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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32화 (132/1,270)

프랜차이즈 갓 132화

30장 신장개업(2)

이택진이 지금 만든 라면에 대단한 조리 기술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물과 재료의 양 가늠, 재료를 다듬은 칼질, 각 재료를 넣는 타이밍과 끓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 정도였다.

면발과 분말 스프, 대파와 버섯 등 들어간 재료는 모두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쉽게 말해서 라면 맛을 극한까지 살려낼 수 있는 좋은 재료들을 적절한 양으로 빚어낸 것, 그것이 본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춧가루라고요?"

이택진은 탐탁하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야 라면에 넣으면 얼큰한 맛이 좀 살아나긴 하겠지만, 이미 충분히 우려낸 국물이라 별로 어울리지는 않을 겁니다. 맛을 크게 해치지는 않겠지만 딱히 플러스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일반 고춧가루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이 특제 고춧가루는 다릅니다. 시중에서는 팔지도 않는 거예요."

하수영이 자신만만하게 거듭 말하자 다른 이들도 일단 손을 내밀었다.

'고춧가루치고 알이 곱긴 한데, 그래 봐야 결국 고춧가루 아니야?'

'끓이던 도중도 아니고, 이제 와서 고춧가루 좀 뿌린다고 맛이 뭐가 달라져?'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반신반의하는 표정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걸 뿌린다고 과연 맛이 얼마나 달라지려나.

'애초에 그런 건 요리 만화에서나 나오는 일이지.'

'그래도 우리 지갑과 마음이 넓으신 사장님께서 기껏 권하신 거니까…….'

다들 차례차례 고춧가루를 살살 뿌린 후,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일제히 한입 씹고 삼키는 순간이었다.

"……?"

"……!"

"……?!"

하수영을 제외한 일곱 명은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서로 얽히는 시선만으로도, 지금 다른 이들이 무슨 감각에 휘말려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정신없이 면발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건더기와 면발을 순식간에 건져 먹은 뒤, 목마른 사막 방랑자가 오아시스 물을 삼키듯 라면 국물을 목구멍에 들입다 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와, 라면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올 수 있죠? 고춧가루 좀 뿌렸다고 맛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어요?"

"제가 막입이긴 한데 이건 확실히 알겠네요. 너무 맛있어요. 그러니까 미슐랭 3스타 이탈리안 레스토랑 같은 데 가면 파스타가 이런 클래스로 나온다는 거죠?"

"아니야, 별 세 개 파스타도 이 정도 레벨은 못 돼. 이건 진짜 천상의 맛이야."

"사장님, 대체 그 고춧가루가 뭡니까? 뭔데 향신료 하나 뿌렸다고 이렇게 맛이 달라질 수가 있는 거죠?"

"그 고춧가루, 어디 가면 살 수 있는 건가요?"

홀 매니저와 서빙 직원들은 신기한 문물을 접한 듯한 반응을 보였고, 그에 비해 쉐프들은 길 잃은 새끼 사슴을 발견한 굶주린 승냥이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 고춧가루를 앞으로 가게에서 쓰신다는 거죠? 양은 충분한가요?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그 고춧가루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나요? 대체 무슨 품종으로 만든 고추인가요? 아니면 말리고 빻는 과정에서 다른 독특한 비법이 들어간 건가요?"

하수영은 팔짱을 낀 채 만족스러워했다.

'내가 먹어봤어도 쩔었는데, 석유에 의존하는 이런 문명 구성원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비법으로 만든 고춧가루입니다. 시중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흉내 낼 수도 없어요. 비법이 출되거나 당할 염려도 없죠."

쉐프들은 탐욕스러운 눈빛을 빛내며, 하수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쉬운 건 있어요. 가문의 비법으로 생산하는 고춧가루이다 보니 아무래도 생산량이 적습니다. 그래서 시중 유통은 아무래도 불가능해요."

"잘됐군요. 그럼 우리 가게에서만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가게에서만 쓰기에도 부족한 양입니다. 고춧가루가 필요한 모든 메뉴에 전부 사용한다면, 절대적으로 양이 모자라요."

"아, 그건 안 되는데요. 동일메뉴 동일가격 동일맛의 3대 원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이택진이 곤란함을 표시하고 나섰다.

똑같은 A라는 메뉴를 시켰는데 고춧가루양에 따라서 그날그날 맛이 다르다면, 이건 당연히 문제가 된다.

최선의 맛을 추구하되 퀄리티의 저하가 없어야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다.

하수영은 의연하게 말했다.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고춧가루는 라면에만 쓰는 게 어떨까요?"

"……라면이요?"

"네, 지금 이택진 쉐프님이 만든이 라면에 고춧가루를 뿌려서 정식 메뉴로 출시하는 겁니다. 양이 얼마 되지 않으니 오직 라면에만 고춧가루를 쓰고, 이 라면을 우리 가게의 특색으로 삼는 거지요."

"아, 그거 왠지 재미있는 생각 같은데요. 고급 식자재를 듬뿍 쓴 퓨전 레스토랑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메뉴가 라면이라니…… 소비자들 반응도 신선할 것 같고요."

"동의합니다. 그냥저냥 평범한 라면이라면 역풍이 크겠지만, 이건 평범한 라면이 아니잖아요. 말 그대로 라면킹 그 자체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킹라면으로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입니다."

킹라면이라니, 어림도 없지. 하수영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말했다시피 라면 이름은 수영라면입니다. 거기에 타협은 있을 수 없어요."

"사장님 뜻이 그렇게 확고하시다면야…"

"그럼 수영라면은 가격을 얼마로 해서 팔아야 할까요?"

"……."

쉐프들은 여기에서 말문이 멈췄다.

그들은 하수영이 가져오는 재료의 단가를 정확히 알지 못하니, 가격을 섣불리 정하기 어려웠다.

수제면발, 꽃게, 황비버섯, 송이버섯, 그리고 가문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특제 고춧가루.

이 귀한 재료들이 아낌없이 들어간라면 가격은 대체 얼마를 받아야 적당할까?

하수영이 교통정리에 나섰다.

"여기는 청담입니다. 그리고 수영라면은 청담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맛이고요. 당연히 가격에서도 타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장님, 그럼 얼마를 생각하십니까?"

"……."

"……."

쉐프들은 물론이고, 매니저와 서빙직원들의 시선까지 한껏 호기심을 담은 채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주목을 받는 것은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그것도 자신만을 바라보는 내 직원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한층 더 기분이 좋다.

"35,000원은 받아야죠."

"……!"

홀 매니저와 서빙 직원들은 기겁했다.

아무리 화려한 식자재를 아낌없이 듬뿍 쓴 라면에 여기가 청담이라지만, 그래도 라면 한 그릇에 35,000원이라니!

반면 이택진 등 쉐프들은 납득이 간다는 듯이 끄덕였다.

"하긴, 5성급 호텔 룸서비스 라면도 그 정도 받는데, 이런 최상급 라면이라면 그 정도는 받아야 격이 맞지요."

"심지어 여기는 청담동이죠. 돈 많은 사람, 혹은 돈이 많지 않아도 돈을 많이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로 드나듭니다. 라면 한 그릇에 35,000원이라면 오히려 호기심을 가지고 한 번 시켜보려고 할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수영라면을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겁니다. 수영라면은 우리 가게를 상징하는 마스코트 메뉴가 될 게 틀림없어요."

"황비버섯을 듬뿍 곁들인 1인용 꽃게해물탕도 25,000원인데, 라면 한 그릇이 그보다 만 원이나 비싸네요.

손님들이 메뉴판 보고 어리둥절할게 눈에 선합니다, 하하."

다들 기분 좋게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미 라면 맛에 있어서는 이견 없는 의사 합치를 보았다. 이 라면은 절대로 실패할 수가 없다.

"가격 때문에 많이 팔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어요. 한 그릇에 35,000원이나 하는 라면을 먹는다는 건 충분히 손님들의 과시욕을 자극할 수 있을 겁니다. 원래 비싼 명품일수록 더 잘 팔린다고 하잖아요."

"맞습니다."

하수영의 말에 이택진이 맞장구를 쳤다.

"전 35,000원이 오히려 적은 거 같은데요. 50,000원 정도에 팔아도 좋을 거 같습니다."

"심리적 저항선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래도 라면 한 그릇에 50,000원은 오히려 손님들의 거부감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35,000원이 적당한 균형점이라고 생각되네요."

대충 결론이 났다.

스타트 메뉴도 라면을 포함해서 10개나 정해졌고, 이제 주방 보조를 구하는 일만 남았다.

"제가 쉐프님들에게 각자 주방 보조 한 명씩 채용하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무래도 본인이 주로 데리고 일할 사람이니 본인이 채용하는 게 편할 테니까요."

"전 이미 구했습니다. 제가 전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수습 시절부터 오래 데리고 일한 친구인데요, 내일부터 바로 출근하겠다고 했습니다."

이택진이 제일 먼저 말을 꺼내자 하수영이 의아해서 물었다.

"오래 데리고 일하셨으면 주방 보조를 하기에는 아까운 경력자 아닌가요?"

"사실 개인 가게를 차려도 될 실력을 갖춘 정식 요리사입니다만, 요리 사가 워낙 박봉이라서요. 월급 이야기 듣더니 두말하지 않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흠, 겨우 월 250만 원으로 개인가게 오너급 요리사를 주방 보조로 데려올 수 있다니, 이쪽 세계는 어지간히도 환경이 열악하군요."

"먹고사는 게 다 그렇지요."

다른 두 쉐프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저도 오래 같이 일한 동생을 주방보조로 불렀습니다. 실력 하나는 믿음직스러운 친구입니다."

"저도 친한 동생 불렀는데, 월급이 250만 원이라고 하니까 그냥 바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레스토랑 주인이 빌딩주면 임대료 때문에 가게 접을 일도 없을 테니 오히려 좋다고 난리였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바로 오픈할 예정이니, 오늘 마지막으로 부족한 게 없는지 다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식사권을 돌려야 하거든요."

"식사권이요?"

홀 매니저가 의아해서 묻자, 하수영은 큼지막한 클러치에서 명함 크기의 종이 한 장을 꺼내 흔들며 웃어 보였다.

"이거예요. 우리 가게에서 가격 제한 없이 메뉴 1개를 시킬 수 있는 식권이죠."

"그걸 어디에 돌리시는 건가요?"

"우리 빌딩 입주한 가게들 직원 수에 맞춰서 돌리려고요. 내일 점심이나 저녁때쯤 와서 식사 한번 하시라고요."

직원들은 오픈 첫날 혹시라도 손님이 없지는 않겠구나 하고 안심했다.

한편으로는 하수영의 넉넉한 마음씀씀이에 묘한 울림을 받았다.

메뉴 가격이 최소 2만 원부터 시작하는 비싼 퓨전 레스토랑인데, 빌딩 임차인들 전원에게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하겠다니.

'임차인들 직원들까지 다 합치면 적어도 100명,200명은 훨씬 넘을 텐데…'

'참 통이 크신 분이란 말이야.'

"사장님, 나중에 가게가 잘되면 2호점, 3호점도 내고 그러시겠죠?"

박달수 쉐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이죠. 2호점, 3호점을 내게 되면 아마 쉐프 여러분들이 점장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아예 눌러앉게 되실 수도 있으니 염두에 두시고요."

그 말에 쉐프들은 가슴이 들떴다.

* * *

식사권을 돌리기 위해 병원들이 입주한 10층에서 내린 하수영은 노트를 꺼내 체크했다.

[버킷리스트]

-(V) 나만의 작은 농장 갖기

-( ) 나만의 큰 농장 갖기

-( ) 한국에서 나 혼자만 농장 갖기

-( ) 아시아에서 나 혼자만 농장갖기

-( ) 지구에서 나 혼자만 농장 갖기

……중략…….

빼곡하게 적힌 버킷리스트는 거의 대부분이 공란이었고, V표시가 된 리스트는 극소수였다.

-(V) 나만의 작은 농장 갖기

-(V) 나만의 작은 빌딩 1호기 갖기

-(V) 나만의 작은 농업회사 갖기

-(V) 나만의 작은 식품회사 갖기

……중략…….

-( ) 나만의 작은 음식점 갖기

-( ) 나만의 작은 음식점 갖기(내 빌딩에서)

하수영은 볼펜을 꺼내 공란인 항목 2개에 체크 표시를 했다.

-(V) 나만의 작은 음식점 갖기

-(V) 나만의 작은 음식점 갖기(내 빌딩 1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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