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72화
42장 위기는 곧 기회다(3)
하수영은 한달음에 햇살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옆집 주민이 우리 15호기를 탐낸다고요?"
"네, 바로 옆에 2,500제곱미터짜리 대저택이 하나 더 붙어 있는데, 돌아가신 원주인과 오랜 친우랍니다.
그 이웃 주민이 지금 사겠다고 나선 겁니다."
1,250억에 달하는 돈이 있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바로 옆집에 살던 인물이니 이미 재력은 따져 볼 것도 없이 검증이 된 것이다.
"원래 사려고 했던 거예요, 갑자기 끼어든 거예요?"
"갑자기 끼어든 것 같습니다. 상대 중개사와 이야기를 해보니 상속인 측이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고 하네요. 하필이면 저희 측 제안을 전달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직후랍니다."
"갑자기 웬 훼방꾼이래요."
"일단 상속인을 설득해 달라고 말을 해놨는데,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거래가 무산된다. 하지만 우형신은 하수영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청담동 부동산을 수집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끈기를.
"제가 상속인을 만나보겠습니다. 상대 중개사분한테 연락 좀 해주세요. 안 되면 제가 직접 통화라도 하겠습니다."
"네."
우형신은 곧바로 중개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 박 사장. 우리 사장님께서 매도인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하셔. 그만큼 그 매물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가격? 가격이야 나중에 서로 조율하면 되는 문제야. 우리 사장님이 누구인지 알아? 저번에 금후 그룹 휴민트타워 매물로 나온 거 알지? 그거 8,000억에 매입하신 게 바로 우리 사장님이라고. 그래, 부탁해."
전화를 끊고 우형신은 하수영과 함께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 기다렸다.
이윽고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띵하고 울렸다.
문자 내용을 확인한 우형신은 기쁨에 차서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매도인 측이 만나보겠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좋아요, 바로 가죠."
하수영은 캠핑트레일러를 출발시켰다.
***
상대 중개사 사무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중개사 박헌조는 하수영이 타고 온 캠핑트레일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형신은 그의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하수영을 소개했다.
"박 사장, 이분이 나에게 의뢰하신 하수영 사장님이야. 어서 인사드리게."
"박헌조라고 합니다."
"하수영입니다."
박헌조는 하수영에게 공손히 명함을 건네면서, 그의 젊은 얼굴이 신기한 듯이 흘끔거렸다.
"박 사장, 자네 강훈 빌딩 알지? 시가 550억짜리 그거."
"어, 알지."
"그 빌딩이 우리 하수영 사장님 거야. 그 빌딩 거래도 내가 중개해드렸지."
"와, 정말이야?"
"거기 1층하고 지하에 수영레스토랑 본점 있는 건 알지? 그것도 사실 우리 하수영 사장님 거라고."
우형신은 신이 나서 업계 동료에게 하수영 자랑을 했다.
물론 하수영은 저쪽에 앉아 있기에 둘의 은밀한 대화를 듣지 못했다.
"아무튼 그러니까 가격 걱정은 하지 말고, 어떻게든 이 거래 성사시킬 수 있도록 해봐. 우리 사장님이 그 저택을 정말 갖고 싶어 하신다고."
"보통 그런 이야기는 잘 안 하는데. 괜히 상대측에서 가격 올릴까봐 말이지."
"우리 사장님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 매물 놓치시면 아마 몇 날 며칠은 잠도 제대로 못 이루실걸."
우형신은 박헌조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 설득했다.
그러는 동안 매도인 측이 도착했다.
매도인은 60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80이 훌쩍 넘어 보이는 웬 노인과 동행한 채였다.
"아이고, 사장님. 이제 오셨습니까."
박헌조는 얼른 일어나서 매도인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동시에 동행한 노인을 슬쩍 스캔했다. 그도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혹시 이분이……."
"아, 박 사장님. 여기 어르신은 제 선친의 오랜 지기 되는 분이십니다."
"아, 그럼?"
"선친께서 물려주신 집을 사겠다고 하신 분도 이 어르신이구요. 해서 함께 자리에 왔습니다."
상황이 공교롭게 되었다.
중간에 끼어 든 이웃주민을 피해서 매도인을 설득하려고 했는데, 정작 매도인이 그 이웃 주민을 데리고 나타나다니.
우형신도 박헌조도 이런 상황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에, 표정에는 당황함만이 어렸다.
'어우, 한 성격 하게 생기셨네.'
이 일을 하면서 온갖 사람을 접했던 우형신은,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서 느껴지는 꼬장꼬장함에 살짝 긴장했다.
"우리 형진이 사저를 사겠다는 분이 어느 사장님이신가?"
목소리에서도 꼬장꼬장한 기운이 팍팍 느껴진다.
두 중개사의 시선이 조용히 하수영을 향했고, 하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가왔다.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이놈아, 맞지? 역시 내 예상대로라니까."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르신."
노인이 살짝 윽박지르듯이 말하자 매도인, 주태준은 당황해서 쩔쩔맸다.
원주인의 오랜 지기이니, 매도인한테는 삼촌이나 다름없는 사이이리라. 그렇다면 저런 태도라든지, 이 자리에 같이 온 이유가 납득이 된다.
노인이 하수영을 빤히 바라보다가 깊은 탄식을 흘렸다.
"얼굴에 금운이 아주 한 가득 들었구먼. 내가 한평생 본 적이 없는 관상이야."
"예?"
주태준이 당황해서 반문했고, 노인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금귀신이 아주 덕지덕지 붙었어. 뭘 해도 성공할 상이야. 나중에 나이 먹고 귀농이나 할까 해도 땅을 파보니 금덩이가 쏟아져 나올 상이라고."
'뭐야? 내 뒷조사라도 했어?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놈아, 잘 보고 들어라. 이제 내가 물어볼 것이니."
노인은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보게, 하 사장이라고 했었지?"
"네, 어르신."
"형신이 사저를 사려는 이유가 뭔가? 하 사장이 거기에 눌러앉아서 신혼살림이라도 차리려고 그러시나?"
꼬장꼬장한 이미지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제법 정중한 음색이었다. 하수영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 느낌이 묻어난다.
하수영도 공손히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형신이 사저가 우리 하 사장 마음에 쏙 들었나 보군."
"그럼요. 어르신 말대로 제가 금운이 좀 있습니다. 당연히 제가 가진 금운에 어울리는 멋진 대저택에서 살아야 이 풍성한 운이 오래가지 않겠습니까?"
우형신은 당황해서 바라봤다. 아니, 언제는 싹 허물어버리고 고급 빌라를 올려서 세를 놓겠다더니?
하지만 그는 곧 하수영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런 자리까지 매도인을 끌고 나타난 저 노인이 심상치 않은 의도를 품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일단 거짓말이라도 노인의 비위에 최대한 맞출 가능성이 높은 대답을 꺼낸 것이다.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추궁하듯이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물론이죠."
"그럼 계약서에 그 점을 특약으로 명시할 수 있나?"
"……."
"사저를 지금 형태 그대로 최소 10년 이상 보존한다고, 만약 이를 위반할 시 원상복구 책임을 지고 매매를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명시할 수 있겠나?"
"……."
"그렇게 한다면 여기 형신이 아들 놈이 지금 당장에라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걸세. 못 하겠다면 내가 사들이는 거고."
막다른 골목길에 몰렸다.
계약서에 명시할 수 있느냐고 하는 상황에서까지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수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사실은 싹 허물고 고급 빌라를 지으려고 했습니다."
"거봐라. 내가 뭐랬어? 아들인 네놈도 부담스러워서 못 살겠다고 하는 저택인데, 거기에 살려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형신이 살아 있을 때 그 집 팔라고 애원하던 건설업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명절 때마다 업자들이 보내는 선물로 정원이 한가득했었다고."
"그, 그렇군요. 어르신……."
"집이란 건 말이다, 귀하고 오래된 집일수록 생명력을 얻는 법이다. 태준이 너는 정녕 그런 집을 허물어버릴 사람에게 팔아버릴 셈이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르신."
"그래, 그러니 차라리 나한테 넘겨라. 그리고 세 같은 건 안 받을 테니 네가 그 집에서 살면서 관리해라."
대화를 듣던 우형신의 표정이 낭패로 일그러졌다.
노인은 어떤 물질적인 욕심 때문에 거래에 끼어든 게 아니었다.
오랜 지기를 위한 우정, 그리고 저택에 쌓인 애정 때문에 사려고 하는 것이다.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가진 건 돈과 정뿐이다.
이런 경우는 설득이 어렵다.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때 하수영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1,800억 드리죠. 저한테 파세요."
"……!"
순간 매도인, 주태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본래 시세가 1,250억 원이니, 그보다 550억 원 높은 프리미엄 가격을 제시한 것이다.
노인도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주름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 이게 무슨……."
"전 그 부지가 꼭 필요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그 부지를 차지해야겠습니다. 매도인분, 1,800억 원을 드릴 테니 저한테 그 저택을 파시죠."
주태준의 동공이 정신없이 지진을 일으켰다.
550억 원에 달하는 프리미엄은 사람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아니면 1,250억 원에 매도인님의 백부되시는 저분께 파셔도 됩니다. 물론 저는 저택을 사는 즉시 전부 밀어버리고 고급 빌라를 지을 겁니다. 선택지는 드렸습니다."
우형신은 또 한 번 느끼고 있었다.
하수영에게 있어 돈이란 청담동 부동산들을 수집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는 매물을 놓치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1,800억 원은 지금 하수영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탈탈 긁어 모은 한계치였다. 약간의 남는 돈으로는 세금, 비용, 그리고 빌라를 짓는 데 투입해야 하므로.
"태준아, 너 이러면 안 된다. 돌아가신 네 부모님이 얼마나 그 집을 아끼고 사랑했는데……."
"죄송합니다, 어르신. 저도 요즘 사업이 많이 힘들어서요. 돈이 필요합니다."
"……."
"저분께 팔겠습니다."
노인은 더 이상 주태준을 말리지 못했다. 1,800억 원 이상을 동원할 상황이나 의지가 없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하수영은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썼다.
계약을 마치고, 하수영과 우형신은 햇살부동산으로 돌아왔다.
"일단 축하드립니다. 근데 쓰지 않아도 될 돈을 550억이나 쓰게 돼서 제가 다 속이 쓰리네요."
"돈 몇 푼 아끼려다가 아트락 타운을 뉴월드그룹에 뺏긴 게 얼마나 됐다고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지요."
돈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지만, 부동산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대체가 불가능하다.
세상에 같은 주소지, 같은 지번이 2개나 존재하지는 않으니까.
평행차원의 다른 청담동이 생겨나 지라도 않는 한은.
"웃돈을 더 쓰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계약을 했으니 이제 안심입니다. 급행보험료라고 생각하죠, 뭐."
그렇게 거래 성사를 자축하고 있을 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아까 그 노인이 들어섰다.
"여보게, 하수영 사장."
"아, 어르신?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하수영은 살짝 놀라서 노인을 맞이 했다. 살짝 지친 듯한 노인의 안색에는 아까 같은 꼬장꼬장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말투까지 공손해졌다.
"내가 부탁이 있어서 염치 불고하고 여기 사무실 주소 물어서 찾아왔으니, 너무 타박하지는 말아주시오."
"부탁이오?"
"하 사장은 저택을 전부 밀어버린다고 했지요?"
"네, 그럴 예정입니다."
"저택 한쪽에 나무로 짜맞춰 지은 한옥이랑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내가 그 형신이 그 친구하고 매번 술과 바둑을 일삼던 곳이라오. 괜찮다면 내가 그 한옥하고 소나무는 옮겨가도 되겠소? 갚을 치러야 한다면 얼마든지 치르겠소."
"그럼 550억만 받을게요."
하수영은 양심적으로 프리미엄만 정확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