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41화
31장 하늘을 뚫는 매출(5)
하수영은 초조해서 중얼거렸다.
"아니, 기왕 불이 날 거면 계약을 한 다음에 불이 나든가 해야지, 이게 대체 뭐하자는 거야? 내 인생에서 초반부터 이런 일 생기면 나중에는 발로 해도 사업이 승승장구하던데."
초반 화재는 나중에 대박이 난다는 징조다.
그의 인생 경험상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되든 결국에는 잘 풀렸다.
이런 걸 가리켜 세상 사람들은 아무 액땜이라고 하던가?
"심지어 우리는 손해 본 것도 없잖아. 계약을 하지도 않았으니. 어떻게 딱 정서희 부사장이 서명하려는 그 순간에 화재 소식이 알려지냐고."
정말 몇 초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를 벗어난 것이다.
이런 기적적인 행운이 초반 액땜과 결합해서 어떤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정유 사업 진출했다가 호되게 얻어맞고 다시는 식품사업 외에 눈을 돌리지 않게 되는 게 베스트인데."
어째 베스트 전개하고는 점점 거리가 먼 쪽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하수영이 초조해하자 박지현 매니저가 다가와서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사장님, 전화 받고 표정이 안 좋으신데 무슨 문제라도 생기셨어요?"
"아, 이번에 새로 사려던 가게가 하나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불나서 완전히 없어졌어요."
"저런…… 화재보험은 들어 있었나요?"
"아마 그럴 걸요? 화재보험이 필수인 업종이라서.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대요."
"그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만 안 다쳤으면 됐죠.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중에 더 잘되려고 액땜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하수영은 하마터면 이렇게 외칠 뻔했다.
당신까지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부정 탄다고!
그는 꾹 참고 설명했다.
"대리인이 인수 진행했는데, 우리 측이 최종 서명하기 직전에 불이 난걸 알았대요. 그래서 거래 자체는 무산됐어요."
"어머, 그럼 더 잘된 거 아닌가요? 사장님 측은 아무런 피해도 없잖아요. 혹시 수영레스토랑 2호점 내려고 가게 알아보셨던 건가요?"
하수영이 '새로 사려던 가게'라고 표현한 덕에, 정유공장은 졸지에 음식가게 후보지로 전락했다.
"뭐, 비슷합니다."
"그래도 가게 인수는 계속 알아보실 거죠?"
"전 그만하라고 하고 싶은데, 대리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려나 봐요."
"어머, 열의가 넘치시네. 나중에 정말 대박 나려고 그러나 봐요. 미리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대박이 나면 안 되는데.
이번 생은 정말 버킷리스트에만 충실하고 싶은데.
'이거 안 되겠는데. 나중에 선을 긋든가 해야겠어. 괜히 석유에너지·컴퓨터 반도체·통신의학·항공·군수산업 쪽으로 얽히면 나중에 발 빼고 싶어도 못 한단 말이야.'
"그나저나 오늘은 비교적 한가하네요."
"이제 일주일 넘었잖아요. 다들 어느 정도 적응했어요. 식기 여유분도 더 사고, 고속 식기세척기까지 들여 놨으니까요."
그간 수영레스토랑은 많은 변화를 거쳤다.
먼저 테이블과 의자를 교체해서, 본래 24석이던 자리를 100석으로까지 늘렸다.
그릇과 수저, 젓가락 등 예비 식기를 대량으로 추가 주문해서 구비했고, 고용량 고속 식기세척기까지 설치했다.
덕분에 주방보조들의 식기세척 업무가 대폭 경감되었고, 조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예전처럼 홀 서빙 직원들이 식기세척을 돕지 않아도 되니, 홀 서빙에만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100석으로 늘어났지만 홀 업무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처음에는 정말 전쟁터 같았는데, 이제야 좀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나요."
"매출은 늘고, 일은 여유로워지고, 장사는 원래 이렇게 하는 게 맞죠. 정신없이 바쁘기만 해서는 될 것도안 됩니다."
"맞아요. 근데 가게 오너가 보통 그런 생각을 가지기는 힘든데. 보통은 어떻게든 비용을 절약하려고만 하거든요. 그런 분들 많이 봤어요."
"어리석은 짓이에요."
박지현이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장 큰 건 역시 프리덤 앱을 도입한 거라고 봐요. 덕분에 손님들이 예전처럼 줄을 서지 않아도 돼서 크게 만족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도 줄을 서긴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30분이고 1시간이고 줄을 서서 먹는 일은 많이 사라졌다. 보통 20분 이하로 줄을 서는 편이다.
전체 100석 중에서 70석은 결제앱 '프리덤'전용석으로 운영된다.
나머지 30석은 앱이 없는 일반 손님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무조건 70 : 30으로 딱 잘라서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그날그날 상황을 봐서 탄력적으로 변경된다. 물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인공지능 프리덤이다.
"인공지능이 이렇게 유용한지는 정말 몰랐어요. 이 정도면 다른 음식 점에서도 탐을 내겠는데요?"
"원래 인간은 편해지고 싶어서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죠. 근데 그 과정에서 소모하는 노력의 총량을 계산해보면 결국 편해지려고 더 많은 노력을 쏟았다는 걸 알고 허탈해지죠."
"와, 방금 그 말씀 뭔가 뼈가 있는데요? 저 되게 감동 깊게 들었어요."
"별로 영혼 없는 칭찬처럼 들립니다만?"
인공지능 프리덤 결제 앱을 도입한 것은, 가게 입장에서는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앱을 설치한 손님들은 프리덤이 제공하는 놀라운 편의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프리덤, 오늘 3시쯤에 수영라면 먹고 싶은데 어때?"
-3시 20분경으로 예약하는 게 가장 시간 낭비 없이 드실 수 있습니다. 예약을 할까요?
"응, 하던 대로."
-하던 대로 카드결제로 하겠습니다.
한두 마디만 하면 프리덤이 시간 예약부터 결제까지 모든 걸 알아서 해준다.
만약 도착 시간에 늦는다면? 혹은 도착이 늦어질 것 같다면?
-지금 성현아 님의 위치, 이동 중인 교통수단, 그리고 도로 상황으로 볼 때 15분 정도 늦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약 시간을 조정할까요?
"그렇게 해줘."
앱이 알아서 알림으로 조정 질문을 띄우고, 그냥 알았다고 대답만 하면 그만이다. 아니면 취소하라고 하던가.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잠시 가게 밖, 혹은 근처에서 기다리면 실시간으로 알람이 온다.
-남은 예비 순위는 3석입니다. 8분 안에 식사를 하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자리가 났고, 조리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31번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이렇게 모든 걸 알아서 조치를 해주니, 손님 입장에서는 라면 하나 먹자고 기약 없는 줄서기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앱, 정말 신기한데?"
"인공지능이 아닌 거 같아. 꼭 실제 사람이 실시간으로 상담을 해주는 기분이야."
"어떻게 인공지능이 이렇게 말귀를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정말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기분인데?"
"이거 진짜 실제 사람이 예약 상담해주는 거 아니야?"
"피자 한 판 시킬 때도 이것저것 옵션 넣고 주소 설정하고 결제하고 해야 할 게 많은데, 그냥 말 한 마디로 모든 게 논스톱으로 처리되니 너무 편하다."
업무 프로세스가 최적화되니, 자연히 직원들도 편해진 것이다.
물론 쉴 새 없이 라면을 끓여대야 하는 주방은 여전히 바빴지만, 그래도 셰프들과 주방 보조들은 주 1회씩 꼬박꼬박 쉴 수 있었다.
영업시간과 근로시간도 조절했다.
오픈 초기와 달리 11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낸다.
대신 하루 종일 일하는 게 아니다.
오픈조, 중간조, 마감조로 나뉘어서 서로 출퇴근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오픈조는 오전 9시 정도에 출근해서 재료 손질 등 영업 준비를 한다.
그리고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중간조는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곧바로 업무를 시작, 오후 7시에 퇴근한다.
그리고 마감조는 오후 5시에 출근해서 오전 1시에 퇴근한다.
일부 직원이 쉬는 날에는 중간조를 생략하고, 오픈조와 마감조만 운영한다. 이것은 주방과 홀 모두 마찬가지였다.
박지현은 안정된 업무 프로세스에 몹시 만족했다.
"프리덤 앱을 만든 게 정말 컸어요. 인공지능 앱 하나로 이렇게 일이 편해질 줄은 몰랐거든요."
"사람들이 많이 써주니까 그런 거죠. 나중에는 95석 이상이 앱 전용 석이 됐으면 합니다."
"나중에 무인서빙로봇 같은 것도 막 도입하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그럼 제 일자리가 위험해지겠어요."
박지현은 농담처럼 말을 했지만, 하수영은 진지하게 반응했다.
"사실 서빙로봇 정도야 지금 당장에라도 도입은 가능합니다만, 그러려면 지금 나가는 홀 인건비의 수천배 이상은 들여야 할 겁니다. 게다가 지금 로봇기술 수준이 아직 형편없다 보니 제대로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어서, 홀에서 클레임도 많이 발생할 거예요."
"그, 그런가요?"
가벼운 농담으로 한 말인데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니, 박지현은 조금 당황했다.
하수영은 빈자리 하나 없이 북적거리는 100석의 매장을 바라다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래도 앱이 빠르게 보급돼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매장 업무가 많이 안정됐어요."
"어제 보니까 50만 명 이상이 다운로드했던데요."
다운로드 50만.
얼핏 보기에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이건 모바일뱅킹이나 SNS앱이 아니다.
의자 100개 라면집에서 예약과 결제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든 앱이다. 그걸 생각하면 다운로드 50만은 엄청난 수치였다.
* * *
재료가 일찍 소진된 탓에, 밤 10시에 장사를 마감했다.
앱 프리덤이 재료 동향까지 파악해서 예약 결제 과정을 조율했기에, 헛걸음을 친 손님은 거의 없었다.
소수의 헛걸음자들은 앱을 설치하지 않은 이들이었고, 박지현의 설명을 들은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앱을 다운받아 설치했다.
마감을 했지만, 오픈조와 중간조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서 놀거나 쉬다가 가게로 돌아왔다.
가게 운영이 본격적으로 안정되었다고 느낀 첫날이기에, 다들 하루 매출이 궁금했던 것이다.
"오늘 매출은 1억 5,467만 2,000원이네요. 할인 행사를 하지 않았다면 정확히 1억 9,334만 원이었을 겁니다."
"……할인 행사를 안 했다면, 재료소진만 안 됐더라면 2억이 넘었다는 말이군요."
직원들은 정신이 아득해졌고, 불현듯 김길진 셰프가 입을 열었다.
"그냥 우리 주메뉴 다 빼버리고 라면만 팔면 안 됩니까? 매번 주메뉴재료까지 준비해 뒀다가 다 버리는데 말입니다."
"앗, 안 돼요! 그럼 회식의 즐거움이 사라지잖아요!"
수영레스토랑은 오늘도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마감했다.
* * *
국내 최대의 에너지화학기업, SC 이노베이션 본사.
사장실을 들어서는 조기찬 상무의 표정은 비교적 밝았다.
비서가 안에 알린 후, 들어가라고 말을 했다. 조기찬 상무는 조심스럽게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앉아. 조 상무."
"예, 사장님."
"뉴스는 봤어. 잘 처리했던데. 뒤탈이 날 일은 없겠지?"
"물론입니다."
조기찬 상무는 자신 있게 장담했다.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절대 방화라는 사실이 알려질 일은 없을 겁니다. 소방서와 검경도 예의주시하고 있으니, 에스크오일 정유공장 화재가 더 이상 문제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수고했어. 자네가 힘써준 덕분에 우리 SC이노베이션이 살았어. 에스크오일 정유공장이 팔리는 걸 막았으니 말이야."
국제자원투자회사의 진출은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두고만 볼 수는 없다.
그래서 SC이노베이션이 내린 선택은, 인수 대상이었던 에스크오일 정유공장을 남들의 눈을 피해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