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52화
36장 우리 백화점과 계약해 주세요(2)
"백화점 입점이라……."
하수영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주진택 차장을 바라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푸드코트 입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푸드코트라니요! 수영레스토랑이 절대 그럴 레벨이 아니죠. 당연히 전문식당가 입점을 말하는 겁니다."
"전국의 모든 매장이라면, 혹시 라테 관악점 같은 곳도 포함인가요?"
서울지점 중 압도적인 매출 꼴찌를 자랑하는 지점이 언급되자 주진택은 어색하게 웃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국 모든 매장을 이야기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겁니다."
"상징적 의미요?"
"네, 사장님께서 원하신다면 어느 지점이는 모두 가능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장님이 굳이 원하지 않는 지점까지 입점하실 필요는 없는 거죠. 모든 결정권은 사장님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건 마음에 드는 이야기군요."
"원치 않는 지점까지 강요해서야 되겠습니까. 부디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화점 입점이라…… 그건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는데."
분점을 낼 생각은 했지만, 그건 일일이 매장을 따로 얻어서 차리는 방식이었다. 백화점에 정식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다.
"아시겠지만 백화점에서 직접 찾아와서 입점을 부탁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샤넬, 에르메스 같은 고급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면 말이죠. 아, 절대로 귀사의 가치를 낮게 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업계가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해요. 별로 언짢게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다행입니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걱정했습니다."
하수영은 고춧가루 생산 자동화에 필요한 장비들이 언제쯤 모두 갖춰지는지를 생각했다.
'고추 말리는 기계와 빻는 기계는 늦어도 다음 주 안으로는 들어오겠고… 고추 따는 기계는 주문한 부품들이 모두 도착해야 내가 제작에 들어갈 수 있을 거 같고…….'
서락산에서 고추를 수확하면, 서울로 옮긴 뒤 기계로 말리고 빻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딴 고추를 포장하는 거야 지금 전자 노예들이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그건 일손이 줄겠고.'
과연 엘릭서 고춧가루가 라테백화점에 입점해도 될 만큼의 생산량이 나올까?
자동화를 도입하면 분명 생산량은 늘어난다. 지금 당장은 라테백화점에 입점해도 공급 부족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라테백화점 외에 독립적인 직영점도 다수 차려야 할 것이다.
그때 가서 수량이 부족하다고 라테백화점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으니, 미리 계산을 잘해야 했다.
'근데 백화점 홍보 효과가 사실 워낙 크니까. 그때 가서 직영점에 공급할 고춧가루가 부족할 거 같으면 2, 3년 정도 하고 빠져나오면 되겠네.'
사업은 냉정한 것이니까.
대충 계산을 정리한 하수영이 물었다.
"그럼 입점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 월세 방식인가요, 수수료 방식인가요?"
월세 방식은 일반 세입자처럼 정해진 매장 임대료를 다달이 내는 것이고, 수수료 방식은 정해진 임대료가 아니라 매출의 일정 비율을 백화점에 지급하는 것이다.
하수영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해진 매장 임대료 방식이 좋다.
수영레스토랑은 장사가 매우 잘될 것으로 예상되니까.
물론 라테백화점 입장은 다를 것이다.
"저희는 매출 수수료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증금이나 기타 비용을 일절 받지 않는 대신, 매출의 일정 퍼센티지를 저희가 가져가는 방식이죠."
"일정 퍼센티지라면, 몇 퍼센트를 말씀하시는 거죠?"
"보통 최고 40%까지 가져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
"하지만 이건 그만큼 장사가 안 되는 매장의 경우죠. 수영레스토랑의 경우는 30%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증금이 전혀 없다는 걸 주목해 주십시오."
"그래도 30%면 너무 센데요. 지금 매장 하루 매출이 얼마인지는 혹시 아세요?"
"우리 백화점에 입점하신다면 수영레스토랑의 인지도가 대폭 상승할 겁니다. 전국의 모든 사람이 수영라면의 존재를 알게 되는 거죠."
주진택은 열정적으로 설득했다. 그런데…….
'하루 매출이 얼마인지 아느냐는 질문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피해 가네.'
라테백화점이 어떤 곳인데, 계산기도 두들겨 보지 않고 이렇게 달려왔을까.
주진택의 말처럼, 백화점이 몸이 달아서 입점을 부탁하는 경우는 샤넬, 에르메스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잘 없는데.
심지어 요식업체에 입점을 먼저 부탁하는 경우는 전례가 거의 없을 것이다.
'라면 가격이야 이미 다 알려졌고, 하루 매출이야 날 잡고 서서 하루종일 지켜보면 드나드는 손님 헤아리면 나오는 거고.'
수영레스토랑은 보통 하루에 6,000그릇 정도 판다.
평균 일 매출이 2.1억 원 정도 되는 셈이다.
라테백화점도 계산기를 두들겨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달려온 것이리라.
겨우 음식점에서 하루 매출이 2억넘게 나오다니. 이 정도면 명품 브랜드 매장과 맞먹는 수준 아닌가?
명품 매장이 400만 원짜리 가방을 하루에 53개는 팔아야 간신히 나오는 매출이니.
수영레스토랑이야 손님들이 얼른 먹고 얼른 일어난다는 방식이라서 회전율이 매우 빠르다.
하지만 백화점 매장에서 그렇게 빠듯하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느긋하게 쇼핑을 하러 온 손님들이니.
'한 50석 정도 갖다 놓는다 치고, 11시부터 8까지 영업하면 하루 9시간, 식사시간 손님 한 명당 넉넉하게 30분 정도 잡는다 치면, 하루 매출 3,150만 원 정도네.'
휴일을 포함하면, 월 예상 매출은 약 8.2억 원.
'월 수수료로 2억 넘게 가져가겠다고? 헐…… 이놈들 좀 보게. 진짜 제대로 장사하면 뭐가 남기나 하는 줄 알아?'
"일단 가게 오픈 준비해야 해서요. 지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제가 언제 다시 찾아뵈면 될까요?"
"저도 생각은 해봐야 하니까 내일 저녁에 와주시겠어요? 6시 어떠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6시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주진택이 막 일어설 때, 박지현 매니저가 막 출근했다.
그녀는 겉옷을 벗으며 주진택의 뒷모습을 흘끔 돌아봤다.
"지인분이 오셨다 가시는 거예요?"
"오늘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라테유통 직원이래요."
"라테유통이요?"
"네, 라테백화점에 우리 수영라면이 입점했으면 한다고 찾아왔네요."
"와, 그럼 수영라면이 이제 백화점까지 진출하는 거예요?"
라테백화점은 누가 뭐라 해도 전체 백화점 매출총계 1위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박지현 입장에서는 또 한번 성장의 도약을 맞았다고 좋아할 만했다.
"글쎄요, 조건이 마음에 안 들어서 고민 중입니다."
"조건이 어떤데요?"
"수수료 방식으로 하자네요. 매출의 25%를 수수료로 달라고 하는군요."
"25%면 적당한 거 아닌가요? 제가 듣기로는 30~40%까지도 가져간다고 들었어요. 백화점 측에서 먼저 25%를 요구한 거면 괜찮은 조건이에요."
"그게 괜찮은 조건이라고요? 대체 이 나라 대기업들의 공생 정신은 어디로 간 건지……."
"잠깐, 근데 요식업체도 매출 수수료 방식으로 계약을 하던가요? 그렇게 하면 매장 측이 남는 게 없을 텐데. 그거부터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박지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하수영을 보고 물었다.
"사장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 건데요?"
"백화점 들어가면야 좋죠. 홍보 되니까 나중에 전국구 프랜차이즈 사업 확장할 때도 유리하고, 그런데 매출의 일정 비율을 낸다는 건 좀 그래요. 농사짓느라 힘들게 고생한건 난데. 그 재료들이 거저 나오는 줄 아나."
하수영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북북 긁으며 말을 이었다.
"라면 한 그릇에 35,000원 받지만, 사실 이거 남는 거 별로 없습니다. 황비버섯, 송이버섯, 특제 고춧가루가져오는 비용을 생각하면 정말 남는 거 없어요."
그 세 가지 식자재는 라면 맛을 살려내는 주요 공신이다.
"제값을 반영한다면 35,000원으로는 턱도 없어요. 다 제가 직접 키워서 가져오는 거니까 35,000원에 파는 거지, 그거 돈 주고 사 오려면 한 그릇에 50,000원 넘게 받아야 할 겁니다."
"하긴, 손님들도 막상 라면 들어가는 재료들 보면 35,000원이 그렇게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국물의 진한 풍미를 살려내는 황비버섯, 향을 더해주는 송이버섯, 그리고 전체적인 맛의 잠재력을 초월시켜주는 엘릭서 고춧가루.
수영라면은 그 환상적인 배합 위에서 만들어진,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맛을 가지고 있다.
"일단 오픈 준비합시다."
"네, 사장님."
* * *
오늘 하루도 변함없이 장사는 잘되었다.
도합 6,521그릇을 팔았지만, 직원들은 허둥지둥 대는 일 없이 여유있게 영업에 임했다.
프라임유통컴퍼니 직원들은 농부 로봇들이 포장해 놓은 황비버섯을 여느 때처럼 신고 프라임컴퍼니에 공급했고, 황비버섯라면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오후에는 전성렬이 좋아 죽는 목소리로 연락을 해왔다.
-하 사장, 태양심이 윤라면 매매에 최종적으로 합의했네. 이제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돼.
"축하합니다. 마침내 라면 시장을 제패하셨군요."
-전부 황비버섯 덕분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절대로 이뤄내지 못했을 거야.
라면 업계의 황제이자 전설이며 상징인, 태양심의 윤라면.
오랫동안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던 윤라면은 마침내 프라임컴퍼니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소비자들도 엄청 좋아할 거야. 윤라면에 우리 황비버섯까지 더해지게 되면 맛의 풍미가 더 살아날 테니까.
"그래도 황비버섯라면이라는 이름자체는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누가 뭐라 해도 우리 거예요."
-암, 그렇고말고. 윤라면은 아마 윤라면황비, 뭐 이런 이름으로 새로 출시를 할 생각이야. 그래 봤자 레시피는 그대로지만.
태양심은 결국 패배를 선언하고, 라면 시장에서 완전한 철수를 결정했다.
황비버섯 단가를 못 맞추는 한, 이미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개업 첫해에 라면 시장을 완전히 먹었네. 내년은 되어야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경영진이 잘해줬어.'
일 잘하는 경영진은 어떻게 대해야 한다?
"이번에 출시한 컵밥 식품은 반응이 어때요?"
-그, 그건…….
"제 귀에 별다른 말이 안 들려오는 걸 보면, 시장 반응이 시큰둥한가 봅니다?"
-아, 아직 충분한 홍보가 이뤄지지 않아서일 뿐이야. 컵밥도 곧 자리를 잡을 거야.
"지금 우리나라 인스턴트 컵밥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부쩍 성장하는거 아시죠? 태양심 녀석들이 라면 시장을 뺏겼으니 다른 시장만큼은 지켜내려고 독기가 바짝 올랐을 겁니다. 컵밥을 시작으로 도시락, 김밥, 컵 안주, 나중에는 스낵과 음료까지 진출해야 깃발을 꽂아야죠."
-그 많은 걸 어떻게 하루아침에다 하나.
"하루아침에 다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시기를 앞당기는 게 맞겠죠?"
-알았네, 알았어.
"아, 그리고 수영레스토랑이 조만간 라테백화점에 입점할지도 모르겠어요."
-오, 장사가 정말 잘되나 보군.
"네, 이 쥐꼬리만 한 가게에서 한 달 영업 이익이 55억 정도 나옵니다. 프라임컴퍼니는 월 영업 이익이 얼마나 되나요? 120억 정도 되던가요?"
-……분발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