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63화
39장 기꺼이 팔아야지요(4)
라테그룹 설진도 이사는 허망한 소식을 듣고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뭐? 협상 종료라고?"
"네, 금후그룹에서 그렇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니, 다짜고짜 협상 종료라는 게 어디 있어? 박정선 그놈도 우리가 제시한 가격에 만족한 반응을 보였잖아? 설마 뉴월드그룹에서 우리보다 더 큰 액수를 부른 거야?"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뉴월드반응을 살펴봤는데 거기도 휴민트타워 매입 실패 때문에 단념하는 분위기입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5,000억짜리 건물에 1,860억 원이나 프리미엄을 얹어서 가격을 제시했다. 경쟁자가 될 만한 이들에 그런 여유 자금이 없는 것도 사전에 확인했다.
이제 유유자적하게 과실을 취하기만 하면 그만인데, 느닷없이 협상종료라니.
"설마 금후그룹이 이제 와서 휴민트타워를 팔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꾸기라도 한 거야? 회장이 노망이라도 났대?"
"그건 아니고, 우리 말고 다른 곳에 매각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우리도 아니고 뉴월드도 아니면, 대체 어디에 판다고?"
"청담에서 알아주는 부동산 큰손이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모아서 사모펀드를 만든 모양입니다. 거기에로 한 것 같습니다."
"청담 부동산 큰손?"
설진도 이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도 강남에서 알아주는 개인 큰손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매물 확보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아트락 타운 부지 같은 경우만 봐도 그렇다. 뉴월드그룹이 사전에 매입을 하지 않았다면, 개인 투자자들 집단에 부지가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때 모인 돈이 거의 1조 원 가까이 되었다고 들었으니.
하지만…….
"아트락 타운 사기 사건 때문에 강남 큰손들은 당분간 휘청거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사기꾼이 먹고 튄 돈만 7,000억이 넘는다고 들은 거 같은데."
"……."
직원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 정확한 사실을 알아내진 못하고, 그저 시중에 떠도는 소문만 취합한 모양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휴민트타워를 우리 그룹이 손에 넣어야 해. 빨리 그 부동산 큰손이 누군지 알아내!
그래야 이야기를 하든 뭘 하든 할 거 아니야!"
"네, 이사님!"
직원은 얼른 대답하고는 부리나케이사실을 빠져나갔다.
설진도 이사는 책상을 응시하다가 빈 종이를 힘껏 꾸기듯이 손에 쥐었다.
'휴민트타워는 반드시 차지해야 해.'
매입가로 6,860억 원을 불렀지만, 라테그룹은 얼마가 됐든 휴민트타워를 매입할 생각이었다. 프리미엄을 그만큼만 얹은 것은 경쟁사인 뉴월드그룹의 자금 여력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천억 정도 더 준다고 하면 그 큰 손이라는 사람도 우리한테 넘기고 물러날 거야.'
처음부터 6,860억 원이 아닌 7,860억 원에 사는 거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중간에 낚아챈 청담동 큰손이라는 양반도 결국에는 이익 때문에 뛰어든 것이니, 1,000억의 즉시이익을 보전하면 두말하지 않고 거래를 넘길 것이다.
'이래서 진작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는데.'
설진도는 괜히 헛돈 1,000억만 날리게 생겼다고 속으로 아쉬워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휴민트타워를 뺏긴다는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뭘요, 이게 전부 다 중개사님이 발 벗고 뛰어다녀주신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우형신은 이번 거래로 중개수수료 3,000만 원을 받는다.
수수료율을 0.1%로 하되 3,000만 원을 상한 금액으로 협의했기 때문이다. 즉 1건당 받을 수 있는 최고 금액이 3,000만이라는 소리다.
하수영이 수집하다시피 부동산을 사들이기 때문에 우형신으로서는 그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게 이익이었다. 아니,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VIP였다.
"이번 거래는 제가 한 게 거의 없는데 이 돈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대서료 몇만 원 정도만 받아야 할 거 같은데요."
"평소에 부동산 정보 많이 물어오시잖아요. 저도 중개사님 아니었으면 이런 매물이 나온 줄도 몰랐을 겁니다. 나름대로 시장 체크한다고 하지만 포털사이트에는 이런 매물은 안 올라오니까요."
애초에 지금까지 하수영이 수집한 매물의 대부분은 우형신이 아니었음 간발의 차이로 다른 사람에게 뺏겼을 것들이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청담동 말고 다른 지역에는 관심이 전혀 없으신가요? 강남구에 청담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삼성동에도 좋은 매물이 많습니다."
"그냥 이번 생은 청담동에 꽂혀서요. 다음 생에 꽂히면 한 번 생각해 볼게요."
"허허, 청담에 뭐가 그렇게 꽂히셨을까."
"청담의 모든 상가를 내 소유로 만들고 1층에는 전부 내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내는 인생을 한 번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지금 그 꿈을 차근차근 이뤄 나가는 중입니다."
영웅, 독재자, 패왕, 암군, 명군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인생을 겪어봤다.
무한한 삶을 윤회하는 하수영에게 있어 중요한 삶의 가치는 '무엇'에 꽂혔느냐로 결정된다.
최근 3만 년 정도는 워낙 피투성이 늪을 거쳐 왔기에, 이번 생은 느긋한 은퇴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못해도 천 년 정도는 내 영혼에 평안을 심어줘야지. 아귀다툼 같은 것에 잘못 얽혔다가 폭주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단 말이야. 안 그래도 하필이면 고대 주신을 양아버지로 만나서 골치 아픈데.'
"50억도 없으시다고 하셔서 이번 거래는 그냥 물 건너가는 줄 알았는 데, 하루아침에 8,000억이나 되는 돈을 만들어내셨네요."
"아, 회사 지분 좀 팔았습니다."
정확히는 프라임오일 지분 5%를 팔기로 했고, 지분 매각을 조건으로 1조 원어치 원유 대금을 먼저 받기로 한 것이지만.
"네? 회사 지분을 파셨다고요?"
우형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하수영이 크게 농사를 짓는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회사 지분을 팔았다니?
'회사가 대체 얼마짜리이기에 지분을 팔았다고 8,000억 원이 생겨?'
설마 회사를 송두리째 팔았다는 말일까? 8,000억짜리 회사를? 겨우 청담동 건물 하나 사자고?
"원래 별로 내키지 않는 업종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지분 조금 팔았어요."
"조, 조금이요?"
송두리째 팔았다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면 부분 매각?
진짜 회사 가치가 어느 정도이기에?
"저는 좀 더 팔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면 동업자가 울 거 같아서 그냥 경영권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팔았어요. 아깝죠. 자금 경색 핑계 대고 '그 업종'에서 발을 뺄절호의 기회였는데."
앞으로 정서희는 악마들이 가득한 험난한 정유 시장에서 얼마나 피폐해질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면 하수영은 절로 애도하는 마음이 생겼다.
***
계약을 하고 이틀이 지났다.
하수영은 전혀 모르는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혹시 하수영 사장님 되십니까?
저는 라테건설의 설진도라고 합니다.
'또 라테야? 요즘 들어 라테그룹하고 왜 이렇게 자주 얽히는지 모르겠네.'
저번에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라테백화점에 수영레스토랑을 입점시키려 했던 것도 그렇고 말이다.
"네,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이번에 금후그룹과 청담동 휴민트타워 매매 계약을 맺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맞습니다. 이틀 전에 계약했는데요."
-그것 때문에 햇살부동산 중개사님과 따로 연락을 했는데요, 아무래도 중개사님이 하수영 사장님께 제대로 상황 전달을 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상황 전달이요?"
-혹시 중개사로부터 저희가 연락을 했다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아뇨, 그런 말은 못 들었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희미한 웃음기가 섞였다. 그거 봐라, 내 말이 맞지? 라는 느낌이 흠뻑 묻어나는 음색이다.
-역시 중개사가 중간에서 말을 숨긴 게 맞는 거 같군요.
"숨기다니요? 뭘요?"
-저희가 중개사님을 통해서 제안을 넣었습니다. 사장님께서 휴민트타워를 구매하기로 한 가격보다 무조건 1,000억 원 이상 얹어서 사겠다고요.
"……."
-사장님은 앉은 자리에서 1,000억원의 투자 이익을 실현하시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중개사가 숨긴 것 같네요.
은근히 중개사에 대한 불신을 심어 주려는 의도가 또렷하게 보이는 뉘앙스였다.
"숨긴 건 아니고, 아마 말할 필요를 못 느껴서 그랬던 것 같네요."
-네?
"우형신 사장님은 제 뜻을 누구보다 잘 아시거든요. 그래서 굳이 저한테 전달하지 않은 것 같네요."
-그, 그게 무슨…….
"천억이든 이천억이든 얼마를 얹어 줘도 제가 휴민트타워를 되팔 리가 없다는 걸 잘 아시는 분이죠."
-예?
설진도의 목소리에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깔렸다.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할지 훤히 보인 하수영은 피식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괜히 불필요한 힘 빼지 않게 해드릴게요. 전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14호기, 아니, 휴민트타워를 팔 마음이 없습니다. 한 번 제 등기부에 입적한 아이들은 절대로 파양하지 않을 겁니다."
-사장님.
"지금 돈 더 받으려고 버티는 거 아니니까 불필요한 심력 소모 마시고 다른 매물이나 찾아보세요. 전 휴민트타워 안 팝니다."
하수영은 통화를 종료했다.
설진도 이사는 황당해서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목소리가 젊은 걸 보면 자수성가는 아니고, 아마 선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아니, 천억을 챙겨준다는데 그걸 마다해? 이거 수작 부리는 거 아니야?"
처음부터 너무 크게 질러서 역효과가 난 건가?
욕심이 많으면 그럴 수도 있다.
이쪽이 먼저 천억의 프리미엄을 불렀으니, 조금만 버티면 금액이 더 올라가겠다 싶은 심리.
설진도 이사는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6,860억을 불렀는데 금후가 마다했지. 그럼 대충 7,000억쯤에 거래를 했을 테고, 거기에 천억을 더 얹어줘도 우리가 벌써 8,000억을 지출해야 하는데…… 허참.'
오너 일가는 부동산 투자에 유난히 집착하는 편이다.
만약 휴민트타워 매입에 실패하면 얼마나 큰 질책을 받을지, 설진도 이사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사님, 금후 쪽에서 정보가 나왔는데요. 우리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7,000억쯤에 팔았을 거라고 추정했잖아요. 그런데 8,000억원에 팔기로 했다네요. 밀고 당기고 없이 부르자마자 바로 콜했고, 그 자리에서 계약서 썼답니다."
"뭐? 8,000억?"
설진도 이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랐다.
거래 금액이 8,000억이라면, 1,000억의 웃돈을 얹어주면 9,000억이 된다. 본래 6,860억을 생각했던 그룹입장에서는 2,000억 넘는 추가 지출이 나가게 생겼다.
아니, 그것도 1,000억의 프리미엄으로 되살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지금 상대는 1,000억 가지고는 눈도 꼼짝 않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하수영이라는 큰손이 다른 개인투자자들 모아서 뛰어든 거라고 생각했잖아요? 그것도 아닌 거 같아요. 말 들어보니 하수영이라는 큰손이 다른 동업자 없이 개인 돈으로 뛰어든 거 같던데요?"
"뭐? 개인 돈?"
들을수록 태산이다.
설진도 이사는 답답한 마음에 직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빨리 나가서 하수영 그 친구에 관해서 뭐든지 알아봐! 사소한 거 하나라도 좋으니 어서!"
"네, 이사님!"
설진도 이사는 초조한 마음으로 직원들의 보고를 기다렸다.
오후가 되자 직원 한 명이 정리가 된 보고서를 들고 이사실을 찾아왔다.
"나이는 스무 살, 청담동에만 10채가 넘는 건물을 갖고 있습니다. 전부 올해 구입한 것들입니다. 자금출처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고요, 다만 우리 그룹과도 한 번 얽힐 뻔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그룹과? 어떻게?"
"라테백화점에 입주시키려고 한 수영레스토랑 오너랍니다."
"수영라면 사장이라고?"
설진도 이사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단골가게 사장이었단 말이야?'
설진도 이사는 프리덤 결제앱 VIP 랭킹에도 오른 수영라면의 단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