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59화
38장 주식은 맛있다(3)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처음 실패 사실을 보고받은 이석두사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고개를 깊이 숙인 김전후 전무를 노려보듯이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왜 실패했는데?"
"프라임컴퍼니가 2,000억 원을 즉시상환 해버렸습니다."
"여유 자금이 천억도 채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대체 어디서 돈이 생겨서 그 돈을 다 갚은 건가?"
상황 작전은 프라임컴퍼니의 자금상황을 철저히 조사한 후에 실행되었다.
S은행을 비롯한 시중 대형 은행에도 은밀히 자신의 뜻을 전달해서, 프라임컴퍼니가 돈을 빌릴 수 있는 루트를 원천 봉쇄했다.
결국 '전성렬 사장'이 시도할 수 있는 건, 자신이 보유한 49%의 지분의 일부를 매각하는 것뿐이다. 담보로 잡고 돈을 빌릴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으니.
현재 프라임컴퍼니의 잠정가치는 약 1조 5,000억 원에서 1조 8,000억 원 사이.
전성렬은 49%의 지분 중 최소 14% 이상은 팔아야 2,000억 원을 조달할 수 있다.
그때 서해물산이 당당히 나서서 14%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이후, 하수영을 설득해서 회사 경영권을 차지하면 그만이다.
46%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는 회사 경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 14%의 지분만으로도 프라임컴퍼니를 휘두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수영도 프라임컴퍼니가 서해그룹의 자회사로 편입해서 우뚝 서는 것을 더 원할 테니까.
일단 경영권만 차지하면 지분 조정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진행하면 된다. 궁극적으로는 지분 51% 이상을 확보해, 완전한 서해물산의 자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서해물산이 기획한 시나리오였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천억도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설마 우리 회사 정보팀이 조사를 잘못한 건가?"
"그건 아닙니다."
"그럼 그놈들이 명동 큰손들한테 무릎 꿇고 사채라도 썼어?"
명동에서 수백억, 수천억 이상의 현금을 굴리는 사채 큰손들.
비싼 이자를 감당해야 하지만 급할 때 거액의 돈을 조달할 수 있어 기업들이 주로 거래한다.
하지만 프라임컴퍼니에 그들과 연결될 만한 인맥이 있을까?
"하수영 사장이 천억 이상 빌려줬습니다."
"뭐? 아니, 그 친구가 왜?"
이석두는 이해가 안 갔다.
하수영은 46%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다. 물론 골든 트러플을 많아서 가진 현금은 많지만, 경영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아무리 동업자라고 하지만, 자신이 하수영이라면 사재를 써서 회사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일을 기회 삼아 회사 지분을 더 늘리면 늘렸지.
장사 잘되는 회사의 지분은 가능한 많이 확보하는 게 투자의 정석 아닌가. 아무리 경영에는 관심이 없다고 해도.
"하수영 사장과 전성렬 사장의 친분이 생각 이상으로 돈독한 모양입니다. 하수영 사장이 회사에 천억이상 급전을 빌려줬고, 회사는 여유자금과 그 돈을 합쳐서 빚을 상환했습니다."
"……."
이석두는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김 상무, 자네라면 그럴 수 있겠나?"
김전후 상무는 다행히 이석두 사장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안 합니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 지금 프라임컴퍼니는 황비버섯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하수영 그 친구는 그 중요한 버섯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동업을 했는데, 지분은 겨우 46%밖에 받지 못했어."
당연히 하수영이 불만을 품어야 정상인 상황이다.
그리고 보통 동업은 이런 이익 분배에서 오는 갈등으로 쉽게 깨지기 마련이다.
"처음에야 몰라서 넘어갔다지만, 라면 업계 1위가 된 지금은 억울하고 손해 본 기분이 들어야 정상이야. 아무리 경영에 관심이 없어도 그게 사람이라고, 그런데 지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자기 돈까지 써서 날린다고?"
전성렬이 하수영을 구슬린 솜씨가 보통이 아니거나, 하수영이 물욕이 없는 호구이거나.
하지만 청담동에서 빌딩 수집 및 임대사업에 열중인 걸 보면 물욕이 없는 호구 같지는 않다.
"하수영과 전성렬, 두 사람 사이를 제대로 조사해 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뭔가가 있을 거야. 그걸 알아내기 전에는 프라임컴퍼니를 손에 넣는 건 불가능해."
"알겠습니다, 사장님."
다행히 이석두 사장이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자, 김전후 상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장실을 나선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문득 앞날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임컴퍼니를 어떻게 차지한다고…'
아무리 서해그룹이 막강해도 멀쩡히 잘 영업하고 있는 큰 회사를 하루아침에 뺏는 것은 매우 어렵다.
때문에 S은행을 움직여서 2,000억의 부실대출을 실행하고, 타이밍을 노려 상환 조치를 취함으로써 자금경색에 빠뜨린다는 구상을 세운 것이다.
그게 무산이 되었으니, 이제 프라임컴퍼니를 흔든다는 것은 웬만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해졌다.
***
"이제 지분 조정을 해야 될 것 같네. 아니, 사실은 때가 한참 지났지."
변호사를 대동하고 서락산을 찾아온 전성렬이 진지하게 말했다. 마침 정서희도 함께였다.
"누적 이익이 벌써 390억이 넘었나 보네요."
"넘은 지가 오래지. 그동안 워낙 정신이 없어서 바빴어. 이제는 지분정리를 해야지."
"그래도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지분 조정을 하게 되다니, 사장님 입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하시겠습니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당연히 기뻐해야 하는 일 아닌가? 지분 조정은 어차피 때가 되면 해야 할 일이었어. 그때가 이렇게 빨리 찾아왔다는 건 그만큼 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의미잖나."
전성렬은 49%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누적 이익이 10억을 돌파할 때마다 하수영에게 지분 1%씩을 넘기되, 최종적으로는 10%의 지분을 가지게 된다. 처음 창업할 때 맺은 계약이다.
프라임컴퍼니 자체가 하수영이 저가로 공급하는 황비버섯에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익 배당을 먼저 하고 나서 지분 조정을 할까요? 그동안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서는 49%만큼의 권리가 있으시잖아요."
"지금 우리가 배당을 할 돈이 어디 있다고,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빚갚는데 다 썼는데."
"그 돈이 어디 증발한 건 아니죠. 결과적으로는 경기도 공장 확장하는 투자금으로 쓰인 거니까요."
하수영은 선심을 쓴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원래 누적 이익이 390억이 되면 배당 정산 한번 하고 지분 조정을 하기로 했잖아요?"
"그렇긴 한데 지금 회사 사정상……."
"두 분이 49%, 5%씩 지분을 갖고 있으니, 390억에 대한 49%, 5%의 권리가 있다 치고, 191억 1,000만 원과 19억 5,000만 원의 특별 보너스를 받는 것으로요. 배당을 했다 치고 그렇게 대체합시다."
전성렬이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게 하면 우리야 좋지. 그런데 하 사장, 자네가 너무 손해 아닌가?"
"저야 이제 지분 85%를 가진 완전체 오너가 되는 건데요. 열심히 일한 경영진에게 월급을 잘 챙겨줘야 더 의욕이 나서 부지런히 일을 할 거 아닙니까."
"자네 인심 후한 거야 알지. 성렬유통 전 직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보다 열 배는 낫다며 다들 싱글벙글하더만."
"사람 났고 돈 났지 돈 났고 사람 난 게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어서요. 아무튼 배당 건은 그렇게 처리해요."
지분은 85:10:5로 조정하되, 전성렬은 191.1억, 정서희는 19.5억의 특별 보너스를 받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하수영과 전성렬은 그 자리에서 변호사의 도움 아래 지분양도거래를 맺었다.
"1위 라면회사의 지분 85%를 가진 느낌은 어떤가? 난 겪어보질 못해서 상상도 안 되는군."
"주식은 아주 맛있습니다. 그걸 알게 되죠."
"10%만 먹어도 이렇게 맛있는데, 85%면 대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네. 아무튼 속이 시원하구만.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지분 조정 목표를 달성했으니 말이야."
"200억 가까이 생기셨는데 그 돈으로 이제 뭐 하실 겁니까?"
"일단 빚부터 갚아야지. 프라임컴퍼니 세울 때 내가 빚진 게 꽤 되거든. 한 60억 정도?"
전성렬은 창업자금으로 100억 원을 댔고, 그중에 과반은 외부에서 끌어온 돈이었다.
"월급도 얼마 안 되시는데 그걸로 이자 갚느라고 그동안 허리가 많이 휘청거리셨겠습니다."
"처음 3년은 이자 납입을 유예해 주는 조건이어서 괜찮네. 물론 면제해 주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몰아서 갚아야 하지만."
거액의 보너스를 쥐게 된 전성렬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오늘 집에 가면 마누라 앞에서 어깨 좀 펼 수 있겠어."
"사모님 차나 한 대 사주시죠. 저번에 보니까 차가 좀 작은 거 같더라고요."
"운전도 잘 못하는데, 크고 좋은 차를 타면 뭐 하나."
"운전을 잘 못하시니까 더욱 크고 좋은 타를 타야 사고에서 안전하죠."
전성렬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이 끄덕였다.
"하 사장 말이 옳아. 그렇게 해야겠어."
전성렬은 성렬유통을 운영하던 당시에도 꽤 잘 살던 개인사업자였다.
연 매출 90억 정도 찍어가며, 강남에 중형 아파트도 마련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프라임컴퍼니의 라면 사업이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사회적 신분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서 버렸다.
매출 90억짜리 유통업체 사장과 연매출 2조 원 이상의 식품회사 대표이사는 사회적 인식 자체가 전혀 다르다.
정서희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수영 사장님, 그럼 경영진 월급도 이번에 인상해 주시면 안 되나요?"
하수영은 망설임 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안 돼요."
"칫, 타이밍 좋았는데 안 먹히네요. 아쉬워요."
"기본급은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어차피 내년부터는 배당금 받으실 건데요."
***
이석두 사장 앞에서 제대로 망신살을 뻗친 김전후 상무는 다시금 철저히 조사에 나섰다.
이번에는 프라임컴퍼니의 회사 운영 방침보다는, 전성렬과 하수영의 개인적인 관계에 집중했다.
둘이 동업을 시작한 게 올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전에는 서로 전혀 접점이 없었다는 것 역시.
처음 하수영이 전성렬을 통해 송이 버섯을 유통하면서부터 둘의 인연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가 하수영이 황비버섯 재배단가 인하에 성공했고, 전성렬이 그를 꼬드겨 라면 회사를 세웠다.
전성렬은 투자금을 댔고, 하수영은 버섯 공급을, 그리고 후발투자자로 정서희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서로 안 지 얼마나 됐다고 하수영이가 전성렬이를 도와준 거지? 가만히 있었으면 자기 지분을 50% 이상 과반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는 데……."
"전성렬 사장이 딸이 둘 있다고 하던데, 혹시 예비장인사위 사이인 건 아닐까요?"
"음……."
부하 직원의 말도 안 되는 추측까지도 진지하게 고찰할 정도로, 도무지 잡히는 단서가 없었다.
냉철한 사업가 마인드로만 들여다 보고 있으니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대체 하수영은 왜 그렇게 전성렬을 위해 호구처럼 퍼주기만 하는가?
그때 어느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상무님, 프라임컴퍼니 지분 구조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뭐? 설마 외부 투자라도 받은 거야? 아니면 상장 준비?"
"전성렬 사장이 하수영 주주한테 자기 지분 49% 중 39%를 양도했습니다. 이제 하수영 사장이 85%의 최대 주주입니다!"
"뭐?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