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57화 (157/1,270)

프랜차이즈 갓 157화

38장 주식은 맛있다(1)

'김치 제조 공장?'

하수영은 잠시 동안 살짝 얼이 빠져 있었다.

그만큼 길태수의 지적은 그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맞아! 김치 시장도 엄청나게 큰데, 한류니 뭐니 하면서 해외에도 엄청나게 수출하는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전혀 못 했을까?'

어차피 엘릭서 고춧가루가 부족한 까닭에, 당장은 김치 유통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고춧가루 부족과는 별개로, 그런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못한 게 하수영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음식 사업을 크게 하겠다고 포부를 품을 때는 언제고, 그런 당연한 발상을 아예 떠올리지도 못하다니. 수영아, 너도 아직 한참 멀었구나.'

"저…… 사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하수영이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이 없자, 길태수는 뭔가 잘못 되었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좋은 지적이었어요. 김치 제조 유통업이라……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아직 양이 적어서 그렇겠지요. 정말 진지하게 시판 고려해보세요. 이런 김치가 시중에 유통된다면 무조건 대박입니다. 다른 김치들은 전혀 상대가 안 되겠어요."

"핵심 재료가 아직은 대량 생산이 안 돼요. 하지만 한 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김치 유통업이라…….

'이거 빨리 고춧가루 대량생산 플랫폼 만들어야겠는데.'

김치 공장을 생각하니 하수영은 마음이 급해졌다.

***

고추 대량생산을 위해서 주문을 한 부품과 기계들이 마침내 모두 도착했다.

고추를 인공적으로 말리는 기계, 빻아서 가루로 만드는 기계는 기존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하수영은 시스템적으로 두 기계를 연결해서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작업이 연계되도록 하도록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고추를 채 취하는 기계였다.

"버섯 식별을 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작업이지. 그렇다고 로봇마다 일일이 자율칩을 심는 것은 낭비야."

버섯을 채취하는 로봇들은 각자 독립적인 인공지능이 내장돼 있어, 자율적인 판단을 한다. 실시간 네트워 크 통신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뿐이다.

"그때는 당장 전자노예들이 급해서 임시 처방을 했지만, 이제부터는 체계적으로 해야지."

하수영은 오랜만에 제대로 손맛을 느끼며, 신나게 작업에 몰두했다.

한참 조립과 설치에 열중하고 있는 데, 불현듯 정문 초인종이 울렸다.

"전성렬 사장님이 웬일이지?"

월패드를 확인하니 전성렬이 서 있었다.

하수영은 작업을 잠시 멈추고 그를 맞이하러 나갔다.

"바쁘신 분이 여기 서락읍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농장 한 번 둘러볼 겸해서 들렀지. 집사람이 자네 주라고 반찬을 좀 많이 만들었는데, 두었다가 먹게."

"아, 감사합니다. 사모님께도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우리 집사람이야말로 항상 자네에게 고마워하지. 자네 덕분에 내가 크게 성공했다고, 아주 신줏단지 모시듯이 한다네."

전성렬은 차량 트렁크에서 갈비찜, 밑반찬, 제육볶음 등 반찬을 바리바리 꺼냈다. 모두 냉동, 혹은 냉장보관해서 두고두고 오래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와, 엄청 많네요. 이 정도면 일주일은 넉넉히 먹겠는데요?"

"이, 일주일? 겨우?"

전성렬은 조금 당황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한 달 이상은 거뜬히 먹을 것 같은 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이라니.

"하 사장, 자네 식탐 별로 많은 거 같진 않던데."

"제가 혼자 있을 땐 좀 많이 먹습니다. 아무래도 이게 소모를 좀 많이 해서요."

하수영은 그리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쳤다.

"오늘도 벌써 세 끼 먹었어요."

"그, 그렇군. 왜 그렇게 암산을 잘 하나 했더니 역시 그만큼 뇌가 뭘 많이 먹어서 그런 거였어."

"아무튼 감사히 먹겠습니다. 참 맛있게 생겼네요."

하수영과 전성렬은 사이좋게 반찬들을 냉장고에 가져가서 차곡차곡넣었다.

그제야 전성렬은 한쪽 방문이 활짝열려 있고, 그 안에 전선 케이블이 잡다하게 튀어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작업 중이었나?"

"아, 컴퓨터 조립 중이었어요."

"우리 딸애들도 조립컴 쓰던데. 요즘에는 조립비가 1, 2만 원이면 하더라고, 자네처럼 시간이 금인 사람이 굳이 일일이 조립을 하는 건 시간 낭비……."

그렇게 말을 하던 전성렬은 문안의 광경을 들여다보고 우뚝 굳어버리고 말았다.

가로세로가 10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방 안에는 사람 키를 넘어가는 커다란 캐비닛 같은 기계들이 잔뜩들어서 있었다.

수백 개가 넘어 보이는 케이블들이 어지럽게 이리저리 엉킨 모습을 보자 머릿속에 혼란이 밀려왔다.

"컴퓨터 조립 중이라며? 컴퓨터는 어디 있나?"

"바로 보고 계시잖아요."

"이게 컴퓨터라고? 아니, 이렇게 큰 컴퓨터가 세상에 어디 있어?"

"컴맹이시면 그럴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슈퍼컴퓨터라는 겁니다. 물론 개인용으로 주문한 거라서 처리능력은 비교적 작은 편입니다."

"슈퍼컴퓨터? 아, 그런 걸 어디서 들어보긴 한 거 같아."

"원래는 워크스테이션 도입하고 모자라는 연산은 클라우드로 대체할까 했는데, 그냥 적당한 중고 매물이 있기에 샀어요. 어떤 돈 많은 과학자가 개인용으로 쓰던 걸 중고장터에 올려놨더라고요."

"중고장터는 정말 별의별 걸 다 파는군. 그럼 가격은 어느 정도나 하나?"

"얘 별로 안 비싸요. 60억 정도? 중고라서 더 쌌습니다."

60억이라는 말에 전성렬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아니, 무슨 컴퓨터가 그렇게 비싸?"

"에이, 진짜 비싼 건 수천억도 훌쩍 넘고 그럽니다. 60억은 사실 슈퍼컴이라고 하기에도 쪽팔려요. 중고니까 가능한 가격이죠."

"대체 이런 걸 사서 뭘 하려는 건가?"

"아, 고추 농사짓는 데 필요해서요."

"……."

전성렬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가문의 비법으로 만들어진다는 그 고춧가루를 말하는 게 맞지?

그걸 재배하려면 수십 억짜리 슈퍼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인 건가?

"그리고 고추 농사에만 쓰진 않을 겁니다. 다른 작물 재배에도 적용해서, 궁극적으로는 총괄제어시스템으로 개량할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생산플랫폼을 자동화하려면 중앙통제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야 할 거 같더라고요."

"뭔진 모르지만 농사짓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은 잘 알겠네. 정말 몰랐어. 난 그저 농작물을 사다가 팔기만 했지, 농사 하나 짓는데 이렇게 많은 노력이 들어갈 줄은……."

"원래 뭐든지 '제대로' 하려면 이것저것 손댈 게 많은 법입니다."

"미국 같은 곳에 사는 대농장 지주들은 전부 자네같이 농사를 짓는 거겠지?"

"그럼요. 팟디서플라이 같은 회사 보세요. 걔들은 회사 전용기까지 갖고 있잖아요."

돈이 많아서 전용기를 보유한 것과 슈퍼컴퓨터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성렬은 그것을 따질 만한 정신이 없었다.

"자동으로 고추를 따는 기계를 도입할 겁니다. 강인공지능이 아니라서 고추 따는 속도가 매우 느리고 오작동률도 높지만, 그래도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하는 것보다는 빠를 거예요. 비효율적이지만 아쉬우니까 이렇게라도 해야겠어요."

"알았어! 이 컴퓨터로 그 기계들을 조종하는 거군. 맞지?"

"네, 바로 그겁니다."

"그런데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쓰는 게 비용 면에서 훨씬 저렴하지 않을까? 60억이면 대체……."

"기계가 좋은 점도 있어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 상황만 주거든요. 고장이 난다거나, 노후화가 되었다거나, 오류를 일으킨다거나."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 적어도 농사만큼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해나가고 싶거든요. 영원히 그럴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혼자서 해보려고요."

그리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버킷리스트 항목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 그 마음이 뭔지는 나도 알겠어. 그래도 슈퍼컴퓨터는 너무 과한 거 같아. 세금 문제는 없나?"

"비용 처리해서 괜찮아요."

"프라임유통컴퍼니 명의로 산 거지? 농업기업이 60억짜리 컴퓨터를 샀다고 하면 탈세가 아니냐고 조사가 들어오지 않을까?"

"에이, 실사 나오라고 하면 됩니다. 직접 보여주면 국세청 직원도 믿을 수밖에 없겠죠."

농사를 편히 짓기 위해서 슈퍼컴퓨터를 도입했습니다!

라는 말을 우리나라 국세청 직원들이 과연 순순히 믿어줄까?

전성렬은 도무지 그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아참, 팟디서플라이에서 우리 황금비단우산버섯에 관심이 좀 있는거 같아."

"그래요? 접촉이 있었나요?"

"응, 그래도 팟디서플라이와 우리는 4억 5,000만 달러라는 큰 거래도 성사한, 아주 돈독한 비즈니스협업 관계 아닌가."

"돈으로 돈독함을 바르긴 했지요."

팟디서플라이와 거래를 한 것은 딱 한 번이다. 골든 트러플 300kg을 4억 5,000만 달러에 매매한 것.

"우리가 황비버섯 재배단가를 낮췄다고 확신하고 있는 거 같아. 흥미가 있어 보여."

"설마 비법을 전수해 달라는 건가요?"

"그 정도로 바보들은 아니었네. 자네도 알잖아. 골든 트러플 가치 지키려고 그런 큰돈까지 써가면서 매점매석한 거.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그래도 크고 멀리 볼 줄 알더라고.

우리나라 대기업들하고는 너무 달라."

"그나저나 골든 트러플을 한꺼번에 300kg이나 사가서 처분은 잘 했나 모르겠네요."

"슬쩍 물어봤는데 아직도 절반 이상을 처분 못 하고 보관 중인가 봐. 그래도 중동 골든 트러플 시장이 무너지지 않은 걸 무엇보다 큰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던데."

"오, 그 정도면 참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네요."

"우리가 계약 이행 못 하게 되면 농장을 꿀꺽 삼키려고 인도 날짜나 위약금으로 장난을 좀 치긴 했지만, 그 정도야 애교로 봐줄 수 있지."

하수영은 나중에 팟디서플라이 경영진을 한 번 직접 만나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황비버섯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건데요?"

"일단 미국 독점 공급권을 달라고 하는데?"

"미국 독점이라……."

"황비버섯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으니까. 미국인들이 먹어대는 양도 엄청나지. 특히 스프 요리 중에서 황비버섯이 안 들어간 요리는 전혀 없다고 봐도 돼."

팟디서플라이는 글로벌 농업유통기업이지만, 그 뿌리는 미국에 두고 있다.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식량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업인 것이다.

"그런데 아시죠? 황비버섯이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시장에 풀리면, 같은 방법으로 미국 라면 시장을 공략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건 가격을 조금 조율하면 되지.

우리 황비라면 진출에는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생각은 해볼게요. 미국 시장 진출이면 일단 경작지도 지금보다 더 늘려야 돼서요. 이것저것 손을 댈 게 많아요."

그 뒤로도 둘은 오랜만에 서로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의기가 투합해서 낮술 판까지 벌였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밝은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정서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응, 부사장. 무슨 일이에요?"

-사장님, 큰일 났어요. S은행에서 대출 상환 요구가 들어왔어요.

"뭐라고요? 아니, 대출 계약 기간이 있는데 무슨 자기들 맘대로 상환을 하라 마라 하는 겁니까? 아직 19개월인가 남았잖아요?"

-금감원 감사에 걸렸나 봐요. 잘못하면 우리가 S은행과 서로 짜고 부실대출 받은 거라고 금감원이 오해할 수도 있어요.

전성렬은 술기운이 싹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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