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55화 (155/1,270)

프랜차이즈 갓 155화

37장 가맹점 1호기(2)

-보통 이런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아요. 피소당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나 몰라라 잠수를 타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도피 심리가 강할 때 피고인들이 가끔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자칭 파워블로거 이수현은 눈앞의 골치 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쳤다.

-덕분에 1심은 우리가 거저먹은 겁니다.

피고가 연거푸 출석을 하지 않았기에, 법원은 원고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쯧쯧, 고소가 들어오면 최선을 다해서 임할 생각을 해야지, 그냥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거늘, 쫓기다가 도망칠 데가 없으니까 땅에 머리 박는 닭도 아니고 대체 뭐랍니까. 자기 눈에 안 보인다고 다가 아닌데."

-그러게 말입니다.

"항소를 할까요?"

박호진 변호사는 3심까지 완전하게 책임져주는 조건으로 수임 계약을 맺었다. 괜히 이런 작은 사건에 13억짜리 전관예우 변호사를 쓴 게 아니다.

-가집행 들어오면 아마 항소를 할 겁니다. 그래도 꽤나 힘들고 배고픈항소 과정이 되겠죠. 현재 피고 금융재산이 청구금액에 훨씬 못 미치고 있어서요.

"우리가 5,000만 원을 청구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조사한 피고의 재산은 2,000만 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집 보증금까지 합쳐서입니다.

"판잣집 블로거라서 벌어놓은 돈도 없나 보네요."

거지 중의 상거지인 주제에 무슨 자기가 파워블로거라고.

-피고 명의로 된 모든 재산에 가집행을 실시할 겁니다. 보증금은 아직 건드릴 수 없지만, 피고에게 지급되지 못하도록 막아놓을 거고요. 특히 컴퓨터나 태블릿 같은 것은 남김없이 가져올 겁니다.

"좋네요. PC가 없으면 더 이상 그런 짓을 못 하겠죠. 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겠구나."

-스마트폰도 압류할까요?

"그건 놔두죠. 그래도 연락 수단은 있어야 여기저기 부탁을 해서라도 토해낼 돈을 마련할 거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아, 혹시 저한테 눈물의 반성을 하고 싶다 뭐 그런 연락이 오면 한번 정도는 만나볼 의향이 있어요."

-용서 같은 걸 생각하시는 거라면…….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으로 눈물 흘리는 걸 보면 제 마음이 더 단단해질 거 같아서 그럽니다. 뭐, 더 약해질 구석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

유쾌한 어조와 어울리지 않는 매정한 내용에, 박호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원래 반성은 눈물이 아니라 돈으로 하는 겁니다. 근데 눈물로 대신 때우려고 하는 꼴을 가만히 보면 좀 웃기거든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박호진은 몇 가지 당부를 더 전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하수영은 후련한 듯이 기지개를 켜고는, 다시금 코딩 작업에 집중했다.

"가맹점 1호점을 받자마자 1심 승소라니. 이거 징조가 너무 좋은데? 우리 길태수 사장님 대박 나시는 거 아니야?"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코딩 작업이 순식간에 끝났다.

마지막 입력을 마친 하수영은 뿌듯해져서 손을 툭툭 털었다.

"내 프로그래밍 실력 아직 안 죽었네. 코딩끝이 여전히 살아 있구나."

앱 프리덤에 보완 기능을 추가했다.

가맹점에서도 예약 및 결제 기능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가맹점에서 관리자 신분으로 앱을 이용하면 매출이나 이익 등 가게 상황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금 신고 기능까지 넣었으니까 가맹점주들이 좋아하겠지? 굳이 세무사를 쓸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야."

재료를 구매한 사실 등 세금 계산에 필요한 항목들을 입력하기만 하면, 프리덤이 알아서 복식부기 장부까지 만들어준다.

가맹점주가 승인하면 그대로 세무서에 전자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가맹점주들이 나처럼 정부에서 표적세무조사 들어올 걱정을 할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 세무계산보조 기능이면 충분하지."

물론 하수영은 개인 세무사를 따로 쓴다.

아무래도 사업 규모가 크다 보니, 그저 알고리즘대로 딱딱 맞아떨어지게 계산만 해서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입맛을 다시는 정권의 세무조사 털이 작업 같은.

그런 견제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나.

'세금 계산은 제 세무사가 했습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몰라요.'

청문회 같은 곳에서 이런 해명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세금 계산은 세무사에게 한다.

***

서해물산.

한국 굴지의 대기업 서해그룹의 주력 계열사 중 하나다. 건설 및 무역, 유통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시가총액이 35조 원에 달한다.

시가총액 규모 자체는 서해전자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지만, 서해그룹의 순환출자 지배구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계열사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서해물산의 사장이자 총수의 차남인 이석두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프라임오일컴퍼니?"

"네, JS칼텍스와 사업 제휴를 맺었습니다. JS가 인천정유공장과 기술을 넘기고 대신 원유를 대금으로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라면 만드는 회사가 갑자기 웬 정유사업이야?"

"아무래도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문어발처럼 여기저기 확장하고 싶어지는 게 경영가들 심리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갔잖아."

인스턴트 라면으로 대박을 터뜨려서 사업을 확장하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럼 당연히 컵밥이라든가, 음료나 스낵이라든가, 그런 쪽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공통분모가 유지될 것 아닌가.

뜬금없이 정유사업이라니.

이건 뭐 시장 한복판에서 국수나 팔다가 장사가 잘되니 나중에는 컴퓨터 부품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도 아니고…….

"국제자원투자회사는 대체 그 녀석들 어디가 이쁘다고 그렇게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거지?"

이석두 입장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국제자원투자회사가 프라임오일컴퍼니를 그렇게 전폭적으로 지원할 줄이야.

"하수영이라고 했나? 그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야?"

프라임컴퍼니는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정서희가 마케미야의 투자와 지원을 받아 설립한 회사라고 생각했다. 전성렬은 원활한 경영을 위해 지분을 적당히 던져주고 끌어들인 동업자이고.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모든 게 틀렸다.

알고 보니 하수영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젊은 놈이 지분을 46%나 가지고 있었고(아직 전성렬과의 지분양도가 이뤄지지 않음), 정서희는 100억이나 투자하고서도 지분 보유량이 겨우 5%에 지나지 않았다.

지분 구조만 보면 하수영이란 새파랗게 어린놈이 회사 2대 주주라는 건데, 신기하게도 회사 경영에는 일절 간섭을 안 한다.

"하수영이란 그놈, 버섯 농사에 열심이라고?"

"네, 버섯 농사 규모만 보면 프라임컴퍼니는 저리 가라 할 정도입니다. 올해 올린 매출만 5,000억 원이 넘습니다."

버섯을 팔아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매출을 올리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다.

"버섯 대금이 4억 5,000만 달러라고 했지? 팟디서플라이는 대체 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버섯쪼가리를 산 거지?"

골든 트러플의 가치를 몰라서 '쪼가리'라고 한 게 아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한번 해본 말이었다.

"골든 트러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내린 결정인 듯 합니다. 유통량이 관리가 안 되면 중동 부자들이 더 이상 골든 트러플을 선호하지 않을 테니까요. 팟디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라는 게 국제농수산물 시장의 분석입니다."

"역시 세계적인 곡물회사라 돈이 참 많기도 하군. 눈물을 머금고 지출할 수 있는 돈이 4억 5,000만 불이나 되다니."

"위약금과 납품 조건이 엄격했던걸 보면, 팟디서플라이가 내친김에 골든 트러플 농장을 삼켜보려고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골든 트러플 300kg이 문제없이 납품돼버린 바람에 그건 물 건너갔지 만요."

하수영.

프라임컴퍼니의 오너이자 청담동에서 떠오르는 샛별 임대사업자이며, 송이버섯과 황금비단우산버섯, 골든 트러플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청년.

그리고 이제는 국제자원투자회사의지원을 받아 정유 시장까지 기웃거리고 있다.

'겨우 서해호텔 만찬 때문에 국내정유 시장을 아예 통째로 넘겨준다고? 이게 말이 돼?'

아무리 안살린 회장이 세계 최고의 대부호라고 하지만, 내 정유이 어디 한두 푼짜리인가.

밥 한번 잘 대접받았다고 선뜻 넘겨줄 만한 선물은 아니다.

그게 이석두 입장에서 바라본 상식이었다.

조각들은 여기저기 보란 듯이 대놓고 있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끼워 맞춰야 원래 그림이 나올지 가늠이 안 된다.

"프라임컴퍼니가 S은행에서 빌린 중소기업 대출 2,000억, 만기가 얼마나 남았지?"

"이제 19개월 정도 남았을 겁니다."

"프라임컴퍼니가 19개월 뒤에 상환 가능할 거라고 보나?"

"연 매출 2조 원을 찍는다고 예상하면 영업이익은 1,200억 원 정도입니다. 못 갚을 정도의 금액은 아닙니다."

영업이익을 6%로 잡고서 한 계산이었다.

이석두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겨우 라면 하나만 팔아서 2,000억이나 되는 빚을 갚는다니…… 참 먹거리 시장이라는 게 대단하긴 대단해."

신생기업에 2,000억 원을 대출하면서 이율은 겨우 0.19%를 받는다.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부실대출이다. 치열한 감사가 들어와서 은행장을 시작으로 줄줄이 옷을 벗어야 할 정도다.

하지만 S은행은 이런저런 규정의 편법을 동원해서 그런 대출을 해주었다.

그것은 프라임컴퍼니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이석두의 비밀 제안에 의해 벌어진 것, 때가 무르익으면 터뜨릴 폭탄을 미리 심어둔 것이다.

"김 상무,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 말씀은……."

그래도 오른팔이다. 모시는 주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김전후 상무는 바로 알아차렸다.

"이대로 뒀다가는 내가 준 2,000억 때문에 오히려 일을 망칠 수도 있겠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 끌어서는 안 되겠어. 아직 만기일이 남았지만, 금감원에서 칼을 들고 나서면 문제없이 진행될 거야."

"대출 회수 작업 실시합니까? 그러면 S은행장이 불법에 연루될 수도 있습니다."

S은행장은 이석두의 보장을 믿고, 프라임컴퍼니에 부실대출을 해줬다.

여기서 금감원을 움직이면 은행장을 시작으로 줄줄이 피해를 입게 된다.

이석두는 아무렇지 않게 김전후 상무를 빤히 보며 물었다.

"중요한가?"

"아닙니다. 그럼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우리 측에서 움직였다는 흔적은 절대 남기지 않겠습니다."

다른 라인을 통해 금감원에 제보를 하고, 금융 감사에 나서게 만들면 된다.

믿고 움직인 은행장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겠지만, 이석두가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은 끝까지 모를 것이다. 통상적인 기습 감사에 재수 없게 걸린 것으로 포장될 테니.

아마 프라임컴퍼니는 만기일에 2,000억을 상환할 거라는 계획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만기가 되면 대충 다른 대출상품으로 갈아타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때, 기습적인 상환 조치가 들어온다면?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잘만 설계하면 경영권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겨우 라면 회사 하나 먹기 참 힘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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