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60화
39장 기꺼이 팔아야지요(1)
김전후 상무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2대 주주인 하수영의 지분이 단숨에 85%가 되다니.
"증자 같은 거 일절 없이, 그냥 전 성렬이가 하수영이한테 지분을 넘긴 거라고?"
"예, 그렇습니다. 무상으로 넘긴 거 같은데, 사전에 이미 약속이 되어 있던 것 같습니다."
상장기업이 아니다 보니 구체적인 내부 사정을 조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까다로웠다.
"그럼 하수영 85%, 전성렬 10%, 정서희 5%, 이렇게 된 거야?"
"예, 상무님."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정서희한테 지분을 넘긴 거라면 몰라도, 왜 하수영이한테 지분을 넘겨?"
마케미야는 정서희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했다. 김전후 상무가 파악한 바로는 마케미야가 회사의 가장 큰 투자자였다.
"거긴 대체 어떻게 돼먹은 회사야?"
하수영은 회사 창업 과정에서 돈을 거의 대지 않았다.
초기자본은 전성렬과 정서희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하수영이 46%의 지분을 가진 것은, 라면 생산에 필요한 황비버섯 공급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황비버섯의 가치를 46%가 아니라 85%라고 책정했다는 건데.'
프라임컴퍼니는 사실상 하수영 소유?
지금까지는 그저 지분을 분산해 놓은 것일 뿐?
전성렬과 정서희는 사실상 지분이 조금 있는 월급 사장?
김전후 상무는 머릿속이 빙글빙글돌았다.
"하수영이가 하는 임대업, 그거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되지?"
"상가 전부 합치면 시가가 적어도 천억 이상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전후는 빠르게 사고회로를 돌렸다.
하수영의 보유 자산은 4,500억 원이상으로 추정된다. 그중 건물을 구매하고 남은 현금이 얼마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래도 천억대 이상일 것이다.
이번에 하수영은 대출 상환을 위해서 천억을 썼다. 그리고 지분이 85%로 조정되었다.
전이야 어쨌든, 지금 상황은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프라임컴퍼니의 오너는 하수영이다.
그리고 그는 천억대 이상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망했어…….'
온갖 외부 방해로 자금 경색을 일으켜서 회사 지분을 먹겠다는 전략은 깔끔하게 틀렸다.
***
"그래요? 그냥 이대로 끝나나 싶었는데 결국 항소했네요."
-가집행 들어가니 놀라서 항소한 겁니다.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이 다 털리게 생겼으니까요.
"항소심에서도 문제는 없겠죠?"
-다툼의 여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황이나 증거가 완벽해서요. 배상금이 조정될 순 있겠지만, 일단 2심은 최대한 길게 끌고 갈 생각입니다. 그래야 피고가 받는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게 되니까요.
"2심도 잘 부탁합니다."
하수영은 박호진 변호사와 전화를 끝내고, 다시 시스템 세팅 작업에 열중했다.
슈퍼컴퓨터 설치는 이제 끝났고, 네트워크망 안정화 작업도 완료되었다.
"소프트웨어만 조금 손보고 통합하면 이제 다 끝나겠구나."
하수영은 하는 김에 프리덤 인공지능도 슈퍼컴퓨터에 완전히 통합시켰다.
그가 구축한 중앙농업시스템은 모든 농장과 로봇 등 농업설비, 그리고 수영레스토랑 등에 촘촘하게 연결되었다.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과도 마스터권한으로 연동시켜, 언제 어디서든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구축했다.
"어휴, 정말 힘들었다. 뭐 제대로 된 부품도 없는 환경에서 메인관리 시스템 구축하려니 뼈가 삭는 거 같네."
마침내 모든 작업을 마친 하수영은 손을 툭툭 털고는 다리를 뻗고 누웠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그래도 이런 건 한 번 갖춰 놓으면 두고두고 편하니까. 앞으로는 시스템 확장만 잘해주면 되겠지."
버섯 재배 및 채취, 고추 재배 및 빻는 작업, 수영레스토랑 본점과 가맹점 관리까지, 하수영이 보유한 모든 '농장'을 일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예상 생산량 시뮬레이션이나 한번 뽑아 볼까?"
하수영은 내친김에 예측 작업을 실행했다.
조립된 슈퍼컴퓨터는 에어컨의 냉기를 듬뿍 쐬어 가면서 계산을 실행했다.
"흠, 지금 황비버섯 생산량으로 미국에 진출하는 것은 아직 무리군. 미국에 황비버섯라면만 수출하려 해도 적어도 스무 배 이상 경작지를 늘려야 하네."
하수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팟디에 황비버섯 미국 독점수입권을 주는 건 어림도 없네. 어차피 생버섯 수출은 천천히 진행해야 하지만."
미국 라면 시장을 선점하기 전에는 생버섯 수출을 최대한 삼가거나, 혹은 가격을 올려 받아야 한다.
"근데 미국은 독과점에 너무 엄격해서 문제란 말이야. 우리 라면이 미국 시장을 다 쓸어버려도 연방 정부에서 제지가 들어오면 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적당히 5, 60% 정도만 먹는 것에서 그쳐야 할지 모른다. 아니, 외국기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50%의 점유율도 미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라면에 들어가는 황비버섯을 다른라면 회사에도 공평한 가격으로 공급하라고 강제 조정이 들어올 수도 있고."
경기도 공장이 완공되면 이제 슬슬라면 수출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회사의 경영적인 문제는 자신의 역할이 아니지만, 농장을 원활히 운영해야 회사가 장사하는 데 지장이 없다.
그리고 농장 관리는 엄연히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고춧가루는 ……."
하수영은 예상 고춧가루 생산량을 확인한 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이 정도 양이면 수영라면을 하루에 20만 그릇 정도는 꾸준히 팔 수 있겠네."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서인지 확실히 자신이 손으로 할 때보다는 생산량이 대폭 늘었다. 만약 강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투입했을 때의 기대치보다는 훨씬 적은 편이지만.
"20만 그릇이라…… 본점 확장 마치면 대충 하루에 2만 그릇 판다 치고, 가맹점 1호에서 하루에 1,500그릇씩 팔고 있으니까, 가맹점을 대충 12호까지는 낼 수 있겠네."
하수영은 아쉬운 듯이 중얼거렸다.
"이거 가지고 김치 제조 유통은 아직 어림도 없겠는데."
라면을 팔아서 번 돈은 부품 및 슈퍼컴퓨터 구매, 로봇 조립 등에 이미 다 썼다. 이 이상 설비에 투자하는 것은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다.
"서락산은 버섯류 재배에만 집중하도록 하고…… 이제 슬슬 농지를 확장해야겠어."
서락산은 사실 그다지 큰 편이 아니다.
엘릭서의 효과가 워낙 좋아서 그 좁은 경작지에서 많은 수확량을 거둘 수 있을 뿐이다.
고도가 낮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산이기 때문에 고추 같은 작물을 키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애초에 버섯류를 재배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니.
이제는 평탄한 농지를 구입해야 할 때다.
"곡물류는 오히려 무인화하기가 쉽잖아. 기존에 있는 농기계를 메인관리시스템에 연동만 시켜주면 되니까."
곡물류는 트랙터, 콤바인 등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채취해서 탈곡하는 모든 작업에 대형 농기계가 들어간다.
당연히 그 농기계에 카메라와 제어장치를 달아 무인으로 조종하면, 사람을 쓰지 않고서도 농장을 손쉽게 운영할 수 있다.
오히려 버섯이나 고추보다는 자동화 작업이 훨씬 간단하고 깔끔한 편이다.
"생각난 김에 바로 전화해야겠다."
하수영은 서울에 있는 우형신 중개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햇살부동산입니다.
"네, 하수영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농지를 구매하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노, 농지요?
우형신은 조금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청담동에 터를 잡고 주로 강남 지역의 상가 빌딩이나 주택 같은 것만 거래해 온 사람이다. 농지는 당연히 취급을 해본적이 없다.
-혹시 서울 근교에 주말농장 같은 것을 만들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제 본업을 생각해 주세요. 진지하게 농사지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농사라면, 어떤 작물을 생각하시는데요?
"작물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평평하고 널찍한 논밭을 생각하고 있어요. 버섯류야 애초에 산에서 키워야 하지만, 평지 논밭에서 키워야 하는 것들도 있잖아요."
-농지는 제가 취급해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한 번 힘써서 알아보겠습니다. 위치는 아무래도 서락읍에서 가까운 편이 좋겠죠?
"네, 김포 같은 곳은 안 됩니다. 청담에서 완전히 반대쪽이잖아요. 서락읍에서 김포 왔다 갔다 하려면 왕복만 5, 6시간은 걸리겠네요."
-알겠습니다. 면적은 어느 정도나 생각하시나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어차피 농지는 그렇게 비싸지도 않을 텐데요."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하수영은 전화를 끊은 뒤 생각을 정리했다.
"평탄한 농지를 구매하면 고추밭을 거기로 이전해야겠어. 서락산은 완전히 버섯만 재배하는 곳으로 남겨야지."
사실 송이는 황비버섯이든 골든 트러플이든, 평지에서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세상의 의심을 받게 된다. 애초에 서락산을 구매한 것 자체가 그런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버섯류는 계속 서락산에서, 그리고 고추나 곡물 같은 것은 평지 논밭에서.
"서락산 전체를 버섯 농장으로 경작하면 해외 수출 물량까지는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거야. 어차피 골든 트러플 경작지는 지금에서 더 늘릴 필요는 없으니까. 송이 경작지는 조금 더 늘리는 게 좋을 거 같고."
서락산 농장 상태를 확인하며, 앞으로의 농사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어느 정도 구상을 마쳤을 때, 정서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하수영입니다."
-수영 사장님, S은행 대출 회수 조치 말인데요. 어디인지 알아냈어요.
"그래요?"
-네, 변호사님이 금감원 내부 지인 통해서 겨우 알아낸 건데요, 서해그룹에서 움직인 거 같아요.
"정확히 서해그룹 어디인가요? 회장이 직접 지시를 하진 않았을 거잖아요."
-서해물산이에요. 그룹 회장의 차남이 맡고 있는 회사죠.
"흐응, 서해물산이라……."
-차기 회장이 될 가능성은 적은 사람이에요. 서해그룹은 장남중심주의가 확실하거든요. 그래서 알짜배기 중견 기업 사냥 같은 사세 확장에 열을 올리는 사람인데, 우리 회사가 이번에 맛있어 보였나 봐요.
"그럼 S은행에서 0.19%에 대출을 해준 것도 서해물산이 꾸민 짓이었나요?"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근데 우리가 빚을 갚았으니 이제 아무 문제 없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부실대출 문제로 저나 전성렬 사장님이 몇 번 금감원을 들락거려야 할 거 같아요. 금감원에서 확인할 게 있다고 출석시킬 모양인가 봐요.
"저런, 고생 좀 하시겠습니다."
-괜찮아요. 겪어야 할 일인 걸요.
정서희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반응했다.
-정유 사업도 곧 궤도에 오를 거예요. 약 2주 뒤면 유조선이 우리나라를 향해 출발해요.
"그렇군요. 정유 사업도 부디 잘되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하수영은 별로 혼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너지 사업 같은, 권력자들의 이해다툼이 잦은 레드오션은 편안한 요양을 추구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네,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하수영은 우형신 중개사로부터 온 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급히 연락을 달라는 내용에, 그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하수영입니다. 제가 부탁드린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적당한 농지를 찾으셨나 봐요?"
-하 사장님! 대박 매물이 나왔습니다! 청담 휴민트타워 아시죠? 저번에 뉴월드그룹이 가로챈 아트락부지 대로 맞은편에 있는 큰 빌딩이요! 그게 지금 매물로 나왔어요!
"네? 정말이요?"
-지금 청담 부동산 큰손들 난리가 났습니다! 아트락 부지 때보다 열기가 더해요!
하수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큰일이네요. 저 지금 50억도 없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