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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53화 (153/1,270)

프랜차이즈 갓 153화

36장 우리 백화점과 계약해 주세요(3)

다음 날 저녁 6시.

약속 시각이 되자 주진택이 찾아왔다.

하수영은 매장을 박지현에게 완전히 맡기고 나왔다.

"먼저 퇴근합니다. 다들 잘 부탁해요."

"예, 걱정 마시고 볼일 보십시오, 사장님."

이택진 셰프가 기합이 잔뜩 들어가서 배웅했다.

수영레스토랑이 라테백화점 입점을 놓고 협의 중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직원들 사이에 쫙 퍼져 있었다.

월급 높고 직원 대우가 좋은 매장이 잘되는 걸 좋아하지 않을 직원은 없다. 다들 입점 협의가 잘 풀리길 원했다.

하수영은 빌딩 5층에 있는 한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근처에 더 좋은 한식집을 제가 알고 있는데, 차라리 거기로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당연히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주진택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고, 하수영이 가볍게 손을 들자 레스토랑 매니저가 얼른 달려왔다.

"아, 사장님. 오셨습니까?"

"셰프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맡긴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술은 늘 먹던 거로 주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주문하는 모습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매니저가 꾸벅 인사하고 물러가자, 주진택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여기가 단골 가게이신가 봅니다. 제가 그런 줄도 모르고 다른 가게를 권했으니……."

"기왕이면 제 임차인 가게에서 매상을 올려주는 게 임대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저에게 월세를 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게인데요."

"예?"

"아, 이 빌딩이 제 거라서요."

"……!"

순간 주진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마 빌딩주와 수영레스토랑의 관계까지는 조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수영은 겉으로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는 뿌듯해했다.

'이 빌딩이 제 거라서요라니. 아, 너무 짜릿하잖아. 아무리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해도 질리지 않아.'

언젠가는 '청담동이 제 거라서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 그러셨군요. 빌딩 주인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거랑 비슷한 빌딩 몇 개 더 갖고 있습니다. 레스토랑은 취미 삼아하는 겁니다."

"그, 그러시군요."

이거 예상을 넘어선 대단한 자산가 아닌가? 주진택은 계산을 원점에서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언뜻 들었다.

'그럼 적어도 1, 2천억 원 이상의 자산가?'

이런 빌딩이면 적어도 500억 원은 할 텐데, 이런 게 몇 채나 더 있다고 했으니, 대충 그 정도쯤 되지 않을까?

자연히 협의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이거 내 윗선이 나서야 할 급인 거 같은데?'

"제가 좀 알아봤는데, 매출 수수료방식은 일반 매장들이나 하는 거지, 백화점에 들어가는 음식점들은 보통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고요. 그냥 다 달이 정해진 임대료를 내는 방식이던데요?"

"그야 보……."

"보증금은 그냥 걸면 되는 돈이고요. 왜 그런 방식을 제안했는지 솔직히 조금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충분히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하수영은 일부러 부드럽게 말을 했다.

"저 역시 백화점 입점을 희망합니다만, 그것도 남는 게 있어야죠. 허울 좋은 홍보뿐이라면 글쎄요, 아무리 취미로 하는 요식업이라지만 그래도 사업이라는 게 남는 게 많아야 보람찬 법이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가지 방안을 생각해봤습니다. 라테유통에서 그 둘 중 하나를 택하시면 될 것 같아요."

"경청하겠습니다."

"하나는 고정된 월 임대료를 내는 방식, 다른 매장들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호 대여 운영방식입니다."

"상호 대여 운영이라고요?"

주진택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반문했다.

하수영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라테백화점에 수영레스토랑, 수영라면이라는 상표, 상호, 서비스표를 제공하는 겁니다. 수영레스토랑과 동일한 이미지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해드리는 거지요. 라테백화점은 해당 매장을 직접 소유해서 운영하게 되고요."

"이건 설마……."

"네, 제가 프랜차이즈 본사가 되고, 라테백화점이 가맹점주가 되는 겁니다."

생각도 못 한 제안에 주진택은 머리가 얼얼했다.

아니, 자기가 프랜차이즈 본사를 하고, 백화점한테 프랜차이즈 가맹점주가 되라니?

"사장님의 말씀은 그러니까 매장을 저희 백화점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운영하라는 겁니까?"

"그렇죠. 물론 식자재는 제가 일괄적으로 공급하고 레시피도 전수합니다. 바로 수영레스토랑 라테백화점 지점이 당당하게 오픈하게 되는 거죠!"

"……."

주진택은 얼이 빠진 채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고, 하수영은 잔뜩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영업 이익은 본사와 가맹점주가 5:5 비율로 나누는 겁니다. 가맹점주 입장에서는 얼마나 편해요? 이미지 관리부터 식자재 조달까지 전부 본사에서 알아서 해주니 말이에요."

하수영 입장에서는 하등 손해가 없다.

매장 인테리어부터부터 직원 고용, 매장 관리 등은 모두 가맹점주인 라테백화점 책임이다.

하수영은 라테백화점에 식자재를 팔고, 식기도 팔고, 상표나 휘장 등도 팔 수 있다.

그렇게 구매한 물품으로 장사를 하고 나오는 영업 이익은 다시 둘이서 5:5로 나누게 되고, 주진택은 혼미한 정신을 겨우 추스르고 말했다.

"다른 제3의 선택지는……."

"없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 해요. 선택지 안에서는 협의가 가능하지만, 다른 선택지를 원하신다면 저 역시 눈물을 머금고 백화점진출을 포기할 수밖에요."

"……."

주진택은 도저히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야 안 것이지만, 상대는 최소 1, 2천억대의 자산가.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큰 부를 이룩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룹 임원들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오해 없이 잘 전달해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

다음 날, 주진택은 다시 하수영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50대로 보이는 신사와 함께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임원급 이상으로 보이는 50대 남자가 정중히 명함을 내밀었다.

"김진명이라고 합니다."

명함에는 부사장이라는 직함이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성씨를 보아하니 오너가의 직계는 아닌 듯했다. 어쩌면 방계에도 들지 못하는, 고용 경영인일 수도 있으리라.

"일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입점을 협의하고 싶습니다."

"그러시죠."

하수영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고, 김진명 부사장은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수영레스토랑의 입점을 추진한 것은 접니다."

"네, 그러실 것 같았어요."

"수영레스토랑이 우리 백화점에 입점한다면 전국적인 인지도 상승을 꾀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실 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서로의 이해관계를 절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둘은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라테백화점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로서 수영레스토랑 매장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룹 본사에서 절대로 승낙하지 않을 겁니다."

재계 5위에 찬란히 빛나는 대기업이 그런 굴욕적인 형태의 계약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하수영은 덤덤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입니다. 그래서 크게 낙심이 되지는 않네요."

"정말 어렵겠습니까?"

"제가 묻죠. 월 고정 임대료 방식이 그렇게 꺼려지시는 겁니까?"

"같은 임대료를 받아야 한다면, 이미 입점해 있는 매장을 굳이 내쫓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원래 김진명 부사장은 기존에 입점한 가게를 내쫓고 그 자리에 수영레스토랑을 받으려고 했다.

고정 임대료 방식을 택해야 한다면 수익 면에서 '굳이'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안타깝군요. 그래도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네, 저도 부사장님 같은 경영가를 뵙게 돼서 좋았습니다. 식견도 넓힐수 있었고요."

협의는 무산되었지만, 둘은 깔끔하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

다음 날, 라테백화점 입점이 무산되었다는 말에 직원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듣고 나자 직원들은 들어가지 않은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

"결국, 우리 가게가 장사 잘되는 걸 알고 자기들도 수수료 장사 하려고 했던 거네요."

"무슨 명품매장도 아니고 결국 음식점인데, 매출 대비 수수료를 챙겨가는 게 말이 되나? 이해할 수가 없네요."

"잘하셨어요, 사장님. 안 그래도 곧 있으면 지하 매장도 오픈하는데, 돈도 별로 안 될 일에 정신 뺏길 이유 없죠. 백화점이야 나중에 천천히 들어가도 되고요. 지금도 장사가 너무 잘되는데."

다들 아쉬워하면서도 그래도 금방 잊고 넘어갔다.

하지만 하수영은 조금 달랐다.

'아, 프랜차이즈 가맹점 1호가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원래 바로 직전에서 놓친 것이 더 아쉽고, 계속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던가?

막상 입점이 무산되지 아쉽기 그지 없었다.

백화점에 못 들어간 게 아니라, 가맹점 1호가 무산된 게 아쉬웠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억누르고 영업에 임했다.

중간중간 우형신 중개사와 통화를 해서 좋은 매물이 나왔는지도 물어보고, 부친의 아바타인 은하신목한테서 우주 역사 강의도 받고, 정서희로부터 정유 사업이 어느 정도로 진척되었는지 중간보고도 들었다.

"잘 먹었습니다. 카드 되죠?"

"네,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오후 4시쯤, 오늘 첫 카운터 계산손님이 나왔다.

보통은 앱으로 미리 결제하기에 카운터 계산 비중은 극도로 적은 편이다. 적을 땐 하루에 10명도 안 나올 때도 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불편한 점이 있으셨다면 앱 고객센터나 혹은 저한테 직접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상대방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이자 하수영은 클레임인가 싶어서 환히 웃으며 말했다.

"저기, 초면에 이런 말은 죄송한데…… 여기 가게는 가맹점 신청 같은 건 안 받습니까?"

"예?"

"가맹점 같은 거 내면 장사 엄청 잘될 거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찾아보지 못한 거 같아서 그럽니다."

남자의 눈빛은 생각보다 진지했다.

하수영은 그가 무심히 던지는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가맹점 신청을 무조건 안 받는 것은 아닙니다만. 손님, 혹시……."

"초면에 불쑥 말을 꺼내서 죄송합니다. 제가 수영레스토랑 가맹점을 내고 싶은데, 혹시 여기 사장님께 말씀을 전달해 주실 수 없을까요?"

"……."

"가맹점 신청 내용 같은 거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길이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가게 오너가 모습을 비추는거 같지는 않고, 너무 초조해서 이렇게 대뜸 찾아뵙게 됐습니다. 혹시 언짢으신 거라면……."

"아뇨, 괜찮습니다. 언짢다니요, 그런 거 없습니다."

하수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렇게 도전 정신이 넘치는 빨대, 아니, 그런 사람들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게 오너와 이야기해서 가맹점을 내고 싶으시다, 이거죠?"

"네. 아, 물론 청담동은 아닙니다. 강남역 쪽에 내보고 싶어서 진지하게 생각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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