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33화
30장 신장개업(3)
"좋아. 이제 돌아볼까."
목표 달성한 버킷리스트에 체크를 마친 하수영은 가벼운 마음으로 10층 병원을 들렀다.
저번처럼 치과를 가장 먼저 찾았다.
데스크 여직원은 하수영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머, 사장님. 어서 오세요. 오늘은 혹시 이가 아파서 오신 건가요?"
"유감이지만, 아니에요. 아버지 덕분에 워낙 튼튼한 몸과 건강을 받아서 아프고 싶어도 아프지가 않더라고요."
"부럽네요. 치아 건강한 게 오복중 하나라고 했는데요. 아, 지금 원장님 환자 보고 계시는데."
"다음 환자 전에 잠깐만 뵐 수 있을까요? 전해드릴 게 있어서 그럽니다."
"알겠습니다."
진료시간이긴 하지만 건물주가 잠깐 얼굴 보자는데 점심시간까지 기다리세요, 라고 말할 수는 없다. 원장 본인도 아니고 데스크 직원이라면 더더욱.
그나마 치아 시술은 원장이 거느린 페이닥터들이 하고, 원장은 임플란 트나 아래턱 사랑니 발치 같은 어려운 시술만 주로 한다. 평소에는 시술을 잘 보지 않고 진료 위주로 본다.
"지금 들어가세요."
원장실에 들어서자 환자가 눕는 시술 침대가 보인다.
많은 환자, 특히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치과 고유의 시술 침대.
원장은 마스크를 벗으며 하수영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데스크에 맡겨도 되는데 그래도 원장님께 직접 전하는 게 이치에 맞는 거 같아서 잠깐 실례했습니다."
"뭔지는 몰라도 건물주이신데 언제든지 환영이죠.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제가 1층에 퓨전레스토랑을 오픈했습니다. 내일부터 영업 개시합니다."
"아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벌써 내일인가요? 내일 한 번 직원들 데리고 놀러 가겠습니다.
원장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건물주가 자기 빌딩 1층에 음식 가게를 냈는데, 당연히 한 번 정도는 찾아가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한 번이 아니라 자주 가야 할 것 같지만.'
원장은 부디 그 가게가 최소한의 맛은 보장하는 곳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래도 임차인으로서 눈치가 보이니 자주 가긴 해야겠는데,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으면 너무 속상하니까.
"신장개업도 했으니 제가 임차인분들한테 한 번 대접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이 병원 직원이 모두 몇 명이죠?"
"저 포함해서 13명입니다만…… 왜 그러시죠?"
"여기 식사권 13장입니다. 이걸 제시하시면 음식값은 받지 않을 겁니다. 메뉴는 제한이 없으니 아무거나 시키시면 돼요."
"헐,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원장은 조금 감동했다.
그렇게 영업을 오래 하면서, 자기 빌딩에 가게 냈으니 와서 매출 올려 달라는 건물주는 많이 봤다.
하지만 직원들 전부 데리고 와서 밥 한 끼 먹으라는 건물주는 처음봤다.
그런 건물주는 내가 안 가본 '어딘가'에만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눈앞에 나타날 줄이야.
"설마 이 빌딩 세입자들 전부 다 돌리시는 건가요? 직원 수에 맞춰서요?"
"네, 혹시 한꺼번에 밀려들지 모르니 방문 시간은 적절하게 조율하세요. 자리가 24석밖에 없어서 손님 많을 때 오시면 직원들 전부가 못앉을 수도 있어요. 차라리 따로따로 오게 하시는 게 나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정말 통이 크시네요.
여기 빌딩에서 일하는 세입자와 직원들 다 합치면 200명은 훨씬 넘을 텐데."
"식사권 사용 기한은 1년으로 했으니 부담 없이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에이, 무슨 1년까지나 가겠습니까. 아예 내일 점심에 가서 해치워버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회삿돈으로 매출 좀 올려드려야죠."
"아이고,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벌써 부자 된 기분이네요."
원장은 어설프게 웃었다.
550억에 달하는 이 빌딩의 오너이면서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뭔가 어색하다.
하수영은 10층을 전부 돌면서 직원 수만큼 일일이 식사권을 나눠 주었다.
10층을 돌고 난 후에는 9층, 8층, 7층 등 차례차례 임차인들을 만나 식사권을 돌렸다.
"편안하게 드시고 가세요. 가장 비싼 메뉴 시켜 드세요."
"라면 시켜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사실 내 돈 내고 35,000원짜리 라면 먹기는 좀 아깝다고 생각이들 수도 있잖아요? 라면 비주얼 한번 보시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언제든 편안하게 오셔서 식사하세요. 꼭 직원분들 우르르 몰려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식사권을 전부 돌리고 난 하수영은 마음이 뿌듯했다.
가게 밖에서 직원들이 내일 오픈을 위해 한창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는 걸 바라보다가, 불현듯 지하로 향하는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지하에 들어갈 임차인은 왜 이렇게 없는 거야? 그 술집에서 저주라도 뿌리고 나갔나?"
원스타엔터테인먼트 사장, 백호열.
3호기 지하에 있던 유흥술집 마담홍윤주의 스폰서이자, 전 건물주인 강훈과 법적 분쟁 중인 소속사 오너이며, 강남 밤문화의 큰손이기도 하다.
"밤문화 큰손이라는 그 양반이 아직까지 조용한 것도 은근히 궁금하고 말이야. 성격 꽤나 고약하던데 이렇게 얌전히 물러날 리가 없는데. 설마 아직 열심히 추진력을 모으고 있는 중이려나?"
하수영은 캠핑 트레일러로 돌아왔다.
내일 신장개업 오픈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자기로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며 태블릿으로 청담동 부동산 매물을 확인했다.
우형신 중개사로부터 온 연락이 있었다.
[아파트 매물 4개 나왔습니다. 각각 52억, 48억, 32억, 61억입니다. 각 매물 주소와 상태, 그리고 내부 사진들을 정리해서 동봉합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하수영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전부 살게요. 내일 바로 계약하죠.]
"내가 아트락 부지에서 찬밥 신세가 되는 바람에 돈이 좀 넉넉하게 남아돌고 있다 이거야. 청담동 아파트 네 채 따위야 앉은 자리에서 바로 살 수 있지."
하수영은 빌딩 수집에 있어서 원칙이 있었다.
일단 상가 빌딩이나 상가 부지를 우선적으로 사들인다는 것이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주거용은 어디까지나 후순위다.
때문에 당장 조달 가능한 현금이 일정 금액 이하로 떨어지면, 주거용 매물은 아무리 저가로 쏟아져 나와도 사지 않는다.
주거용 매물을 소화하느라 현금을 다 소진했을 때, 상가 빌딩이 매물로 나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트록 부지 매매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지금은 여윳돈이 상당히 있었다.
"지금 1,800억 원 정도 있군. 진짜 골든 트러플이 제대로 효자 노릇 했어."
팟디에서 골든 트러플 300kg을 4억 5,000만 달러나 주고 사준 덕분에, 8채나 되는 상가 빌딩의 오너가 될 수 있었다. 그러고도 통장에 1,800억 원이나 남아 있다.
"이번에 나온 아파트 4채 사고 나면 1,580억 정도 남겠네. 이 돈은 상가 빌딩 나오는 거 사야 하니까 킵해 둬야겠다."
하수영은 우형신 중개사한테 당분간 주거용 부동산은 가급적 삼갈 생각이라고 연락을 보내 두었다.
그래 1,500억 원 이상은 항상 쥐고 있어야,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상가 빌딩 매물에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진짜 골든 트러플 아니었으면 이렇게 괜찮은 스타트는 어림도 없었을 거야."
황비버섯라면은 여전히 불티나게 팔린다. JM식품과 맺은 라면 사업제휴도 잘 되고 있고, 곧 프라임컴퍼니에서 출시되는 컵밥도 반응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식품회사로 벌어들인 돈은 '전혀'없다.
지분 가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지분은 팔지 않고 쥐고만 있으면 돈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번 돈은 대부분 엄연히 송이, 황비버섯, 골든 트러플을 팔아서 생긴 것들이다. 특히 골든 트러플이 가장 컸다.
"골든 트러플은 가격, 가치 방어에 들어가야 하니까 이제 올해는 더 팔수도 없고, 송이는 주춤세고, 황비버섯이 그나마 제대로 된 캐시카우네."
지금까지 프라임컴퍼니에 황비버섯을 팔아서 받은 누적 매출은 300억원이 조금 못 된다.
"진짜 사업을 궤도에 올린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네."
새삼 골든 트러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렇게 빠른 시일안에 8채의 상가 빌딩 주인이 된다는 게 불가능했겠지?
"아, 맞다. 내년에 세금 내려면 1,200억 원, 아니, 1,400억 원 정도는 따로 빼놔야 하는데. 오늘 나온 청담동 아파트 4채 사고 나면 1,580억 원만 남잖아."
물론 내년 4월 1일 전까지 내야 할 법인세를 확보해 두면 된다.
"가만 있자. 지금 황비버섯 납품량이 두 배로 늘었으니까 한 달에 버섯 판매 대금이 30억씩 들어오네?"
송이버섯은 마케미야투자에 1년 치를 팔고, 대금을 이미 한꺼번에 받았다. 그래서 나가는 버섯은 있지만 당장 들어오는 돈은 없으니 현재 수익에서 제외해야 한다.
"프라임컴퍼니 배당은 당분간은 그냥 없는 셈 치는 게 속이 편할 거 같고."
배당을 받느니 그 돈으로 차라리 지속적인 사업 확장에 투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1호기에서 9호기, 4호기는 영구결번이니까 8채에서 당장 들어오는 월수익이…… 6억 625만 원 정도네. 건물값 다 합치면 2,910억 원인데 월세가 7억도 안 되네."
기대 임대료 연 수익률이 2.5% 정도.
청담은 공실도 많고 하다 보니, 임대 수익률이 건물 시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그 대신 환금성이 무척 좋다. 돈이 급할 때 시중에 내놓으면 잘 팔려나 간다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프라임유통컴퍼니와 8채의 상가빌딩에서 들어오는 월 수익이 36억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거 아파트까지 사고 남는 돈은 내년 세금 생각해서 킵해 놔야겠구나. 더 건물 수집했다가는 내년에 세금 폭탄 감당을 못하겠네."
아직 해가 저물려면 멀었는데, 올해 쇼핑은 벌써 마무리에 들어가야 하다니.
하수영은 그 점이 몹시 안타까웠다.
"빨리 라면도 일 년에 200억 개씩 팔고, 각종 인스턴트식품도 팔아치우고 그래야, 배당금으로 3호기 같은 빌딩 한 달에 1개 겨우 살까 말까 하겠다."
배당금을 차곡차곡 모아서 청담동빌딩을 사 모으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일 줄이야.
하수영은 새삼 글로벌 부동산 재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유 대체 에너지 사업하고, 반도 체 사업하고, 수명 사업하고 그럴 때는 돈이 진짜 쉽게 벌렸는데. 평범한 제품들 팔아서 돈 번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정리를 마친 하수영은 태블릿을 끄고 침대에 큰 대자로 벌러덩 누웠다.
"휴……."
차창을 통해 보이는 도심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보고 있으니, 문득 숙연한 마음이 가슴을 메운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모르겠네."
평화를 사랑하는 농업주.
한가함을 즐기는 건물주.
내가 키운 작물을 내 건물에서 조리해서 파는 음식점주.
그 소박한 꿈을 이루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때 정서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수영입니다."
-내일 레스토랑 신장개업 하신다면서요? 축하드려요.
"아, 제 인스타 보셨군요?"
-네, 근데 맞팔은 언제 받아주실거죠?
"대주주와 경영진이 서로 맞팔하면 사내 직원들이 부담 느낄 거잖아요. 자기들도 팔로우 신청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요. 그래서 일부러 안하는 겁니다."
-화환은 거절한다고 하셔서, 내일 친구들하고 찾아갈까 해요. 제 친구들 SNS에서 추종자 제법 많으니까, 괜찮은 홍보가 될 거예요.
"아, 그럼 감사하죠. 매출 스타트높게 찍는 데 큰 도움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