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64화 (164/1,270)

프랜차이즈 갓 164화

40장 새 농장을 찾아보자(1)

설진도는 수영라면을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그는 집 근처에 그런 라면을 파는 가게가 생긴 것을, 올해의 행운으로 주저 없이 손꼽을 정도였다.

퇴근길이면 어김없이 수영레스토랑을 들러서 수영라면을 한 그릇 먹고 귀가한다. 저녁을 먹었는 먹지 않았든 무조건 수영라면을 먹는다.

덕분에 그는 결제앱 프리덤의 VIP 랭킹 12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하루에 한 그릇씩 사먹는 자신이 겨우 121위라면, 100위 안에 든 애들은 대체 어떤 애들인지 궁금할 정도이지만.

'그러고 보니 이름이 같잖아?'

설진도 이사는 그제야 하수영이란 이름과 수영레스토랑이란 상호가 겹친다는 것을 의식했다.

"수영레스토랑이 우리 백화점에 들어올 뻔했다고?"

"네, 김진명 이사님이 추진했던 것으로 압니다. 조건이 맞지 않아서 무산됐지만요."

"뻔하지, 뭐. 수영레스토랑 매출 잘나오니까 매출수수료 방식으로 입점료를 받으려 했을 테고, 수영레스토랑이 뭐 아쉽다고 그런 대우 받아가면서 입점해? 지금도 본점과 가맹점 1호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고 있는데."

설진도가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보고하던 직원이 오히려 조금 당황했다.

이사님, 왜 이렇게 잘 알아요? 하는 표정이다.

"아무튼 지금 청담에 보유하고 있는 건물 가치들만 3,000억 원쯤 된다고 합니다."

"그게 전부 다 올해 산 것들이고?"

"네, 그렇습니다. 자금 출처까지는 아직…"

설진도 이사는 혀를 찼다.

라테그룹은 5대 재벌 안에 들어가는 위상을 자랑하면서도, 기획실의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은 형편없는 편이다.

그래도 한나절 만에 청담동에 3,000억쯤 건물들을 갖고 있고, 수영레스토랑의 오너라는 사실까지는 알아냈다.

"그 친구가 어디 재벌가 아들이라도 돼?"

답답한 마음에 한 말이지만, 설진도 이사 본인이 알고 있었다.

그만한 재력을 가진 재벌가 자제라면 애초에 자신이 전혀 모를 수가 없다. 어떤 식으로든지 접점이 있었을 테니.

'수영레스토랑 오너가 그렇게 엄청난 땅부자였어?'

"내가 다시 연락을…… 아니, 아니지. 그 중개사한테 연락해서 이천억 웃돈 준다고 다시 말해봐."

설진도는 하수영에게 직접 전화를 하려다가 멈췄다.

이미 한 번 천억을 불렀다가 거절당한 판국에,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자신이 다시 전화를 하는 것은 영 모양새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직원들을 시켜서 한 바퀴 돌아가는 게 낫다.

"알겠습니다."

직원은 곧바로 중개사한테 연락을 취했지만, 곧이어 난감하다는 안색을 한 채 찾아왔다. 설진도는 보자마자 일이 틀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거절당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얹어줘도 휴민트타워를 팔 마음은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네, 휴민트타워에 대한 하수영 사장의 애착이 확고하다고 합니다.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래가 아니라고 합니다."

"할 수 없지."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비록 맛있는 라면을 파는 단골가게 사장에게 피해를 입히는 길이지만, 그래도 공은 공 아닌가. 설진도는 냉정한 마음으로 판단을 굳혔다.

"금후그룹에 연락해. 계약 파기하고 우리한테 팔면 9,000억에 사주겠다고, 위약금도 우리가 물어주고."

8,000억짜리 계약이니, 계약금은 800억이다.

금후그룹은 받은 계약금 800억에 자기 돈 800억을 얹어서 1,600억을 돌려주는 것으로 계약파기를 선언할 수 있다.

'금후가 바보도 아닌데, 당연히 받아들이겠지.'

한 푼이라도 아쉬운 금후그룹으로서 당연히 이 거래를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사님, 금후그룹에 연락을 해봤는데 안 된다고 합니다."

"뭐? 안 되긴 뭐가 안 돼?"

설진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 아닌가.

금후그룹으로서는 조금도 손해 없이 9,000억 원에 고스란히 팔 수 있는 조건인데, 그걸 걷어차?

"설마 박정선이 그 친구가 그렇게 말했어? 금후 회장한테 얼마나 조인트를 까이려고?"

위약금 물어주면서까지 9,000억에 사주겠다고 했다. 그런 거래를 걷어차면, 당연히 누구라도 불호령을 내릴 것이다.

"그게 아니라… 이미 중도금을 받은 상황이라서 파기를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계약금만 받은 상황에서는 계약금과 위약금을 물어주는 것으로 언제든지 파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도금을 받은 상황에서는 파기를 할 수 없다. 만약 제3자에게 매도하면 형사범죄가 된다.

물론 이 역시 설진도 이사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지만,

"아니, 계약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중도금을 지불한단 말이야?"

"하수영 사장이 갑자기 연락 와서 중도금 일정 조절한 다음에 입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몇 시간 전입니다. 저희 제안을 받은 직후로 보입니다."

"이거, 설마……."

"저희가 금후 쪽을 흔들까 봐 아무래도 먼저 선수를 친 것 같습니다."

설진도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한 암담함에 휩싸였다.

그는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금후 쪽에 먼저 웃돈을 제시해 볼 것을.

금후 쪽에 먼저 제안을 하지 않은 것은, 같은 웃돈을 주더라도 위약금이 얽혀 있다 보니 더 지출이 크기 때문이다.

몇백억 좀 아끼려고 하수영 쪽에 먼저 웃돈 이야기를 꺼냈다가, 매입가능성 자체가 날아가 버렸다.

***

세계 최고의 석유기업, 안살린 왕자의 국제자원투자회사는 프라임오일컴퍼니가 원유를 필요한 만큼 무상으로 제공한다.

여기에서 필요한 만큼이라 함은, 수출이 아니라 국내에서 소비되는 양에 한해서다. 즉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소비하는 거라면 제한을 두지 않는다.

물론 단순 비축 저장을 목적으로 원유를 청구하는 것은 해당하지 않는다.

"한국의 한 해 원유 소비량은 11억 배럴이니, 이론상 11억 배럴까지 청구할 수 있죠. 우리 회사가 한국시장 점유율이 100%라서 그걸 다 소비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죠."

정서희의 말에 전성렬이 끄덕이며 받았다.

"실제로는 반도 안 되겠군요."

"네, 몇 년 동안은 최대 4억 배럴정도? SC이노베이션이 과반을 점유하고 있으니까요. 그 시장을 뺏어와야죠."

"혜택 제공 기한이 시장 점유율 70%에 도달하는 날까지였나요?"

"네, 그 이후부터는 정상가로 제공을 한다고 했어요. 지하크 씨가 한 말이었죠."

안살린은 골든 트러플 농장의 토양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대신, 국내 정유 시장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유 시장을 준다'라는 말은 모호하다.

때문에 지하크가 대리인으로서 나름대로 그런 기준점을 정한 것이다.

국내 점유율 70%를 차지할 때까지는 원유를 필요한 만큼 무상제공한다는 것.

"아마 안살린 왕자님도 구체적인 조건은 모르실 거예요."

"정유 시장을 갖게 도와줘라, 이렇게 한마디만 지시하면 끝이니까요. 나머지는 밑의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죠."

전성렬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어마어마한 혜택인데, 더 달라고 징징거릴 수도 없죠."

유가를 60불, 한 해 원유 제공량을 4억 배럴로 잡아도, 240억 달러를 거저 받는 셈이나 다름없으니.

물론 안살린 입장에서는 달러가 아니라 남아도는 원유의 극히 일부를 주는 것이므로, 전혀 표시도 나지 않는다.

과수원 주인이 썩기 전에 과일 몇 바구니를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마음 같아서는 평생 점유율 60%대에서 아슬아슬하게 머물러 있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게 하면야 좋지만, 너무 속보이잖아요. 안살린 왕자님이 배포가 크시다고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치사하게 나오면 별로 좋게 보시지 않을 거예요."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 한 번 마음 돌아서면 더 무섭죠. 끝이니까요."

전성렬은 예상 매출 및 이익을 숫자로 접한 뒤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죽어라고 라면 팔아봤자 기름장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요, 정말."

라면 시장은 2조 원을 겨우 넘는 것에 비해, 정유 시장은 일 년에 들어오는 수입 물량만 600억 달러가 넘는다.

"석유가 괜히 현대 산업의 피겠어요. 애초에 라면 하나로는 급이 다르죠. 식료품 시장 전체를 갖다 대면 몰라도요."

프라임오일컴퍼니는 이제 본격적인 정유 시장 진출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대양을 한창 헤엄치고 있는 1차 유조선이 들어오는 대로, 우렁찬 기지개와 함께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지분 매각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JS그룹에 프라임오일컴퍼니 지분 5%를 매각하기로 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분 교환을 제안하던데요?"

"지분 교환?"

"네, JS칼텍스의 지분 5%와 맞바꾸자고 했어요."

"음……."

JS칼텍스의 시가총액은 약 6조 원, 돈으로 환산하면 3,000억 원 정도다.

"우리 프라임오일의 가치를 6조 원정도로 본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높게 쳐준 거예요."

변변찮은 사옥이나 설비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신생업체다.

JS칼텍스가 굴리던 인천정유공장및 관련 설비를 받게 되겠지만, 그래도 기업 가치는 5,000억 원도 넘기 힘들다.

물론 국제자원투자회사가 약속한 혜택의 가치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혜택은 프라임오일컴퍼니에 귀속된 게 아닌, 하수영 본인에게 속한 것이다. 따라서 회사의 가치를 평가할 때에는 제외해야 한다.

"이건 JS칼텍스 측이 너무 손해인 거 아닌가요?"

"우리가 국자투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걸 아니까요. 이참에 선심도 쓰고 지분 관계도 얽히게 되면, 나중에 잘될 거라고 계산을 한 거죠."

"우리 입장은 어떻습니까?"

그 말에 안경을 낀 40대 중반의 재무담당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정서희가 외부에서 초빙한 전문 경영인이었다.

"회사가 계획하는 대계를 생각하면 현금보다는 지분으로 받는 게 낫습니다. JS칼텍스는 엄연히 업계 2위인 기득권 기업입니다. 지분 5%를 얻는 기회가 쉽지 않죠."

대계.

그것은 바로 JS칼텍스를 자연스럽게 흡수한다는 장기전략을 뜻했다.

JS칼텍스에 호의적인 조건으로 손을 잡은 것은 당장 정유 시장에 뛰어든다는 목적도 있지만, 차후 덩치가 커지면 JS칼텍스를 집어삼키겠다는 은밀한 야욕도 있었으니.

JS칼텍스를 흡수하면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더 쉬워진다.

"하 사장님은 뭐라고 하던가요?"

"똑같아요. 우리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세요. 아 참, JS칼텍스에서 받은 돈은 거의 다 썼나 봐요."

"그 많은 돈을 벌써요?"

"휴민트타워라고, 금후그룹이 내놓은 빌딩을 8,000억 원에 사셨대요. 잠깐 통화했었는데 아주 신이 나셔서 어쩔 줄을 모르시더라고요."

전성렬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정유 사업에 제대로 올인하면 청담동 전부를 사버리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텐데."

"피 터지고 살벌한 분야에는 발 딛기 싫으시다니 어쩔 수 없잖아요."

"살벌한 걸로 치면 식품 시장 쪽도 만만치 않잖아요. 이쪽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데. 여기는 무슨 산업스파이 같은 거 없답니까?"

"그래도 총기 소지하는 CIA 요원하고 얽힐 일은 전혀 없지 않느냐고 하시던데요."

"……."

"뭐라더라? 석유 에너지 같은 건 줄기 타고 올라가다 보면 미국 패권과도 연결돼 있어서 결국 에셜론 감청 대상에 올라 피곤해진다고……. 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어요."

"허허, 미국 패권이라니. 거기에 손가락 하나만 살짝 담가 봐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회사가 무럭무럭 커지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전성렬을 비롯한 이들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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