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44화
32장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3)
예상외의 답변에 오철현은 눈을 치켜떴다.
"그게 무슨 뜻이야?"
-권한을 벗어난 주문이기에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권한을 벗어나지 않은 주문은 뭔데?"
-수영레스토랑 예약이나 결제에 관해서 주문해 주십시오.
"내일 주가 동향은 어떨 거 같아?"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수영라면의 나트륨 함량은 어떻게 되지?"
-평균 1,700㎎입니다.
"인스턴트라면 한 그릇이 보통 1,800㎎이 넘는데? 식재료를 그렇게 많이 넣는데 어떻게 더 적을 수가 있지?"
-수영라면에 포함된 나트륨은 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방출되는 양이 상당합니다. 나트륨 함량 1,700㎎인 음식을 먹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수상해, 수상해.
아무리 봐도 이건 보통 인공지능이 아니야.
'진짜 사람이 대신 말하는 거 아니야? 사람이 텍스트로 입력하면 그걸 기계음으로 재현하는…….'
프리덤의 반응을 보면, 그런 식으로 추정하는 게 가장 타당할 것 같다.
'근데 그렇게 하면 남는 게 있어? 불필요한 인건비만 지출되잖아?'
"내가 최승희 씨랑 잘될 거 같아?"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이번에 미국 대통령이 탄핵소추됐는데 상원에서 가결할까, 부결할까?"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지금 한강 수온이 몇 도지?"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내일 점심에 수영라면을 먹고 싶은데 몇 시에 가는 게 적당할 거 같아? 참고로 내 직장은 판교 실비아 빌딩이고 오전 업무가 1시는 되어야 끝나."
-서울 올라오는 교통 상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넉넉히 2시 정도에 예약하는 게 좋겠습니다. 기상 일보에서 소나기가 올 확률이 90% 이상으로 예상되니, 우산을 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까는 내일 날씨는 권한을 벗어났으니 답변할 수 없다며? 어떻게 된 거야?"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대체 답변할 수 있는 건 뭔데?"
-말씀드렸습니다. 수영레스토랑 예약 및 주문에 관한 내용에 한해서만 답변드릴 수 있습니다.
오철현은 스마트폰을 노려보며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솔직히 말해. 너 지금 사람이 타이핑하는 대로 기계가 그냥 읽는 거지?"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 * *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송이안심구이 등 주메뉴에 쓰려고 준비해 뒀던 밑재료로 회식을 하는 것이, 어느새 가게 관습처럼 자리를 잡았다.
가게가 자리를 잡은 요즘에는 오픈조와 중간조는 굳이 회식은 하지 않고 퇴근 시간이 되면 귀가한다. 물론 그들도 쓰지 않은 식재료로 저녁을 해먹는 건 잊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마감조만 따로 남아서 하수영과 회식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오픈, 중간, 마감이 로테이션을 돌아가기에 다들 주기적으로 하수영과 회식을 하지만…….
"사장님, 오늘 매출은 얼마 나왔어요?"
"211,820,000원이네요. 아마 100석에서 12시간 동안 뽑아낼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돼요. 여기서 매출이 더 많이 나오기는 어렵겠죠."
"그럼 월 이익이 얼마가 되는 거예요?"
"일 매출을 2억 1천으로 잡으면 매출 63억, 부가세 빼면 5,727,272,727원. 여기서 재료비 1억 2천, 매장 운영비와 인건비, 사대보험 및 복리후생비용, 잡다한 비용을 다 제하고 나면 55억 4, 27만 2,727원이 남네요. 물론 근사치입니다."
"진짜 머릿속에 컴퓨터 들어 있는거 아니에요?"
"간단한 사칙연산이니까요."
아무리 한 그릇에 35,000원이라지만, 라면 하나만 팔아서 한 달에 55억 원이 남는다니.
직원들은 그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수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송이, 황비버섯, 그리고 특제 고춧가루 가격은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겁니다. 제가 직접 만드는 거라서요. 만약 그것들을 어디서 사오는 거라면 재료비가 지금보다 몇 배로 뛰어오를 걸요? 그럼 이익도 대폭 줄어들죠."
"그래도 엄청나긴 해요."
"이 빌딩 월 임대료가 1억 조금 넘는다고 하셨는데, 수영레스토랑에서 50배 이상 수익이 나오니……."
"이거 사장님이 건물주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건물주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가게 뺏으려고 달려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에이, 가게 뺏는다고 장사가 되겠어요? 엄밀히 말해서 사장님이 가져오시는 송이, 황비버섯, 그리고 그 특제 고춧가루 덕분에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 건데."
"맞아요. 가게 뺏는다고 능사가 아니죠."
하수영도 나름대로 신기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 조그만 라면 가게에서 나오는 돈이 더 크냐?'
프라임컴퍼니에 황비버섯을 팔아서 매달 받는 대금이 30억, 그리고 상가빌딩 8채에서 나오는 게 6억 625만 원.
그런데 수영레스토랑에서 라면 한 종류만 팔아서 나오는 게 월 55억이상.
물론 재료에 들어가는 송이버섯, 황금비단우산버섯, 엘릭서 고춧가루의 제값을 반영하면 실제 이익은 훨씬 떨어지겠지만…….
"지금 평균 하루에 6,000그릇씩 팔고 있는데요. 내일부터는 좀 조절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4,000그릇이 넘어가면 마감하는 것으로 합시다."
"아니, 어째서요?"
"……고춧가루가 떨어져 가고 있어요."
하수영이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다들 아 하는 표정으로 수긍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고춧가루 들어간 것과 안 들어간 것이 맛 차이가 너무 나니까요. 고춧가루 안 넣을 바에는 그냥 안 파는 게 나아요."
"맞아요. 고춧가루 빼고 팔면 손님들 엄청 항의할 거예요. 가게 이미지에도 타격이 클 테구요. 차라리 그냥 조기 마감하는 게 낫겠어요."
"미리 오픈하자마자 재료 문제로 4,000그릇밖에 못 판다고 공지하고, 어차피 70% 이상은 프리덤 앱에서 자동주문이 들어오는 거니까, 큰 문제는 없겠네요."
이택진 셰프가 걱정이 돼서 물었다.
"사장님, 그럼 고춧가루 확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계속 하루 4,000그릇만 파는 식으로 가는 건가요?"
"생산량을 늘릴 겁니다. 혹시 모르니 사나흘 정도만 일단 4,000그릇정도씩 파는 걸로 하죠."
"그나마 다행이네요. 생산량을 늘리신다니."
고춧가루 생산이 늘어날 거라는 말에 다들 안심이 돼서 환하게 웃었지만, 하수영은 그들처럼 마음 편히 웃을 수 없었다.
엘릭서 고춧가루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자신이 바삐 일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빨리 자동으로 고춧가루를 생산하는 전자노예라도 만들어야 할 텐데.'
하지만 수십조, 수백조 원이 들어가는 그런 대규모 로봇 프로젝트를 무슨 수로?
'당분간은 어쩔 수 없네. 내가 죽어라고 일하는 수밖에.'
"전 내일부터 며칠 간은 가게 출근 안 합니다. 이택진 셰프님이 한동안 가게 관리 좀 해주세요. 어차피 현금 결제 비중은 거의 없으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춧가루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네, 고춧가루 확보하러 가는 겁니다."
"얼마든지 다녀오십시오. 그동안 수영레스토랑은 저희가 책임지고 지키겠습니다."
"맞아요. 사장님 안 계셔도 저희가 친절하게 최상의 서비스로 손님들을 맞이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역시 직원들이 진정한 가족처럼 가게를 대하게 하는 방법은, 돈이다.
* * *
"아이고, 허리야."
사흘이 흘렀다.
그동안 하수영은 미친 듯이 고추를 뿌리고, 고추를 따고, 고추를 말리고, 고추를 빻았다.
고추를 말리고 빻는 작업만이라도 다른 사람을 시키거나, 혹은 외부에 맡기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고춧가루의 효능이 알려지면 어찌 될까.
혹은 위탁한 업체에서 한 번 맛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일부를 빼돌릴 수도 있다.
그런 보안 문제 때문에 하수영은 고추를 심는 것부터 빻아서 포장하는 것까지 모두 손수 도맡아 하는 것이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이나 송이버섯과 달리, 고춧가루는 음식 맛을 비약적으로 좋게 만든다는 독보적인 효능이 있으니까. (하수영은 송이버섯에 잠재된 효능을 아직 모른다)
"정말 힘드네. 그나저나 외국에 고추 따는 자동 로봇도 출시됐다고 하던데, 그거라도 사올까? 그러면 좀 나아지려나?"
지금 하수영은 콤바인 비슷하게 생긴 고추 수확 기계를 써서 고추를 따고 있었다. 국내업체가 개발한 농기계다.
덕분에 수확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대폭 줄일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기계 조작은 자신이 직접 해야 했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혼자서 해야 했다.
"엘릭서 고춧가루를 안정적으로 만들려면 최소 강인공지능 안드로이드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다행히 엘릭서로 키운 고추는 한나절만 널어놓아도 햇볕에 바짝 마른다.
"기특한 녀석들, 키워준 주인의 마음을 이렇게 잘 알다니. 역시 엘릭서를 먹고 자란 내 고추들답다."
한나절 만에 말라주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덕분에 생산에 들어가는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흘 동안 열심히 일한 결과, 하수영은 가게에서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양을 생산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개고생할까 봐 처음에 라면에만 넣으려고 했던 건데……."
스페셜 메뉴였던 수영라면은 오픈한 첫날부터 메인 메뉴, 온리 메뉴자리를 꿰차 버렸다.
요즘 들어서는 퓨전 레스토랑이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라면만 파는 가게로 알고 오는 손님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메뉴도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깜짝 놀라는 손님도, 시험 삼아 다른 메뉴를 시켜보는 손님도 있었지만, 그들은 곧바로 회개하며 라면으로 다시 돌아온다.
"진짜 방법을 찾아야 해. 어떻게든 사람의 손길 없이 자동화 작업으로만 고춧가루를 파종부터 포장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플래폼을 만들어야 해."
강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답이지만, 현대기술 수준에서는 수십조 내지 수백조 원 이상의 연구개발비가 필요하다.
한 달에 겨우 55억 버는데 그래서야 배보다 배꼽이 더 크므로 패스.
* * *
프리젠트오일(Present Oil).
국내에서 원유를 들어와 정유를 거쳐 각종 유류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4대 정유회사 중, 3위에 들어가는 기업이다.
3위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1위인 SC이노베이션에 비하면 매출이나 이익률이 한참 떨어진다.
심지어 2위하고도 상당한 격차가 난다.
정서희는 그런 프리젠트오일과 미팅 약속을 잡고, 오늘 본사를 방문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이윽고 훤칠한 중년 남자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는 생산부장 홍태원이라고 합니다."
"프라임오일컴퍼니 사장대리 정서희입니다."
실질적 직함은 사장이나 다름없지만, 정서희는 일부러 '대리'란 말을 붙였다.
어쨌거나 상대는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 그 앞에서 굳이 자신을 높일필요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이번에 에스크오일 정유공장 인수를 하려다가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계약 직전에 공장에 불이 나서 전소해버렸으니까요."
"참 유감입니다. 그래도 계약서에 서명은 하지 않으셨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래요. 하늘이 도왔죠."
홍태원 부장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우리 회사에는 왜 온 거지?'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정서희가 찾아온 목적을, 홍태원은 물론이고 프리젠트오일 경영진도 짐작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만년 3위라지만 프라임오일컴퍼니에 프리젠트오일을 인수할 능력도 없고, 정유설비를 매각할 이유도 없으니까.
"귀사와 사업 제휴를 했으면 해서요."
"사업 제휴요? 아무 기반도 없는 귀사에 우리 회사와 제휴를 할 만한 아이템이 있을까요?"
"저희에게는 원유가 있죠."
"……원유라고요?"
"네, 그 원유의 정제를 귀사에 위탁하고 싶습니다. 대신 그 이익은 적절히 나누고요. 어떠세요?"
"원유라면, 어느 정도나……?"
"얼마든지요. 연간 1억 톤 이상도 가능해요. 기한은 무제한이고요."
이 정도면 대한민국 전체 소비량을 넘는 수준이다.
홍태원의 표정이 완전히 싹 변한 것을 보며, 정서희는 속으로 실소했다.
프리젠트오일은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부러 부장급 인물을 내보냈다.
하지만 홍태원은 이제 알았을 것이다.
이건 부장인 자신 선에서 거론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