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48화
34장 인스턴트 CF(2)
"즉석 CF?"
이정재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반문했고, 장효주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그에게 내밀었다.
"가게 번창하시라는 의미에서 라면 홍보하는 영상 찍어서 내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 광고주님, 괜찮죠?"
"장효주 씨가 그리 해주신다면 저야 좋죠. 안 그래도 요즘 인터넷에서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골치 아팠거든요. 법적 조치까지도 준비 중이었어요."
"제가 SNS에 즉석 CF 올리면 많이 줄어들 거예요. 대신 다음에 정식 CF 계속 주셔야 해요?"
장효주가 애교스럽게 눈을 찡긋하자, 하수영은 속으로 피식피식 웃었다.
'이거 완전 여우네. 어쩐지 안 나와도 되는 오늘 잔금일에 나온다 싶더니만.'
매니저에게 맡기면 되는 자리인데 굳이 나와서 얼굴을 비추고, 또 늦은 아침 식사자리까지 가진다.
그녀가 연기자이면서도 비즈니스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연예인이라는 방증이리라.
장효주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한 이 정재도 얼른 맞장구를 치며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알았어, 내가 예쁘게 잘 찍어줄게."
"편집은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오빠는 구도만 신경 써서 잘 찍어 줘."
"내가 너 찍는 게 어디 한두 번이냐. 걱정 마라. 예쁘게 잘 찍어줄 테니까."
"잠깐만, 자세랑 감정 좀 잡고."
장효주는 선글라스를 벗은 뒤 손거울을 꺼내 화장과 머릿결 상태를 확인했다.
그때 홀 쪽에서 가벼운 비명이 터졌다.
"자, 장효주야!"
"어쩐지! 목소리가 어디서 들어봤다 했더니 장효주가 맞았어!"
"우와, 아니, 우리 사장님께서 장효주하고 친한 사이였어? 가게 데려와서 아침 식사까지 함께할 만큼?"
그제야 장효주의 정체를 알아차린 직원들은 사인 한 번 요청하고 싶어서 난리가 났다.
"안녕, 팬 여러분? 오늘은 요즘 한 창 유명하다는 라면 맛집 수영레스토랑에 왔어요. 이 수영라면이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장효주는 스마트폰 렌즈를 응시한 채, 마치 팬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이정재 매니저도 스마트폰을 쥔 채 신중한 눈빛으로 장효주의 모습을 담아냈다. 한두 번 맞춰 본 호흡이 아니다.
직원들은 먼발치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장효주가 즉흥적으로 인스턴트 CF를 찍는 광경을 구경했다.
"그럼 어디 한번 맛을 볼……."
그렇게 말하면서 첫 젓가락질을 할 때, 돌연 장효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하수영을 향했고, 하수영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둘은 말없이 눈빛으로 대화했다.
'이,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예요?'
'당연하죠. 주신의 MSG를 아낌없이 뿌렸으니까요.'
그녀가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맛에 놀라워하는 모습은 그대로 폰에 낱낱이 담겼다.
"됐어."
이정재가 폰을 넘겨주자 장효주는 그제야 숨을 고르며, 빠른 속도로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식사를 마치자마자 장효주는 그 자리에서 보정편집 어플을 뚝딱뚝딱 만지기 시작했다.
"편집 끝, 보정도 거의 끝나가요."
"벌써 끝입니까?"
"요즘 앱이 하도 좋아져서요. SNS 올릴 토막 동영상쯤이야 금방이죠."
장효주는 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이제 올리는 중이에요."
"올릴 데가 많습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하는 SNS는 다 올려요. 아참, 유튜브에도 올려야지."
"유튜브요?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침투하시면 어떡합니까. 저도 소상공인으로서 이거 남 일 같지가 않은데요."
"그거 웃자고 하신 말씀이시죠?"
식사를 마친 뒤에야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다가와서 사인을 요구했고, 장효주는 기꺼이 그들의 요청을 받아주었다.
마지막에는 장효주와 모든 직원들이 다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큰 액자로 만들어서 매장에 보기 좋게 진열하기로 했다.
헤어지기 전 하수영이 조용히 물었다.
"라면 말고 다른 식품들 CF 찍을 생각은 없으세요?"
"제 소속사하고 이야기해야겠지만, 저는 하고 싶어요."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장효주는 톱배우다. 섭외만 된다면 CF모델로 적극 활용하는 게 영업에 도움이 된다.
그녀가 매니저와 함께 돌아가자, 직원들은 하수영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와서 호들갑을 떨었다.
"어쩜, 사장님. 장효주 씨하고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일 관계로 알게 됐습니다. 자세한건 비밀."
"그럼 효주 씨 앞으로 우리 매장에 자주 오는 건가요?"
"글쎄요, 오늘은 일이 있어서 그거 처리하다 보니 같이 늦은 아침이나 하자고 한 거였고,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네요."
셰프들은 다른 이유에서 장효주의 방문을 좋아했다.
"여배우 장효주도 맛있다고 칭찬한라면! 이거 진짜 인지도가 하늘을 뚫겠는데요. 사장님, 우리 매장 더 확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도 100석으로는 영 모자란데."
"장효주 SNS 지금 난리 났네요. 그 라면 가게 어디냐고, 내일 당장 찾아가겠다는 댓글이 지금 수천 개가 넘어요."
"이거 장효주 씨가 우리 가게 홍보 제대로 해주셨는데요. 파워블로거들 비방 쏙 들어갔어요. 이젠 찾아보기도 힘드네."
"장효주 씨가 제대로 한 건 해주셨네."
장효주가 즉흥적으로 찍어 올린 인스턴트 홍보 영상은 커다란 파급 효과를 낳았다.
수영레스토랑을 전혀 모르던 사람 들한테도 이름을 알린 것은 물론, 근거 없는 비방글을 퍼뜨리며 시샘하던 이들의 존재감이 묻힌 것이다.
하수영도 장효주가 올린 영상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했다.
50만에서 정체돼 있던 프리덤 앱다운로드 속도도 다시금 오르기 시작했다.
"……."
그는 가게 안을 잠시 둘러 보았다.
널찍한 매장 안에는 100개나 되는 자리가 너무 빡빡하지 않은 정도의 밀도로 배치돼 있다.
배치 간격을 조절하면 좀 더 자리를 늘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불편함이 커진다.
'지금도 뒷손님 밀려들어 오는 거 눈치 보여서 다들 빨리빨리 먹고 나가는데, 거기에 더 압박을 줄 순 없지.'
너무 맛있어서 정신없이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줄 서 있는 이들에 대한 부담감에 일부러 먹는 속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매장을 확장하는 2호점을 내든, 이제 결정을 하긴 해야겠네요."
"사장님, 왜 그런 고민을 하세요?"
박지현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냥 지하 1층 쓰시면 되잖아요. 거기 비어 있는데."
"……!"
"아니면 지하에 세입자 받기로 하셨어요?"
하수영은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표정이 되어, 저도 모르게 잠시 비틀거렸다.
'난 바보인가? 왜 여태 그 생각을 안 했지?'
지하 1층 매장은 수영레스토랑에 비해 면적이 8배는 된다.
한 층을 통째로 쓸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남아도는 자리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냥 1/4 정도만 써도 증가하는 손님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유흥술집이 퇴거하고, 그동안 적당한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아서 마냥 비워놓은 채 기다렸는데, 도리어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그렇네요. 제가 왜 여태 그런 생각을 안 했을까요."
"숫자 계산 같은 건 머릿속에 슈퍼컴퓨터가 들어 있으신 분이. 그럼 지하에 들어오는 세입자는 없는 거예요?"
"네, 없습니다. 이상하게 연락이 안오더라고요. 전에 있던 임차인이 몰래 방해라도 하나 봐요."
"전에 있던 임차인이요?"
직원들은 지하 1층에 원래 누가 있었는지 잘 모른다. 아주 큰 술집이 있었다, 그 정도로만 알고 있다.
"네, 나가면서 두고 보라고, 강남에서 자기한테 이렇게 대하고도 문제없겠냐고 큰소리치면서 나가더라고요. 그 뒤로 조용하긴 한데, 이상하게 임대차도 조용하더라고요.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전혀 없는 거예요? 그럴 수가 있나요?"
"작은 상가 정도를 원하는 문의는 당연히 많죠. 근데 지하 1층은 아무 래도 전 층을 통째로 쓰거나, 아니면 1/3 이상은 사용할 대형 상가가 들어와야 해서요. 그런 임대차 문의는 전혀 안 들어오더라고요."
우형신 중개사도 이전 임차인이 방해를 놓는 게 아닌가 하고 은근히 의심하고 있을 정도였다.
"차라리 잘됐네요. 지하층에 수영레스토랑 확장 공사를 해야겠어요. 근데 이러면 셰프는 물론이고 홀 매니저부터 직원까지 전부 추가로 더 채용해야 하는데……."
하수영이 고민에 잠겨서 중얼거리자, 이택진 셰프가 얼른 손을 들었다.
"사장님, 제 친구 놈 한 명을 데려와도 될까요? 요리 솜씨나 경력, 성실도는 두말할 필요가 없이 제가 보증합니다."
"아, 그럼 한 번 와서 면접 좀 보라고 하시겠어요?"
"사장님, 저도 제 친구한테 연락할까요?"
"저도 제 친구 불러오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셰프님들이 괜찮은 분들로 소개 좀 해주세요. 적어도 9명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건은 여러분들과 동일하고요."
박지현 매니저도 은근슬쩍 손을 들었다.
"사장님, 제 언니가 직장 그만둔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 한번 말을 해도 될까요? 일은 잘하고 성실해요. 만약 언니가 일 못하면 제가 책임질게요."
"그러세요. 한 번 연락하라고 해요."
워낙 매장의 근무 조건이 좋다 보니, 기존 직원들의 추천에 의해서 순식간에 인원 배치가 완성되었다.
아직 매장 개조를 위한 인테리어 공사 발주를 넣지도 않았는데.
'솔직히 매장 모든 테이블이 하루종일 100% 풀로 돌아가는 건 너무 말이 안 돼. 달리 말하면 하루 종일 놓치는 손님들도 그만큼 된다는 뜻이잖아?'
100% 올 테이블.
이는 매장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잠재적 대기 수요가 늘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유 좌석이 항상 30% 정도로 유지되면서 가게가 돌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지하 매장은 한 300석정도로만 채워보자. 창이 없으니 서로 널찍하게 떨어져라도 있어야 답답한 느낌이 안 들겠지?'
당장은 지하층의 1/4 정도만 매장으로, 자리는 300석, 여유 공간은 1층보다는 널찍하게.
하수영은 그렇게 가닥을 잡았다.
***
파워블로거, 이수현은 그날 수영레스토랑에서 모욕당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숨을 몰아쉬곤 했다.
-손님 머리카락이 어쩌다가 빠진걸 손님이 착각하신 게 아닌가 한 건데요.
-그리고 이 머리카락은 국과수에 의뢰해서 DNA 감정을 하겠습니다.
-지금 저와 같이 국과수로 가실까요?
"아아악! 그 능글능글한 눈빛!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부숴 버리고 싶어! 가게 망하게 만들어주고 싶어!"
처음부터 머리카락을 넣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매장에 딱 하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은 게 짜증이 났었다.
심지어 2천만 원이 넘는 DSLR 카메라의 대포 렌즈(물론 협찬받은 것이다)까지 들이대며 열심히 라면 사진을 찍는데, 직원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 정도로 티를 팍팍 내면 당연히 파워블로거시냐고 정중히 여쭤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적당히 훈계를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려는 선에서 그치려고 했는데, 지배인이라는 능글맞은 남자가 뜬금없이 DNA 감정까지 들먹였다.
순간 겁이 나서 그 자리를 벗어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할수록 여간 괘씸한 게 아니다.
"두고 봐. 감히 나 파워블로거 이 수현 님을 무시한 응징의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
이수현은 오늘도 인터넷 세상에서 열심히 퍼져 나가는, 수영레스토랑 비방글을 보며 흐뭇해했다.
오늘도 비방글이 얼마나 늘어났나 하고 웹서핑을 하던 중 의아한 걸 발견했다.
"뭐야? 해시태그가 오늘따라 왜 이래? 그 망할 가게, 무슨 호조라도 있는 거야?"
열심히 인터넷을 뒤진 결과 이유는 곧 파악할 수 있었다.
-안녕, 팬 여러분? 오늘은 요즘 한창 유명하다는 라면 맛집 수영레스토랑에 왔어요.
"장효주? 우리 효주 언니가 이 가게를 왜 칭찬하는 거야?"
이수현은 그저 장효주의 팬이다.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장효주보다는 연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