인 반려자들이었어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죠."
-그 영화 배경이 어디인데?
"21세기 지구 문명이요."
-헐, 그런 세계관에서 공식적인 아내를 넷이나 두었다고? 집에만 오면 분위기가 살벌했겠는데.
"원래 여자들끼리 다 알던 사이고 해서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결혼생활 몇 년 하니까 일 년 365일을 현대판 여인천하 찍고 있더라고요. 각 나라들도 자기들 이권 챙기겠다고 와이프들한테 나눠서 엉겨붙는 바람에 하마터면 집안싸움이 세계대전으로 터질 뻔했어요."
-그게 다 남자가 제대로 중재를 못해서 그런 거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그런 가정을 거느리지도 말아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한심하고 측은한 놈이었죠. 그저 지 잘난 맛에 사는……."
하수영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흔들었다.
'에휴, 내가 지금 누워서 침 뱉기도 아니고…….'
"근데 이 한옥은 무슨 이유로 지으셨던 거예요?"
-음말하자면 살짝 긴데…….
"괜찮습니다. 다음에 들을게요."
-그래도 최대한 줄여서 너의 궁금증을…….
"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다음에 들려주셔도 돼요. 시간 날 때 각 잡고 앉아서 제대로 들을게요."
잘못하다가는 아버지의 과거 무용담을 밤새도록 듣다가 뜬눈으로 날을 맞이하게 생겼다.
하지만 모처럼 수다를 떨 기회가 생긴 아버지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50년 전이었나? 100년 전이었나? 기억이 워낙 가물가물해서 헷갈리는구나. 아무튼 나는 모처럼 한가로이 산속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때 산에서 만난 그 친구가 폐가 거의 망가져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가족들도 다 버리고 혼자 산에서 죽으려고…….
"네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건성으로 듣지 마라. 이 아비가 인간을 아끼는 측은지심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지금 설명하고 있지 않니?
"근데 언제는 우주를 여행하다가 저 때문에 잠시 들른 거라고 하셨으면서,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지구에 머무르고 계셨던 거예요?"
-그때부터 10조 분의 1의 가능성을 느끼고 기다리고 있었지. 몇십년의 세월은 나에게 있어 눈 깜빡할 찰나 같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찰나 같은 순간에도 기억이 가물거리고 헷갈리고 그러시나요?"
-인석아, 제대로 듣기나 해.
아무튼 길고 긴 부친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을 친구로 맞이하게 됐고, 그를 위해서 소나무밭을 베어 한옥을 지어줬다는 이야기였다.
정갈한 기운을 잔뜩 품은 한옥에서 시간을 보낸 그는 자연 치유돼서 산을 내려가 가족들과 재회했다는 훈훈한 이야기였다.
-그 친구를 위해서 좋은 기운을 살짝 넣어주긴 했는데, 지금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수십 년 넘는 세월 동안 한옥과 소나무가 스스로 기운을 발달시킨 것으로 보이는구나.
"확실히 그냥 밀어버리기에 아깝긴 하네요. 그럼 한옥하고 소나무만 따로 울타리 치고, 다른 곳은 다 밀어서 고급빌라를 짓는 것은 어떨지……."
-그러면 한옥을 옮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십 년 동안 알뜰하게 모은 좋은 기운도 전부 날아가 버릴 게야.
"에이, 이 한옥만 없었어도 100가구 고급빌라 단지주가 될 수 있는 거였는데. 정말 아깝네요."
-앞으로 서울에서 머무를 때면 반드시 이 한옥에서 잠을 자도록 해라. 정신수양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러면 신어를 다루는 능력도 빨리 발달하겠지.
"여기서 잔소리 안테나 감도를 더 높이면 왠지 저만 힘들 거 같은데요."
'이거 그냥 아버지 고집에 말린 거 같은데…… 에이, 그래도 난 효자니까 이 정도는 눈감아드리자.'
이 저택은 이제 자신의 소유물이니까 고급빌라단지를 짓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래도…….
'요즘 돈도 없어 죽겠는데 1,250억원이나 묶여 있게 됐네.'
***
[황비버섯라면, 황금비단우산버섯재배단가의 비밀!]
[킬로당 10만 원짜리 고급 버섯이 어쩌다 천 원짜리 라면에 들어가게 됐나?]
[버섯농가는 재배단가 인하의 비밀을 공개하라며 아우성.]
[라면회사는 비밀을 알고 있다?]
언론에서 슬금슬금 기사를 띄우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사전에 취재한 게 아닌, 프라임컴퍼니와 JM식품에서 주도적으로 뿌린 보도자료를 인용해서 작성된 기사들이었다.
[출시 이후 단숨에 국민라면으로 등극한 황비버섯라면의 품귀 현상이 장기화됨에 따라 소비자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일부 열렬 소비자들은 직접 경기도 공장까지 찾아가 농성하며 라면 품귀 현상을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프라임컴퍼니의 황비버섯라면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값비싼 식자재인 황금비단우산버섯이 80g이나 들어갔으면서도, 가격은 1,000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덕분이다. 참고로 황비버섯 80g의 시중 가격은 8,000원이다.]
[황비버섯라면 품귀 현상이 빚어진 궁극적인 이유는 가장 중요한 식재료인 황비버섯의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황비버섯 납품가의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수순에 이르러 있으며…….]
[따라서 품귀 현상이 해결되더라도라면 가격의 인상은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쏟아지는 기사를 보고 프라임컴퍼니 경영진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분위기가 아주 잘 무르익고 있네요."
"네, 마케팅팀 이용해서 SNS에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어요."
"황비버섯 부족을 이유로 드니까 소비자들도 어느 정도 불만이 가라 앉는 모양새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회사가 버섯을 직접 키워서 라면을 제조하지는 않을 거라는 의견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은 전체 지분의 85%를 가진 대주주가 키운 버섯을 독점적으로 공급받는 것이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면 지금의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광고를 집행하는 언론사들이 그 사실을 보도할 리도 없고, 알고 있지도 않다.
황비버섯을 어떤 루트로 공급받느냐는 것은 대중의 관심에서 비껴나 있는 것이었으니까.
"공장은 완전히 가동을 중지했고, 직원들에게는 전원 휴업 수당을 지급하기로 하고 집에서 쉬라고 했습니다. 연차를 소비하라고 하거나 무급휴가를 줄 수도 있었지만……."
그 말에 전성렬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도 이제 대기업입니다. 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야지요. 그런 꼼수는 안 됩니다. 그나저나 분위기가 제대로 무르익었으니까 이제 판매 재개할 때 가격을 올려도 뭐라고 하지 않겠어요."
정서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럼 이제 가격을 새로 정해야겠네요."
"……."
그 말에 다들 입을 다물며 일제히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는 만들어졌고, 이제 라면 가격을 새로 정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황비버섯이 들어가는 라면은 '황비버섯라면'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JM식품에서 출시되는 다양한 브랜드 라면에도 황비버섯이 들어간다.
따라서 황비버섯라면 가격을 올리면, JM식품의 라면 가격들도 일제히 재조정을 해야 한다.
마치 기준금리처럼, 황비버섯라면의 가격이 다른 라면들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1,300원이 어떨까 합니다. 아무리 품귀 현상을 이유로 들었지만, 한번에 30%나 올리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을 생각하면 거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격 상승은 기회가 있을 때 제대로 해치워야 합니다. 지금은 가격을 올린다 해도 소비자들이 납득할 만 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릅니다."
"동의합니다. 이참에 가격을 제대로 팍 올려야 합니다. 1,500으로 올리는 게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임원이라고 해봐야 공장장을 포함해서 다섯 명 정도뿐이지만, 논의 분위기는 제법 뜨거웠다.
그때 비교적 말을 아끼고 있던 공장장이 의견을 꺼냈다.
"저는 1,950원으로 했으면 합니다."
"1,950원이요? 아무리 그래도 두배 가까이 올리는 것은 좀……."
"그건 너무 나간 거 같습니다. 소비자들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조심스러운 우려와 반대가 나왔지만, 공장장은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 말했다.
"솔직히 황비버섯라면은 그 가치에 비해서 너무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시중에서 황비버섯을 사먹으려면 80그램에 8,000원입니다. 그런 버섯 80그램이 들어간 라면을 1,950원에 파는 것만 해도 충분히 너무 싸게 파는 겁니다."
"그래도……."
"아까 이사님도 말씀하셨죠? 떳떳하게 가격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