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38화
31장 하늘을 뚫는 매출(2)
대리인 이정재는 별달리 놀라지 않은 채 순순히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여배우 장효주가 임차인 본인입니다. 저는 매니저이자 대리인으로 온 겁니다."
옆에서 우형신이 좋다고 추임새를 넣으며 끼어들었다.
"이야, 장효주 배우가 그럼 그 집에 들어오시는 겁니까? 우리 하 사장님,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있나요? 장효주 배우가 살았던 집이라면 나중에 되팔 때 제법 프리미엄이 붙겠네요. 장효주 배우가 우리나라 여배우 원탑이잖아요."
"근데 장효주 배우가 왜 월세 아파트를 구하는 거죠? 한남동 고급 주택에 사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
"지금 계약하는 이 매물, 장효주배우가 원래 이 지역에 살고 싶어 했었습니다. 적당한 매물이 나와서 그간 미뤄뒀던 거고요. 사실 처음에는 매매를 제안했습니다만……."
"제가 그건 안 된다고 미리 선을 그었습니다."
우형신이 얼른 끼어들었고, 하수영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잘하셨어요. 전 한 번 제 품에 들어온 매물을 다시 되팔 마음은 없거든요."
"우리 하 사장님이 건물이나 아파트 수집하는 게 사업의 목적이셔서요. 임대업 크게 하시는 분이거든요. 임대차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매매는 곤란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임대업자시라……."
이정재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은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수영은 그제야 그를 알아보고 속으로 피식거렸다.
'왠지 낯이 익다 했더니, 장효주배우 매니저였구나.'
CF 계약을 체결할 때 한 번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정재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매니저 한다는 양반이 저렇게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서야 쓰나. 로드 매니저는 아닌 거 같지만 그래도.'
"앞으로 임차인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면 전부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장효주 배우 얼굴 보거나 통화할 일은 없겠네요. 여기 계약서에 적은 전화번호도 매니저님 전화번호죠?"
"일단 그렇습니다."
"장효주 배우는 요즘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 일단 이것부터 계약하죠."
하수영이 마치 아는 사이처럼 은근히 말하자 이정재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매도인란에 하수영이란 이름을 확인했다. 물론 하수영의 본명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임대법인 상호였다.
법인 하수영, 하지만 계약당사자들은 그의 실명이라고 종종 착각을 하곤 한다.
"하수영 씨?"
이름을 확인한 이정재의 눈빛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는 하수영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쩐지 얼굴이 낯이 익은데…… 혹시 황비버섯라면 CF 계약하신 광고주분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기억하시네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몰라뵙고."
이정재는 얼른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집주인'이기 이전에 광고주였다. 독점도 아닌 1년짜리 CF 4편 촬영에 20억이란 큰돈을 아낌없이 쓴.
"아닙니다. 저도 긴가민가했어요. 저번에 계약할 때 한 번 스치듯이 보고 못 봤지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계약 자체를 추진하는 위치는 아니어서 아무래도 얼굴을 바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그랬는데요, 뭐. 장효주 배우님은 잘 지내시나요?"
"물론입니다. 아, 우리 효주가 황비버섯라면을 매우 좋아라 합니다. 거의 일주일에 1개 이상은 먹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1개.
언뜻 보기에는 적은 개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효주가 식단 관리하는 건 진짜 철저합니다. 라면은 입에 전혀 대지도 않아요. 그런데 자기가 CF를 찍어서가 아니라 그냥 맛이 좋아서 일주일에 1개 이상씩 꼬박꼬박 먹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1개 정도면, 진짜 절제해가면서 먹는 거네요."
"네, 원래는 진짜 입에도 안 댔습니다."
서로 인연이 있는 사이라는 게 밝혀지다 보니, 자연히 분위기가 화기 애애해졌다.
"제가 듣기로는 전 여자친구가 우리 효주와 많이 닮으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맞아요. 정말 비슷하게 생겼죠. 사실 솔직히 말하면 제 전 여친이 더 낫습니다."
"전 여자친구분도 대단한 미인이셨군요. 그런 보석이 이 세상에 또 존재하다니, 정말 세상은 넓군요."
'사별'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정재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정재는 속으로 눈을 번뜩이면서 하수영을 살폈다.
'임대업자라고?'
자신이 알기로 하수영은 프라임컴퍼니 경영 관련자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렇게 임대업자로서 만나게 될 줄이야.
'식품제조업도 하고 임대업도 하는 건가? 임대업을 하면서 번 돈으로 식품제조업 회사를 차린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된다.
"황비버섯라면을 좋아하시다니, 잘됐네요. 안 그래도 제가 어제 라면 가게 하나 차렸습니다."
수영 레스토랑이 졸지에 라면 가게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중에 한 번 장효주 씨와 함께 오세요. 좀 작은 가게라서 번잡하긴 합니다만."
"아, 그렇습니까? 가게 위치가 어디죠?"
"혹시 강훈 빌딩이라고 아시나요?"
"아, 알고 있습니다. 좋은 곳에 가게 내셨네요."
"네, 거기 1층에 수영 레스토랑이라고 있습니다. 거기 찾아오시면 돼요."
하수영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장담하듯이 말했다.
"단언컨대 황비버섯라면보다 훨씬 맛있을 겁니다. 여러 가지 맛좋은 식재료를 가득 넣어서 만든 라면이거든요."
"기대되는데요. 나중에 꼭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효주한테도 전해드리죠."
물론 하수영은 그가 장효주를 데리고 찾아올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예의상, 몸에 밴 대로 인사말을 건넨 것이다.
사회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겉치레인사말이 있지 않은가?
언제 한 번 술 한잔하자. 다음에 밥 한 번 살게. 등등.
'장효주가 임차인이라…….'
답답할 때 기분을 풀기 위해 마련한 별장 같은 모양이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정재는 광고주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한 뒤 중개사 사무실을 나섰다.
하수영은 우형신을 돌아보며 물었다.
"61억짜리를 별장 겸으로 일시불로 사겠다니, 장효주 배우도 돈 참 많네요. 그렇지 않아요, 사장님?"
우형신은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누가 누구더러 돈이 많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묘하게 자꾸 얽히네. 혹시 나 장가보내려는 누군가의 농간 같은 건 아니겠지? 프랜차이즈 갓이라던가…….'
-아들아! 요즘 엘릭서 복용이 뜸한 거 같구나. 이래서야 언제 그 나 약한 육신을 벗어던지고 갓 바디를 얻을 수 있겠느냐?
'와, 지금 내가 저 생각하자마자 훅 들어왔어. 이거 자기가 찔려서 저러는 거 아니야?'
-아들아? 대답을 해주련?
"아버지, 어제도 먹었거든요. 아버지하고 이야기 안 할 때 먹은 거라서 아버지가 모르시는 거예요."
-정말이냐? 정말 먹은 게 맞느냐?
사실 어제는 안 먹었다.
한 달에 29번 있는, '엘릭서 안 먹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안 보더라도 먹는 척 연기를 하긴 했지만.
"네, 어제 먹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못해도 사흘에 두 번 이상은 꼭 먹을 수 있도록 맞추고 있어요."
하수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았다. 마치 의식에 기생하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듯이.
'수상해. 수상해요, 아버지.'
* * *
3호기 빌딩 수영 레스토랑으로 돌아왔을 때, 가게는 이미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테이블은 가득 찬 채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밖에는 줄을 선 손님들이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35,000원짜리 라면 하나 먹자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린 거야? 이해가 안 된다."
"그러는 너는 왜 줄 서 있음?"
"나야 어제 먹어봤으니까. 라면 맛을 아니까 이렇게 줄을 서 있는 거지. 근데 먹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은 대체 왜 줄을 서는 거냐고? 덕분에 내가 아직도 이렇게 못 먹고 있잖아."
"이거 정말 맛있음?"
"장담한다. 먹어보고 맛없다고 생각하면 라면값 중에서 내가 5,000원보태 줄게."
"겨우 5,000원 가지고 생색내기는."
줄을 선 손님들은 군침을 삼키며 빨리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수영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입구 밖에서 줄을 서고 있던 남자가 매섭게 말했다.
"이봐요, 여기 줄 선 거 안 보입니까?"
"안녕하세요, 고객님. 전 가게 사장입니다."
"아, 사장님이셨어요? 아놔, 현기 증 나니까 빨리 좀 먹게 해줘요."
"죄송합니다. 보다시피 저희 가게 가 워낙 작은 까닭에 테이블에 제한이 있어서요."
"그럼 가게를 확장해야지! 옆 가게도 임대해서 벽 뚫고 가게 확장하고 그러란 말입니다!"
"네,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손님들의 아우성을 뚫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하수영은 겉옷을 벗은 뒤 스마트폰으로 SNS에 들어갔다.
해시태그를 넣고 수영 레스토랑, 수영라면을 검색하니, 수십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검색되었다.
하나같이 수영라면을 먹음직스럽게 찍어서 올린 사진에 맛을 칭찬하는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이 세상 맛의 라면이 아니다! 저 세상 맛을 자랑하는 수영라면!
-진짜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졸도 할 뻔했습니다.
-그냥 맛있는 정도가 아니에요.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정신없이 계속 먹게 됩니다. 라면을 먹는 동안은 내가 나인지, 라면이 나인지 알 수 없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그런 감각마저 받았어요.
-진짜 라면에 양귀비 원액 같은 마약이라도 넣은 거 아니야? 안 그럼 아무리 맛있어도 이렇게 자꾸자꾸 계속계속 생각날 수가 없는데?
-응, 어제 새벽에 만취했는데 수영라면 먹고 오늘 아침 아주 개운하게 일어남. 몸이 아주 가뿐하고 머리도 맑음. 마약은 무슨 얼어 죽을 마약.
-그만큼 중독성 있게 맛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되냐?
하수영은 흐뭇해서 SNS의 반응을 살폈다.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 오늘도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영업을 완전히 마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손님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는 마음에, 마지막까지 연장 영업을 한 것이다.
다들 녹초가 되어 홀 여기저기에 뻗었다.
주방에는 산더미 같은 설거짓감이 쌓여 있었지만, 주방보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사장님,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무슨 조치를 해야지, 이대로는 안되겠어요."
"맞아요. 오늘 하루만 해도 손님들이 의자 수 좀 늘려달라고 아우성이었어요. 왜 이렇게 테이블하고 의자를 쓸데없이 큰 거를 썼냐고요.
"테이블과 의자 세팅만 다시 해도 60자리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손님들이 줄을 서는 부담도 줄어들게 되겠죠."
"오늘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일만 했어요. 의자 세팅을 다시 하면 일이 더 고되지는 거 아닌가요? 그럼 직원을 더 뽑아야 할 거 같은데……."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고, 하수영은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김길진 셰프가 물었다.
"지현 씨, 근데 오늘 매출은 얼마나왔어요? 난 그게 너무 궁금한데."
박지현이 씩 웃었다.
"4,700만 원 넘었어요."
"와, 두 시간 일찍 끝났는데 어제보다 더 많이 나왔어요?"
"라면 단일 메뉴 하나만 팔아서 올린 매출이죠."
"뭐, 라면 하나만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