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70화 (170/1,270)

프랜차이즈 갓 170화

42장 위기는 곧 기회다. (1)

본래 JM식품 소유였던 라면 공장은 경기도 외곽에 있다.

쉽게 말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공장과 무관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라면 공장 앞으로 몰려왔다.

각종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이들은 공장 앞 공터에 진을 치고 앉은 채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우리에게 라면을 달라!"

"라면을 달라!"

"품귀 현상을 해결해라!"

"해결해라!"

"자취생은 라면이 필요하다!"

"필요하다!"

공장 직원들은 황당해서 저마다 창가로 몰려나와 시위대를 구경했다.

대충 보기에도 연령, 성별 등에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심지어 이마에 띠까지 두른 채, 비장한 표정으로 라면을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어느 나이 든 남직원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살다 살다 라면 팔라고 공장까지 몰려와서 시위하는 건 처음 보네."

"JM식품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우리 라면이 시장 독점이라고 하더니, 정말 인기가 엄청나긴 한가 봐요."

"저기, 저거, 뉴스 채널 차량 아냐? 시위하는 거 찍고 있나 봐."

한 직원이 호들갑을 떨며 손가락으로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다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과연 취재를 나온 방송국 차량이 카메라를 한창 설치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이런 식이면, 일주일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안가네요."

"우리 버섯 재고가 지금 딱 일주일분 남았지?"

"네, 맞아요. 일주일만 공장 돌리면 이제 버섯은 다 떨어져요."

그때가 되면 품귀 현상이 아니라 상품이 멸종된다.

시장에서 황비버섯라면이 증발하면, 공장까지 찾아온 저 열성 시위대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여기는 황비버섯라면으로 유명한 모 식품회사의 경기도 생산공장입니다. 보다시피 수십 명의 소비자들이 품귀 현상을 해결하라고 공장까지 찾아와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라면의 95% 이상에는 황비버섯이 첨가되고 있으며, 버섯 부족 현상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조선시대 수집가 보물창고가 발견된 곳이 황금비단우산버섯농장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현재는 버섯 생산이 중단돼서…….

-이로써 당분간 소비자들은 황비버섯라면을 맛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서희는 팔짱을 낀 채 무거운 표정으로 TV를 응시했다.

전성렬도 마땅치 않은 표정을 한 채, 손가락으로 소리 없이 책상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라면 부족 사태가 지상파 저녁 뉴스에 실리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하 사장은 정녕 방법이 없다고 하니……."

"오히려 이참에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세팅 정비해야겠다며 느긋해 하시던데요."

"그 친구도 처음에 유물 나왔을 때는 같이 걱정했었는데."

"포기하면 편하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가장 초조함을 크게 느끼는 순간은, 어려운 문제가 바로 폭발 직전에 몰렸을 때이다.

일단 문제가 터지고 나면 이제 포기하게 되고, 홀가분함이 찾아온다.

전성렬과 정서희도 지금 하수영과 마찬가지로 그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일주일 뒤면 공장은 가동 중지해야 되고…… 지금처럼 조금씩 물량을 풀면 3주는 버틸 수 있겠습니까?"

"최대 3주는 버틸 수 있지만, 또 몰라요. 싹쓸이 움직임 때문에 더 빨리 떨어질 수도 있어요."

"JM식품은 별말 없습니까?"

"농장에 유물 나온 거 때문에 그러는 거 다 아니까 그쪽도 뭐라고 말은 못 하죠. 애만 타고 있어요."

JM식품이 제조하는 모든 라면에도 황비버섯이 들어간다.

버섯 생산중단은 프라임컴퍼니뿐만 아니라 JM 식품, 나아가 한국 라면 시장 전체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었다.

"수영레스토랑은 타격이 없습니까?"

"본점과 가맹점에서 쓸 재고는 충분히 확보해 두신 모양이에요. 농장다시 세팅해서 생산할 때까지는 전혀 문제없다고 하시던데요."

수영레스토랑 청담본점과 강남역점을 다 합쳐도 440석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장사와는 다르다. 그리 많은 물량이 필요하지는 않다.

전성렬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서해물산이 회사 뺏으려고 방해한 것도 잘 넘겼는데, 생각지도 못한 데서 이렇게 발목이 잡힙니다그려."

***

본가 정리를 완전히 마쳤다.

서락산에 설치했던 슈퍼컴퓨터 등 필요한 장비들을 모두 설치하고 안정성 테스트까지 다 끝냈을 뿐만 아니라, 옷이나 집기 등의 자질구레한 짐도 전부 가져왔다.

문화재청에서는 아예 서락산을 매입하겠다는 의사까지 타진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소유권을 넘기더라도 향후 발견되는 유물들은 땅주인으로 의거해서 보상을 해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아직 하수영은 대답을 보류하고 있었다.

본가 정리를 하는 동안 수영레스토랑 본점에는 거의 얼굴을 비치지 못했다.

하지만 앱 프리덤을 통해 매출이나 테이블 회전율을 조회해 보니, 자신이 없어도 이택진 셰프의 지휘 아래 매장은 잘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손님이 찾아왔다.

"주희도라고 불러주십시오."

주희도는 싹싹한 인상을 가진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는 다름이 아니라, 정서희가 수영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사업 관리를 위해 구해준 사람이었다.

"마케팅 대행 회사를 운영하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작지만 알뜰하게 굴리고 있는 회사입니다. 사장님께서 만약 프랜차이즈 관리계약을 하신다면, 저희가 외주파견 형식으로 맡게 될 겁니다."

"건물관리회사 같은 방식이네요."

"네, 맞습니다.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수백억대 이상의 큰 빌딩은 보통 유지보수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에 관리대행을 맡긴다.

건물관리회사는 유지보수뿐만 아니라 임차인 관리 및 계약 체결과 해지까지, 건물주가 아무런 신경을 쓸 필요 없이 골프만 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아주 중요한 계약 부분에서는 사전에 미리 사장님께 승인을 받고 움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아요, 계약하겠습니다."

하수영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주희도와 프랜차이즈 관리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집이 참 좋습니다. 저도 말년에는 이런 집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네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이에요."

"아, 그럼……."

"멀리 여행가셨습니다. 뭐 찾아볼게 있으시다고 갑자기 훌쩍 떠나셨죠."

"아, 그러시군요."

작고한 것으로 오인했던 주희도의 표정이 다시 풀어졌다.

그는 자신의 사업 계획을 본격적으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영레스토랑 본점과 강남역점에 관해서 이미 샅샅이 조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그릇에 35,000원이나 하는 라면이 왜 이렇게 잘 팔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맛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가격의 라면을 줄 서서 먹을 만큼 우리나라 소득수준이 높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주희도는 멋쩍게 웃으면서 덧붙였다.

"근데 맛이 문제였더군요. 물론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저도 한 번 먹어봤는데, 중독성이 강해요."

"본점 손님의 1/3은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죠."

"그에 비해 강남역점 손님의 과반은 비강남지역에서 오신 분들이더군요."

"아무래도 본점보다는 접근성이 좋겠죠."

"라면 한 그릇 먹으려고 광역버스타고 올라오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맛입니다. 혹시 레시피에 뭔가 특별한 게 있나요?"

"레시피는 간단합니다. 문제는 재료죠. 특제 조미료가 수영라면의 중독성 있는 맛을 만들어냅니다."

"아, 그럼 일이 더 쉬워지겠습니다. 사실 레시피가 맛의 생명이라면 나중에 레시피 유출 염려도 고려해야 해서요."

"걱정 마세요. 맛의 비밀은 가문의 비법으로 만들어지는 특제 고춧가루입니다."

"네? 고춧가루요?"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주희도의 표정이 처음으로 깨졌다.

물론 지극히 예상했던 반응이다.

"네,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키우는 고추를 마찬가지로 특별한 방법으로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이 특제 고춧가루가 라면 맛을 살려내죠. 사실 라면뿐만 아니라 모든 요리에도 통용이 됩니다. 직접 보시겠어요?"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하수영은 곧바로 여러 가지 음식을 내놓았다.

맨밥, 통조림 참치, 스팸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간단한 음식들이었다.

"일단 조금씩 드셔 보시고, 그 다음에는 고춧가루를 뿌려서 다시 드셔 보시죠."

주희도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하수영의 말대로 했다.

먼저 음식들을 조금씩 맛을 보고, 다음에는 고춧가루를 뿌린 다음에 먹어보았다.

그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며, 경악한 시선으로 하수영을 바라봤다.

"특제 조미료라는 게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군요! 어떻게 고춧가루를 뿌린 맨밥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는 거죠?"

"사실 몸값이 아주 비싼 녀석입니다. 그래서 라면값을 그 정도 받는 거예요."

"이 정도면 나중에 고춧가루 자체를 시판해도 엄청난 대박이 날 거 같은데요?"

"아직 그 정도로 많이 만들지는 못해서요. 아마 가맹점 20개에 공급하는 것도 벅찰 겁니다. 뭐, 언젠가는 전 세계 마트에 고춧가루통을 쫙 깔아둘 만큼 많이 생산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만, 그걸 위해서는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수영레스토랑 프랜차이즈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저는 양심적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일단 가맹점끼리의 간격은 최소 600미터 이상은 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수영은 자기 경영철학을 자세히 이야기했고, 주희도는 메모까지 해가면서 세심하게 귀담아들었다.

직영점 개수는 최소한으로 하되, 가맹점 확장을 중점으로 생각할 것.

몇 시간 동안 의견을 주고받으며 생각을 정리했고, 주희도는 만족해 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당장은 삼성역과 압구정역에 각각 가맹점을 모집할 예정입니다. 규모는 입지 위치를 봐야겠지만 아마 50석은 넘지 않게 세팅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정리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해 주세요."

오늘 처음 본 사람이지만 유능해 보인다. 수영레스토랑 가맹점 관리는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하수영은 정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도 대표님은 만나 보셨어요?

"네, 지금 일어나셨어요. 먼 길 찾아오게 해서 죄송하네요."

-영업 뛰는 건데 당연히 달려가야 죠. 그분이 비즈니스는 정말 믿고 맡길 만한 분이에요.

"안 그래도 계약했습니다."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공장앞에 집결한 시위대까지 화제가 흘러갔다.

-오늘부로 공장 가동 중지했어요. 버섯이 없거든요. 농장은 언제 세팅될까요?

"한 달 정도 지나면 소유권이전합니다. 외담 같은 건 차차 세팅하더라도 일단 버섯부터 키울 겁니다."

-최소 5주 정도는 버텨야 한다는 거네요. 과연 소비자들 등쌀을 감당할 수 있을지……. 오늘 시위대가 150명 넘게 온 건 아세요?

"그 사람들, 그 정도면 이제 그냥 즐기는 거 아닙니까? 밤새도록 줄서서 돈까스 사먹는 사람들처럼요."

-시위하는 분 중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황비라면이 인생의 낙 중 하나인데 그걸 우리가 빼앗아버렸고 분노하시는 분들 많아요. 그런 분들 앞에서 그런 말씀하면 큰일나요.

정서희는 염려된다는 듯이 덧붙였다.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곤란해요. 설마 이번에 구매하신 농장에서 뗀석기가 나온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저도 그런 일이 없기를 빕니다. 유전 같은 거라도 터지면 어쩌나 하고 긴장하고 있다고요."

-유전은 절대 안 터질 테니 염려 하세요. 경기도에서 무슨 유전인가요.

정서희는 쿡쿡 웃다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 사태를 좋은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기회요?"

-네, 라면값을 올릴 절호의 기회잖아요? 지금이라면 라면값을 조금 올려도 소비자들이 절대 욕 안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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