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49화
35장 기어이 하는 거야? (1)
장효주가 SNS, 유튜브 등에 올린 방문기와 동영상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빠르게 퍼져 나간 상태였다.
덕분에 수영레스토랑에 대한 부정적인 평들은 저만치 묻혀서 제대로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와, 언니 오늘도 너무 예뻐요!
-어쩜, 면발 흡입하는 모습도 그저 여신이구나. 사랑합니다, 누님.
-라면이 엄청 맛있어 보여요. 무슨 라면이죠? 수영라면?
-히익! 라면 한 그릇에 35,000원? 역시 우리 수영 누나는 라면 하나를 먹어도 우아하게 비싼 걸 드시는구나.
일 방문자 10만을 자랑하는 파워 블로거 이수현은 웹서핑을 하면서 점점 패닉에 빠졌다.
자신이 열심히 일궈놓은 수영레스토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장효주의 SNS 영상 한 방에 완전히 날아가 버렸으니.
"말도 안 돼! 어째서 우리 효주 언니가!"
이건 배신이야! 배신이라고!
열혈 팬을 개무시한 그런 가게에 가서 비싼 돈 내고 라면도 먹고 홍보까지 해주다니!
물론 이 정도 사건으로 팬심을 접을 생각은 없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가게 망하는 걸 내 눈으로 꼭 지켜보려 했는데!'
장효주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그렇게 힘들게 쌓아 올린 악평들이 자취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파묻혔다.
인터넷에는 수영레스토랑이 어디냐, 저게 무슨 라면이냐, 왜 저렇게 비싸냐, 나도 가서 먹어봐야겠다, 등등 수영레스토랑에 대한 관심만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서 비틀거리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등기입니다."
"네, 나가요."
올 등기가 없는데, 뭐지? 하는 마음에 문을 연 이수현은 집배원으로부터 등기를 전달받았다.
"여기에 등기 받았다고 이름 정자로 써주세요."
"아, 네."
이게 무슨 등기지? 하는 마음에 서명을 마친 이수현은 선명한 법원마크를 보고 혼란에 빠졌다.
"법원에서 웬 등기야?"
수신인에 선명하게 박힌 자신의 이름을 보니 불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겉봉투를 찢은 이수현은 내용물을 확인하고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뭐야? 나더러 법정에 출석하라고? 아니, 어떤 놈이 날 고소한 거야?"
민사소송 피고인이 되었으니, 법원에 출석해서 변론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원고 이름을 확인하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수영레스토랑 대표 하수영]
***
하수영이 확보한 증거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다.
이수현이 고의로 자기 머리카락을라면 그릇에 넣는 모습은 고화질 CCTV에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얼굴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까지 식별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역시 비싼 돈을 들여서 군사용으로 쓰이는 최고급 CCTV로 도배를 한 보람이 있었다.
국과수 의뢰를 통해 머리카락 및 그릇에 있던 생체 정보 감정도 거쳤다.
"재판부가 피고의 유전자 감정으로 감식 대조를 명하기만 하면, 뭐 재판은 그냥 끝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인터넷에 최초 유포된 비방글도 내용과 출처 자료를 이미 확보했으니까요."
나이든 변호사가 데리고 온 젊은 수행 변호사가 대신 열심히 설명했다.
어차피 재판 자체는 나이든 고등법원장 출신 변호사가 진행하는 게 아니라, 그 밑의 수행 변호사들이 추진한다. 고등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전관예우를 담당할 뿐이다.
'그놈의 전관예우가 아직도 남아 있네. 석유로 동력기관을 돌리는 미개한 문명 시대니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사회의 제도나 관습에 저항할 마음이 없는 하수영은 편한 길을 택했다. 바로 비싼 돈을 들여 전관예우변호사를 써서 민사소송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비싼 돈을 들여 변호사를 고용했으니, 이제 소송 쪽은 신경 끄면 된다. 나중에 승소 소식만 받아들면 그만.
"거듭 말씀드리자면 합의는 없습니다. 저는 피고인한테 인생을 실전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뼛속까지 각인 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야 다시는 저 같은 선량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을 테니까요. 최대한 괴롭혀 주세요."
"알겠습니다."
허위사실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영업방해.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배상금 몇천만 원 이상을 받아내기 힘든 사건이다.
그런데 의뢰인은 기꺼이 13억이나 되는 수임료를 냈다.
그만큼 돈이 많다는 것도 있겠지만, 상대한테 배상금을 얼마나 받아 낼지는 관심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젊은데 참 돈이 많아…….'
판사 출신의 대표 변호사 박호진은 이런 좋은 고객과 오래 같이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자신이 고객의 매장까지 직접 찾아왔다.
"전에 잠깐 웹 검색을 해봤습니다.
여기 레스토랑이 정말 장사가 잘되더군요."
재판 이야기가 얼추 끝나자, 가벼운 신변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왔다.
"장사가 잘돼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안 그럼 변호사님 수임료를 감당 못 했을 겁니다. 사건 의뢰하느라고 일주일 치 영업 이익을 고스란히 지출했어요, 하하."
그 말에 박호진 변호사와 수행 변호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표정이 흔들렸다.
수임료가 13억인데, 그럼 그 돈을 일주일 만에 번단 말인가?
이 가게 하나에서?
"허허, 매출이 정말 엄청난가 봅니다."
"월 63억 정도? 이거저거 다 제하면 한 달에 55억 정도 남는 거 같더라고요."
"……."
오직 라면 하나만 파는, 자리 100석짜리 가게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이익을 남기다니.
박호진 변호사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라면 맛이 그만큼 훌륭해서겠지만, 그래도 주변 상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매출과 이익이 매우 높은 거 같군요."
"맞아요. 요즘 청담 상권이 예전 같지 않더라고요. 친하게 지내는 소상공인분들 말 들어보면 임대료 내기도 빠듯하대요. 대체 이놈의 경기는 언제쯤에나 살아날지. 제가 청담동 싹 매입할 때쯤에는 살아날까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잘 안드는 법인데, 장사가 잘돼도 근심이 많으시겠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건물주가 매장을 뺏으려고 뒤에서 온갖 방해공작을 벌이기도 합니다. 혹 그런 경우에 처하게 되면 지체 없이 연락 주십시오."
"그 문제는 괜찮아요. 이 빌딩이 제 거거든요."
***
박호진 변호사는 다시 한번 하수영을 장기 고객으로 잘 유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수영은 곧바로 지하 매장 인테리어를 개시했다.
지하 1층의 1/4에 달하는 면적을 수영레스토랑으로 활용하되, 자리는 300석으로 1층보다는 널찍한 배치를 주문했다.
새로 채용할 셰프와 홀 직원, 매니저도 면접을 진행했다.
어쩌다 보니 셰프, 홀 직원, 매니저 모두 기존 직원들의 지인들을 추천받아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
"아시겠지만 다른 요식업에 비해서 우리 매장의 대우가 좋은 편입니다. 그건 제가 씀씀이가 헤퍼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심히 일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해서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불성실한 모습은 절대로 보여드리지 않겠습니다."
면접에서 특별히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기에, 채용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지하 매장은 셰프 7인, 홀 서빙직원 10인, 매니저 1인과 부매니저 1인, 주방보조 7인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자리가 300석이긴 하지만 1층처럼 저 300석이 하루 종일 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적어도 100석 정도는 상시 여유가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2, 30% 정도 여유가 남는 채로 끊임없이 로테이션이 돌아가는 게 가장 좋죠."
"네, 저도 그걸 생각하고 일부러 자리를 넉넉하게 300석 정도 들여 놨어요. 이 근처 상권 크기로 보면 이 정도가 한계치인 거 같아요. 더 매출을 늘리려면 이제 다른 지역에 진출해서 2호점을 내야죠."
아무리 맛이 좋다 해도 라면 한 그릇 먹자고 매번 먼 거리를 이동할 수는 없는 법이다.
때문에 한 지역에서의 매출을 극대 화하고 싶으면, 그 지역에 여러 개의 매장을 골고루 떨어뜨려서 운영해야 한다.
"역삼, 삼성, 대치, 신사, 압구정에도 매장을 하나씩 내긴 해야 할 텐데."
"하시면 되잖아요.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데 망설이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직원들은 궁금했다. 매장 오픈 비용 때문은 아닌 거 같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하수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시잖아요. 고춧가루 부족한 거."
"……아."
"맞아요, 그걸 생각 못 했네요."
"다른 식재료는 얼마든지 제한 없이 조달 가능합니다. 하지만 고춧가루는 생산량이 너무 적어요. 딱 지금 확장하는 매장까지만 겨우 장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수제 생산이라는 게 이런 문제점이 있다. 그러니 자본주의 공장에서 다들 그렇게 공산화, 무인화를 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리라.
"이 고춧가루 수량 적은 문제만큼은 돈으로는 해결이 안 되니 너무 골치가 아픕니다."
"너무 아쉽네요. 전국 각지에 매장을 내면 정말 대기업 못지않은 프랜차이즈 사업이 될 텐데요."
"그건 아니죠. 솔직히 여기가 청담이니까 한 그릇에 35,000원이나 하는 라면이 잘 팔리는 겁니다. 강남구만 벗어나도 장사하기 힘들 겁니다."
"아, 그건 그렇네요."
"매일 너무 장사가 잘돼서 잠시 잊고 있었어요. 우리 가게에서 파는라면, 사실 엄청 비싼 거였지."
"솔직히 저도 제 돈 주고는 못 사먹습니다. 맛이 문제가 아니라 가격이 너무 부담돼서요."
이택진 셰프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사장님, 그럼 다른 지역에서는 고춧가루를 제외해서 맛과 가격을 다 운그레이드한 다음에 팔면 어떻습니까?"
"다운그레이드요?"
"네, 지금 수영라면은 고급음식이라는 이미지가 단단히 입혀져 있잖아요? 다른 이름을 붙이던지 해서 일반인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단가 낮은 라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 장사가 잘될 거 같은데요."
"아, 그거 괜찮네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보통 천국김밥 같은 곳에서 라면 한 그릇에 4,000원 정도 하니까, 대충 6, 7천 원 정도로 해서 전문적으로 파는 매장을 내면 장사 잘되지 않을까요?"
"흐음……."
맛과 가격을 모두 다운그레이드해서, 좀 더 많은 대중이 편안히 찾을 수 있는 라면 체인점 브랜드를 따로 런칭하자.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굳이 못 할 이유는 없다는 판단이 섰다.
"확실히 장사가 잘될 거 같긴 하네요. 고춧가루 빼고 송이나 황비버섯투입량도 조금 줄이고, 가격은 몇천원 단위로 해서……."
"네, 이미 고가 라면 브랜드는 갖고 계시니 따로 저가 라면도 병행해서 팔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저가 라면은 벌써 따로 갖고 있어요. 제가 따로 '라면 싸게 파는 가게'가 원래 있었거든요."
"아, 라면 가게가 우리 매장이 스타트가 아니었군요."
"네, 엄밀히 말하자면 두 번째 가게입니다. 라면 싸게도 팔아봤는데 장사가 잘돼서, 자신감을 얻고 수영레스토랑을 오픈한 거예요."
"어쩐지, 사업 감각이 탁월하시더니."
"역시 이미 경험이 있으셨구나."
직원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수영이 다른 지역에서 맛 좋고 가성비 좋은 라면을 몇천 원 정도에 파는 가게를 이미 몇 개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수영이 말한, '라면 싸게 파는 가게'가 요즘 라면 업계를 제패한 신흥강자, 프라임컴퍼니라는 종합식품제조사라는 사실은 전혀 짐작조차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