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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73화 (173/1,270)

프랜차이즈 갓 173화

42장 위기는 곧 기회다(4)

애초에 노인이 끼어들지만 않았으면 550억 원을 더 얹어주고 살 일도 없었다.

취득세 등 부수경비를 생각하면 사실 550억보다는 조금 더 받아야 하지만, 하수영은 그냥 정확히 550억만 불렀다.

그게 깔끔하고 정확할 테니.

물론 처음에는 상대가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겨우 한옥과 소나무를 가져가는 데 550억 원이나 내놓을 리가 없을 테니까.

"아, 그거면 되겠나? 고맙소."

노인은 화색이 돼서 반가운 감정을 드러냈고, 하수영과 우형신은 당황했다.

'어? 이게 아닌데?'

"정말 그 돈에 가져가시려고요?"

"하 사장이 나 때문에 헛돈 더 쓰게 됐는데, 그거만 물어주고 가져가도 된다면 나야 감사할 뿐이오."

아무리 높게 쳐줘도 한옥 한 채와 나무 한 그루가 550억에 비견될 수는 없다. 잘해야 10억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저택을 보존하려고 했던 마음은 진심이셨군요."

"추억이 깊은 곳이니까."

"그래도 돈을 너무 과하게 쓰는 건 아닌가요?"

저택 매매를 새치기하려고 할 때는 솔직히 의심스러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1,250억 원에 사도 어차피 지나면 땅의 가치는 오른다.

노인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는 것이다.

1,800억 원을 부르자 포기하는 걸 보고, 어느 정도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노인은 550억에 한옥과 소나무만이라도 건지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550억을 그렇게 쓸 거면 차라리 1,800억에 저택을 산다고 하시는 게 나으셨을 텐데."

"내가 끌어올 수 있는 자금이 1,300억 원 정도뿐이라서 말이오. 그마저도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정리해서 마련하려고 했던 거요."

추억을 지키고자 한 노인의 마음이 진심인 것은 확인했다.

하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고맙소, 복 받을 거요."

***

노인의 이름은 최우석이었다.

사망한 저택 주인과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랜 지기라고 했다.

하수영은 그 길로 최우석과 함께 저택을 방문하기로 했다. 한옥과 소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형신도 함께 움직였다.

"그래도 550억에 한옥과 소나무를 사는 것은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죽어서까지 돈 싸들고 갈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대화가 잘 풀린 덕에 최우석의 목소리는 아까보다는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자식들 잘 먹고 잘살 만큼은 남겨줬어. 그러니 남은 건 내 마음대로 쓰다가 가야지. 오랜 추억을 사는데 돈 쓰는 건 전혀 아깝지 않네."

"맞아요. 돈은 살아 있을 때나 의미 있지, 죽어서는 아무 소용없죠."

어느덧 셋은 저택에 도착했다.

아직 계약만 체결한 상태이지만, 매도인이 비밀번호를 알려준 덕분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태준이놈은 이미 짐을 다 뺐을 거야. 그놈은 예전부터 아파트에 살고 싶어 했거든."

"그럼 고인의 짐은 ……."

"개인용품은 다 정리했지."

대지면적이 1만 제곱미터에 달하다 보니, 저택은 한눈에 보기에도 확실히 컸다.

"청담에 용케 이런 큰 저택이 있네요. 이 정도로 큰 면적이면 진작 싹밀고 고급 빌라 같은 걸 지었을 텐데."

"강남 땅값이 오르기 전부터 살아왔지. 아마 상상을 못 하겠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여긴 평범한 지역이었네."

하수영은 대체 어떤 한옥인지 나름대로 내심 궁금했다.

그리고 한옥을 처음 본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우형신도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와, 멋지네요."

"그렇지? 그냥 불도저로 밀어버리 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땐 그냥 나무로 적당히 짜 맞춘 저택인 줄 알았죠. 근데 이 정도면 한옥 박물관 같은 것으로 만들어서 계속 보존을 해도 될 거 같습니다."

대충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일 거라 생각했다.

추억 때문에 그런 큰돈을 쓰는구나, 하고 나름대로 대단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문화재로 지정해서 두고두고 보관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550억의 가치가 있느냐고 하면 당연히 고개가 저어지지만…….

하수영은 신기한 듯 한옥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사랑채 문고리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게 변했다.

***

"……?"

가물거리는 눈꺼풀을 힘들게 들어올리자, 주변에서 호들갑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하 사장님! 하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으. 뭐가 어떻게 된 거죠?"

하수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자신은 지금 한옥에서 조금 떨어진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주변에는 구급대원 몇 명이 여러가지 응급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그중 제세동기를 보고 하수영이 물었다.

"혹시 제가 심정지가 왔었나요?"

"아닙니다. 맥박이 너무 희미해서 심정지가 온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세동기는 쓰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죠?"

"모르겠어요. 사장님이 문고리를 잡는 순간 그대로 뻣뻣하게 굳더니, 옆으로 털썩 쓰러졌습니다. 전 문에 전기라도 흐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나? 나무로 된 문이고 전기 장비라고 해봐야 내부에 설치한 등하고 에어컨 정도뿐이야."

"정신을 차리셨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응급실은 가셔야 합니다. 차에 타세요."

구급대원이 그렇게 권유하자, 하수영은 사양하지 않고 구급차에 올랐다.

"나도 따라가겠네."

노인 최우석이 함께 차에 오르려고 하자 우형신이 극구 말렸다.

"어르신은 댁으로 돌아가십시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아니야. 나 때문에 신경 써주다가 이렇게 됐는데 그래도 내가 따라가야지. 이래 봬도 정정하니까 우 사장은 걱정 말고."

결국 최우석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우형신 대신 그가 하수영의 보호자 자격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하수영은 검사를 받기 위해 상당히 대기해야 했다. 응급실은 응급한 순서대로 우선 순위가 돌아가는 터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하수영은 순위가 밀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자네 혹시 지병이 있나?"

"그런 건 없습니다. 아마 대한민국시민 중에서 제가 가장 몸이 튼튼할 걸요?"

"……."

최우석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마침내 차례가 돼서 하수영은 순서 대로 검진을 받았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으니, 응급의가 찾아와서 결과를 말해 주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퇴원하셔도 됩니다."

"그럼 제가 왜 갑자기 기절을 했던 걸까요? 주변 사람들은 심정지가 왔다고 오해했을 정도라는데요."

"심정지는 아닙니다. 어쨌든 이상한 점은 조금도 발견되지 않으니 퇴원하셔도 됩니다. 혹시 뭔가 이상한 조짐이 보인다면 곧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피로에 찌든 것처럼 보이는 젊은 응급의는 그렇게 사무적으로 말을 하고 돌아갔다.

그때 주저하던 기색의 최우석이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는 게 없나?"

"네? 무슨 말씀이세요?"

"어떤 생생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거나…… 그런 게 떠오르지 않는가?"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런 거 전혀 없는데요?"

"……."

"어르신, 혹시 뭔가 알고 계신 건가요?"

하수영은 진지한 눈빛을 그에게 던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수상한 기색이 폴폴 날렸다.

"이런 말을 한다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가 노망이 들었다고 여기지 말아주게."

"절대 안 그러겠습니다. 말씀하세요."

"그 한옥에는 말이야, 사실 영기가 흐르고 있다네."

"영기가 흘러요? 어떤 식으로요?"

하수영은 조금의 웃음기도 얼굴에 담지 않은 채 진지하게 반문했고, 그런 태도에 최우석은 더욱 용기를 얻었다.

"내 지기, 김형신이가 종종 한옥에서 자네처럼 기절했다가 깨어나곤 했었네. 병원을 가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었지."

"헐, 제가 기절한 게 그 한옥 때문이라는 거네요?"

"아까는 나도 설마설마 했는데, 지금은 강한 확신이 드네. 자네도 김형신이하고 같은 현상을 겪었다고 말이야."

최우석은 한껏 진지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김형신이는 그렇게 기절하고 나면 어떤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했었네."

"그게 어떤 것들이죠?"

"바로 미래야."

"……."

"그 친구는 기절하고 나면 머릿속에 미래에 벌어질 일이 떠올랐다네. 처음에는 믿지 못했지만, 김형신이가 본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면 현실에서 곧바로 재현되었지. 세 번 정도 그런 일을 연달아 겪고 나니 그 때부터는 완전히 확신했다네."

미래를 본다는 말에 하수영은 전혀 놀라지 않았고, 최우석은 그런 진지한 태도에 마음을 더욱 강하게 가졌다.

"사실 원래 김형신이 집은 지금처럼 그렇게 크지 않았어. 100평 남짓한 크기였지.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양반가처럼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지방에서 오래된 한옥을 분해해서 가져와서 조립을 했지. 소나무도 그때 심은 걸세."

하수영은 두 눈에 흥미를 품은 채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런데 한옥에서 종종 그런 신기한 일을 겪게 된 거야."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그걸로 돈을 버셨나 보네요."

"부끄럽지만 덕분에 나도 좀 만졌어. 김형신이는 그렇게 번 돈으로 주변 땅을 사서 집을 크게 새로 지은 거지."

최우석의 눈빛이 아련한 과거를 더듬고 있었다.

"항상 미래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매번 돈이 될 만한 미래를 봤던 것도 아니었어. 정말 중요한 미래는 열 손가락에도 꼽히지 않는 다네."

"어르신도 미래를 봤습니까?"

"그 한옥에서 참 많이 지냈지만, 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네. 김형신 이가 자기 아들이나 다른 친구들한테는 말을 하지 않고 한옥에 데려온 적이 많은데, 그 친구 말고는 아무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어. 아마 한 옥에 흐르는 영기가 사람을 가리나 보이."

최우석의 눈빛이 하수영을 똑바로 향했다.

"그리고 이제 자네가 그 영기에 영향을 받은 것 같네."

"그냥 신경계에 잠시 이상이 와서 기절한 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기절하는 과정이 그 친구가 의식을 잃을 때와 너무 똑같았어. 난 아까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다네."

"음…… 그런데 미래 같은 건 전혀 안 보이는데요? 혹시 시간 차를 두고 미래가 보이거나 막 그런 건가요?"

"김형신이는 깨어나자마자 자기가 봤던 미래 이야기를 했네."

"아무래도 제가 꿔줘야 할 과거 꿈 순번이 너무 많이 밀려 있어서 미래이야기는 뒤로 밀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정리하자면 한옥에는 신비한 영기가 흐른다.

죽은 고인은 그 덕분에 몇 차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고, 큰 재산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재산을 토대로 집을 확장해 지금의 대저택을 만들고, 자손에게 물려줄 재산도 만들었다.

'미래 같은 건 전혀 안 보였는데, 이분이 지금 괜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문제는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인데…….

"아, 나도 영향이 전혀 없진 않았네. 한옥 덕분에 어떤 사람이 가진 강한 운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네. 재물운, 연애운, 자손운, 이런 거 말이야.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지. 자네도 보자마자 바로 알아 맞추지 않았나?"

"천억이 넘는 저택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재물운이 있다는 건 누구라도 맞출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최우석의 표정에 민망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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