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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50화 (150/1,270)

프랜차이즈 갓 150화

35장 기어이 하는 거야? (2)

JS칼텍스와 비밀리에 잡은 미팅 날짜가 다가왔다.

정서희는 회사를 나서기 전, 다시 한번 협의 내용을 재검토했다. 빠뜨리거나 놓친 건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신경 써서 확인했다.

이미 며칠 동안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꼼꼼히 체크했지만, 그래도 거듭해서 내용을 살폈다.

"됐어. 이제 그만 일어나자."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고 싶지만, 미팅 시간을 고려하면 이제 슬슬 출발해야만 한다.

전성렬이 미안해하며 배웅했다.

"내가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합니다. 그런 큰 사업 협상 같은 건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자신도 없어서. 아무래도 배운 게 별로 없다 보니……."

"아니에요. 이런 건 원래 저 같은 실무진이 하는 거죠. 대표이사는 거시적인 입장에서 판단을 하면 되는 거고요."

"그 거시적인 판단도 정 부사장이 주로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민망한 거지. 구경하고 응원밖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전성렬은 따뜻하게 정서희를 격려 했다.

"협의 잘 하고 와요. 혹 잘 안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정 안되면 SOS 치죠, 뭐."

전성렬의 농담에 정서희도 풀썩 웃으며, 나갈 채비를 갖췄다.

***

JS칼텍스는 국내 4대 정유기업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2위, 3위, 4위의 매출을 모두 합쳐도 1위인 SC이노베이션한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SC이노베이션의 국내 점유율이 52%가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4위인 에스크오일은 사실상 파산 상태였다.

때문에 2위와 3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에스크오일이 차지하던 점유율을 가져와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프리젠트오일은 그런 처지에 되지도 않는 욕심이나 부리고. JS칼텍스는 프리젠트오일보다는 좀 말이 통했으면 좋겠는데.'

정서희는 부디 오늘 협상 결과가 적어도 프리젠트오일보다는 좋게 풀리기를 기도했다.

지분을 인수하고 싶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고 부당한 요구 아닌가.

그런 조마조마한 감정을 애써 감추고 태연히 JS칼텍스 본사에 들어섰는데, 첫 협상자부터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다.

"허재우 부회장님?"

"반가워요. 젊은 분이라 날 모를 줄 알았는데 대번에 알아보시는구먼."

보통 대통령은 알아도 총리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는 것처럼, 재벌그룹회장은 알아도 부회장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허재우는 농담처럼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정서희는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이건 자신의 예상을 넘어선 거물의 등장이었다.

적어도 전무, 아니면 JS칼텍스 사장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룹 부회장이 직접 나서다니.

"계열사 사장한테 맡기기에는 너무 큰 건이라서 말이야. 그룹 차원에서 협상을 해야 할 거래라는 게 우리 판단이오."

한편으로는 부담스럽지만, 부회장 급 거물 인사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그만큼 이 거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니까.

현재그룹도 재벌 2세인 프리젠트오일 사장 전준수가 거래에 나섰지만 그는 총수의 직계가 아닌 조카였고, 처음에는 부장급 인물을 내세웠다가 1억 톤이라는 말에 부랴부랴 나선 것뿐이었다.

그룹 차원에서 긴밀하게 대응한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허재우 부회장은 현 총수의 친동생, 사안을 여기는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다.

"이렇게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영광은 우리가 더. 이런 큰 건을 들고 본사까지 직접 찾아와줬으니 말이오."

차를 권한 허재우 부회장은 처음에는 신변 이야기로 분위기를 가볍게 이끌어 나갔다.

"그런데 프라임컴퍼니는 식품회사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정유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가지게 된 거요?"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이쪽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던진 질문일 것이다.

정서희는 목청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일본 마케미야투자의 마케미야 대표님과 사적으로 친분 관계가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친형제처럼 지내시는 분입니다."

"호오."

"그분의 소개로 국제자원투자회사와 연이 닿게 되어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골든 트러플을 선물로 주고 유전을 얻었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었나 보군요."

"그건……."

"재계에서 서해호텔의 그 호화 만찬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선주 사장이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다음에 또 그런 파티가 있다면 재계에도 초청장을 좀 돌려주시구려."

"알겠습니다."

또 그런 파티가 열릴지는 미지수이지만, 정서희는 일단 시원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프리젠트오일과는 협상이 잘 안됐나 봅니다?"

대답을 잘 해야 하는 분기점이 찾아왔다.

정서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미리 생각해둔 대답을 꺼냈다.

"프리젠트오일이 제시한 조건은 적절한 편이지만, 더 좋은 환경에서 정유 사업 진출을 할 수 있지 않나 신중하게 움직이려고 합니다."

"SC이노베이션은 아직 안 찾아간 걸로 아는데."

"네, 맞습니다. SC이노베이션을 찾아갈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정유시장에서 가장 배가 부른 기업이니, 당연히 제대로 된 협상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인데, 허재우부회장은 과연 하면서 가만히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상한 말을 했다.

"프라임그룹도 정보 수집이 꽤 빠른 편이군요. 하긴 SC이노베이션이 후발주자를 견제한다고 그런 짓까지 벌였는데, 거기를 찾아가는 것은 몽땅 삼켜달라는 거나 다름없지."

"예? 그게 무슨……?"

"아, 몰랐던 모양이군요. 내가 말실 수를 했어."

아차 싶은 감정이 잠시 스쳤다가, 허재우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에스크오일 인천정유공장 화재, 그거 사고가 아니라 방화라는 말이 있어요."

"방화라고요?"

"공장이 불타서 누가 가장 큰 득을 보겠소? 물론 우리 JS칼텍스나 프리 젠트오일한테도 득이긴 하겠다만…… 참고로 에스크오일 사장은 다음 달부터 SC이노베이션에 출근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

정서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으로 발생한 화재, 그 뒤에 이런 음해가 숨어 있었을 줄이야.

"자, 그럼 귀사의 조건을 먼저 말해 보시겠소?"

"JS칼텍스 신공장이 내년부터 본격가동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 가동 중인 평택공장은 생산량을 점차적으로 줄이신다고……."

"맞아요."

"10년간 매년 최소 2억 배럴 이상의 원유를 국내 반입 시세의 90%의 가격으로 귀사에 제공하겠습니다. 그 대신 평택정제공장의 매입과 기술 협력 제공을 원합니다."

"비용은 어떻게 하시려고?"

"귀사에 제공하는 원유 대금으로 갈음하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원유를 주고 공장과 기술을 사고 싶다, 이 말씀이군요?"

"네."

"프리젠트오일에는 정제와 유통을 위탁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우리 정보가 잘못되었나?"

"조건과 상황은 바뀌기 마련이죠."

정서희가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허재우 부회장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성배에 독이 들었는지 술이 들었는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가 없군. 그렇다고 남이 거저 가져가도록 놔둘 수는 없고."

"……."

"만약 모두한테 거절당하면 종래에는 국제자원투자회사가 직접 국내시장에 진출하겠지요? 결국 시간문제라는 말인데."

정서희는 긴장해서 허재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가 펴졌다.

가를 반복할 때마다, 그녀의 가슴도 조였다가 풀어지기를 거듭했다.

"우리가 원할 시 최소 3억 배럴이상을 제공할 것, 그리고 국내 반입 시세의 88%, 이게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오."

그 정도는 이미 사전에 검토한 예상 범위 안이다. 정서희는 기쁨을 감추지 않고 즉각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큰 줄기는 협의를 봤으니, 이제 남은 것은 실무진에게 맡기도록 합시다."

"네, 부회장님."

큰 고비를 넘겼으니, 더 이상 정서희가 긴장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프리젠트오일이 내세운 지분 요구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

거의 즉각적으로 정유 사업을 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은 귀중한 무기였으니까.

"그런데 듣기로는 프라임그룹 총수가 따로 있다고 한 거 같은데?"

"지분의 과반을 보유한 대주주가 따로 계시죠. 그분은 경영에 일절참여하지 않으십니다."

"흠, 한 번 만나볼 수는 없을까요?"

"말씀은 드려보겠지만 경영 관련일이라면 질색을 하시는 분이라 저도 장담은……."

"난처해하는 걸 보니 오너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군요. 알았어요. 괜히 정서희 부사장 곤란할 일은 내 더 이상 부탁하지 않으리라."

눈빛이나 말투를 보니, 하수영이란 인물에 관해서 단단히 오해한 게 틀림없다.

하기야 1대 대주주가 경영에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보통은 자기가 인사권을 적극 활용해서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할 텐데.

***

하수영은 레스토랑 지하매장 인테리어 공사에 한창 간섭하던 중, 정서희로부터 통화를 받았다.

"이거 왠지 느낌이 안 좋은데? 설마……."

그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채 전화를 받았고, 예감은 역시나 빗나가지 않았다.

-성공이에요, 사장님! JS칼텍스하고 제휴하기로 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난 하수영은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한 채 격려했다.

"정말 잘됐습니다. 힘들게 돌아오긴 했지만 기어이 거래가 성사됐네요. 결국 정유 사업에 발을 담그고 말았군요."

-사장님? 목소리가 이상한 거 같아요.

"기뻐서 그럽니다. 국내 정유 시장에서 앞으로 돈을 쓸어 담을 게 뻔하니 당연히 기쁘지 않겠어요? 프라임오일컴퍼니 지분이 80%나 되는데 말이에요."

별로 안 기뻐하는 게 그렇게 티가 나나?

하긴, 전에 두 사람 앞에서 해놓은 말들이 있으니…….

-사장님이 뭘 걱정하시는지 알아요. 하지만 우리 뒤에는 국자투가 있고, 또 이번에 JS칼텍스하고도 손을 잡았어요. 이 정도면 SC이노베이션이 아무리 방해공작 들어와도 쉽게 안 흔들려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도 겨우 정유 사업 진출하는 것 가지고 크게 귀찮아질 거라고는 생각 안 했습니다."

하나가 성공했으니, 둘도 셋도 넷도 이제 해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일게 걱정돼서 그렇지.

"아무쪼록 기왕 이렇게 잘된 거, 부디 실패 없이 아주 크게 성공해서 떼돈 한 번 벌어봅시다."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이라고 했다. 정서희에게 부디 자신의 이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기를.

"그리고 지금 워낙 벌여놓은 사업이 많으니, 당분간은 회사 내부 안정에 신경 쓰도록 합시다. 제가 알기로 JM식품하고 다른 식품사업 제휴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여기에 정유 시장 진출까지 더해지면 업무가 과열되는 거 아닌가요?"

-아무리 과열되더라도 문제 없도록 할게요.

'아니, 더 이상 과열을 끼얹지 말란 말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격려도한 뒤, 통화를 종료했다.

하수영은 조용한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지금 이렇게 초기에 추진력을 내는 것은 나중에 멋들어지게 고꾸라지기 위해서일 거야. 정유 사업, 그게 어디 보통 까다로운 시장인가. 잘 풀리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기름 장사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 보내다 보면 에너지컴퓨터반도체의학군수산업까지 할 엄두는 못 내겠지."

나중에 포크레인으로 막을 걸 미리 수저로 막았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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