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66화
40장 새 농장을 찾아보자(3)
'이게 꿈은 아니겠지?'
안희철 입장에서는 공장의 모든 것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그냥 넘기는 것만 해도 최선이었다.
사업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고, 적자 폭은 갈수록 커질 테고, 나중에 가서 사업을 정리하려고 하면 퇴직금 지불 등 청산 처리 과정에서 오히려 빚만 남을 상황이었으니까.
매각 대금으로 1억을 제시한 것은 그래도 수십 년간 부친이 고생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심리였다.
또 거저로 올려놓으면 공장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나설 테니, 그걸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정말 5억에 공장을 사주시는 겁니까?"
"네, 물론 안희철 씨가 공장 운영을 계속 맡아주셔야 합니다. 적어도 5년 이상은요."
"그럼 제 월급은……."
"원래는 얼마를 가져가셨죠?"
서류 더미를 몇 번 들춰보고는 공장의 미래를 단번에 꿰뚫어 본 사람이다. 안희철은 굳이 과장을 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최근 3개월 동안은 50만 원도 못가져갔습니다."
"그래도 공장이 흑자이기는 했다는 거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
이런 부끄러운 흑자도 흑자라고 할 수 있는지. 안희철은 괜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장 많이 가져간 게 얼마였습니까?"
"700만 원 정도 됩니다."
"공장장치고는 그래도 너무 적네요. 급여는 월 1,000만 원씩을 드리죠."
"정말이십니까?"
오늘 내가 정말 귀인을 만난 건가? 안희철은 그간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근심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대신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하수영은 다른 계약서를 내밀었다.
1장으로 된 간단한 계약서였는데, 제목과 내용을 훑어보니 공장 운영에 관한 비밀이나 기술, 재료 등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다는 서약서였다.
'이 정도야.'
별것도 아닌 당연한 요구사항이기에, 안희철은 가벼운 마음으로 서명했다.
"재료 조달은 어떻게 하고 계시죠?"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농가가 몇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사실 농가라고 하기에도 뭣한 수준이지만, 만약 막히면 다른 농가에서 구매하면 됩니다. 구매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고춧가루는 어디서 구매하시죠?"
"10년 넘게 정기적으로 거래한 업체가 있습니다. 직접 고추를 재배하는 곳은 아니고, 농가에서 고춧가루를 사와서 빻아서 만드는 업체입니다."
"고춧가루는 앞으로 구매하지 마세요. 그건 제가 따로 제공하겠습니다."
"예? 아, 알겠습니다."
안희철은 처음에 의아해서 반문했다가 곧바로 수긍했다.
아마도 새 오너가 친하게 지내는 고추 농장이라도 있는 것이리라.
"고춧가루는 내일쯤 도착할 겁니다. 내일부터 바로 김치 생산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공장을 인수하자마자 일을 맡게 되다니. 신임 사장의 추진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문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특제 고춧가루입니다. 가급적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 주시고, 생산 품질에 이상 없도록 유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가문의 비법? 특제 고춧가루?
조금 의아한 단어였지만 안희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까 판매는 신경 쓸 것 없다고 하셨는데, 이미 정해진 판매 루트가 있는 겁니까?"
백화점? 대형할인마트? 온라인 판매?
과연 새 오너는 어느 쪽을 주력으로 삼고 있을까.
"제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납품할 겁니다. 지금 본점과 가맹점 1호, 이렇게 2개 지점이 있어요."
"아, 그러시군요."
안희철은 다소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겨우 레스토랑 2군데에 납품해 봐야 얼마나 팔리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하수영은 그런 표정을 읽고, 최대한 감정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반전 효과를 극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다.
"1호 가맹점 일 매출이 보통 5,000만 원 정도 됩니다."
"……네?"
안희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월 매출이 아니라 일매출이라고 했어? 그럼 한 달이면 30억 원이라고? 레스토랑 가게 하나에서?
"그리고 본점 일 매출이 4억 2천정도 됩니다."
본래는 일일 2억 정도였지만, 지하매장을 확장하고 테이블 회전 속도가 느긋해지면서, 일 매출은 4억 2천 정도가 되었다.
안희철은 뒤로 넘어갈 뻔했다.
대체 어떤 레스토랑이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매출이 나오는 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그런 고급 레스토랑에서 김치가 필요한가요?"
"물론이죠. 원래 라면에는 김치가 필수 아닙니까. 수요량이 엄청날 겁니다."
"네? 라면이라고요?"
안희철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
프라임컴퍼니는 국내 라면 시장의 98% 이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JM 식품에서 제휴로 출시하는 라면까지 모두 포함해서다.
즉 국민 모두가 황비버섯이 듬뿍들어간 인스턴트라면을 저렴한 값에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라면 시장을 제패한 프라임컴퍼니는 본격적으로 식품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물 요리의 끝판왕인 황비버섯을 내세워, 국물 맛이 중요한 식품들부터 공격했다.
"작년 태양심 총매출이 얼마였지?"
"2조 2,000억 정도 됐을 겁니다."
"내년이면 우리는 라면 하나로 태양심 총매출을 넘어설 수 있겠는데."
라면 시장을 장악했다는 게 이렇게 무시무시한 강점이 될 줄이야.
전성렬은 역시 황비버섯으로 라면 시장부터 공략한 게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정 부사장, 우리도 이제 기업 이미지 홍보 같은 걸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업의 사회활동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이제 먹고살 만해졌으니 자부심 좀 부려보자는 건 아니 고요, 그런 쪽에도 투자를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
기업의 자선사업 등 사회 활동은 본질적으로 투자다.
회사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미래의 매출 상승등을 꾀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한 선순환 흐름이 만들어진다.
"아직 우리 회사가 기부금을 수십억씩 내놓기에는 재정이 많이 넘치는 편이 아니니까, 자사 식품을 꾸준히 기부하는 것은 어때요?"
"좋은 생각이에요. 구청이나 주민센터 같은 곳에 라면 박스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대신 이왕 할 거면 규모는 확실하게 하는 게 좋겠어요."
"JM식품에 도시락 제품도 있던데, 그것도 원가에 제공받아서 결식아동들한테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합시다. 일단 처음이니 100명 정도로 시작하는 건 어때요?"
"병행해서 하죠, 그럼."
요즘 들어 JM식품은 정서희가 컨트롤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외부인이면서 동시에 내부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라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적으나마 지분을 차지하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그녀 덕분이라는 사내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정서진 상무는 아직도 유학 고집중이랍니까?"
전성렬이 슬쩍 묻자 정서희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네, 덕분에 아버지가 이만저만 고민이 아닌가 봐요."
"부사장이 은근 불효녀로군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머, 하루빨리 가업 물려받아서 아버지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 밖에 없는 걸요?"
"JM식품을 물려받으면 우리와는 경쟁자가 되는 겁니까?"
"설마요. 프라임컴퍼니 끈이 떨어지면 JM식품은 업계 순위에서 저만치 밀려나게 될걸요? 꽉 잡고 있어야 할 끈이죠."
정서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저는 프라임컴퍼니 3대 주주지만, JM식품에는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아요."
정서희는 궁극적으로 JM식품을 프라임컴퍼니 자회사로 편입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물론 준재벌 기업인 JM식품이 하루아침에 프라임컴퍼니에 흡수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면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참, 하 사장이 충남에서 작은 김치 공장 하나를 이번에 인수했다던데요."
"그래요? 못 들었어요."
"수영레스토랑에서 내놓을 김치를 직접 만들어볼 생각인 것 같아요. 그 특제 고춧가루를 사용해서 김장을 할 모양이더라고요."
"어머, 정말요?"
정서희는 벌써부터 혀끝에 식욕이 고이는 느낌을 받았다.
특제 고춧가루를 뿌려 만든 수영라면은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황홀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맛을 낸다.
그런데 그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를 함께 내놓겠다니.
라면과 김치가 결합하면 어떤 맛의 시너지를 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수영레스토랑 인기가 더 높아지겠는데요."
"이미 테이블 만석이 일상인데, 인기가 더 높아지면 찾는 손님들만 괴롭겠죠."
"가맹점을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수영 레스토랑 정도면 가맹점 내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 텐데 말이에요. 이미 선례도 있고."
"가맹점 오픈 요청은 많은데, 하사장 마음에 드는 친구가 별로 없나 봅니다. 하 사장 성격 알잖아요. 아무한테 함부로 일 안 맡깁니다. 사람 엄청 가려요."
"강남 전 지역에 직영점으로 내서 장사하면 엄청 많이 남을 텐데요. 제가 수영 사장님이라면 그렇게 할 거 같아요."
"직영점을 내면 이익률이야 좋겠지만 신경 쓸 게 많잖아요. 하 사장은 레스토랑 운영이 주업이 아니라서 아마 그렇게까지는 안 할 모양입니다. 부동산업과 농사에 치중할 거라고 예전부터 강조했어요."
하수영이 누누이 말했던 내용들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청담동 건물 수집이 1순위, 농사가 2순위, 음식점 운영이 3순위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자기 소유의 식품회사에 황비버섯을 팔면서도, 경영 자체에는 선을 긋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 수영레스토랑 프랜차이즈 관리하는 회사 하나 만들어서 도와드리는 건 어때요?"
"프랜차이즈 관리 회사?"
"네, 믿을 만한 전문 경영진으로 회사 만들어서 가맹점 모집과 관리 같은 걸 맡기는 거죠. 그렇게 회사 만들어서 드리면 레스토랑 관리하기 편하실 텐데."
"어,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부사장이 나중에 하 사장한테 한번 말해 봐요."
"네, 그럴게요. 그리고 JS칼텍스 지분 맞교환 건은 ……."
회사가 한창 쭉쭉 성장하고 있는 추세라서 그런지 신경 쓸 게 한두개가 아니다.
"아, 그리고 중국에서 황비라면 수입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별로 안 내킵니다. 제 친구들도 과거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꿈을 품고 나섰다가 세월과 돈만 잃고 쫓겨나온 게 대부분이라……."
"그래서 우리가 직접 진출하는 게 아니라, OEM 방식으로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으로 할까 해요. 제품을 넘기고 돈을 받는 걸 한국에서 하면 위험할 게 없죠."
"괜찮은데요. 한번 추진해 봅시다.
그런데 지금 국내 수요 생산량도 간당간당한데, 괜찮을지……."
"공장이야 JM 식품, 아니면 태양심것을 쓰면 돼요. 안 그래도 지금 태양심이 국내 라면생산공장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어요."
"그럼 한 번 인수 의사를 말해 봅시다."
"네. 황비버섯 생산만 지금처럼 꾸준히 이어지면 중국 판매는 아무 문제없을 거예요."
중국에 회사가 직접 진출하는 게 아니라, 중국 도매업체가 한국에 들어와서 제품을 사가는 형식이라면, 중국 정부를 신경 쓰거나 할 필요가 없다.
"황비버섯 생산량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번에 경작지도 크게 늘렸고 자동화 설비도 구축했다고 하니…… 잠시만요. 전화가 왔네요."
부하 직원의 전화에 전성렬은 잠시 양해를 구하고 통화에 응했다.
그런데 전파 너머 목소리는 숨이 넘어갈 듯 다급했다.
-사장님! 여기 서락산인데요! 대박입니다, 대박!
"무슨 대박?"
-산골짜기에서 금덩이가 나왔어요!
"뭐? 산에서 왜 금덩이가 나와?"
-금으로 만든 불상 같은 것들이 땅에 잔뜩 묻혀 있다가 나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