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46화
33장 파워블로거인데요? (2)
마침 레스토랑에 있던 하수영은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쩐지 오늘은 꼭 가게에 나오고 싶더라니.'
모처럼 서락산 저택에 틀어박혀 느긋하게 태블릿으로 청담동 매물이나 아이쇼핑하려고 했는데, 가게에 나오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근질하더라.
이런 일이 생길 걸 알고 예감이란 놈이 그렇게 출근을 하자고 졸라댔던 거로구나.
"고객님, 제가 가게 지배인입니다만, 저에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수영이 웃는 얼굴로 나서자, 머리카락으로 항의를 하던 여자 손님이 그를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하수영이 젊어도 너무 젊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지배인? 사장은 어디 있어요?"
"사장님은 지금 몰디브에서 신혼여행 중이십니다. 제가 책임자이니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
여자 손님은 뭔가 말문이 막혔다가 다시 목청을 가다듬고 항의했다.
"그렇다니 알았어요. 그럼 그쪽하고 이야기하죠. 비싸고 맛좋은 라면 가게라고 해서 큰마음 먹고 왔는데, 무슨 위생 관리가 이따위인가요? 이런 식으로 요리하고도 라면 한 그릇에 35,000원이나 받을 양심이 들었어요? 이거 보세요, 이거!"
여자 손님은 보란 듯이 머리카락을 내밀었고, 하수영은 정중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거 이상하네요. 저희 주방에는 여자 셰프나 보조가 없습니다.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여자 머리카락인데요."
"홀 직원들 머리카락이 들어갔나 보죠, 그럼. 제 라면은 이 여자분이 가져왔어요."
여자 손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답했다. 표정에는 조금의 거침도 없었다.
어느덧 주변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손님들이 젓가락질을 멈추고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홀 매니저 박지현은 저만치서 조마조마해서 어쩔 줄 몰랐고, 요리를 가져왔던 홀 직원 윤지연은 마치 자신이 죄라도 지은 양 사색이 되어 있었다.
하수영은 냅킨을 하나 꺼내서 머리카락을 천천히 닦은 뒤, 조명을 향해 들어 올리고 자세히 관찰했다.
"염색을 하지 않은 검은색 모발이네요. 그런데 우리 윤지연 직원님은 보다시피 짙은 와인색으로 염색을 했습니다."
하수영의 눈동자가 항의한 여자 손님의 머리카락을 향했다.
그녀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도 당황함이 없는 그의 태도에 여자 손님의 얼굴에 비로소 당황한 감정이 어렸다.
"뭐예요? 그럼 내 머리카락이라는 거예요? 지금 내가 내 머리카락을 몰래 빠뜨리고는 남 머리카락이라고 우겨가면서 항의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닙니다. 손님 머리카락이 어쩌다가 빠진 걸 손님이 착각하신 게 아닌가 한 건데요."
하수영이 웃으면서 말하자 여자 손님의 안색이 더욱 구겨졌다.
"어이없네. 이 가게는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면 무조건 손님 탓으로 모나 봐요? 이런 가게가 어떻게 SNS에서 그렇게 유명한지 이해가 안 되네."
여자 손님은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저 하루 방문자 10만 명 넘는 파워블로거거든요? 와, 이거 블로그는 트위터는 인스타그램이든 죄다 그냥 퍼뜨려야겠다. 뭐 이런 가게가 다 있어? 음식에서 머리카락 나왔으면 일단 죄송하다 사과하고 환불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손님,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해결 방법?"
그제야 여자 손님의 귀가 조금 쫑긋 솟았다.
"일단 음식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머리카락은 국과수에 의뢰해서 DNA 감정을 하겠습니다. 아, 혹시 관련 비용이 발생한다면 그건 모두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여자의 안색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뭐라고요? 국과수? DNA 감정?"
"네, 어쩌면 우리 윤지연 직원님 머리카락 중에서 염색이 되지 않은, 새로 난 머리카락이 빠진 걸 수도 있으니까요. 확실한 진위 파악을 위해서 DNA 감정을 해보려고요."
하수영은 윤지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연 씨, 밀봉용 위생팩 하나 가져와요. 스테이플러도 부탁해요."
윤지연은 얼른 위생팩과 스테이플러를 가져왔고, 하수영은 안에 머리카락을 담은 뒤 스테이플러로 몇 차례 집어서 단단히 봉인했다.
"손님, 지금 저와 같이 국과수로 가실까요? 저 혼자 가면 중간에 바꿔치기할 수도 있으니, 손님이 제 옆에서 함께 지켜봐 주시겠습니까?"
"돼, 됐어요! 환불 같은 건! 내가 더러워서 그냥 간다, 가!"
여자 손님은 이제 당황할 대로 당황해서 급히 짐을 챙겨서 후다닥 가게를 나섰다. 라면은 미처 1/3도 먹지 않은 채였다.
박지현이 다가와서 감탄하며 말했다.
"저 사람이 자기 머리카락 일부러 넣은 거 맞죠? 어쩌다가 빠졌는데 착각한 게 아니라요."
"도망간 거 보니 그게 맞는 거 같네요. 안 그럼 저렇게 당황해서 도망을 갈 이유가 없죠."
"와, 어떻게 아신 거예요?"
"알았던 건 아니고 원칙대로 했을 뿐입니다. 누구 머리카락인지 밝혀 내려면 DNA 감정 말고 더 좋은 게 뭐가 있겠어요?"
"진짜 국과수까지 가려고 하셨어요? 만약 그러다가 저 사람 머리카락 아니라고 나오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하고 시간 낭비, 감정 소모 한 것에 대해서 정중히 배상을 해드려야죠."
박지현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하수영을 바라봤다.
블러핑인 줄 알았는데, 표정을 보니 정말로 국과수 감정 의뢰라도 맡겼을 것만 같다.
"그나저나 저 사람이 인터넷에 안좋은 글이라도 올려서 그게 퍼지면 어떡해요?"
"소비자의 불평불만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죠."
그냥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뜻인가?
"그리고 자유는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큰 자유일수록 큰 책임이 따르죠."
"어떤 책임이요?"
"보통은 돈으로 책임을 지게 되겠죠. 우리나라는 자유자본주의 국가잖아요."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가게라면 맛있는 건 단골손님들이 더 잘아십니다. 근거 없는 루머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일일 방문자가 10만 명이 넘는 파워블로거라고 하던데요. 파워블로거 영향력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하루 10만명이면 판잣집이네요. 브론즈 티어죠, 뭐."
"네? 10만명이 왜 판잣집이에요?"
"그 정도면 판잣집 맞습니다. 판잣집 유저가 으르렁거리는 건 신경 쓸 필요 없으니 잊어버리세요."
박지현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인터넷에 수영레스토랑을 까는 글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영레스토랑 거기는 무슨 라면 하나에 35,000원이나 처받는지 이해가 안 감.
-아무리 고급 재료 넣고 그래 봐야 결국 라면 아님? 그 돈이면 뜨끈한 국밥이 대체 몇 그릇이야.
-꼴에 청담이라고 일부러 프리미엄 붙여서 비싸게 파는 거지. 그걸 좋다고 또 찾아가서 처먹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감. 자기는 35,000짜리 라면도 사먹는다고 유세 떨고 싶은 건가?
-남들 다 명품 들고 다닌다고 나도 사고 싶은 사람 마음 같은 거지, 뭐.
-우리나라에 이렇게 호구들이 많았어?
-그래 봐야 라면 하나만 파는 라면 가게면서 상호도 겁나 웃김. 수영레스토랑이 뭐야, 레스토랑이? 딸랑 라면 하나 파는데도 레스토랑이라고 하나?
수영레스토랑에 대한 부정적인 평들이 관련 해시태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좋은 평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원래 사람은 자극적인 것에 끌리는 법. 그리고 긍정보다는 부정이 더 자극성이 강하다.
수영레스토랑을 가본 적이 없거나, 그 존재를 처음 듣는 이들은 부정적인 평에 귀가 솔깃했다. 아무래도 35,000원이라는 지나치게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가게 직원들은 틈만 나면 인터넷평을 찾아보며 근심을 나누는 습관이 생겼다.
"왜 이렇게 안 좋은 평이 생기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라면 먹고 간 손님 중에서 불만 기색 내비친 분은 한 분도 없는데."
"아마 우리 라면은 먹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열등감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사실 한 끼에 35,000원이라는 가격은 그리 쉽게 지갑을 열기 힘들죠."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장사가 잘되잖아요? 하루에 평균 6,000그릇씩 팔고 있는데……."
"솔직히 우리 가게 찾는 손님들은 단골이 많아요. 그것도 일주일에 3회 이상씩 찾는 분들이 엄청 많죠."
주문 결제의 90% 이상이 어플 프리덤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수영라면 수요에 관한 빅데이터를 수집 및 분석하는 게 간단했다.
하수영은 분석 자료를 셰프 등 직원들에게도 제공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주로 어떤 유형인지를 알아야, 직원들도 원활히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손님 분포도 분석 자료를 보면…… 지금까지 우리 가게를 방문한 총 누적 손님 수는 모두 93,201명이네요. 물론 프리덤 앱을 이용한 손님에 한해서 본 거예요."
"다운로드는 50만이 넘었는데, 실방문자 수는 그보다 훨씬 적군요."
"호기심에, 혹은 나중에 방문하려고 미리 다운만 받아놓은 거겠죠."
"그중 30%이상이 주 3회 이상 방문하는 충성 고객이네요."
"수영라면은 한 번도 안 먹어볼 수는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볼 수는 없는 맛이잖아요."
"그건 맞아요."
마감을 마치고,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데이터 분석과 인터넷 반응을 살피는 모습을, 하수영은 흐뭇하게 지켜봤다.
"여기가 청담인 것도 있고, 멀리서 여기까지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고, 결국 기본적으로 우리 가게 손님들은 일정 이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이 많네요."
"아무리 맛있어도 라면 한 그릇에 선뜻 35,000을 쓸 정도면 일정 수준의 여유는 갖춰야죠. 평범한 집안의 학생이나 백수가 그런 돈을 쓰진 못하잖아요."
"안 좋은 말이 올라온 지는 꽤 됐는데, 방문하는 손님 분포나 패턴은 별로 변한 게 없네요?"
"파워블로거들의 비방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증거겠네요. 그만큼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이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뭐야, 그럼 파워블로거들 결국 뻘짓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 가게에서 파워블로거라도 난리 친 사람은 저번의 그 머리카락 여자 말고는 없었는데,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대체 뭐죠? 그냥 가게 온 적도 없으면서 와본 척하면서 루머를 재생산하는 애들인가요?"
이택진 셰프가 멋쩍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원래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게 사람 심리입니다. 우리 가게가 너무 장사가 잘되니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겠죠. 그게 같은 요식업계 사람이든, 그냥 인터넷에서만 서식하는 키보드 워리어는 말이에요."
"주요 손님층 유형을 보면 인터넷악담 같은 건 그냥 놔둬도 가게 장사하는 데 지장은 없을 것 같지만……."
"나중에 2호점, 3호점 같은 걸 낼때는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도 있겠어요."
걱정은 홀 매니저와 서빙 직원들이 심한 편이었고, 셰프들은 오히려 덤덤한 반응이었다.
"장사하다 보면 이런 일 수두룩해. 시기, 질투, 질시. 솜씨 좋고 열정있는 요리사가 오랫동안 빛 못 보다가 방송 잘 타서 날아오르려고 하면, 이웃 상가에서 좀비처럼 달려들어서 날개를 꺾어버리기도 한다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뭔가 억울한데."
"가만히 있다니요? 이미 소송 걸었는데요?"
"네?"
잠자코 있던 하수영이 끼어들자, 다들 소송이라는 말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소송이요? 누구한테요?"
"그 자칭 파워블로거라는 판잣집머리카락 블로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